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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77화 (1,077/1,214)
  • 1077화. 유적

    “이번 상황은 확실히 예상했던 것보다 복잡하오. 허나 먼저 온 만큼 우리가 더 유리한 것도 사실이오. 저들보다 먼저 북명곤을 찾거나 더 유리한 상황을 만든다면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모르는 것이오.”

    “심형 말에 일리가 있소. 저들도 북명곤을 노리고 오는 것일 테니 정말로 소란이 일어나면 저들도 무사하지는 못할 거요.”

    심협의 말에 오홍이 웃으며 맞장구를 쳤지만, 다른 일행은 별로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돌아가고 싶어도 이미 늦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저들이 지금 우리를 쫓아오고 있으니 우리도 속도를 냅시다.”

    일행은 계속해서 해저로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해저 깊은 곳에서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 그림자의 높낮이가 모두 달라서 거대한 숲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간 그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새까맣고 거대한 그림자는 바로 수백 리에 걸쳐 이어진, 돌로 만든 성이었던 것이다.

    각 집과 건물의 모양은 모두 달랐지만, 예외 없이 매우 거대하고 또 신비로웠다. 심지어 어떤 것은 수백 장 크기여서 마치 거대한 산 같았다.

    먼발치에서 바라본 성은 오래되고 황폐한 유령 도시처럼 적막이 흘렀다.

    “설마…… 또 다른 대거국?”

    “어쩐지 아까 그 대거국 유적이 좀 작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이곳이 진짜 유적이고 그곳은 북명곤의 힘에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이었어.”

    그는 거대하기 그지없는 건물들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만약 거인 나라가 지금까지 존재했다면 얼마나 장관이었을까?

    “계속 가보죠.”

    이곳은 매우 깊은 심해였기에 경지가 높은 그들조차 수압을 이겨내며 이동하기란 매우 힘들었다.

    한데 이곳의 물의 영기는 대거국 유적이 있던 곳보다 더 짙고 강해서 유적 안에는 진귀한 수속성 광물과 풀이 가득했다.

    심협은 가진 것이 넉넉하다 보니 어지간한 것들에는 눈이 가지 않았지만, 거울 요괴와 눈물 요괴, 원구는 마치 보물을 찾은 것처럼 눈이 휘둥그레져 길가의 영재들을 쓸어 담았다.

    “동해 수맥의 근원답게 보물이 넘치는구나!”

    “당연한 말을…….”

    원구가 풍부한 수확에 신나서 말하자 오홍이 담담하게 말했다.

    “꼭 가겠다고 난리를 피운 게 영재들을 긁어모으기 위함이었나요?”

    “헤헤, 섭 선자께서는 벌써 저에 대해 잘 아시는군요.”

    원구가 전혀 부끄러운 기색 없이 답하자 섭채주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부터 가는 길은 더 위험할 테니 영재에 정신이 팔리지 않게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자칫하면 영재와 함께 여기 묻히는 수가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위험하다 싶으면 심 도우의 공간 법보에 숨으면 됩니다.”

    원구는 오홍의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거래를 했으니 이들을 따라다니며 이익을 챙겨도 심협은 자신을 탓하지 않을 테니,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원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홍은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원구의 뻔뻔함이야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저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지.’

    그때, 앞에서 날고 있던 심협이 갑자기 멈추더니 손을 들었다.

    “심형, 왜 그러시오?”

    오홍이 다가와 물었다.

    “무언가 잠복해 있소. 모두 조심하시오!”

    오홍 등은 그 말에 깜짝 놀라 서둘러 신식으로 앞쪽을 살폈지만, 아무것도 탐색하지 못했다.

    심협도 앞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끼긴 했지만,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때, 원구가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소매를 앞으로 뻗자 안에서 엄지손가락만 한 작고 푸른 벌레가 수백 마리나 쏟아져 나왔다. 이 벌레들은 하늘소처럼 생긴 데다 머리에는 기다란 두 개의 더듬이가 달려 있었고, 푸른빛이 도는 반투명한 몸은 마치 온몸이 물로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놀랍게도 이 강력한 수압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이 벌레들은 순식간에 반경 수백 장을 뒤덮으며 퍼져 나갔다.

    이를 본 오홍은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벌레를 이용하여 적을 감지하는 것은 경지가 낮은 수사나 쓰는 수단이다. 진선기에 도달하고 나면 수사든 요수든 기운을 숨기는 수단이 매우 고명해지거늘, 어찌 저런 벌레로 감지한단 말인가.’

    한데 그때, 왼쪽 전방의 벌레 10여 마리가 갑자기 아무도 없는 곳으로 빠르게 날아가 무언가를 물어뜯었다. 그러자 일종의 커다란 물고기 같은 푸른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돌아서서 멀리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작은 벌레들이 물고 놔주지 않았고, 주위의 다른 벌레들도 일제히 몰려갔다.

    오홍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저히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자신의 신식이 살펴보고도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했건만 원구의 저 작은 벌레들이 알아채다니!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손가락을 구부렸다. 그러자 금색 창이 손에서 빠져나가 순식간에 그 푸른색 그림자를 꿰뚫었다.

    푸른 그림자는 비명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는데, 기이하게 생긴 요물이었다. 하반신은 물고기, 상반신은 사람이었고, 피부는 푸른 비늘이 가득했다.

    괴물은 배가 금색 창에 뚫려 커다란 구멍이 났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 몸에서 푸른 빛을 뿜어내 순식간에 봉합하고는 도망쳤다.

    “재밌는 녀석이군. 거울 요괴.”

    심협이 씩 웃더니 옆의 거울 요괴를 바라봤다.

    거울 요괴는 심협과 여러 번 합을 맞춰봤기에 바로 그의 뜻을 알아채고는 들고 있는 고경(古鏡)을 발동했다.

    반인요물 앞에 푸른색 거울이 나타나더니 푸른 빛이 뒤덮었다.

    깜짝 놀란 요물은 재빨리 피하려 했지만, 미처 피하지 못하고 몸이 휙 사라졌고, 잠시 후 일행과 멀지 않은 곳에 나타났다. 거울 요괴의 전송 신통이었다.

    반인요물이 반응하기도 전에 심협이 손가락을 구부리자 다섯 개의 붉은 검기가 그 요물의 몸을 뚫고 강하게 베었다. 검기에 담긴 놀라운 불의 힘은 물의 영기와 상극이었고, 달궈진 쇳덩이에 물을 부은 듯 치익 하는 소리가 났다.

    반인요물의 몸은 순식간에 몇 조각으로 잘려 나갔는데, 피가 흐르지 않고 조각난 몸에서 푸른 빛이 번득이더니 빠르게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한가?”

    심협이 의아해하는 사이 섭채주와 오홍, 눈물 요괴가 동시에 공격했다.

    무서운 한기가 뿜어져 나오는 무기와 보라색 번개, 신혼 공격이 담긴 푸른색 안개가 동시에 반인요물을 공격했다.

    반인요물은 안 그래도 얼마 남지 않았던 몸이 더 잘게 부서져 고깃덩어리로 변했다. 심지어 머리도 네다섯 조각으로 부서졌다.

    한데 그 순간, 더욱 경악할 일이 일어났다. 반인요물이 그 지경이 된 와중에도 부서진 몸에서 여전히 미약한 푸른 빛을 뿜으며 서로 모여든 것이었다. 다만 합쳐지는 속도는 매우 느렸다.

    심협이 손을 오므려 허공을 잡자 손끝에서 주먹만 한 금색 뇌구(雷球)가 뿜어져 나가 반인요물의 조각난 몸에 떨어졌다. 상황을 지켜본 결과, 뇌전 신통이 이 반인요물에게 가장 큰 피해를 주었던 것이다.

    심협은 태을 뇌겁을 겪을 때, 양팔의 풍뢰 영문이 적잖은 뇌겁의 힘을 흡수하면서 이런 뇌구의 공격도 쓸 수 있게 된 터였다.

    이 금색 뇌구의 위력은 이전의 호형(弧形) 번개보다 강력했고, 폭발까지 더해지면 그 공격력이 상당했다.

    쾅! 쾅! 쾅!

    금색 뇌구가 폭발하면서 대량의 뇌광이 번쩍이자 마침내 반인요물이 완전히 소멸했다.

    “이 괴물은 도대체 뭐기에 치명적인 약점도 없는 거야? 머리가 부서져도 멀쩡하다니, 신혼도 없는 건가?”

    심협과 섭채주, 오홍 모두 이런 요물은 처음이었기에 눈물 요괴의 투덜거림에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화령자, 이 반인요물에 대해 아는 거 있어?”

    심협이 전음으로 물었는데, 이상하게도 화령자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조룡 선배께서는 이 요물을 아십니까?”

    심협은 어쩔 수 없이 오홍의 미간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전에 동해지연에 몇 번 와봤지만, 그때는 이변이 일어나기 전이었기에 이런 이상한 것을 보지는 못했다.”

    조룡의 혼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진짜 쓸모없네. 이런 것도 모르면서 무슨 생각으로 만룡의 조상이라고 하고 다니는 거야?”

    “지금 뭐라고 했느냐! 눈물 요괴 따위가 어디서 감히 입을 함부로 놀려!”

    눈물 요괴가 입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리자 조룡의 혼이 크게 노했다.

    눈물 요괴는 콧방귀를 뀌었을 뿐,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심협은 눈물 요괴의 그런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조룡의 혼마저 놀리다니, 저 요괴는 정말 겁도 없구나.’

    눈물 요괴는 원망이 모여 만들어진 존재인 만큼 심성이 삐뚤어졌기에 상식으로는 헤아릴 수 없었다.

    “지금은 모두 같은 배를 탔는데 사소한 일로 싸울 필요가 있겠습니까? 당장 급한 것은 대거국 유적을 더 탐색하는 것이니 이만 가시죠.”

    심협이 끼어들어 분위기를 풀었다.

    조룡의 혼과 눈물 요괴 모두 심협만큼은 꺼렸기에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일행은 다시 나아갔다.

    “원구, 방금 그것은 어떤 고충이기에 그 반인요물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었던 거지?”

    심협이 원구에게 물었다.

    “그건 육급의 감지 고충인 수천우고(水天牛蠱)입니다.”

    원구는 오홍마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자 조금 의기양양해졌다.

    “수천우고? 아까 내 신식으로도 그 반인요물의 흔적을 간신히 찾았는데, 이 고충의 감지 능력이 그 정도라니, 정말 놀랍군.”

    “수천우고에게는 기운을 감지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대신에 진동에 매우 민감하죠.”

    “진동?”

    섭채주가 의아한 듯 물었고, 심협은 뭔가를 알았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생물이든 살아 있는 이상 진동이 일어납니다. 체내의 피가 흐를 때는 물론이고, 법력을 운공하거나 호흡, 토납 같은 것에도 미세한 움직임이 생기지요. 또, 어떤 종류의 은닉 신통이나 몸을 허화하는 신통에도 모두 미세한 진동만큼은 완전히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 반인요물의 은닉 신통은 물론 대단했고 바닷물과 동화할 수도 있었지만, 헤엄치는 동안에는 여전히 진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원구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랬군, 원 도우의 고술은 정말 대단하군.”

    오홍이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칭찬했다.

    수천우고의 신기한 탐색술에 그는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사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같은 편 아닙니까? 수천우고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원구는 그들의 표정을 보고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수천우고는 그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고충이었고, 키워내는 것도 익숙해졌으니 잘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다.

    반면 심협은 수천우고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 반인요물이 신경 쓰였다. 그 요물은 바닷물에 동화해 기운을 완전히 숨길 수 있었고, 산산조각이 났는데도 스스로 치유했다. 이 요물의 실력이 대승기 정도인 데다 수천우고의 감지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조금 더 경지가 높은 요물이었다면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이 대거국 유적지는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족히 반 시진을 나아갔음에도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끝이 보일 기미도 없었다.

    그동안 이들은 또 적지 않은 수확을 얻었다. 심지어 심협은 도천신살대진 진기를 만들 수 있는 극품의 천음목(天陰木)을 얻기도 했다.

    그동안 아무런 방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 차례 요수의 습격을 받았다. 다만 그 반인요물처럼 까다로운 것은 나타나지 않았다.

    북명곤의 자수도 더는 나타나지 않았는데, 일행을 뒤쫓는 자들에게 간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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