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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71화 (1,071/1,214)
  • 1071화. 여아촌을 공격하다

    수십 리 정도 날아가자 저 멀리 전방 숲속을 바쁘게 달리는 소대가 보였다. 30여 마리 요괴로 이루어진 대열로, 그중 한 명이 어깨에 멘 살구색 깃발에는 만요맹이라고 적혀 있었다.

    심협은 잠시 생각하더니 바로 칠십이변을 시전하여 흑곰 요괴와 비슷하게 생긴 요괴로 변신했고, 현황일기곤은 육중한 창으로 바꿔 그들을 쫓아갔다.

    “잠깐! 잠깐만! 나, 나 좀 데리고 가시오!”

    심협이 뒤에서 큰 소리로 부르자 앞에 달리던 요괴들이 멈춰 섰다.

    심협은 숨을 헐떡이며 쫓아갔다.

    “넌 우리 소대가 아닌데? 어디 소속이냐?”

    우두머리로 보이는 요물이 날카롭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물었다. 머리에 벼슬이 달리고 뾰족한 입이 있는 수탉 요괴였다.

    “늦게 오는 바람에 저희 부대를 놓쳐버렸지 뭡니까. 저도 함께 가면 안 될까요? 어차피 우리는 모두 형제 아닙니까? 헤헤.”

    수탉 요물은 경박하게 웃는 심협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살폈다. 그러다가 심협이 이미 금단(金丹)이 만들어진 요괴인 것을 보고는 갑자기 인재를 아끼는 마음이 들었다. 자신도 출규기의 요물이었기 때문이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우리를 만나서 다행이지 다른 부대였다면 네놈에게 죄를 물었을 것이다. 뭐, 뒤에서 잘 따라와라.”

    “오, 감사합니다. 도우를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심협이 머쓱하게 웃으며 물었다.

    “철취신군(鐵嘴神君)이라 불러라.”

    어째 점쟁이 같은 그 이름에 심협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철취신군님, 사실 저는 이전의 대장과 사이가 안 좋았는데, 이번에도 그가 일부러 저에게 시간을 안 가르쳐줬지 뭡니까. 심지어 어디로 가는지도 안 가르쳐줬습니다!”

    심협은 짐짓 억울한 척 뚱한 목소리로 하소연했다.

    “그놈 누구야? 어떻게 그런 놈이 대장을 맡은 거지?”

    “헤, 이제 와서 따져봐야 뭐하겠습니까? 이제 신군님이 제 대장입니다. 대장님이 그놈보다 강하니 앞으로 대장님만 따르겠습니다. 헤헤.”

    철취신군은 그의 아부에 기분이 좋아져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보는 눈이 있구나. 앞으로 나만 잘 따르면 손해는 보지 않을 게다. 우리는 가서 전리품만 챙기면 된다. 지금쯤 가면 시간이 딱 맞겠군. 큰 싸움에는 끼어들지 못하니 전리품이라도 챙겨야지.”

    철취신군이 낄낄 웃으며 말했다.

    “오, 그럼 여아촌으로 가는 겁니까?”

    “다 알고 있으면서 왜 아무것도 모른다고 한 거냐?”

    “헤, 이쪽이 여아촌 가는 길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죠.”

    심협은 그를 따라가면서 말했다.

    “그쪽 여자들이 만만치 않다고 하던데요?”

    옆에서 다른 요괴가 끼어들었다.

    “흥! 뭐 어떠냐? 그렇다고 그들이 우리의 유웅(有熊) 부맹주님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철취신군은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유웅 부맹주요?”

    “넌 유웅 부맹주님도 모르는 거냐?”

    “그런 위대한 분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런 멍청한 놈! 유웅 부맹주님은 너와 같은 철비웅비(鐵臂熊羆) 일족인데도 모른다고?”

    “아…… 전 그저 평범한 갈색 곰이었는데 기연을 얻어서 변한 것뿐입니다. 제가 어찌 감히 유웅 부맹주님과 같은 일족이겠습니까? 헤헤.”

    “하긴, 네 꼴을 보니 그분과 천차만별이긴 하구나.”

    철취신군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연신 키득거렸다.

    그들은 천천히 달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웅 부맹주님의 본명은 유웅곤(有熊坤)이고, 무쇠 팔로 산을 부수고 강을 끊을 수 있는 태을 경지이시다. 우리 만요맹에서 몇 없는 우두머리급 인물로 그 명성이 쟁쟁하시지.”

    철취신군이 자랑스럽다는 듯 말하자 심협은 흠칫 놀랐다. 태을 경지의 대요가 부대를 이끌고 공격하다니, 여아촌이 막아 낼 수 있을지 걱정됐다.

    “그럼 저희도 서둘러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왜?”

    “유웅 부맹주님이 여아촌을 무너트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텐데 늦으면 아무것도 못 챙길 게 아닙니까.”

    “듣고 보니 그러군. 너 보기보다는 똑똑하구나. 하하하! 자, 속도를 높인다!”

    철취신군의 말에 요괴들은 서둘러 여아촌 쪽으로 달렸다.

    곧 전방에서 살벌한 외침이 점점 크게 들려왔고, 하늘에서는 가끔 불꽃이 튀었다. 양쪽은 여전히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었다.

    심협은 일단 안심하고는 요괴들과 함께 숲을 빠져나왔다. 보아하니 전방에 규모가 큰 마을이 보였는데, 수만 마리의 요괴에게 포위된 상태였다.

    마을 주위에 세워진 여덟 개의 고풍스러운 패방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광망이 서로 연결돼 만들어진 팔각형 결계법진이 마을을 보호했다. 그러나 대진은 이미 크게 소모됐는지 조금 불안정해 보였다.

    그중 동쪽과 서남쪽의 패방은 특히 파손이 심했고, 요족은 그곳에 뚫린 두 개의 커다란 구명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양쪽 모두 천 마리쯤 되어 보이는 요족이 끊임없이 구멍을 통해 안으로 돌진했다.

    다른 요족들은 계속해서 법진을 공격했다.

    여아촌 쪽도 4천여 명이 장로의 지휘 아래 여덟 패방 주위를 지키며 방어 대진을 수리하고 안정시키면서 요족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심협이 쭉 둘러보니 마을 위의 구름에서도 마찬가지로 광망이 충돌하고 있었고, 때때로 거대한 회색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며 태을의 기운을 뿜어냈다. 그가 바로 유웅곤이었다.

    그를 상대하고 있는 사람은 심협도 잘 알고 있는 손 파파였다.

    손 파파의 경지도 크게 정진해서 유웅곤에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이미 부상을 당해 기운이 불안정했다. 그럼에도 은색 보경을 든 채 쉬지 않고 유웅곤과 싸우고 있었다.

    “철취, 왜 이제 온 거냐?”

    대승 절정의 푸른색 늑대 요괴가 철취신군 일행을 보고는 화를 냈다.

    “오는 길에 공격을 당해서 간신히 도착했습니다.”

    철취신군은 서둘러 대응하면서도 속으로는 괜히 저 곰탱이 요괴의 말만 듣고 서둘러 왔다고 후회했다.

    “괜히 방해하지 말고 뒤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라!”

    늑대 요괴는 당연히 그의 헛소리를 믿지 않고 소리쳤다.

    “물론입니다. 철배(鐵背) 형님, 별로 안 늦었으니까 너무 화내지 마십시오. 그나저나 아직도 굴복하지 않았다니, 저것들도 꽤 버티는군요.”

    철취신군은 늑대 요괴의 분노를 사기 싫었는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네놈은 여아촌이 두부처럼 약해빠진 줄 알았느냐? 헛소리 그만하고 부하들을 데리고 서남쪽으로 가서 통로를 넓혀라!”

    늑대 요괴 철배가 으르렁거리자 깜짝 놀란 철취신군은 곧장 수하들을 데리고 서남쪽으로 달렸다.

    심협은 묵묵히 뒤를 따르며 전황을 살폈다.

    만요맹의 요족은 그 수가 매우 많았다. 시체까지 합치면 대략 7만은 되는 것 같았는데, 그중 절반은 출규기도 되지 못한 요족이었다.

    태을 경지의 유웅곤을 제외하면 일고여덟 명의 진선기가 있었는데, 그중 진선 후기의 요족은 몸을 숨기는 데 능한 수사였다. 만약 심협이 태을 경지에 도달하지 못해서 감지 능력이 지금처럼 뛰어나지 않았다면 찾아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여아촌 사람들도 실력이 이전보다 크게 강해져 진선기가 11명으로 요족보다 많았다. 다만 전체 머릿수가 요족에게 한참 밀렸기에 더이상 막아 내는 것은 너무 힘들어 보였다. 이들은 사상자도 적지 않았다.

    심협으로서는 여아촌의 이 전선기 존재들이 모두 낯설었는데, 백 년 만에 새로 생겨난 진선 수사들인지 아니면 여아촌의 은든 고수들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중 분홍색 옷에 하얀 치마를 입고 이마에 구슬 장식이 달린 말총머리를 한 소녀가 있었다. 이미 진선 후기에 도달한 그녀는 겉에 부드러운 빛이 감도는 금, 은 고리 이보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싸우고 있었다.

    그녀는 여인답지 않게 매우 호전적으로 싸웠는데, 요물들이 가장 많은 곳으로 홀로 달려가 닥치는 대로 죽였다.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피와 살이 튀었다.

    ‘엄청난 여인이로군!’

    심협은 속으로 감탄하고는 다른 곳을 둘러봤다. 혼란한 국면에 낯익은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머뭇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은 서둘러 허리를 숙였다.

    “빨리 안 따라오고 뭘 멍하니 있는 거야?”

    철취신군은 뒤통수를 때리려다가 심협이 피하자 더욱 화를 냈다.

    심협은 비굴하게 웃어 보이고는 소대를 따라 서남쪽 법진으로 달렸다.

    수많은 요괴가 그 법진에 생긴 구멍을 물샐틈없이 막고 있자 이들 소대 요물들은 곧장 돌진했다. 그러나 구멍 너머에서 잔뜩 소리만 지를 뿐,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위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이렇게 다 몰려 있으면 어떻게 공격하겠다는 것이냐? 다 꺼져라!”

    심협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돌아보니 허공에는 검은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있었다. 금색이 감도는 눈동자에 날카로운 눈빛, 굽은 매부리코가 달린 얼굴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그는 크게 외치고는 구멍을 막고 있는 수많은 요족을 신경도 쓰지 않고 곧장 손을 들어 금색 화광을 하얀 치마의 여인에게로 쏘아 보냈다.

    이 여자 수사는 주위의 요족들과 치열하게 싸우던 와중에도 바로 알아채고는 금색 고리를 날려 보내 금색 화광을 막았다.

    쾅!

    굉음과 함께 금색 화광은 사분오열이 된 반면, 백의의 소녀는 살짝 멍해지더니 이내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그런데 그때, 부서진 금빛이 갑자기 연달아 폭발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한 무리의 요족 수사가 폭발했고, 그들과 싸우던 수많은 여아촌 수사들도 함께 화를 입고 튕겨 나갔다. 사상자가 적지 않았다.

    백의의 여인이 이를 갈며 흑의의 남자에게로 돌진했다.

    “죽어라!”

    강한 외침과 함께 검은 그림자가 흑의의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아직 허공에 떠 있던 그는 작은 활시위를 끝까지 당겼다가 놓았다. 그러자 검푸른 색깔의 화살이 매우 빠른 속도로 매처럼 생긴 흑의의 남자를 향해 날아갔다.

    “유비서잖아!”

    심협은 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 옷을 입은 여자를 한눈에 알아봤다.

    오랫동안 못 본 사이 유비서 또한 경지가 크게 정진해 이미 진선 초기에 도달해 있었다. 한데 그녀는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그의 신식으로도 탐색해내지 못했다.

    이때 매부리코 남자가 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었고, 다섯 개의 금빛이 뭉치면서 금색 빛의 발톱이 되어 유비서가 쏜 화살을 붙잡아 부러트렸다.

    사방으로 튀는 금빛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유비서가 가까이 다가와 초록색 단도를 들고는 매부리코 남자의 목을 향해 그었다.

    이 단도는 겨우 1척 정도로 보였지만, 휘두르는 순간 마치 독사가 혀를 내미는 것처럼 세 배로 늘어나 남자의 목을 그대로 자르려 했다.

    매부리코 남자가 손목을 비틀자 푸른색이 감도는 검은색 우선이 몸 앞을 막았다. 이어 우선을 가로로 휘두르자 푸른색 질풍이 유비서의 단도를 막아냈다.

    “가라!”

    사내가 낮게 외치자 순식간에 거세진 회오리가 그녀를 뒤로 날려버렸다.

    이와 동시에 매부리코 남자가 우선을 다시 한번 휘둘렀고, 부채에서 10여 개의 검은색 날개가 쏜살같이 튀어나가 허공에 검은색 물결을 일으키며 유비서를 향해 날아갔다.

    유비서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소매에서 10여 개의 푸른색 비침(飛針)을 날려 보냈다. 비침은 깃털과 부딪혀 함께 떨어졌다.

    그녀는 조금도 쉬지 않고 다시 매부리코 남자를 향해 돌진했다. 손에서 광망이 번득이자 옅은 금색 천이 나풀거리며 사내에게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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