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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74화 (1,074/1,214)
  • 1074화. 적수

    이어서 심협이 양쪽을 소개하는 동안에도 오홍의 시선은 그의 손에 들린 거대한 비늘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심형, 그건 어디서 난 것이오?”

    “왜 그러시오? 이게 뭔지 아시오?”

    “이것은…… 북명곤의 비늘이오.”

    오홍이 잠시 쉬었다가 답한 순간, 심협의 눈이 커졌다.

    “북명곤…… 설마 북명거린?”

    뒤이어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당시 마수수가 유천에게 언급했던 북명거린이 바로 이것인가? 아니, 이것이 아니라 해도 분명히 뭔가 연관은 있을 거야.’

    “손 파파, 이 물건이 제가 이번에 조사하려는 마족의 거동과 연관이 있는 것 같군요. 혹시 이걸 제게 잠시 빌려주실 수 있습니까? 제 호종법진의 진도와 교환하시죠.”

    심협이 포권하며 말했다.

    “심 도우, 그럴 필요 없네. 만요맹을 물리쳐주는 큰 은혜를 입은 마당에 어찌 대가를 바라겠는가?”

    손 파파가 서둘러 손사래를 쳤다.

    “지금 여아촌의 방어법진은 크게 손상됐으니 혹시 만요맹이 다시 쳐들어오면 위험합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진도와 일부의 재료이니 나머지 재료를 직접 찾아서 채우시면 될 겁니다.”

    심협이 미안한 기색으로 저물 반지 하나를 꺼내 손 파파에게 건넸다. 심협은 그녀와 대화하기 전에 이미 소요경 안의 화령자에게 적합한 진도와 포진에 쓸 재료를 남겨달라고 말해둔 것이다.

    “그렇다면 감사히 받겠네. 어렵게 여아촌에 왔으니 며칠 더 쉬면서 주인으로 해야 할 도리를 다할 수 있게 해주게.”

    손 파파가 저물 반지를 받아 들고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송구하지만 언제 동해지연에서 다시 파란이 일어날지 모르니 한시라도 빨리 조사하여 마족이 재앙을 일으키지 않게 막아야 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하루 이틀 사이에 일어나겠나? 여아촌이 현재 혼란스러워 도우에게 큰 도움은 주지 못하니, 편히 쉴 곳이라도 마련해주겠다. 부디 더는 사양하지 말아 주게.”

    “북명곤의 비늘을 찾아주신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손 파파께서 정 그리 말씀하시니, 그럼 오늘 하루 신세 좀 지겠습니다.”

    손 파파는 사람을 시켜 심협 일행이 쉴 곳을 마련해줬다.

    심협 등이 모두 나가고 나자 손 파파는 내실로 들어와 벽의 어느 곳을 가볍게 두들겼다.

    끼익!

    벽에서 음산한 소리가 울리더니 크지 않은 통로가 나타났다. 손 파파는 그곳을 통해 어느 어두운 방에 도착했다.

    방에는 나무로 만든 탁자가 놓여 있었고, 중앙에는 뼈로 만든 위패가 있었다. 위패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고, 양쪽에 두 개의 보라색 초가 타고 있었다. 초의 보라색 불빛이 방안을 비추자 한층 음산한 느낌이었다.

    손 파파는 탁자 위의 향을 하나를 집더니 보라색 불꽃을 피운 뒤, 위패에 세 번 절하고는 향로에 꽂았다.

    연기가 천천히 위로 솟구쳤으나 사라지지는 않았고, 한곳에 뭉쳐 사람의 얼굴 모양으로 변했다.

    “어떻게 되었느냐?”

    사람 얼굴이 천천히 눈을 뜨고 입을 열자 매우 듣기 좋은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조사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그 비늘도 심협에게 넘겼습니다.”

    “잘했다.”

    사람 얼굴의 연기에 미소가 떠올랐다.

    * * *

    다음 날 새벽. 심협 일행은 여아촌에 작별을 고하고는 다시 동해지연으로 향했다.

    며칠 전보다 동해지연을 덮은 폭풍의 벽은 더 거대해졌고, 뚫고 들어가는 동안 강력한 영압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들은 멈추지 않고 곧장 동해지연으로 잠수했다.

    이들이 동해지연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폭풍의 벽 안의 안개가 갑자기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거대한 배들이 연달아 안개를 뚫고 동해지연 위의 바다에 도착했다.

    그곳에 멈춘 10여 척의 거대한 배에는 무려 수천 마리나 되는 요족들이 가득했다. 하나같이 무기를 쥔 채 흥분한 기색이었다. 두려워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 뒤편의 돛대에 달린 주황색과 붉은색 깃발에는 모두 ‘만요맹’이라고 적혀 있었다.

    가장 앞에 있는 배의 갑판에는 얼굴이 새하얀 청년이 서 있었다. 머리에 고관을 쓰고 겉에는 검은색 여우 외피를 두른 이 사내의 양손에는 혈맥이 서로 교차하는 듯한 붉은색의 기이한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그의 옆에는 키 작은 남자가 차분한 표정으로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만약 심협이 봤다면 이 키 작은 남자를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바로 꿈속에서 요풍과 동해지연 이야기를 나누던 그 마족 소인이었다. 다만 어째서인지 지금 그의 몸에서는 마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은은한 요기가 몸을 두르고 있어서 마치 대단한 능력을 감추고 있는 대요 같았다.

    고관의 청년과 마족 소인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 금전과 유웅곤이 나란히 서 있었다. 두 사람은 건장한 남자 두 명이 들어갈 정도로 떨어져 있었는데, 우연히 눈만 마주쳐도 혐오스럽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여자들도 못 이겨놓고 무슨 낯짝으로 부맹주를 하겠다는 건지.”

    금전이 조용히 비아냥거렸다.

    “누군지도 모르는 자에게 법보가 부서지고 중상을 입은 놈이 할 말인가?”

    유웅곤도 물러서지 않았다.

    “잠깐 방심했을 뿐이다. 게다가 상대는 태을 경지의 고수였지. 너처럼 싸우기도 전에 겁부터 집어먹고 줄행랑치지는 않았다!”

    “오, 그럼 내 상대는 태을 고수가 아니었겠나? 네가 그 상황이었으면 나보다 더 빨리 도망쳤을 게다.”

    만약 두 사람이 동일인물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들은 어떤 표정이 될까?

    그들의 날 선 대치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들 뒤에 선 일고여덟 명의 만요맹 진선기들도 마찬가지였는데, 그중에는 용아와 청청도 있었다. 다만 그들의 경지와 지위는 그 두 사람보다 낮으니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흠! 흠!”

    고관을 쓰고 검은 외피를 두른 뱃머리의 남자가 헛기침을 하자 유웅곤과 금전은 바로 입을 다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자 선생(紫先生), 이곳이 확실합니까?”

    청년의 물음에 마족 소인이 손을 펼치자 광망이 번쩍이며 검은색 비늘이 떠올랐다. 심협이 손 파파에게서 얻은 그 북명곤의 비늘과 거의 똑같았다.

    이 북명거린의 무늬에서는 파도처럼 은은한 광망이 뿜어져 나오며 미약한 파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확실합니다, 백천(白川) 도우. 동해지연은 바로 이 아래에 있고, 우리가 찾는 물건은 그곳에 있습니다.”

    자 선생이라 불린 마족 소인이 대답하자 백천도 환하게 웃었다.

    “절반은 이곳에서 동해지연의 모든 출입을 막고, 나머지는 나와 함께 바닷속으로 간다.”

    “존명!”

    그의 명령에 모든 요족이 바로 답했다.

    백천과 자 선생이 가장 먼저 물속으로 들어갔고, 금전과 유웅곤이 뒤를 따랐으며, 용아와 청청도 다른 두 진선 수사와 함께 물속으로 들어갔다.

    수예(水裔) 요물이 주를 이루는 후방의 수많은 요족 수사들도 그들 대장의 인솔하에 일제히 물로 들어가 곧장 깊은 해구로 잠수해 들어갔다.

    나머지 요족들은 남은 진선기 대장들의 인솔하에 배 위에 주둔하며 그곳을 지켰다.

    * * *

    백천 등이 바닷속으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폭풍의 벽 위에 갑자기 하얀 빛이 비쳐 들어왔다.

    요족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보니 백 장 크기의 하얀 영운이 폭풍 위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거기에서 뿜어져 나온 화려한 영광에서는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이곳은 우리 만요맹이 봉쇄했으니 누구도 접근하지 못한다! 이를 거역하는 자, 죽음뿐이다!”

    거대한 백호(白虎) 요괴의 우렁찬 외침이 청천벽력처럼 구름까지 전해졌다.

    하지만 그 하얀색 영운은 여전히 천천히 내려왔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죽여라!”

    백호 요괴가 망설임 없이 명령을 내리자 선상의 요족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곧장 하얀색 영운을 향해 돌진했다.

    그때였다.

    “나무아미타불!”

    불경을 읊는 소리가 갑자기 울리더니 곧이어 한숨이 터져 나왔다.

    “휴, 죽고 싶어 안달 난 놈들뿐이로구나!”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하얀색 영운에서 갑자기 금빛이 폭증하더니 길고 가느다란 곤봉이 튀어나왔다. 그 곤봉은 나타나기가 무섭게 길어졌다.

    뒤이어 거대한 금색 기둥이 하늘에서 떨어지더니 수많은 요물을 휩쓸었고, 심지어 단번에 백호 요물이 탄 배까지 뚫어버렸다.

    모든 요괴가 놀라고 당황한 와중에 거대한 금색 기둥이 갑자기 솟구치면서 그 거대한 함선까지 함께 들어 올리더니 다른 배들을 향해 날아갔다.

    집채만 한 함선이 마치 어린아이 장난감처럼 거대한 기둥에 들어 올려졌다가 떨어지자 이내 모든 함선이 전멸했다.

    만요맹의 요물들은 부리나케 도망쳤지만, 이미 사상자가 적지 않았다.

    “네, 네놈은 누구냐?”

    백호 요괴와 다른 대장급 요괴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노려봤지만, 강력한 적수에게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다.

    하늘의 하얀 구름에서 화광이 점점 사라지더니 금색 갑옷 위에 가사를 걸친 금색 털의 원숭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한 손에 금색 기둥을 들고는 낄낄대며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천 마리에 가까운 원숭이가 네 마리 건장의 지휘하에 발아래의 요괴들을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었다.

    “화과산의 제천대성…… 아니, 전투불승!”

    백호 요괴는 상대가 바로 만세요왕 손오공임을 깨닫고는 목소리가 달달 떨려왔다.

    “얘들아, 저 잡것들이 너무 시끄럽구나. 싹 쓸어버려라!”

    손오공이 여의금고봉을 거두고는 뒤에 선 원숭이들에게 명했다.

    네 마리 원숭이 건장이 화과산의 모든 요괴를 이끌고 만요맹의 잔병들을 향해 진격했다.

    * * *

    심협 등은 심해의 그 거대한 바닷속 폐허의 성에 다시 도착했다.

    그들이 며칠 전에 일으킨 소동은 이미 잠잠해져 유적은 평안해졌고, 요괴들도 다시 잠복한 터라 거대한 음훈과 귀물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 기운을 숨깁시다.”

    심협이 이렇게 당부한 이유는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것들을 상대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고, 혹여 혼란이 일어났다가 또다시 그 공간의 통로에 빠질까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지난번에는 운이 좋아 안전한 곳에 보내졌지만, 재수 없으면 부서진 통로 안에 있는 공간의 힘에 갈기갈기 찢길지도 모른다.

    “무작정 피해서는 안 되오. 지금의 동해지연은 그 혼란스러운 공간의 힘으로 덮여 있으니 보통 수단으로 들어가기란 아마 불가능할 것이오.”

    오홍이 불쑥 말했는데, 이 말은 틀림없이 조룡의 뜻이었다.

    “진정한 동해지연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한 가지 떠올랐는데, 아무래도 그 공간 통로를 통해 들어가야 할 것 같소.”

    “나도 같은 생각이오. 다만, 이곳의 공간 통로는 8백 개 정도에 이르니, 어떤 게 진짜인지 어떻게 구별하겠소? 하나하나씩 시도해봤다가는 알아내기도 전에 우리가 먼저 지칠 거요.”

    오홍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무리 많아 봐야 내 고충보다는 적지 않겠소? 제가 고충을 조종하여 조사해보겠습니다.”

    원구가 끼어들어 그렇게 말하더니 손을 들었다. 허공에 황금빛 갑충이 나타났는데, 쌀알만 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매우 단단해 보였다.

    “그건 안 돼요. 당신 고충은 일단 공간 통로에 들어가면 공간의 힘의 압박을 견디지 못할 거예요. 만에 하나 통과한다 해도 그것들이 어디에 있는지 감지할 수 있겠어요?”

    “아…….”

    눈물 요괴가 고개를 저으며 반박하자 원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설령 그와 고충 사이에 특수한 연결이 있다 해도 그의 신혼의 힘으로 그것을 감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아니면 북명거린으로 시도해봐요. 만약 이곳의 변고가 그 북명곤과 관계가 있다면 그 비늘이 어떤 작용을 보이지 않을까요?”

    섭채주의 말에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검푸른 색의 커다란 비늘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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