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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72화 (1,072/1,214)
  • 1072화. 혼전(混戰)

    금색 천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더니 곧바로 바람과 함께 촥 펼쳐졌다. 백 장에 달하는 금색 실의 그물을 이루어 매부리코 남자를 뒤덮었다.

    사내는 가소롭다는 듯 웃더니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초록빛 비도가 휙 하고 날아가더니 초록색 광흔을 남기며 금색 그물을 찢으려 했다.

    초록빛 비도의 광흔은 그물에 가까워지자 빠르게 빛을 잃었고, 날카로운 기운 또한 사라져 그대로 그물에 달라붙었다.

    금색 실의 그물은 조금도 멈추지 않고 아래로 떨어져 내려 방심하고 있던 매부리코 남자를 뒤덮으려 했다.

    유비서는 크게 기뻐하며 몸을 날려 단도를 들고 곧장 매부리코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이자만 죽이면 여아촌의 사기가 고무되고 서남쪽으로 몰리는 압박을 줄여 일족의 피해도 죽일 수 있을 터였다.

    그러니 이 일격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하지만 살의에 사로잡힌 그녀는 위험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몸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던 요물은 그녀의 경계가 풀리는 순간을 기다리며 진작부터 매부리코 남자 부근을 맴돌고 있었다.

    “당랑규선(螳螂窺蟬)인가?”

    심협은 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또 넋 놓고 있네! 당장 움직이지 못해?”

    철취신군은 심협이 멍하니 서 있자 욕설을 퍼부으며 성큼성큼 걸어 왔다.

    하지만 바로 앞까지 다가온 순간, 철취신군은 눈앞에서 무언가 번쩍였다 싶었고, 뒤이어 심협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심협은 유비서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이러다 늦겠어!”

    심협은 이미 매부리코 남자에게 근접한 유비서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그의 귀에 뎅, 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금과 옥, 두 개의 고리가 서로 충돌하며 빠르게 날아왔다.

    심협은 사월보를 시전하여 잔상이 되어 튀어 나가는 동시에 손 위로 순양비검을 떠올렸다. 그리고 검을 쥔 순간, 순양검에서 불꽃이 폭증하여 그의 몸을 뒤덮었고, 인검합일이 되어 말총머리 소녀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순양순살검!”

    불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질주했고, 허공에서는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편, 유비서는 예상치 못한 순간 옆에서 튀어나온 곰 요괴를 보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순식간에 냉철함을 되찾았고, 한 명이라도 더 죽이자고 생각했다.

    그녀는 곧바로 곰 요괴를 무시한 채, 단도로 매부리코 남자를 찔러 갔다.

    이를 본 매부리코 남자는 기겁했다.

    그는 본래 동료와 모의하여 저 여인을 유인하는 계책을 짜놨었다. 자신이 공격하여 유인하면 은신에 능한 도마뱀 대요가 기습하기로 한 것이다. 한데 저 여자가 이렇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저 여자를 어서 죽여!”

    매부리코 남자가 놀라 소리치자 허공에서 새빨갛고 기다란 혀가 갑자기 튀어나오더니 날카로운 창처럼 유비서의 목을 찔러 들었다. 목을 그대로 관통할 기세였다.

    한데, 독이 묻은 혀끝이 유비서의 새하얀 목에 닿으려는 순간, 혈광이 허공으로 튀었다.

    뒤이어 몸을 숨기고 있던 도마뱀 대요의 몸이 완전히 드러났는데, 이미 절반으로 잘려 있었고, 심지어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 휩싸여 신혼마저 도망치지 못하는 신세였다.

    유비서는 예상했던 죽음이 다가오지 않자 더욱 힘을 내 단도로 매부리코 남자의 머리를 찔렀다.

    하지만 그자도 보통이 아니었다. 중상을 입는 순간, 온몸에서 광망이 증폭하더니 폭발했고, 한 가닥 신혼이 탈출하여 순식간에 멀리 날아갔다.

    금색 실 그물이 매부리코 남자의 자폭을 절반이나 막아준 덕에 유비서는 중상을 입지 않았지만, 충격에 날아갔다. 금색 실 그물도 완전히 부서졌다.

    땅에 꽂힌 그녀는 부상을 살펴보지도 않고 서둘러 허공을 올려다봤다. 불꽃에 휩싸인 도마뱀 대요의 시체가 땅에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아까 그 곰 요괴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아까 그 곰 요괴는 뭐야?”

    그녀는 망연자실했다.

    한편, 심협을 막으려 했던 백의의 여자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봤지만, 자세히는 보지 못했기에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요족이 왜 여아촌 사람을 구해준단 말인가?

    “모르겠다. 적이 아니면 됐지.”

    생각을 털어낸 그녀는 곧장 유비서에게로 향했다.

    한편, 심협은 도마뱀 대요를 죽인 뒤 더 높이 날아올라 손 파파와 태을 대요가 맞붙은 곳으로 향했다. 그쪽 전투의 결과가 이 전쟁의 마지막 방향을 결정지을 터였다.

    한데 그가 더 높이 날아오르는 순간, 누군가가 구름을 뚫고 곧장 여아촌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손 파파!”

    그 정체를 확인한 심협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누군가 뒤따라 내려왔다.

    쾅!

    폭음이 울려 퍼졌다.

    여아촌을 보호하는 법진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던 터라 손 파파와 충돌하며 크게 부서지면서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방어 광막 전체가 흔들리면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이 대진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최후의 방어막이 사라져 여아촌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함락될 것이 분명했다.

    심협도 그 부서진 구멍을 통해 마을 중앙 광장으로 내려갔는데, 그가 손 파파를 찾기도 전에 우렁찬 뇌성이 하늘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 깊숙한 곳에 10장 크기의 거대한 검은 곰이 사람처럼 우뚝 서 있었다. 두 개의 검은 비늘이 돋아난 굵고 튼튼한 팔로 거대한 은색 기둥을 꽉 쥔 모습이었다.

    전설의 동물 기(夔)의 그림으로 뒤덮인 은색 기둥 주위에는 은색 번개가 감돌며 뇌성을 뿜어냈다.

    거대한 곰의 두 눈에서 은빛이 감돌더니 두터운 법력이 두 팔에서 흘러나와 쉬지 않고 기둥으로 주입됐다. 기둥의 은빛이 폭증했고, 번개가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 위의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이더니 천지의 번개도 끌려와 기둥의 번개와 합쳐졌다.

    우르릉!

    뇌명이 울려 퍼지자 전장이 조용해졌고, 모두가 하늘의 변화에 시선이 쏠렸다. 강력하기 그지없는 위압에 그들은 마치 천겁이 곧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요괴는 본래 뇌정을 두려워하니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철취신군은 정말 여기에 오는 게 아니었다며 투덜거렸다.

    여아촌의 제자들은 누구도 도망치지 않았다. 임박한 재난에 모두가 마을과 존망을 함께하기로 했다.

    그렇게 모두의 마음속에 절망이 떠올랐을 때, 마을 중앙에서 갑자기 음산한 바람이 불더니 살기가 사방에서 일어났다.

    검은색 깃발이 하나둘씩 땅에서부터 떠올라 허공에 활짝 펼쳐졌고, 광풍을 맞아 펄럭이면서 살기를 뿜어냈다. 곧이어 검은색 마운(魔雲)이 여아촌의 허공을 뒤덮었다. 마치 종말이 다가온 것만 같은 이 광경에 여아촌 사람들은 더욱 절망했다.

    높은 하늘에 뜬 유웅곤은 아래에 갑자기 나타난 마운대진을 보고는 당황했다.

    하늘을 찌르는 듯한 마기는 아무리 봐도 여아촌의 수단 같지 않은데 왜 지금 갑자기 여기에 나타났단 말인가? 맹주의 다른 안배인가?

    하지만 아무리 봐도 마운대진은 자신에게 적대적인 것 같았다.

    “뭐, 다 없애버리면 되지.”

    유웅곤이 중얼거리자 거대한 은색 기둥의 뇌전이 일순 멈추더니 곧이어 모든 번개가 기둥을 타고 아래로 주입됐다.

    하늘에서 미친 듯이 뿜어져 나오던 뇌전마저 지나가자 은색 기둥은 더없이 거대한 번개 기둥이 되었다.

    이 기둥에서 번개가 미친 듯이 솟구치자 은색 광망이 진한 액체처럼 걸쭉해졌고, 똑바로 바라보지 못할 정도의 위능이 뿜어져 나왔다.

    하늘을 뒤흔들 법한 뇌명이 울려 퍼지면서 번개 기둥이 아래로 떨어졌다!

    한편, 심협은 여섯 개의 도천신살대진기 중앙에 서 있었다. 그는 온몸에서 마기를 뿜어내며 하늘을 떠받치듯 두 손을 들었고, 태을의 기운을 방출했다.

    허공 전체가 강렬하게 흔들리고 하늘에 마기가 용솟음쳤다. 대량의 검은색 마운이 뇌전에 의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도천신살대진기가 드러나자 깃발이 전부 펄럭였고, 부문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검은색 광막이 거대한 우산처럼 뒤덮이더니 뇌전과 충돌했다.

    꽈르릉!

    이어 경천동지할 굉음이 울려 퍼졌다!

    거대한 뇌전은 검은색 광막에서 미친 듯이 날뛰었고, 수많은 뇌룡이 모든 것을 찢어버릴 기세로 춤을 췄다.

    검은색 광막은 뇌전의 공격에 조금 흔들렸지만, 부서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반쪽짜리 법진인데도 태을 수사의 전력을 다한 일격을 막아 내다니! 역시 도천신살대진은 강력하군. 좋았어!”

    심협은 크게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대진이 이렇게 난공불락인 것은 당연히 그의 강력한 법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기도 했다.

    도천신살대진의 대치가 길어지자 은빛 번개 기둥의 뇌전은 기세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유웅곤은 심협의 태을 경지 기운을 눈치채고는 깜짝 놀랐다. 여아촌에 이런 고수가 있을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옆에서 빛이 반짝였다. 순양의 기운을 뿜어내는 10여 자루의 비검이 구름을 뚫고 나와 몰려들었다. 형세를 보니 어떤 검진을 만들려는 것 같았다.

    유웅곤은 불쑥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손 파파와 격전을 치르느라 소모가 적지 않았는데, 바로 다시 태을 수사와 싸우는 것은 결코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

    게다가 자신의 반뇌주(盤雷柱)로 상대의 방어 대진을 무너뜨리지 못한 것을 보면 상대는 법진에 대한 조예가 깊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지금 자신을 노리는 저 검진도 분명 강력할 터였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반뇌주를 거두고는 철갑을 두른 짧은 머리의 남자로 변하여 저 멀리 달아났다.

    요족들은 한동안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서 바로 물러나지 못했다.

    그래도 각 부대의 우두머리들은 달랐다. 그들은 부맹주가 도망치는 것을 보고는 곧장 퇴각 명령을 내렸고, 그제야 모든 요족이 썰물처럼 도망치기 시작했다.

    여아촌 사람들도 갑작스럽게 뒤바뀐 상황에 어리둥절했고, 장로든 제자든 모두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뭘 멍하니 있는 거야? 당장 쫓아!”

    이때, 백의의 여자가 갑자기 외치더니 가장 먼저 요족을 뒤쫓았다.

    그제야 다른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고는 일제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아직 마음을 놓지는 못했기에 10여 리를 쫓아간 뒤, 요족들이 완전히 도망친 것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여아촌으로 돌아왔다.

    마을 안팎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만요맹의 공격을 막아낸 것을 자축했다.

    그때, 방금 하늘을 뒤덮었던 살기 가득한 음운의 대진이 조용히 걷히더니 마지막에는 몇 줄기 검은 빛이 되어 마을 중앙으로 내려앉았다.

    그곳에서는 심협이 여섯 개의 도천신살대진기를 거두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백발의 여자가 서둘러 달려왔다. 그녀의 뒤로 몇 명의 젊은 여자들이 따랐는데, 모두 낯익은 얼굴이었다.

    가장 먼저 달려온 백발의 여자는 손 파파였다. 그녀는 입가의 핏자국을 닦지도 못했고 안색이 매우 창백했지만, 눈빛에는 기쁨과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녀가 서둘러 심협 앞으로 다가와 허리 숙여 인사했다.

    “심 도우, 구명지은에 감사하네.”

    “아닙니다. 그저 우연히 동해로 왔다가 마주쳤을 뿐입니다.”

    심협은 서둘러 손 파파를 일으켰다.

    “심 오라버니!”

    손 파파 뒤에는 유비서와 율율이 있었는데, 부상이 작지 않음에도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심협 또한 반갑게 웃으며 포권했다.

    그 무렵, 앞장서서 요족을 뒤쫓았던 백의의 여자가 서둘러 돌아오더니 고리 무기를 든 채 다가왔다. 그러더니 손 파파에게 “파파” 하고 작게 부르고는 오만한 눈빛으로 심협을 바라봤다.

    “도우는 어느 문파의 고수죠? 방금 공격을 보면 대단해 보이던데…….”

    백의의 여자는 호탕한 성격인지 돌리는 법 없이 물었다.

    “과찬이오.”

    심협은 이 여인에 대한 인상이 좋았기에 다소 건방져 보이는 말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답했다.

    “언니, 말조심해요. 이분이 바로 심협 오라버니예요.”

    유비서가 서둘러 말했다.

    “언니?”

    심협은 의아했다. 이전에 여아촌에 왔을 때, 유비서에게 언니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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