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078화 (1,078/1,214)

1078화. 무족의 후예

“심협, 방금 왜 불렀던 거냐?”

갑자기 화령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별것 아니야. 뭐 좀 물어보려 했지. 그런데 뭐 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뭘 하겠냐? 다 너 때문에 바쁜 거지. 훼멸명왕의 뇌신추를 만들고 있었다.”

화령자가 콧방귀를 뀌며 답했다.

“성공한 거야?”

심협은 태을기에 들어선 후로 신혼의 힘이 다시 크게 정진하여 훼멸명왕 언갑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는데, 이 언갑은 천언 노인이 정성을 들여 만든 만큼 내부 기관이나 금제 모두 더없이 절묘했다.

훼멸명왕 안의 공격 금제는 주로 뇌, 화 두 종류로, 열일전부와 뇌신추가 조화를 이뤄야만 최대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청구산 대전 때도 뇌신추가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고생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이 몸이 나섰는데 당연히 성공했지. 게다가 훼멸명왕에 생긴 파손도 다 복구했다.”

화령자가 심드렁하게 답하고는 손을 휘두르자 금제가 풀리면서 거대한 훼멸명왕이 나타났다.

이전에 파손된 부분이 말끔히 사라져서 마치 새것 같았다.

훼멸명왕은 오른손에 거대한 검은색 추를 들고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보라색 뇌문(雷紋) 더 늘어났고 외형도 이전과는 달리 겉에 낭아봉처럼 뾰족한 가시가 생겨서 더욱 흉악해 보였다.

“이 뇌신추에 선령뇌석을 융합하니까 위력이 증가했고, 흡뢰(吸雷) 신통까지 생겨났다. 다른 어떤 뇌법도 이 추에는 무용지물일 것이다.”

화령자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항상 도움을 받는군. 원하는 게 있으면 말만 해. 내가 다 들어주지.”

심협은 신식으로 뇌신추를 잠깐 살펴보고는 흡족해하며 전음으로 말했다.

“전에 말하지 않았나. 다른 건 없고, 명화연로에서 오래 머물며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다.”

화령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환생해서 다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 신혼이 이미 회복됐으니 다시 육도 윤회에 들어가면 조룡의 혼처럼 몸에 붙어서라도 살 수 있을지 몰라.”

“만 년만 일찍 신혼이 회복되었으면 그리 했겠지만, 그 생각은 버린 지 오래다. 오랫동안 기령으로 사는 것이 습관이 돼서 속세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화령자의 대답에 심협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아까 뭘 물어보려고 했던 거냐?”

화령자가 화제를 돌려서 물었다.

“아, 아까 반인반어의 기이한 요물을 만났는데, 머리가 박살 나도 죽기는커녕 서서히 회복되더군. 오홍도 그 요물의 정체를 모른다는데, 혹시 너는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

심협은 반인요물에 대해 간략하게 묘사했다.

“그런 요물이 있다고? 이거 흥미로운데? 그 요물을 완전히 태워버리지는 않았겠지?”

화령자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하여간 눈치는 빠르다니까. 뇌금으로 태워버리기 전에 조금 남겨놨지.”

심협이 웃으며 손가락을 튕기자 백옥 상자가 화령자 앞에 나타났다. 그 안에는 반인요물의 비늘이 10여 개 정도 들어 있었다.

화령자가 비늘 하나를 들고는 신식으로 살펴보더니 이내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감탄했다.

“신기하군!”

“뭔가 알아냈어?”

심협은 바로 물었다. 그도 몇 번이고 비늘들을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아직은. 좀 더 살펴봐야겠다.”

화령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삼소묘음술을 시전하여 비늘을 살피기 시작했다.

심협도 더는 방해하지 않고 신식으로 소요경 안의 상황을 주시하면서 계속 나아갔다.

얼마나 더 나아갔을까? 작은 산만 한 탑 유적이 눈앞에 나타나 앞길을 막았다. 높이는 백 장에 이르러 매우 장관이었고, 탑 표면에는 거대한 묵룡(墨龍) 같은 굵고 검푸른 색깔의 등나무가 어지럽게 감겨 있었다.

“흑수원등(黑水源藤)!”

“오, 흑수원과(黑水源果)가 열린다는 그 선등(仙藤)인가? 정말 등나무처럼 생겼군. 흑수원과는 다 익은 것 같은데?”

오홍은 높은 탑의 검은 등나무를 신식으로 살펴보더니 화색이 돌았다.

높은 탑 안 등나무 줄기 중심부에는 반짝이는 검은색 선과가 열려 있었는데, 섬뜩한 영력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흑수원과는 매우 특별한 선과로, 운몽택의 은행나무 영과처럼 인체의 혈을 뚫어 진선기로 들어서는 것을 돕는 효과가 있다.

“흑수원과!”

원구가 가장 크게 기뻐했다.

그는 심협의 도움으로 손상된 신혼을 복구해서 이전보다 경지가 더 정진한 덕에 진선기까지 반걸음 정도 남은 상태였다. 이 흑수원과가 있으면 다음 경지로 나아갈 수 있을 터. 그는 곧바로 탑 안으로 뛰어들었다.

“탑에 요물이 잠복해 있으니 조심해!”

심협이 서둘러 외쳤는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탑에서 나와서 한 자루 거대한 칼처럼 바닷물의 물보라를 원구에게로 날렸다.

자신을 위해 고충을 만들어줄 원구를 그대로 잃을 수는 없었기에 심협은 곧장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붉은색 검의 허상이 그 검은 그림자를 향해 날아가 몸을 동강 냈다. 검은색 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드러난 그것은 돌기가 가득한 검은색 촉수였다.

고통에 찬 신음이 탑에서 들려오더니 거대한 그림자가 탑에서 튀어나왔다. 그것은 문어 같은 바다 요괴로, 온몸 곳곳에 검은색 고름이 가득해서 매우 섬뜩했다.

원구는 마치 심협이 자신을 구해줄 것을 알았다는 듯 문어 바다 요괴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곧장 탑으로 들어갔다.

심협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검결을 맺었다.

붉은색 검의 허상이 갑자기 몇 배로 커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울렸고, 수십 장 길이의 검광을 뿜어냈다. 순식간에 문어 바다 요괴 머리 위로 날아간 검의 허상은 천지를 찢듯 아래로 내려왔다.

부근의 바닷물이 강력한 검기에 밀려났다.

문어 바다 요괴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촉수를 들어 막으려 했지만, 채 절반을 들어 올리기도 전에 붉은색 검광이 스쳐 지나갔다.

휙 소리와 함께 바다 요괴는 절반으로 잘렸고, 그대로 목숨이 끊어졌다.

이 무렵, 원구는 흑수원과를 따 탑 밖으로 빠져나오는 중이었다.

한데 뒤에서 갑자기 푸른 빛이 반짝이더니 갑자기 두 개의 푸른색 팔이 나타나 그의 등을 꽉 잡았다.

심협은 표정이 돌변하더니 입을 벌려 초록빛 명홍도를 꺼냈다.

순양검은 화속성이라 해저에서는 위력이나 속도가 대폭 줄어들지만, 명홍도의 힘은 음한에 치중되어 있기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역시나 명홍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속도로 단숨에 원구 뒤에 나타났고, 섬뜩한 도광이 그 두 개의 푸른색 손에 휘몰아쳤다. 그러자 도광에서 기이한 흡수의 힘이 뿜어져 나왔다.

푸른색 손은 섬뜩한 도광이 꺼려졌는지 서둘러 손을 오므리며 물러났다.

한 줄기 뇌광이 번쩍였고, 심협이 순식간에 원구 옆에 나타나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다섯 개의 뇌구가 손에서 뿜어져 나가 두 개의 푸른색 손을 공격했다.

쾅! 쾅! 콰쾅!

몇 번의 폭발음과 함께 두 개의 푸른 손이 폭발하면서 더 커다란 반인반어 요물이 나타나더니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멀리 도망쳤다.

심협은 다시 팔에서 금색 뇌전을 뿜어내 요물을 잡으려 했다.

“심협, 잠깐! 저게 뭔지 알아냈다. 일단 도망치게 둬라!”

갑자기 화령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미약한 하얀 빛이 소요경에서 나왔고, 순식간에 반인요물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심협은 영문도 모른 채 팔의 뇌광을 거뒀다.

한편,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반인요물은 푸른색 빛이 되어 멀리 날아가 눈 깜짝할 사이에 끝없는 심해로 사라졌다.

“심형, 왜 저놈이 도망가게 내버려둔 거요?”

오홍 등이 다가와 물었다.

“일단 저를 믿고 따라와보시오.”

심협이 담담하게 웃더니 소매를 휘둘러 일행을 감싸고는 반인요물이 사라진 쪽으로 쫓아갔다.

오홍과 섭채주 등은 심협의 확신에 찬 표정을 보고는 더는 묻지 않았다.

“저 반인요물의 정체를 알아낸 거야?”

심협은 사실 화령자의 의도를 몰랐기에 쫓아가면서 전음으로 물었다.

“서두르지 마라. 우선 저 요물의 내력을 말해주마. 저 반인요물은 무족의 후예라 할 수 있다.”

“무족? 그런데 왜 내가 전혀 느끼지 못했지?”

심협은 깜짝 놀란 와중에도 이해할 수 없는 듯 물었다. 비록 자신은 섭채주처럼 무족의 혈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여러 번 무족과 마주쳤기에 무력이 낯설지 않았다. 한데 저 요물에게서는 무력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저 요물의 몸에 무력이 있다면 자신은 몰라도 섭채주가 못 느꼈을 리 없지 않은가.

“과거 천하를 제패했던 무족의 무력은 법력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너와 섭채주가 봤던 무력은 몇 종류뿐이니 무족에 대해 아는 것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하지. 반인요물의 몸에는 공공(共工)의 무력이 담겨 있다.

공공은 물의 조무(祖巫)라 물과 융합하면 공공무력의 기운은 완전히 감춰져 어지간해서는 감지할 수 없다. 게다가 저 반인요물은 순종 무족이 아니라서 매우 특이한 요력도 있는데, 그것이 무력과 하나가 되어서 너희가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화령자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그리고 머리가 부서졌는데도 무사했던 요물 있지? 그것 역시 공공조무의 천부적 신통 중 하나다. 무족은 몸을 단련하는 데 뛰어났는데 공공 일파도 마찬가지였다. 이 일파의 무력을 수련하면 신혼을 흩어서 몸 곳곳으로 흘려보낼 수 있지. 그 반인요물에게는 머리가 박살 난 것도 팔이 박살 난 것과 다를 게 없었을 것이다.”

“그렇군. 저 요물의 몸에 각인을 남긴 건 저놈을 따라가서 공공무력의 근원을 보려는 건가?”

심협의 물음에 화령자는 웃었다.

“하하! 역시 너와는 대화하기가 편하군. 방금 너의 뇌전 공격이 저 요물의 무력 근원에 손상을 입혔으니 회복하려면 공공무력의 근원이 되는 곳으로 갈 게다. 그리고 내가 보니까 여기 대거국 유적의 건물 양식이 무족과 비슷해. 무족과 어떤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 마족들이 이곳에 온 것도 아마 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군.”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속도를 높여 앞에 가는 요물과 거리를 좁혔다.

사실, 방금 싸움에도 그도 신념의 힘을 저 반인요물의 몸에 숨겨 놨다. 목적은 화령자와 똑같았다.

반인요물은 속도가 매우 빨라서 순식간에 유적을 빠져나가더니 무려 반 시진을 더 가고 난 뒤에야 멈췄다.

거대한 유적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건물은 비교적 온전했다. 어떤 힘이 세월로부터 이곳을 보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유적 전체에 특이한 기운이 가득했는데, 이 기운은 매우 은밀하면서도 방대하여 사방 곳곳에 존재했기에, 심협은 바로 감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강력한 공공무력이라니! 이 정도로 강력한 것을 보면 천언궁처럼 이곳에도 조무무공의 무기(巫器)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심협, 이 기연을 놓쳐서는 절대 안 된다!”

화령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자 심협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바로 신식을 펼쳐 이 건물을 살폈다.

이곳의 건물은 고리처럼 둘러싸여 있었고, 중간에는 마치 무덤 같은 반원 모양의 궁전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공공무력의 근원이었다.

“이건 무력의 기운이잖아!”

그때, 섭채주도 이곳의 무력을 감지하고는 맑은 눈을 반짝이며 중앙의 반원 궁전으로 날아가려 했다.

“안 돼! 저 안에 수많은 반인요물이 있어.”

심협이 손을 들어 섭채주를 막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앞을 살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