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0화. 도움
“지금 당장은 이 건물로 들어갈 방법이 없지만, 그렇다고 여기 온 것이 아무런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의 풍부한 무력만 있다면 네 부인이 태을 경지로 들어서는 데 도움이 될 게다.”
“정말? 귀원진(歸元陣)을 사용할 생각이야?”
심협이 기뻐하며 물었다.
그는 이전에 섭채주의 경지 돌파 문제에 대해 화령자와 상의한 적이 있었다. 화령자가 제시한 방법은 무력이 충만한 환경에서 귀원진으로 섭채주 체내의 무족 혈맥을 자극하여 더 많은 후예의 힘을 방출해 단번에 태을의 한계를 돌파하자는 것이었다. 단, 이런 방법으로는 체내의 무력이 크게 늘어난다 해도 심경이 돌파하지 않아서 갑자기 팽창한 힘을 제어하지 못해 몸이 상할 수도 있다.
심협과 화령자도 무력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 못했기에 돕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건 위험성이 커서 나도 장담할 수 없으니, 할지 말지는 스스로 결정하게 해라.”
화령자의 말에 심협은 잠시 생각하더니 섭채주를 따로 불렀다.
“오라버니, 금제를 파훼할 방법이 떠올랐나요?”
섭채주가 기뻐하며 다가왔다.
“아니, 이곳의 금제는 범상치 않아서 지금으로서는 가능성이 없어 보여.”
심협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섭채주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홍 등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실력이든 지식이든, 이곳에 오는 동안 본 바로는 심협이 일행 중 최고였다. 은연중에 그가 우두머리 역할을 해왔는데, 그런 그가 이 금제를 부술 방법이 없다고 하니 다른 사람들이 상심할 만도 했다.
“이 건물에는 들어갈 수 없어도 이곳의 무력이 채주, 네가 태을 경지로 돌파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몰라.”
심협이 화제를 돌려 귀원무진의 장단점을 일러주고는 섭채주에게 직접 결정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기뻐하던 섭채주는 들을수록 표정이 굳더니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들은 오홍 등은 각기 다른 반응이었다. 특히 원구는 머릿속에서 충격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는 이전에 심협이 섭채주에게 태을 경지로 들어서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오만하다 여겼는데, 지금 보니 정말 방법이 있는 것 같았다.
진선기도 대승기도 아닌 태을기다. 삼계에서 이 관문에서 막혀 수명이 다할 때까지 넘지 못한 진선기 수사가 얼마나 많던가.
‘불과 몇 년 사이에 수단이 이렇게 신출귀몰해지다니. 어차피 동해에는 아무런 연고도 없으니 차라리 심협을 따라다니는 게 좋지 않을까?’
원구는 머릿속으로 이해득실을 따지기 시작했다.
한편, 심협은 이번 결정만큼은 반드시 섭채주 스스로 해야 한다 여겼기에 그녀를 묵묵히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라버니, 결정했어요. 이대로 가다가는 언제 태을 경지로 돌파할 수 있을지 몰라요. 수선의 길은 본래 역천의 길. 기연과 조화가 없어서는 안 되는 법이잖아요. 이 방법이 위험하다 해도 모험해볼 가치는 있어요.”
섭채주는 결정을 내렸다.
“충분히 생각한 거야? 귀원무진이 네 체내에 담긴 후예의 무력을 끌어내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그 무력을 네가 제어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해.”
“그동안 저도 후예의 무력을 제어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생각해왔으니 자신 있어요. 설령 안 된다 해도 제 옆에는 오라버니가 있잖아요.”
섭채주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무력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 못하니 별 도움이 안 될지도 몰라.”
“전 오라버니가 반드시 도와줄 거라 믿어요. 그리고 지금 삼계가 나날이 혼란스러워지고 있으니 보타산 소종주인 저도 반드시 태을 경지에 들어서야 해요.”
“네가 그렇게 결정했다니, 알겠어.”
심협은 그녀의 결연한 표정에 더는 말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바라봤다.
“여러분, 정말 미안하지만 저와 채주는 한동안 여기 머물러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헛되이 기다릴 것 없으니 먼저 길을 나서는 게 좋겠습니다. 이곳의 일이 마무리되면 채주와 함께 찾아가겠습니다.”
눈물 요괴와 원구는 망설였다. 태을 경지로 들어서는 데는 10여 일 밖에 안 걸릴 수도 있지만, 길면 두 달이 걸릴 수도 있다. 그동안 그들은 많은 보물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심형, 그게…… 내가 태을로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심형 덕이었는데 지금 섭 도우가 태을 경지로 돌파한다 하니 내 어찌 돕지 않을 수가 있겠소? 그리고 심형과 섭 도우가 없이는 다른 세력이나 강력한 요물을 만나면 어차피 우리 목숨이 위태로울 거요.”
오홍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주인님, 저도 남아서 주인님을 돕겠습니다.”
거울 요괴가 확고한 눈빛으로 말했다. 눈물 요괴가 뒤에서 그녀의 옷을 당겼지만, 거울 요괴는 단호했다.
한편, 원구는 오홍의 말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다가 동해지연의 위험을 잊은 것이다. 보물이 문제가 아니라 대승기인 자신이야말로 심협 등의 보호가 없으면 하루도 살아남지 못할 것 아닌가.
“이 원모도 이익을 중시하고 벗을 경시하는 사람이 아니니 당연히 남을 겁니다.”
원구가 껄껄 웃으며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눈물 요괴는 그를 노려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모두 남는데 혼자서만 떠날 수는 없었다.
화령자는 이 대화를 듣고는 소요경에서 나와 곡현성반을 꺼냈다.
찬란한 성반이 푹 소리를 내며 땅에 박히자 자흑색 광망이 그 안에서 번득이더니 강렬한 무력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곡현성반에서 무문(巫紋)이 나오더니 빠르게 땅으로 퍼져 나갔다.
섭채주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땅에서 빠르게 늘어나는 무진을 바라봤고, 오홍 등도 다가와서는 신기한 듯 화령자를 바라봤다.
화령자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빠르게 술법을 시전하여 곡현성반을 중심으로 반경 30여 장의 육각형 무진을 설치했다.
“이게 귀원무진이라고? 전에 본 진도와는 좀 다른데?”
“이건 육전귀원진(六轉歸元陣)이다. 귀원진보다 효과가 더 좋지. 단, 여섯 명이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여기 도와줄 사람이 많으니 좋은 기회 아니냐.”
화령자의 설명에 심협은 환하게 웃으며 바닥의 무진을 자세히 살폈다.
“넌 진 안에 앉아라.”
화령자가 돌아보며 말하자 섭채주는 바로 진 안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었다.
“이 진은 여섯 명이 함께 발동해야 하니 다섯 명이 더 필요하다.”
화령자가 대진의 한쪽 모서리로 들어가며 오홍 등을 눈으로 훑었다.
“물론 기꺼이 도울 거요. 다만, 처음 보는 무진이라 어떻게 발동해야 하는지 모르는데 괜찮겠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대진의 운공은 내가 할 테니 그대들은 법력을 운공하여 진에 주입하기만 하면 된다. 대승기만 되어도 충분하지.”
화령자는 오홍의 질문에 대답하고는 원구를 돌아봤다.
오홍은 바로 대진의 한쪽 모서리에 섰고, 거울 요괴와 원구도 대진 안으로 들어갔다.
눈물 요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진 한쪽 모서리에 섰다.
“모두 감사합니다. 여러분께 큰 빚을 졌습니다.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반드시 제가 돕겠습니다.”
심협이 공손하게 포권하고는 마지막 모서리로 가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검은색 그림자가 건곤대에서 나오더니 한 발 앞서 진 안에 섰다. 바로 조비극이었다.
“주인님, 섭 도우가 태을 경지에 들어서면 큰 소란이 일어날 테고, 적들이 습격해올지도 모릅니다. 무진은 제게 맡기시고 저희를 지켜주십시오.”
“그 말이 맞다. 심협, 너는 옆에서 호법을 서라.”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자 화령자는 오홍 등에게 육전귀원진의 요점을 알려줬고, 그들은 법력을 안에 주입하기 시작했다.
무수한 보라색 광망이 육전귀원진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위의 공공무력이 갑자기 무진에 이끌려 짙은 푸른색 안개가 물처럼 진 안의 섭채주에게로 모여들었다.
이 안개가 점점 섭채주를 감싸면서 그녀의 모습은 희미해져갔다.
안개 속, 섭채주는 고통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체내의 무족 혈맥을 자극하여 공공무력을 흡수했다.
“화령자, 무력은 각기 다르다고 했잖아. 채주의 몸에는 후예의 힘과 촉구음의 무력이 있는데 이번에 공공무력을 흡수하면 그녀가 버틸 수 있을까?”
심협은 갑자기 생각났는지 서둘러 전음으로 화령자에게 물었다.
“섭채주는 순수한 무족이 아니라서 체내의 원기가 본래 뒤섞여 있으니 무력이 하나 더 늘어나도 큰 문제는 없다. 그리고 우리는 채주에게 공공의 무법을 전수하는 게 아니라 이곳의 무력을 이용하여 그녀가 후예의 무력을 더 많이 끌어내도록 돕는 거다. 정 걱정되면 우선 성공한 뒤에 체내에 남은 무력은 뽑아내면 된다.”
화령자의 대답에 심협은 일리 있다는 생각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섭채주의 몸 주위를 둘러싼 짙고 푸른 안개가 갈수록 짙어지면서 점점 육전귀원진을 뒤덮자 그 안은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됐다.
섭채주는 온몸의 피부뿐만 아니라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까지 짙은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푹!
육전귀원진의 작용 아래 그녀의 등에서 두 개의 나비 날개가 나타나 가볍게 펄럭였다.
화령자가 양손을 빠르게 결인하자 무문들이 진에서 섭채주의 몸으로 퍼져 나가 짙은 푸른색 몸을 빠르게 타고 올라갔다. 쌍방이 모두 환하게 빛나는 광경은 퍽 신비로웠다.
한편, 섭채주의 등에 돋아난 두 날개가 금, 백의 광망으로 서서히 밝아지면서 기운도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표정이 조금 편안해졌고, 양손을 몸 앞에서 결인했다. 몸의 무력이 끊임없이 증가했지만, 흐트러지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제야 심협은 걱정을 조금 내려놨다.
“가라!”
잠시 후, 화령자는 짧게 내뱉고는 손을 활짝 펴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섭채주 아래의 무진이 빛나더니 다섯 줄기의 푸른 광망이 뿜어져 나와 그녀의 아랫배와 단전 등 중요한 자리를 찔렀다.
섭채주의 가녀린 몸이 크게 떨렸고, 법진 안의 공공무력이 다섯 줄기의 푸른 빛을 타고 그녀의 체내로 천천히 주입됐다.
그녀 몸의 푸른 빛은 갑자기 열 배나 밝아졌고, 나비 날개의 금백 광망도 함께 강해졌다. 특히 금색 날개가 촤악 펼쳐져 두 배로 커지더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의 금빛을 뿜어냈다.
강력하기 그지없는 힘이 금빛에서 솟아올라 산을 부수고 땅을 가를 기세로 허공에 충격을 가하자 갑자기 공간이 심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후예의 힘이 끌려 나왔으니 이제는 조화를 지켜보면 된다. 관건은 그녀가 태을 경지 후예의 무력을 견뎌낼 수 있느냐다.”
화령자가 천천히 말하자 심협은 진중한 눈빛으로 짙은 안개에 둘러싸인 섭채주를 바라봤다.
오홍 등 다섯 명은 여전히 전력을 다해 법진을 발동하여 공공무력을 섭채주의 몸으로 주입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섭채주 몸의 푸른 빛은 더욱 밝아졌고, 금색 나비 날개에 담긴 후예의 무력도 점점 강해졌다.
그들은 속으로 섭채주가 성공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성공한다면 그들 일행에는 태을 경지가 세 명이 되니 만요맹과 대전을 벌여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