소설리스트

대몽주-1086화 (1,086/1,214)

1086화. 오래된 원수

“도천신살대진에 이런 기능도 있었어?”

심협은 진반에 나타난 작은 사람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며 물었다.

“이건 내가 대진의 진도에 사방축영진(四方縮影陣)을 추가한 거다. 도천신살대진 안에서는 신식을 펼칠 수 없으니 사방축영진이 있으면 더 효과적으로 진 안의 상황을 제어할 수 있지.”

화령자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심협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홍 쪽을 살폈다.

미소는 도산동을 데리고 있었고, 오홍 등은 삼삼오오 흩어져 도천신살대진과 함께 쉬지 않고 공격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도산동의 환술에서 이미 벗어난 듯했다.

“아직 방심하기는 일러. 미소와 원조는 상고의 대능인 만큼 도천신살대진의 위력이 강하다 해도 두 사람에게는 대응할 수단이 있을지도 몰라.”

그는 두 사람과 모두 싸워봤기에 이들의 강력함을 잘 알고 있었다. 두 번의 싸움 모두 사활을 걸 정도로 격렬하지는 않았으니 두 사람에게 아직도 숨겨둔 패가 있을지도 모른다.

화령자는 딱히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네가 저들을 붙잡아둔 덕분에 어느 정도 시간을 벌긴 했어.”

심협은 화제를 돌렸다.

쇄원살사 안의 선천살기는 이미 혼돈흑련에 전부 흡수됐지만, 남은 쇄원살사가 여전히 심협의 법력과 마기 절반을 끈질기게 속박하고 있었다. 이 속박을 풀어 법력을 온전히 회복하지 않으면 원조와 미소를 상대할 수 없을 터였다.

그러나 이 쇄원살사는 허와 실을 오가는 것이라 쉽게 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양팔의 풍뢰영문은 물론이고 순양검과 천화로도 시도해봤지만, 결국 실패했다.

“뭐? 보물이 그렇게 많으면서 아직도 쇄원살사를 못 끊어낸 거냐? 말도 안 돼!”

화령자는 심협 몸의 검은색 실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심협은 화령자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가부좌를 틀었다.

화령자도 심협을 방해하지 않고 전력으로 도천신살대진을 발동하여 미소와 원조를 포위했다.

심협은 회복 단약을 먹고는 또 무언가를 꺼냈다. 바로 명홍도였다.

그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쇄원의 실에는 쇄원 법칙이 담겨 있으니 이를 부수려면 다른 법칙의 힘이 필요할 것이다. 허나 그는 아직 법칙의 힘을 깨닫지 못했다. 가지고 있는 보물 중 법칙의 힘이 담겨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번천인과 명홍도, 참마신검 그리고 혈색 조도였다.

참마신검은 이전에 두 동강이 났다. 비록 다시 합치기는 했지만, 안에 담긴 법칙의 힘이 이미 크게 손상되었거나 소멸했을 가능성도 있다. 혈색 조도는 치우와 관련이 있는 보물로, 비록 안에 담긴 선천 마기는 혼돈흑련에 흡수됐지만, 여전히 쉽게 사용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번천인에 담긴 법칙 능력은 물리적 공격에 치우쳐 있으니 쇄원 법칙을 부수기에는 좋지 않았다.

이전에 화령자가 명홍도에 담긴 법칙은 흡수에 치중되었다고 했으니 쇄원 법칙을 부수기에 유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심협은 이 도를 쥐고 법력과 마기를 주입했다.

천살시왕도 마찬가지였다.

두 태을 존재 법력이 합쳐지니 그 위력은 실로 강력했다. 명홍도 안의 금제가 전부 발동하더니 두 사람의 법력이 금방 도신 가장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눈부신 초록색 빛이 명홍도에서 번득이더니 도광마다 원기를 흡수하는 법칙 파동이 동반됐다. 다만 이 법칙 파동은 매우 미약했다.

심협이 법결을 맺자 대량의 초록색 도광이 쇄원의 실을 베었다. 쉬지 않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고, 그때마다 쇄원의 실이 찢어졌다.

‘역시 효과가 있군!’

심협은 기뻐하며 명홍도에 더 많은 법력을 주입하려 했다.

한데 그때, 갑자기 눈부신 금빛이 앞에서 번득였다. 그 안에 가득한 수많은 신비한 금색 부문이 이루어낸 매우 복잡한 금제가 심협과 천살시왕의 법력을 간단하게 막아냈다.

‘이것은…… 헌원황제가 명홍도에 설치해놓은 금제?’

심협은 굳은 얼굴로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그때, 그의 법맥에 있던 혼돈흑련이 갑자기 강하게 떨리더니 탐욕스러울 정도의 흥분을 드러냈고, 몇 가닥의 뿌리가 허공을 뚫고 나왔다. 이 뿌리는 그 금색 금제를 파고 들어갔고, 금빛을 거침없이 흡수하기 시작했다.

금색 금제의 기운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줄어들어갔다.

심협은 깜짝 놀라 서둘러 혼돈흑련의 뿌리를 거뒀다.

그는 그동안 화령자의 말대로 혼돈흑련을 법보처럼 제련했고, 제법 효과를 봐서 어느 정도는 조종할 수 있게 됐다.

혹돈흑련의 뿌리는 달갑지 않다는 듯 몇 차례 떨렸으나, 이내 명홍도에서 빠져나와 심협의 법맥으로 돌아갔다.

그 짧은 시간에 혼돈흑련은 이미 적지 않은 금빛을 흡수했다. 이전에 쇄원살사에서 흡수한 선천살기까지 더해지자 흑련에 싹이 또 하나 돋아났다.

심협은 기쁜 기색 없이 서둘러 금색 금제를 살폈다. 본래 휘황찬란했던 금빛은 절반이나 줄어들었고, 활발했던 신비한 부문도 굳어져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부서지지는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이 금빛도 어떤 선천의 힘인가?”

심협은 신중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금제는 헌원황제가 명홍도에 담긴 흉살의 본원을 제한하고자 설치해둔 것인데 이렇게 됐으니, 과연 갇혀 있던 이 도의 흉살의 힘을 억누를 수 있을 것인가!

그가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금색 금제가 갑자기 맹렬히 흔들리더니 안에서부터 흉살의 기운이 전해졌다. 마치 우리에 갇혀 있던 흉수가 뚫고 나오려는 것 같았다.

심협은 깜짝 놀라 서둘러 신식으로 살폈는데, 금색 금제에 닿는 순간, 신식은 바로 극도의 음한한 의념에 빨려 들어갔다.

머릿속이 끊임없이 흔들렸고, 신혼은 마치 누군가가 살을 물어뜯는 것처럼 고통스러워 절로 신음이 세어 나왔다.

뿐만 아니라 강력한 흉살의 힘이 침입하더니 금색 금제를 뚫고 머릿속과 체내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죽여! 죽여! 다 죽여주마! 천하 모든 생명을 죽여 삼계를 피로 물들이고, 온 하늘을 만악(萬惡)의 낙원으로 만들 것이며, 수천만의 별을 죄악의 마성(魔星)으로 바꿀 것이다!”

어떤 사악한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심협은 두려운 마음에 서둘러 신식을 거두려 했지만,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법력과 마기도 모두 흉살의 힘에 제압당한 상태였다.

이 흉살의 힘은 빠르게 심협의 몸과 신혼에 침입했다. 신지가 흐려지기 시작하자 심협은 마치 자신의 육체 안에서부터 녹아들어 더러운 피투성이가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한데 그때, 햇살 같은 금빛이 체내에서 갑자기 번득였고, 그 빛에 섞여 있는 금색 뇌전이 강렬한 빛을 내며 흉살의 기운을 가볍게 몰아냈다. 바로 단전에서 온양하던 참마신검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었다.

“헌원검! 네가 또 날 방해하는 것이냐!”

그 사악한 목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졌는데 증오심 가득했으나 패색이 짙어 보이는 기색이었다.

참마신검의 금빛이 한층 강해지자 흉살의 기운은 완전히 증발해버렸다.

심협은 몸이 회복되었고, 사로잡혔던 신지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는 너무 놀라서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었다. 명홍도 안의 흉살의 힘에서 영지가 나타난 것도, 참마신검을 헌원검이라고 부른 것도 놀라웠다.

‘참마신검이 상고의 헌원신검이란 말인가!’

명홍도의 흉령이 내뱉은 말을 들어보니 이 검과 도는 오랜 원수 같았다.

심협은 생각을 정리했고, 명홍도에 더 이상 법력을 주입하지 않았다. 대신 결인하여 손을 내밀었다.

금색 전류가 그의 손끝에서 날아가 명홍도를 휘감더니 겹겹으로 감쌌다. 이 전류는 바로 헌원신뢰였다.

잠시 후, 명홍도는 강력한 금색 뇌구가 되었다.

명홍도에 담긴 흉살의 힘은 참마신검에 부서졌지만, 다시 나타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심협의 수많은 수단 중 유일하게 헌원신뢰만이 이것을 억제할 수 있다.

여기까지 마치고서야 심협은 안도하며 명홍도로부터 조금 떨어져서 이 흉도를 주의 깊게 살폈다. 그 흉살의 힘이 다시 폭주한다면, 아깝더라도 이 도를 버릴 생각이었다.

다행히 잠시 더 살펴봤음에도 명홍도의 기운은 평소와 같았고, 그 흉살의 힘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헌원황제가 저 도에 설치한 금제는 부서진 게 아닌가보군.’

아마도 그가 신식으로 금제의 살기를 감지했을 때, 그 일부가 끌려 나온 것이리라. 그러니 건드리지만 않으면 금색 금제가 충분히 그 살기를 제압할 수 있을 터였다.

그는 헌원신뢰로 감싸인 명홍도를 그대로 임랑환 안에 넣었다.

“심협,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왜 갑자기 참마신검을 발동한 거야?”

화령자의 전음이 들려왔고, 심협은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한데, 절반 정도 설명하던 그는 의아한 얼굴로 말을 끊었다.

몸을 휘감았던 쇄원의 실은 이미 거의 사라졌고, 남은 것도 균열로 가득해 쉽게 부수고 털어낼 수 있었다.

심협의 웅장한 법력이 단숨에 회복되면서 단전과 경맥으로 세차게 흘렀다. 마치 거대한 강이 날뛰는 것 같았다. 마기도 전부 회복되었다.

그는 곧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명홍도의 법칙의 힘으로 쇄원 법칙을 파괴할 수 있음은 분명했는데, 방금 이 도의 핵심 힘이 밖으로 새어 나왔으니 쇄원의 실이 쉽게 부서지는 것도 당연했다.

“쇄원살사를 벌써 부순 거냐? 빠르기도 하군. 아무튼, 잘됐다. 원조와 미소가 어떻게 알았는지 서로의 위치를 감지하고 지금 합류하려 하고 있군. 도천신살대진으로도 막지 못할 것 같으니 네가 어서 가서 둘이 합류하지 못하도록 막아라!”

화령자도 심협이 법력을 회복했음을 눈치채고는 서둘러 말했다.

심협이 검은색 진반을 바라보니 원조가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오홍 등은 미소를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아쉽게도 효과는 미미했다.

“차라리 저들을 도천신살대진에서 쫓아내.”

심협이 잠시 생각하더니 갑자기 말했다.

“쫓아내다니? 어째서? 지금 우리가 차지한 지리적 이점이면 저 요조를 제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너를 속이고 기습했는데 복수하지 않을 게냐?”

화령자가 눈을 부릅뜨며 분통을 터뜨렸다.

“물론 화가 나지. 허나 이곳의 보물을 차지하기 위함이었을 뿐, 큰 원한은 아니야. 지금 저들을 없애려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텐데, 성공했을 때의 이득은 크지 않아. 오히려 원조의 배후 세력과 청구 호족에게는 원수가 되겠지. 우리의 가장 큰 목표는 채주가 무사히 경지를 안정시키도록 돕는 거야.”

“알겠다.”

화령자는 달갑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고는 허공의 진반을 발동했다.

* * *

도천신살대진의 한쪽. 원조는 세 개의 조무 허상과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는다. 바로 공공조무와 축융조무 그리고 제강조무였다.

세 개의 허상 주위에는 마기가 감돌았고, 이전보다 훨씬 더 실체화되어 움직임 또한 실제 같았다. 주먹을 휘두르고 팔꿈치로 때리고 머리로 들이받는 등 공격마다 강력한 질풍이 담겨 있어서 원조의 전진을 가로막았다.

원조의 눈에서 뿜어져 나온 두 줄기 실제 같은 금빛은 주위의 마기를 뚫을 것만 같았다. 그는 손에 든 검은색 봉을 강하게 휘둘러 세 조무의 허상을 몇 장 밖으로 밀어내고는 곧장 튀어나갔다.

눈앞의 이 이상하고도 강력한 대진은 그와 미소의 목적을 완전히 꼬이게 했으니 두 사람은 서둘러 합류하여 앞으로의 일을 논의해야만 했다.

그때, 세 조무의 허상이 갑자기 공격을 멈추더니 주위의 마기 속으로 사라졌다.

당황한 원조는 추격할까 잠시 고민했는데, 이내 주위의 마기 대진이 갑자기 빠르게 줄어들었다. 이에 그는 대번에 대진 밖으로 빠져나왔다.

원조는 놀라움과 기쁨이 교차했고, 서둘러 대진과의 거리를 벌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