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075화 (1,075/1,214)
  • 1075화. 반조반어(半鳥半魚)

    비늘은 나오자마자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표면의 무늬에서 은은한 광택을 번득이더니 파도처럼 용솟음쳤다.

    심협이 자세히 살펴보니 그 무늬는 무질서하게 넘실거리다가 광택의 흐름이 한곳으로 향했고, 이내 방향이 고정됐다.

    그 순간, 오홍이 다가와 그 북명거린에 가볍게 손을 올리고는 영압을 천천히 뿜어냈다.

    “이 광택이 흐르는 방향에서 북명곤 본체의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이 비늘과 멀리서 서로 공명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조룡의 목소리가 심협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저쪽으로!”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쪽을 가리키자 모두가 그 방향으로 향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분명히 기운을 지웠는데도 근처에 있던 대거국 유적 성안의 요물과 귀물들이 이들의 존재를 눈치채고는 일제히 튀어나왔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요. 저들도 이 비늘을 감지할 수 있나 봅니다.”

    “상관없어. 이대로 돌파한다!”

    거울 요괴는 의아해했지만, 심협은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성의 거리 쪽이 아니라 북명거린이 가리키는 위쪽으로 돌진했다.

    그곳에는 궁전만 한 건물이 있었는데, 꼭대기는 둥글었고 사변은 투각(透刻)되어 있었으며, 중간에서는 하얀색 화광이 빛나고 있었다. 그곳이 바로 공간 통로의 입구였다.

    “크아아!”

    짐승들의 울부짖음에 바다 전체가 강하게 흔들렸다.

    검은 그림자가 해저의 성 곳곳에서 튀어나오더니 심협 등을 향해 일제히 돌진해 왔다. 성안의 음혼과 귀물도 하얀 빛을 발하며 몰려왔다.

    심협이 손을 들어 휘두르자 10여 자루의 순양비검이 정면에서 헤엄쳐 오는 거대한 악어 같은 물 요괴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비검이 수백 개의 검광으로 나뉘더니 아무런 방해도 없이 놈들을 산산조각냈다.

    “이대로 간다!”

    심협이 외치더니 양손을 다시 벌리자 비검에서 갑자기 검명이 크게 일더니 어두운 바닷물에서 눈부신 광망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순양의 힘이 마치 태양처럼 환하게 비췄다.

    모든 음혼과 귀물들은 한동안 제자리에 멈춰 더는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물 요괴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진해 왔다.

    이를 본 오홍이 손을 들더니 손가락을 살짝 구부렸고, 크게 휘둘렀다. 손끝에서 뿜어져 나간 다섯 줄기 금색 화광이 바닷물에서 소용돌이쳤고, 삽시간에 산과 바다를 뒤집을 듯한 힘이 솟구치면서 다섯 줄기 금빛이 바닷물을 뒤틀었다. 이어서 광포한 힘으로 이루어진 물줄기가 빠르게 커지자 물이 없는 텅 빈 통로가 생겨났다.

    “갑시다!”

    오홍의 외침과 함께 모두가 그 통로로 빠르게 들어가 발아래의 그 궁전 같은 곳으로 떨어졌다.

    쾅!

    둔탁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요물들이 오홍이 만든 물줄기 장벽과 충돌하면서 거대한 힘으로 공간 통로가 격렬하게 뒤틀렸지만, 부서지지는 않았다.

    “어림없다.”

    오홍의 눈에서 살의가 반짝였다.

    그가 저 멀리서 돌진해 와서 가장 먼저 공간과 충돌한 거대한 요수를 향해 남은 손으로 주먹을 꽉 쥐자 웅장한 힘이 사방에서 몰려왔다.

    이 거대한 요수는 갑자기 격렬한 비명을 지르더니 얼마 버티지 못하고 뼈가 산산조각 났고, 대량의 피를 뿜어내 바닷물을 붉게 물들였다.

    주위의 수많은 요수는 그 피비린내에 이끌린 듯 그쪽으로 몰려왔다.

    두 태을기 수사가 힘을 합친 결과, 일행은 마침내 순조롭게 그 궁전 같은 곳에 도착했다.

    발아래 공간 통로를 바라보던 심협이 원구에게 고충을 먼저 보내 살펴보게 하려는데, 그곳의 하얀 빛에서 갑자기 눈부신 광망이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커졌다. 그리고 일행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 빛에 휩싸여 그곳에서 사라졌다.

    * * *

    해구 위. 백천이 수천 마리의 요물을 데리고 기세등등하게 물속의 그 거대한 성을 향해 헤엄치고 있었다.

    마족 소인, 자 선생이 들고 있는 북명거린의 무늬 파동도 그 궁전 같은 원형의 천장을 가리켰다.

    “이것만 있으면 못 찾을 걱정은 없겠군….”

    백천은 빙긋 웃으며 중얼거렸으나, 이내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본래 어둡고 적막하던 깊은 해구가 더없이 시끌벅적한 것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고요했던 성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음혼 귀물과 물 요괴들이 나타나 백천 일행을 향해 밀물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우리가 성에 들어가기도 전에 저것들이 왜 다 나와 있는 거야?”

    백천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자 자 선생이 잠시 생각하더니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누군가 우리보다 먼저 동해지연으로 들어가 저것들을 깨운 모양입니다.”

    그 말에 백천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금전과 유웅곤 등도 마찬가지였다.

    저 거대한 음혼과 요물을 보자 겁이 났는지 뒤를 따라오던 만요맹의 물 요괴들도 긴장했다.

    “더는 지체해서는 안 된다. 모두 돌진하라!”

    백천이 명령을 내리자, 모두가 두려운 와중에도 대장 요괴들의 지휘 아래 곧장 그 음혼과 귀물, 물 요괴를 향해 돌진했고, 양쪽은 금방 혼란한 싸움에 빠져 들었다.

    백천과 자 선생은 일부 심복만을 거느리고 북명거린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갔다.

    “먼저 간 자들이 누구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

    백천이 싸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신의 행사를 방해했으니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 * *

    이 무렵, 해수면 위의 전투도 이미 끝을 보이고 있었다.

    손오공이 이끄는 화과산의 원숭이들을 만요맹의 오합지졸들이 어떻게 막아 내겠는가. 그들의 모든 함선이 부서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요병들은 죽거나 도망쳐서 이곳에는 살아남은 자가 얼마 없었다.

    손오공은 부하들을 정돈한 후에 말했다.

    “해저는 상황이 위험하니 사람이 많으면 오히려 방해가 된다. 네 명의 건장과 백여 명의 친위대만 데려갈 테니 나머지는 여기서 벗어나 근처의 섬에서 기다려라.”

    “대왕, 신을 데려가 주십시오.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대왕, 저도 가겠습니다!”

    한 대승기의 노인 원숭이가 먼저 나서자 다른 원숭이들도 일제히 소리쳤고, 현장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내 말을 듣긴 한 게냐! 빨리 이곳을 벗어나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려라. 절대로 명령을 어겨서는 안 된다!”

    손오공이 손을 휘두르며 명령하자 혼란에 빠졌던 원숭이 떼는 어쩔 수 없이 대답하고는 두 무리로 나뉘어 각자 흩어졌다.

    손오공은 네 명의 건장과 친위대 백여 명을 이끌고 피수결을 결인한 뒤 바로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곧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위에는 수많은 만요맹 병사의 시체와 함선 잔해만 남게 됐다.

    한데 손오공 일행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서 시커먼 먹구름이 내려오더니 그 안에서 차가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도 왔을 줄이야.”

    이어서 검은 구름은 곧장 바닷속으로 들어가 해저로 가라앉았다.

    * * *

    하얀 빛에 집어삼켜진 순간, 심협 등은 눈앞의 광경이 빙빙 도는가 싶더니 이내 평소처럼 돌아왔다.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그곳은 완전히 새로운 수역이었다. 주위는 어두웠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마치 미지의 심연에 떨어진 것 같았다.

    그들은 이내 주위의 바닷물에 매우 짙은 물의 영기가 담겨 있는 것을 알아채고는 곧바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심취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 오홍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이 기운과 감각은……? 이곳이 진짜 동해지연이다. 틀림없어!”

    오홍이 기뻐서 외쳤는데, 이것은 조룡의 혼에서 나오는 외침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눈물 요괴는 주위의 적막한 바다를 둘러보고는 은근히 겁이 났다.

    심협은 말없이 북명거린을 내려다봤다.

    비늘의 광택이 점점 밝아지더니 파동이 해저 쪽을 가리켰다.

    심협은 오홍 앞에 북명거린을 내밀어 조룡의 혼이 감지하게 했다.

    “방향은 맞는데 거리가 그리 가깝지는 않은 모양이오.”

    오홍이 잠시 침묵하더니 답했다.

    일행은 다시 헤엄쳐 해저로 향했다.

    반 각 정도 나아가자 주위 수역의 빛은 더 어두워지지도, 더 밝아지지도 않았다. 만약 바닷속 물의 영기가 점점 짙어지지 않았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귀신의 성에 들어와서 제자리를 맴도는 것은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

    다행히 가는 길에 별다른 일은 없었기에 눈물 요괴도 조금씩 안도하기 시작했다.

    “듣기로는 상고 이수 북명곤의 흉포함은 도철이나 도올(檮杌) 같은 사대흉수 못지않다니, 그것을 찾는다 해도 복이 될지 화가 될지 알 수 없는데 뭔가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게 아닌가?”

    눈물 요괴의 물음에 심협은 잠시 고민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대신 옆에 있던 오홍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표정이 급변한 심협이 외쳤다.

    “조심해!”

    그와 동시에 잠잠하던 물줄기가 거세지더니 커다란 그림자가 갑자기 나타났다.

    “새예요!”

    섭채주가 바라보더니 깜짝 놀라 외쳤다.

    정말로 거대한 소처럼 생긴 푸른색 괴조가 갑자기 물줄기에서 튀어나오더니 창과 같은 날카로운 부리를 쩍 벌렸다. 그러자 날카로운 음파가 세차게 밀려왔다.

    오홍이 앞으로 나서서 손을 들어 몸 앞에 원을 그리자 금빛이 섞인 물방울이 순식간에 생겨나더니 앞으로 날아갔다. 그 괴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진선 후기 수사와 비슷하다는 것을 간파했기에 일행에게 두려운 기색은 전혀 없었다.

    쾅!

    폭발음이 울려 퍼졌고, 겹겹의 음파와 충돌하면서 금빛 물방울은 완전히 부서졌다.

    폭발하는 물결에서 마치 번개가 번쩍이는 것처럼 푸른색 괴조의 모습이 흐려지더니 순식간에 오홍 앞에 나타나 창과 같은 부리로 그의 심장을 찔러왔다.

    엄청난 속도에 오홍은 깜짝 놀라 서둘러 옆으로 피했다.

    괴조가 물결을 가르며 몸을 스쳐 가는 순간, 뒤에서 검푸른 비늘로 뒤덮인 거대한 물고기의 꼬리가 오홍을 휩쓸며 지나갔다.

    그 웅장한 힘에 오홍은 산봉우리에 두들겨 맞은 것처럼 튕겨 나갔고, 바닷속에는 백 장 길이의 통로가 생겨났다.

    반조반어(半鳥半魚) 괴물의 두 날개가 지느러미처럼 움직이자 마치 번개가 흐르는 것처럼 푸른 유광이 머리에서 꼬리까지 흘렀고, 순식간에 모두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은신?”

    섭채주가 놀라 외쳤다.

    “신식으로도 감지가 안 돼! 상당히 귀찮은 놈이로군.”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게 도대체 뭘까요? 저런 건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어요.”

    거울 요괴가 눈물 요괴 옆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이때, 심협의 눈에 오른쪽 아래에서 푸른 빛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채주, 조심해! 그쪽…….”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푸른 광망이 갑자기 커지더니 방금 사라졌던 반조반어 괴물이 다시 나타났고, 엄청난 속도로 섭채주를 향해 곧장 돌진했다.

    이를 본 섭채주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금!”

    섭채주가 가볍게 외치며 갑자기 손을 들었다. 그러자 체내에서 혈맥의 힘이 순식간에 폭발하더니 시간의 파문이 그녀의 손에서 뿜어져 나왔다. 파문이 지나가는 곳마다 바닷물이 얼어붙은 것처럼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반조반어 괴물 역시 시간의 힘에 휩쓸려 속도가 순식간에 느려졌다.

    섭채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심협도 괴어의 뒤로 이동해 순양비검의 검광을 날렸다.

    두 사람의 협공은 마치 이미 약속된 것처럼 손발이 척척 맞았다.

    순양비검의 붉은 검광이 변한 주작 신조가 불꽃의 두 날개를 펼쳐 반조반어 괴물을 집어삼키려는데, 심협의 옆에서 갑자기 푸른색 유광이 번쩍였다.

    “이런, 한 마리 더……?”

    심협이 미처 방어하기도 전에 푸른색 유광이 순식간에 커지더니 또 한 마리의 반조반어 괴물이 튀어나왔다.

    그 거대한 부리의 웅장한 힘이 순식간에 피수결 광막을 뚫었고, 심협도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하지만 순양비검에서 주작 검령이 그의 생각에 따라 날아오르더니 반조반어에게로 돌진했고, 바닷속에서 거세게 타오른 불꽃이 괴조를 집어삼켰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잠깐 비명이 들려왔을 뿐, 곧 잠잠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작 검령이 스스로 다시 검신으로 돌아왔다. 불꽃이 타고 있는 곳에는 바닷물이 다시 모여들면서 반조반어 괴물의 타버린 흔적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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