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083화 (1,083/1,214)
  • 1083화. 구름 속의 사람

    “누구냐! 당장 모습을 드러내라!”

    심협이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하하하!”

    오만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검은 구름이 허공에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이전에 만요맹의 뒤를 따라 동해지연으로 들어온 그 검은 구름이었다.

    “누구이기에 우리를 공격한 것이냐?”

    심협이 검은 구름을 향해 외쳤지만, 돌아온 것은 검은 구름에서 번개처럼 날아든 검은색 봉이었다.

    심협의 머리 위로 떨어진 이 커다란 봉은 길이가 수십 장에 매우 두꺼워서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 같았다. 떨어지는 속도도 매우 빨라서 순식간에 머리 위까지 다가왔다.

    심협은 경계심을 잔뜩 끌어올린 상태였음에도 반응이 다소 늦었고, 서둘러 뒤로 물러나는 동시에 현황일기곤으로 막았다.

    땅!

    경천동지할 굉음과 함께 엄청난 힘이 퍼져 나갔다.

    심협은 만 장의 거대한 산을 받친 것처럼 두 팔이 마비되는 것 같았고, 연달아 뒤로 물러났다.

    그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황정경을 대성한 뒤로 힘으로는 밀린 적이 없었는데, 지금 상대에게 압도당한 것이었다.

    “하앗!”

    심협이 기합을 내지르며 현황일기곤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휘둘렀고, 자신도 곤봉을 따라 반대로 돌며 검은 곤봉의 공격을 밀어냈다.

    검은색 곤봉은 공격을 멈추더니 쏜살같이 구름 속으로 돌아갔다.

    “발천난봉! 그 곤법을 어디서 배웠느냐!”

    검은 구름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만하게 웃던 그자였다.

    심협이 방금 검은 곤봉을 밀어낸 수법은 발천난봉의 제일식이 분명했지만, 이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물음에 답하라! 그러지 않으면 오늘이 네 제삿날이 될 것이다!”

    구름 속의 사람은 차갑게 내뱉었다.

    “내 목숨을 원하나? 자신 있으면 와서 가져가 봐.”

    심협이 현황일기곤을 들어 올리며 당당하게 외쳤다.

    “오냐! 네놈이 명을 재촉했으니 원대로 해주마!”

    구름 속의 사람이 비웃으며, 검은 구름이 솟구치더니 검은색 봉이 다시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봉은 산과 바다를 부술 기세로 내려왔다.

    주위의 바닷물에서 갑자기 푸른색 파동이 일며 수백 장 크기의 푸른 빛이 떠올랐고, 이어 이 빛이 뒤덮은 영역의 바닷물이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검은색 곤봉은 푸른 빛의 영역에 들어가자 속도가 약간 느려졌지만, 심협은 그 틈에 양발에서 뇌광을 번쩍이며 빠르게 물러나 피했다.

    푸른 빛의 영역은 무명공법 중 수계술(水界術) 신통으로, 여기에는 강력한 봉인 효과가 있었다. 물속에서 시전할 때 비로소 위력을 발휘하는 신통이었다.

    그는 진선기로 돌파한 이후로 오랫동안 무명공법을 사용하지 않았었는데, 이곳은 수령(水靈)의 힘이 무궁무진한 깊은 바닷속인 만큼 한번 사용해보니, 역시나 효과는 뛰어났다.

    검은 구름 속의 사람이 침음하더니 뭐라고 중얼거렸다. 어떤 술법인지, 검은 봉이 방향을 바꾸면서 다시 심협을 향해 떨어졌다.

    심협은 당황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양팔이 두 배로 커졌고, 금빛 용의 비늘이 나타났다. 손도 순식간에 거대한 용의 발로 변했고, 현황일기곤도 두 배로 커졌다.

    심협이 그 상태에서 뒤로 돌아서 공격하자 천지를 뒤덮는 괴력이 폭발하면서 현황일기곤은 금색 곤봉 허상이 되어 검은색 봉과 충돌했다.

    땅!

    또다시 천지에 굉음이 울려 퍼졌고 심협은 다시 뒤로 밀려났지만, 이번에는 10여 장 정도에서 몸을 가눴다. 아까보다 훨씬 짧은 거리였다.

    그가 곧장 팔을 휘두르자 현황일기곤이 다시 금색 곤봉 허상이 되어 검은색 봉을 향해 휘몰아쳤다.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놈이로구나!”

    상대가 크게 분노하며 검은 봉을 휘둘러 응전했다.

    땅! 땅! 땅!

    연이은 충돌음이 크게 울려 퍼지면서 반경 백 리의 바닷물이 요동쳤고, 주위의 유적 건물이 절반이나 부서졌지만, 묘지 같은 대전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거울 요괴 등은 도천신살대진을 지켰을 뿐,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들이 감히 끼어들 수준을 벗어난 싸움이기 때문이었다.

    오홍 역시 거울 요괴 옆에 나타나 멀리서 이 전투를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편, 심협과 검은색 봉의 전투는 일진일퇴를 거듭했는데, 싸우는 장소는 도천신살대진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네놈의 동료들에게서 이미 멀어졌으니 네 신통을 마음껏 시전해봐라.”

    검은 구름이 먼 곳까지 따라오더니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담담하게 말했다.

    심협의 눈썹이 꿈틀했다. 자신의 의도를 간파하고도 막지 않았다는 것은 상대가 실력에 상당한 자신이 있다는 의미였다.

    그는 이를 악물고는 소매를 휘둘렀다.

    휙!

    서른 자루의 순양검이 나타나 순식간에 수많은 붉은 검의 허상으로 변하여 빠르게 허공의 검은 구름을 향해 날아갔다.

    천지를 뒤덮은 검의 허상 사이에서 초록색 빛이 반짝이더니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검은 구름 속의 상대는 흠칫 놀라 본래 10여 장이었던 구름을 갑자기 몇 배로 줄였고, 동시에 흐릿하게 변했다. 이어서 왼쪽으로 백여 장을 날아가 수많은 검의 허상에서 벗어났다.

    실로 놀라운 속도였지만, 어느 틈에 눈앞에서 초록색 빛이 번득이더니 찬란한 도광이 튀어나와 검은 구름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베었다.

    천지를 파괴할 것 같은 무서운 도의(刀意)가 명홍도에서 뿜어져 나와 그 검은 구름을 뒤덮었다.

    검은 구름 안에서 깜짝 놀란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름은 밑으로 빠르게 내려가 다시 공격을 피했는데, 자기도 모르게 수계술 범위 안으로 들어와 버리고 말았다.

    수계술의 중심 부분에 있는 심협은 오른손에서 푸른 빛을 강하게 번득이며 진창해 신통을 시전했다. 이어서 진창해의 한기를 마음껏 뿜어냈다.

    수령의 힘이 매우 짙은 수계술 영역은 진창해 신통을 시전하기에 더없이 적합했다.

    쩍!

    냉랭한 소리와 함께 수계술 영역 안의 바닷물이 순식간에 얼어붙어 거대한 푸른색 얼음이 되었다. 검은색 구름도 그 안에 얼어붙어 꿈쩍도 하지 못했다.

    심협 주위의 바닷물은 얼지 않았는데, 그가 손을 대자 손끝에서 푸른 빛이 반짝였다.

    그 안에서 두 자루의 푸른색 얼음 칼이 나타나 더 강렬한 한기를 뿜어내며 그대로 검은색 구름을 교차하면서 베었다.

    그 순간, 검은 구름이 강렬하게 흔들리더니 매우 강력한 힘이 폭발해 두 자루의 얼음 칼을 부쉈다. 뒤이어 검은 구름이 주위의 푸른색 얼음에 커다란 구멍을 내고는 그 사이로 도망쳐 나왔다.

    그러나 진창해의 한기가 침범한 탓인지 그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다.

    심협은 씩 웃더니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서른 자루의 순양검과 명홍도가 다시 검은 구름 앞에 나타났고, 수많은 검광과 도망이 검은 구름을 베었다.

    펑!

    순간 검은 구름이 폭발하면서 검은 기운이 되어 어지럽게 흩날렸다.

    하지만 그 흩날린 검은 기운은 사라지지 않고 살아 있는 것처럼 순양검과 명홍도를 감싸서 가뒀으나, 다음 순간 검은 기운은 검기와 도망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부서졌다.

    대신 그 틈에 세 개의 그림자가 흩날리는 어두운 기운에서 튀어나와 멀지 않은 곳으로 내려왔다.

    그 세 사람을 보는 순간, 심협은 표정이 변하더니 바로 결인했다.

    서른 자루의 순양검과 명홍도가 바로 뒤로 날아와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눈앞의 세 사람 중 가장 왼쪽은 금색 갑옷을 걸친 커다란 검은 원숭이였다. 온몸이 단단해 보이는 검은 털로 뒤덮여 있었고, 두 눈은 금빛으로 반짝였으며, 송곳니는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손에는 검은색 곤봉을 들고 있었는데 그 힘이 무궁무진해 보였다.

    가운데 사람은 푸른 옷을 입은 열대여섯 살의 소녀로, 바로 호조가 전생한 몸인 미소였다.

    마지막 한 사람은 낯이 익으면서도 처음 보는 백의의 소녀였다. 머리 위에 자란 두 귀를 보니 청구 호족인 듯했는데, 코에는 두꺼운 안경을 걸치고 있었다. 만약 호불귀가 봤다면 그녀를 알아봤을 것이다. 그녀는 바로 도산동이었다.

    커다란 검은색 원숭이의 웅장한 기운은 미소보다 약하지 않았다. 천존에 근접한 무서운 존재임이 분명했다.

    검은 원숭이는 금색 눈동자로 심협을 노려봤는데, 눈빛이 유난히 차가웠다. 그는 커다란 손을 내밀어 갑자기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사방에 흩어진 검은색 기운이 안개처럼 다시 모여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검은 구름이 되어 원숭이 옆에 떠올랐다.

    심협은 눈을 번득이며 시선을 검은 원숭이에서 백의의 소녀에게로 옮겨 다시 살폈다. 이어서 시선은 다시 미소에게로 향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호호! 심 도우, 우리는 정말 인연이 깊은가 봅니다. 청구산에서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그대의 정진 속도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빠르군요. 벌써 태을 경지에 도달하다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미소가 옅은 미소를 짓더니 멀리서 심협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심협은 머릿속의 신혼이 흔들리며 법력도 함께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는 서둘러 황정경과 부주진신법을 운공하고 나서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그는 내심 매우 놀랐다.

    ‘엄청난 매혹의 술법이구나. 시전하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미소 역시 실력이 상당히 정진한 듯했다.

    “미소 도우였구려. 그나저나 두 분은 뉘신지……?”

    심협은 공수하여 답례했으나, 조금도 방심할 수 없었기에 황정경과 부주진신법을 몰래 운공했다.

    “심 도우, 뭘 그렇게 경계합니까? 이쪽은 우리 일족 도산동이라 합니다. 심 도우와도 깊은 인연이 있지요. 바로 도산설의 언니이지요.”

    미소가 옆의 백의의 소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도산동……?”

    심협은 의아한 눈으로 백의의 소녀를 바라봤다.

    “심 선배를 뵙습니다. 제 동생이 청구산에서 선배님께 잘못을 저질렀다지요?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동생을 대신해 사죄드리겠습니다.”

    도산동은 진실한 표정으로 예를 올렸다.

    “아니오. 그날 도산설 도우도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이거늘, 무슨 잘못이 있겠소?”

    심협은 담담하게 웃으며 답했지만, 속으로는 곰곰이 생각했다.

    도산동은 도산설을 정말로 아끼는 것 같았다. 한데 도산설은 이전에 호조의 힘을 빼앗겨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는데 도산동의 말에는 아무런 걱정이 없어 보였다. 그저 도산설을 위해 잘못을 사과했을 뿐이었다.

    ‘청구 호족이 벌써 도산설을 찾은 건가?’

    그렇다면 호불귀는 어찌 되었단 말인가!

    미소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도산동을 돌아보자 그녀는 움찔하더니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났다.

    심협은 두 사람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고, 자신의 추측에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됐다.

    “저분은 자신이 직접 소개할 겁니다.”

    미소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기며 검은 원숭이를 가리켰다.

    “본좌의 이름은 아직 모르는 게 좋다. 그냥 원조(猿祖)라 불러라.”

    검은 원숭이가 껄껄 웃고는 거만하게 말했다.

    “원조!”

    심협의 눈빛이 흔들렸다.

    화령자에게서 상고 시기에 반고 대신에서 나온 몇 명의 요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의 이름이 분명 원조였다. 호조의 전생인 미소의 일행이라면, 저 원숭이가 정말로 상고의 원조란 말인가?

    “귀하가 바로 원조시군요. 그나저나 방금 귀하는 무슨 연유로 저와 제 동료들을 공격했습니까?”

    심협은 금세 침착함을 되찾고는 차갑게 물었다.

    “본좌가 사람을 죽이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냐. 그리고 너는 인간족이고 난 요족이다. 지금 삼계는 인간족과 요족이 대립하고 있으니 본존이 너희를 공격하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닌가?”

    원조가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요? 그렇다면 기꺼이 받아주지요.”

    심협은 피식 웃더니 현황일기곤에서 금빛을 뿜어냈고, 서른 자루의 순양검과 명홍도가 일제히 상대를 향해 광망을 뿜어내며 기세를 높였다.

    “감히 본좌에게 싸움을 걸다니, 건방진 놈이로구나! 껄껄! 정말 재밌는 녀석이야. 호 도우가 널 높게 평가하길래 그러려니 했거늘, 지금 보니 넌 멍청한 인간족 놈들하고는 다르구나. 아주 마음에 들어.”

    원조는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심협은 긴장을 풀지 않고 미간을 찌푸렸다. 원조와 미소의 말은 종잡을 수가 없어서 원하는 게 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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