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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84화 (1,084/1,214)
  • 1084화. 발천난봉

    “한데 여기에는 무슨 일로 왔습니까?”

    “심 도우와 마찬가지로 북명곤 때문이지요. 목표가 같으니 차라리 힘을 합치는 게 어때요?”

    미소가 웃으며 말했다.

    “힘을 합치자고?”

    “우리가 비록 청구산에서 싸우긴 했지만, 이는 각자의 입장 때문이었지 본래 아무런 원한도 없잖아요? 그러니 손잡지 못할 이유도 없지요.”

    미소의 담담한 얼굴을 보며 심협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심 도우도 만요맹이 여기 왔다는 것을 알고 있겠죠? 그들은 수가 많고 또 고수도 포함되어 있으니 심 도우 일행이나 우리나 그들을 상대로는 역부족이에요. 그러나 힘을 합치만 그들을 이겨낼 수 있지요.”

    “난 북명곤을 반드시 얻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만요맹과도 큰 원한이 없으니 당신들의 싸움에 끼어들 뜻이 없소. 연합 이야기는 못 들은 것으로 하겠소.”

    심협이 짧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심 도우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면, 이건 어때요? 우리는 북명곤이 있는 위치를 알고 있어요. 이제 좀 구미가 당기나요?”

    이어진 미소의 말에 심협은 내심 가슴이 뛰었다. 이는 거절하기 어려운 패였다. 만요맹의 목적은 북명곤이니 자신이 먼저 찾아낸다면 더없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셈 아닌가.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본 그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청구 호족은 현재 삼계 공공의 적이라 할 만했다. 자신은 그들과 큰 원한이 없지만, 괜한 번거로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심협이 거절하자 원조의 눈에서 노기가 반짝였고, 포악한 성정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청구 호족이 삼계 공공의 적이 되었으니 이해합니다. 심 도우의 생각이 그렇다면 저희도 더는 강요하지 않겠어요. 대신 거래를 하고 싶군요. 심 도우가 구천금정을 모은다고 들었습니다. 제게 큰 덩어리가 있는데 심 도우와 거래를 하고 싶어요.”

    미소가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금색 광석을 꺼냈다. 바로 구천금정이었다. 더욱이 그 크기가 상당해 사람 머리통만 했다.

    “원하는 게 뭐요?”

    심협은 구천금정을 보자 설렜지만, 애써 억누르며 물었다.

    “북명거린입니다.”

    “북명거린?”

    심협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이미 동해지연을 찾았으니 이 북명거린도 큰 쓸모가 없다. 그러니 저렇게 큰 구천금정과 바꾼다면 손해는 아닐 터였다. 저 정도 구천금정을 현황일기곤에 넣는다면 위력이 배로 늘거나 어쩌면 선기급으로 돌파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아니면 저 구천금정으로 천두금준을 복구할 수도 있다.

    “화령자, 어떻게 생각해?”

    심협은 마음이 많이 흔들렸지만, 바로 대답하지 않고 전음으로 화령자에게 물었다.

    그가 아는 미소는 매우 총명한 사람이니 저렇게 큰 구천금정으로 북명거린을 사려 한다는 것은 분명 다른 목적이 있을 터였다.

    “나도 모르겠다. 어쩌면 북명거린에 다른 용도가 있을지도 모르지. 네가 알아서 정해라.”

    화령자의 대답에 심협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간절히 원한다는데 거절하기도 힘들구려. 다만 구천금정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소만.”

    “좋아요. 얼마든지 살펴보시죠.”

    미소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구천금정을 던졌다.

    심협은 신식을 펼쳐 훑어봤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는 소매로 금정을 휘감고 가져와 삼소묘음술을 시전했다.

    수많은 파문으로 만들어진 하얀 빛이 구천금정에 들어가 내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한데 그때, 구천금정이 쩍하고 부서지더니 수많은 검은 실이 되어 심협의 몸을 빠르게 휘감았다. 이 실에서는 검은 빛과 함께 봉인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심협의 법력 파동이 빠르게 사라졌고, 마기도 빠르게 이 실에 갇혀 몸의 영광이 어두워졌다.

    안색이 변한 그는 온 힘을 다해 황정경과 치우무결을 운공했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고, 법력과 마기 파동이 빠르게 사라져 갔다.

    “심형!”

    옆에서 오홍 등이 이 광경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바로 달려들었다.

    한데 앞에서 하얀 빛이 번쩍이더니 도산동이 허공에 나타나 눈에서 두 줄기의 변환(變幻)의 빛줄기를 발사했다.

    두 요괴와 원구 등이 반격하려 했지만, 도산동의 눈에서 뿜어져 나온 하얀 빛을 보고는 갑자기 멍해졌고, 달려오던 속도도 점점 느려졌다.

    오홍도 무사하지 못해서 환술에 걸린 것처럼 눈빛이 흐려졌다.

    일행이 당하는 것을 본 화령자는 깜짝 놀라서 뭔가 하려다가 심협을 보더니 뒤이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괜히 헛수고하지 마라. 이 쇄원살사(鎖元煞絲)는 선천살기를 쇄원 법칙에 섞어서 만든 것이라 태을 절정의 수사도 걸리면 법력이 사라진다.”

    미소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가느다란 손을 들어 허공을 꽉 쥐었다.

    다섯 개의 크고 날카로운 칼날 같은 다섯 줄기 백망이 쏜살같이 심협에게로 날아갔다.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도 전에 하얀색 조망(爪芒)이 벌써 코앞까지 다가왔다.

    심협이 발을 강하게 딛자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잔상이 되어 옆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바로 열석보 신통이었다.

    그는 법력이 속박되었지만, 육체의 힘은 여전했기에 열석보는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단숨에 공격을 피한 그는 뒤쪽의 도천신살대진을 향해 달렸다.

    “분명 선천살기라고 했지?”

    달리는 도중, 심협은 미소의 말을 되새기며 법맥 안의 혼돈흑련 뿌리를 발동했고, 이 뿌리는 곧장 그의 몸을 묶은 검은색 실을 찔러 들어갔다.

    음한한 살기가 혼돈흑련의 뿌리에 뽑혀 나가자 쇄원살사의 봉인의 힘이 갑자기 느슨해졌고, 법력과 마기 일부가 밖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화령자가 이전에 혼돈흑련이 선천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다고 했는데, 사실임을 확인한 심협은 크게 기뻐했다.

    한편, 미소는 표정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다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다섯 개의 하얀 빛이 허공으로 쏘아졌고, 다른 손으로는 금도(金刀) 법보를 꺼내 휘두르자 10여 장의 도광이 곧장 심협을 베기 위해 날아갔다.

    법력과 마기가 일부 회복된 심협의 열석보는 더욱 정교해져서 잔상이 되어 허공을 밟으며 다시 조망과 도광을 피했다. 도천신살대진까지는 이제 10여 장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데 그때 앞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원조가 귀신처럼 나타나 팽팽한 근육이 가득한 양팔로 검은색 곤봉을 내리쳤다. 전방의 허공이 갑자기 어두워졌고, 하늘을 찌를 듯한 괴력이 폭풍처럼 거세게 밀려왔다.

    깜짝 놀란 심협은 방금 회복한 법력을 추운축전화에 주입했다.

    꽈르릉!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며 심협은 굵은 뇌전이 되어 오른쪽으로 재빨리 피했고, 곧장 방향을 바꿔 도천신살대진으로 달렸다.

    원조가 차갑게 비웃더니 검은 봉을 이리저리 휘두르자 수백 개의 곤봉 허상이 순식간에 반경 백 장을 뒤덮었다.

    웅장한 괴력이 압박해오자 공간이 함께 굳어지면서 보라색 뇌전이 허공에 멈추었고, 이내 폭발했다. 그 안에서 심협이 비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발천난봉!”

    “네놈의 발천난봉은 성취를 이루지도 못했더구나. 오늘 너에게 진정한 발천 봉법(棒法)을 보여주마!”

    원조가 차갑게 비웃더니 팔을 흔들자 강력한 요력이 봉에 주입되었다.

    주위의 검은 곤봉 허상이 마치 수백 명이 동시에 발천난봉을 시전한 것처럼 사방을 뒤덮으며 공격해 왔다.

    이전보다 열 배나 강력한 힘이 하늘에서 내려오자 허공에는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표정이 굳어진 심협은 양손을 결인하는 동시에 체내의 법력과 마기를 발동하여 현양화마 신통을 시전했다.

    그의 몸에 금과 흑, 두 가지 색의 무늬가 떠오르며 몸이 순식간에 몇 배로 커져서 반선반마(半仙半魔)의 모습이 되었다.

    심협의 현황일기곤도 금빛을 발하며 발천난봉을 시전했다. 금색 무늬가 가득한 곤봉의 허상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검은색 곤봉과 충돌했다.

    꽈르릉!

    하늘이 흔들리는 듯한 굉음이 폭발하면서 금색 곤봉 허상은 전부 부서졌지만, 검은 곤봉의 허상도 절반이나 부서져서 간신히 주위를 에워쌌다.

    “이럴 수가!”

    원조가 깜짝 놀란 듯 외쳤다.

    심협의 법력은 쇄원살사에 속박되었을 텐데 어찌 이런 강력한 공격을 시전했단 말인가! 아니, 법력이 속박되지 않았다 해도 원조의 발천난봉을 막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한편, 애써 모은 법력과 마기를 거의 다 소모한 심협은 서둘러 운공하여 몸을 겨우 안정시켰지만, 견디기가 무척 힘들었다.

    원조는 심협의 기운이 안정되는 것을 보고는 검은 봉을 허공에서 멈췄다.

    강력한 요력이 뿜어져 나오더니 주위의 검은색 곤봉 허상으로 녹아 들어갔다.

    부서진 검은 곤봉의 허상이 순식간에 원래대로 회복되었고, 표면에 고졸한 무늬가 떠오르면서 그 위세는 이전보다 강력해졌다.

    중후한 법칙 파동이 검은 곤봉 허상에서 폭발하며 나오자 주위의 천지영기가 전부 밀려나면서 조금의 원기도 없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본래 나서서 도우려던 미소는 이 광경을 보고는 손을 멈췄다.

    “법칙 공간!”

    심협은 주위에서 법칙 기운이 감지되자 바로 이 신통을 알아보고는 양발에서 뇌광을 뿜어내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음 순간, 법칙 공간 가장자리에 나타난 그는 망설임 없이 허공으로 현황일기곤을 휘둘렀다.

    금색 곤봉 허상이 나타나더니 천지를 찢어버릴 듯한 공격이 빼곡하게 나타나 법칙 공간 장벽을 두들겼다.

    태양 같은 금빛이 뿜어져 나오며 공격했지만, 법칙 공간 장벽은 부서지지 않았고, 오히려 금색 곤봉 허상이 전부 부서지면서 심협은 충격으로 뒤로 날아갔다.

    현양화마 상태에서 시전한 발천난봉은 심협의 가장 강력한 공격 수단으로 금전의 혈하 법칙 공간도 쉽게 부쉈거늘, 이번에는 법칙 공간의 장벽을 흔들지도 못한단 말인가!

    심협이 영문을 알아채기도 전에 뒤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원조가 순식간에 나타나 그의 머리를 향해 검은 봉을 휘둘렀다.

    봉이 심협의 머리에 막 닿으려는 순간, 허공에서 노란 빛이 반짝이더니 기다란 금색 날개가 달린 노란 그림자가 나타났다. 바로 천살시왕이었다.

    시왕의 입에서 암홍색 대인이 나오더니 검은 봉과 충돌했다.

    땅!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번천인과 검은색 봉은 각각 뒤로 튕겨 나갔다.

    표정이 어두워진 원조는 양손을 뒤로 돌려 두꺼운 팔을 늘리더니 대번에 천살시왕의 가슴을 뚫었고, 곧바로 힘을 줘 양쪽으로 벌렸다.

    쩍!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천살시왕의 몸이 둘로 찢어졌다.

    이때 몸을 가눈 심협이 소매로 번천인을 휘감고는 법력을 주입했다.

    번천인의 암홍색 광망이 갑자기 강력해지면서 순식간에 몇 배로 치솟아 주위의 허공이 강렬하게 떨려왔다. 번천인은 원조를 짓눌러버리려는 듯 머리 위로 떨어졌다.

    원조가 막강하긴 하나 이 상고 중보는 감히 정면으로 막을 수가 없었기에 원조는 몸에서 검은 빛을 발하며 재빨리 옆으로 피했다.

    번천인의 일격은 허공을 지나 법칙 공간 장벽에 꽂혔다.

    꽈르릉!

    경천동지할 굉음이 울려 퍼지며 공간 장벽이 크게 흔들렸고, 그 위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심협은 의아했다. 지금 그의 경지에 현양화마 신통까지 시전했으니 발천난봉의 위력은 번천인보다 훨씬 강력할 터였다. 한데 발천난봉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던 공간 장벽이 왜 번천인에는 무너지려 하는 것일까?

    ‘원조의 법칙 공간은 그가 시전한 법칙과 관련이 있는 건가?’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자 심협은 양발에서 뇌광을 뿜어내어 번천인 뒤에 나타나 양손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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