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076화 (1,076/1,214)
  • 1076화. 자수(子獸)

    심협은 주작 검령과 심의가 연결되어 있었기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한데 그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반조반어 괴물이 다시 돌진해 왔다.

    “가라!”

    심협이 손을 휘두르자 서른 자루의 순양비검이 일제 뿜어져 나갔다. 허공에서 광망이 빠르게 빛나면서 검 허상의 금빛이 교차하자 삼천여 개의 허상과 금빛이 갈라져 나왔다.

    모든 검의 허상과 금빛은 마치 물고기 떼처럼 본체에 이끌려 기세등등하게 그 괴물에게로 돌진했다.

    “캬오오!”

    괴물이 부리를 벌려 다시 날카로운 소리를 뿜어내자 미친 듯이 밀려오는 음파에 순식간에 수백 개의 검광이 부서졌다. 그러나 더 많은 검광이 바로 뿜어져 나와 멈출 기세도 없이 돌진했다.

    모든 검광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갑자기 꽃잎이 핀 것처럼 사방으로 흩어져서 반조반어를 포위했다.

    “가라!”

    심협이 한 손을 움켜쥐며 낮게 외치는 것과 동시에 수천 개의 검광이 사방에서 가운데로 곧장 몰려갔고, 괴물은 빠져나갈 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모든 검광은 빈 허공을 갈랐다.

    “그런 거였나……?”

    심협은 이제야 무언가를 눈치챈 듯 중얼거렸다.

    곧이어 멀지 않은 곳에서 또다시 푸른 빛이 번득이더니 나타난 반조반어 괴물은 마치 심협이 가장 큰 위협임을 깨달은 것처럼 다시 그에게로 돌진했다.

    심협도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돌진해갔는데, 그의 뒤로 모든 비검이 마치 공작새의 깃털처럼 펼쳐졌다.

    양쪽이 서로 충돌하려는 순간, 그 괴물은 다시 몸을 숨기면서 사라졌고, 오히려 심협 아래에 있던 다른 괴물이 번개처럼 날아왔다.

    이를 본 섭채주가 곧장 심협 앞으로 다가가 선릉을 펼치자 화려한 빛이 그들을 보호했다.

    하지만 두 마리 괴물도 심협 등을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일격을 가하자마자 바로 모습을 숨겨 사라졌다.

    심협이 섭채주의 어깨를 쓰다듬고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난 괜찮아.”

    다음 순간,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다시 온다!”

    뒤이어 심협이 한 자루 순양비검을 쥐었는데, 다른 손에서는 초록색 빛이 반짝였다. 거의 동시에 그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갑자기 원구 등의 뒤에 나타나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순양비검을 찔렀다.

    칼끝이 닿은 곳에서 초록색 빛이 반짝이더니 미간 깊숙이 검이 꽂힌 반조반어 괴물의 머리가 광망에서 튀어나와 고통의 비명을 질러댔다.

    이 광경을 본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심협은 곧장 검에서 불꽃을 뿜어내 괴물의 머리를 완전히 태워버렸다.

    불길이 치솟으면서 괴물이 죽자 초록색 빛이 몸을 타고 천천히 미끄러지면서 황소 같은 몸도 나타났고, 마찬가지로 불꽃에 완전히 휩싸였다.

    이때, 다른 한 마리가 바로 나타나더니 비명을 질러 음파를 뿜어냈다.

    심협은 손을 앞으로 내밀어 물로 방패를 만들어 음파를 막아냈지만, 이 방패는 잠시 버티다가 흩어졌다.

    괴물이 바로 양쪽 날개를 흔들어 물결을 헤치며 돌진해왔다.

    그러나 거리를 채 절반도 줄이기 전에 금색 광흔이 섞인 짙은 수증기가 뭉쳐지면서 생겨난 감옥이 허공에 나타나 괴조를 가두었고, 괴조는 빠져나가려고 몇 번이고 충돌했지만, 이 감옥은 매우 단단해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괴물의 몸에서 다시 초록색 빛이 번득이면서 사라지려 할 때, 금빛이 곧장 날아와 그것의 머리를 관통하고 목을 베었다.

    저 멀리서 오홍이 천천히 손을 움직이자 금색 감옥이 곧바로 흩어졌다.

    갑자기 나타난 괴물 두 마리가 모두 소멸하자 일행은 다시 모였다.

    “심 도우, 그 괴물이 우리 뒤에 나타날 것은 어떻게 알았지?”

    눈물 요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별것 아니야. 그냥 저것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만 이해하면 상대하는 게 그렇게 까다롭지는 않지.”

    심협은 정확하게 대답해주지 않았다.

    섭채주는 아까 심협이 축지척을 사용한 것을 똑똑히 봤다. 심협은 공격 중에 그 요물의 몸에 각인을 새긴 뒤, 축지척의 신통으로 요물의 위치를 감지한 것이었다.

    “저 요물은 도대체 정체가 뭘까?”

    눈물 요괴가 또다시 물었다.

    “나도 모르겠군. 다만 저들의 신통이 좀 독특했다. 속도가 빠르고 허공을 넘나드는 것을 봐서는 일종의 공간 신통 같더군.”

    “심형, 그걸 알아내고도 저것들의 정체를 짐작하지 못한 거요?”

    오홍기 웃으며 불쑥 끼어들었다.

    “오형, 그 말은……?”

    “공간의 힘과 바람을 부리는 힘, 바로 북명곤의 주요 신통이 아니겠소? 그러니 저 새도, 물고기도 아닌 것은 북명곤에서 분열된 자수(子獸)겠지.”

    오홍이 설명하긴 했지만, 사실 조룡의 혼이 말해준 것이었다. 오홍도 심협과 마찬가지로 북명곤이 어떤 신통이 있는지도, 저 괴조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 북명곤은 도대체 어떤 이종(異種)입니까?”

    “그것은 상고 이종 곤붕(鯤鵬)의 족속으로, 상고 홍황 시대에 존재했소. 그 흉명은 도철 등 사대흉수 못지않았는데, 듣기로는 그 내부에 독립된 작은 세계가 있고, 본체는 공간을 조종하는 신통이 있다더군.”

    조룡의 혼이 오홍의 입을 통해서 설명했다.

    “동해지연의 공간의 힘이 이렇게 혼란스러워진 것도 북명곤 짓인가……? 북명곤의 전투력은 어떻습니까?”

    심협은 북명곤의 내부에 작은 세계가 있다는 말에 머릿속에서 뭔가 떠오를 듯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명확히 생각나지 않았다.

    나와 같은…… 흠흠, 우리 용족의 조룡님 같은 선조들의 전성기 시대에도 북명곤을 상대할 수 있다고 감히 말을 못 할 정도였다 하오.”

    오홍의 말이 이어지자 심협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돌려서 말했지만, 조룡 자신이 전성기일 때도 북명곤의 적수가 되지 못했던 모양이군.’

    그때, 원구가 겁 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우리는 여기에 죽으러 온 꼴 아닙니까?”

    그는 이리저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진선기나 태을의 고수들이야 그렇다 쳐도 대승기에 불과한 그로서는 죽으러 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오홍은 원구를 노려봤는데, 그 눈에는 경멸이 가득했다.

    “마족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알아내야겠지만, 그렇다고 모두의 목숨을 걸 수는 없습니다.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물러나죠.”

    원구도 그렇고 섭채주까지 있으니 심협은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데, 북명곤이라는 이름만 봐서는 북명 쪽 존재 같은데 왜 동해지연으로 왔을까요?”

    “전설에 의하면 북명곤은 만 년마다 한 번씩 환골탈태하는데, 그 과정에서 방대한 천지영기를 보충해야 한답니다. 아마도 동해의 본원을 빼앗아 탈태를 완성하고자 이곳에 온 것이겠지요.”

    “그리되면 동해의 원기가 크게 상하는 것 아니오?”

    심협이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존재의 환골탈태를 본 사람은 없지만, 아마도 무저갱처럼 동해의 영맥을 다 뽑을 터. 동해의 영맥이 마르면 바닷물은 근원이 없어지니 물속의 생명 절반 이상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살아남은 존재들도 머지않아 동해와 함께 사라질 것이오.”

    “그 정도로 심각하단 말입니까?”

    “북명곤이 탈태를 완성하는 과정은 하나의 작은 세계를 유지할 만큼의 천지영기가 필요한데, 이곳의 천지영기로는 감당이 어려울 것이오. 물론 내 예상만큼 심각하지 않을 수 있지만, 어쨌든 동해에는 엄청난 화가 되겠지.”

    오홍이 고개를 젓고는 한탄했다.

    “어쨌든 북명곤부터 찾아야겠군요.”

    심협의 말에 모두가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잠수하여 더 깊은 해저로 탐사를 떠났다.

    * * *

    한편, 동해지연 밖의 대거국 유적에서는 여전히 혼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만요맹이 인원수로 밀어붙여 바닷속 요물과 음혼, 귀물의 공격에 무리 없이 맞섰고, 백천 등은 궁전 같은 건물 근처에 무사히 도착했다.

    자 선생이 손에 든 북명거린과 공간 입구의 공명은 점점 강렬해졌다.

    “이곳입니까?”

    “북명거린과 북명곤의 반응을 봐서는 틀림없습니다.”

    백천의 물음에 자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들어가 보죠.”

    백천이 뒤에 선 수하들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명령했지만, 모두 머뭇거렸다. 그러자 금전이 그중 대승기 요물 하나의 목덜미를 잡더니 그 공간 통로로 집어 던졌다.

    천장 안의 하얀색 화광이 갑자기 반짝이더니 그 요물은 사라졌다. 그러나 공간의 힘에 산산조각 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백천이 자 선생을 향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선생은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속으로 욕을 하고는 먼저 나서서 그 하얀색 화광으로 들어가더니 눈앞에서 사라졌다.

    뒤이어 백천이 모두를 이끌고 하나둘 공간 통로로 들어섰다.

    잠시 후, 그들은 모두 물의 영기가 충만하고 주위가 어두운 수역 공간에 나타났다. 이들의 얼굴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백천이 쭉 둘러보니 여기에 들어온 인원은 수백 명에 불과했지만, 모두가 만요맹의 심복 장수이자 그의 충실한 지지자들이었다.

    “자 선생, 맞게 온 겁니까?”

    “틀림없습니다. 보시오. 북명거린의 반응이 이렇게 강렬한 것을 보면 북명곤의 본체가 이곳에 있는 게 분명합니다. 이곳이 진정한 동해지연입니다.”

    자 선생이 자신 있게 말했다.

    “한데 북명곤은 상고 홍해의 이수라 신통이 강력하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리 지금이 환골탈태 기간이라 해도 이 정도 인원으로 괜찮겠습니까?”

    유웅곤이 머뭇거리며 묻자, 자 선생이 웃으며 말했다.

    “그대들이 내 말대로만 한다면 큰 위험은 없을 겁니다. 시기를 잘 맞춰 모두가 북명곤의 바다와 같은 방대한 본명원기를 흡수한다면 여러분의 경지는 크게 정진할 것이고, 세 맹주께서는 단번에 천존 경지로 돌파하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 말에 모두가 설레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에 성공하면 우리 만요맹이 천정도 감히 무시하지 못할 존재가 될 것이라고 호언하신 게로군요.”

    “천존의 자리에 오르시게 된 것을 미리 감축드립니다. 맹주님.”

    금전이 웃으며 말하자 모두가 일제히 장단을 맞췄다.

    “맹주님, 앞서간 이들이 있으니 속도를 올려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죠.”

    의기양양해진 백천은 모두를 이끌고 해저로 쫓아갔다.

    * * *

    수백 명의 일행이 어두운 해저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 구름이 허공에 갑자기 나타나더니 광막의 보호를 받으며 해저로 내려갔다. 이어서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이번에는 검은색 구름이 나타났고, 마찬가지로 곧장 해저로 내려갔다.

    다만, 그들은 백 장 정도 떨어진 바닷속에서 천마안이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후 천천히 눈을 감았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 * *

    동해지연 깊은 곳.

    잠시 멈춰서 전열을 정비하던 중 심협이 천천히 눈을 뜨더니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찾았다.”

    “뭘 찾았다는 거요?”

    오홍이 의아한 듯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해 궁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제가 찾고 있던 마족이 우리 뒤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예감이 들어 동해지연으로 들어오는 곳에 천마안을 남겨놨는데, 그자를 찾았소.”

    “그자들이 우리를 쫓아 들어온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소. 한데 이상하게도 그자가 만요맹의 무리와 함께 있는 것 같군요.”

    섭채주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전음으로 물었다.

    “마수수도 왔나요?”

    “아니, 그 마족 소인만 보였어.”

    “그럼 만요맹의 배후에 마족이 있다는 얘기인데…….”

    오홍의 분석에 심협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그보다 성가신 것은, 그들 뒤에 하얀 구름과 검은 구름이 나타났는데 그 안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다는 거요. 아무래도 심상치 않소.”

    “몰래 숨어든 자들인가?”

    오홍도 고민에 빠졌다.

    “아무래도 괜히 따라온 것 같군.”

    눈물 요괴가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리자 원구의 표정도 더욱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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