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0화. 뿔뿔이 흩어지다
한참을 걷고 나니 저 앞의 길 끝에 둥근 광장이 보였다. 그곳 너머로는 저 멀리 성의 중심 구역이 눈에 들어왔다.
한데 그곳을 지나려는 순간, 거리에서 갑자기 밝은 빛이 비쳐왔다.
모두가 돌아보니 거대한 붉은색 등불이 거리를 둥둥 떠다니며 다가왔다. 그 위에 걸린 가늘고 기다란 시커먼 촉수는 성벽에 연결되어 있었다.
뒤이어 거대하고 못생긴 얼굴이 등불 뒤에서 튀어나왔다. 사람처럼 생긴 괴어(怪魚)로, 그 얼굴은 매우 흉악해 보였다.
괴어의 커다란 얼굴이 갑자기 휙 옆으로 돌더니 뒤이어 커다란 몸도 돌아서서 심협 등을 마주 봤다.
머리에 달린 ‘등불’이 천천히 흔들리자 괴어의 눈에서 갑자기 피에 굶주린 듯한 광망이 번득였다. 두툼한 입이 벌어지자 두 줄의 빼곡하고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괴어는 물고기 지느러미를 꼬리처럼 흔들더니 일행을 향해서 빠르게 돌진해왔다.
눈물 요괴와 거울 요괴는 곧장 몸을 돌렸지만, 심협 등은 미동도 없었다.
갑자기 휙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섭채주의 약목신궁에서 날아간 금빛 화살이 바닷물을 가르고 물고기 요괴의 등롱을 지나 그대로 미간에 명중했다.
쾅!
이어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인면괴어의 이마에서 피가 튀었고, 몸이 물결을 가르며 뒤로 날아가 그대로 거리 끝 광장으로 굴러떨어졌다.
동시에 심협과 오홍이 수법(水法)을 시전하자 두 개의 강력한 법력이 물속에 주입되면서 섭채주의 화살에서 뿜어져 나온 파동을 잠재웠다.
주위 건물 곳곳에 흩어져 있던 음혼과 귀물들은 무언가 감지하긴 했지만, 이곳의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눈물 요괴와 거울 요괴는 벼락같은 세 사람의 대응에 깜짝 놀랐다. 자신들에게 가장 까다로웠던 문제가 이들에게는 우스운 일이었던 것이다.
심협이 먼저 광장으로 향해 그 인면괴어를 살펴 보려는데, 가까이 가기도 전에 괴어가 몸을 꿈틀하더니 커다란 꼬리가 높이 솟아올라 심협의 머리를 찍어 내려왔다.
심협은 가볍게 옆으로 피하고는 몸에서 광망을 뿜어냈다. 그러자 한 자루 순양비검이 한 줄기 광흔을 그리며 곧장 인면괴어의 이마에 꽂혔다.
순양비검이 약목신궁으로 생긴 상처를 타고 인면괴어의 이마를 관통하더니 태양진화가 순식간에 폭발하며 이 요괴의 머리가 불탔고, 인면괴어는 순식간에 두 눈이 뒤집히면서 숨이 끊어졌다.
가까이 다가온 사람들은 비릿한 탄 냄새에 코를 찡그렸다.
심협이 비검을 거두고 다시 길을 가려는데, 갑자기 오홍의 외침이 들려왔다.
“조심!”
그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술법을 시전했다.
두 개의 거대한 해류가 심협 옆의 인면괴어를 휩쓸며 물방울 형태로 감쌌다.
인면괴어는 죽었지만, 머리에 달린 등불은 점점 더 빛을 발하더니 강력한 영압이 결국 폭발했다.
콰쾅!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등불이 순식간에 폭발했고, 붉은 불꽃이 튀었다. 물방울에 감싸여 있음에도 격렬한 파동이 퍼져 나갔다.
물방울이 부서지면서 인면괴어의 잔해는 바닷물에 휩쓸려 사방으로 튀었고, 폭발의 파동이 순식간에 성의 절반을 뒤덮었다.
심협은 간신히 몸을 가누고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때, 죽음의 기운이 무겁게 깔린 것 같았던 대거국의 유적에서 갑자기 낮은 포효가 울렸다. 이 포효는 끊임없이 울려 퍼졌고, 이내 커다란 그림자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와 몰려들기 시작했다.
몸집이 거대한 영혼들도 일제히 고개를 돌렸고, 몸집이 작은 수백, 수천의 음혼 귀물들도 빠르게 모여들었다.
“어서 도망쳐!”
“이미 늦었어요!”
눈물 요괴가 가장 먼저 외치고는 뒤돌아 도망치려고 했지만, 거울 요괴가 그녀를 말렸다.
눈물 요괴가 도망가려던 길을 돌아보니 그곳을 가득 메운 몇 마리 거대한 장어 요괴가 온몸에서 기이한 번개를 뿜어내며 포위해왔다.
“앞으로! 달려!”
심협은 짧게 외친 후 앞장서서 길을 찾아 달렸고, 섭채주가 바로 쫓아갔다.
이들은 광장을 지나자마자 또다시 넓은 거리로 들어갔지만, 맞은편에는 이미 온몸에서 하얀 빛을 뿜어내 이목구비가 모호한 음혼과 귀물 10여 마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심협은 두말없이 참마신검을 꺼내 쥐고는 귀물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조심해라! 저것들은 평범한 귀물이 아니라 혼백을 흡수할 수 있어!”
눈물 요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협은 이미 번개처럼 귀물들 사이를 파고들었고, 참마신검에서 뿜어낸 눈부신 금빛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웅웅 울리는 검명이 그제야 뒤늦게 들려왔으나, 검광은 소리보다 몇 배는 빨랐다.
곧이어 10여 마리의 음혼과 귀물들은 순양순살검의로 인해 남김 없이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이 안도하기도 전에 심협 앞의 거대한 집 뒤에서 높이 백 장의 거대한 그림자가 기어 올라오더니 손을 휘둘렀다.
순간, 심협은 그 손에서 강력한 힘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조금의 피해도 없었다. 그 강력한 찢는 힘에 끌린 것은 그의 신혼이었다.
“기이한 능력이로군.”
심협은 중얼거리며 부주진신법을 운공했다. 그러자 신혼을 끌어당기는 감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안 돼!”
거울 요괴와 눈물 요괴는 자세한 상황을 알지 못해 동시에 소리쳤다.
하지만 거대한 손이 후려쳤음에도 심협의 혼백이 몸 밖으로 끌려나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손의 주인이 마치 돌을 내려친 것처럼 고통스러워하며 서둘러 손을 거뒀다.
심협은 상대를 놓아주지 않고 곧장 뛰어올라 참마신검에서 금빛을 뿜어냈다. 그의 몸은 다시 검광이 되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해구 속에서 한 줄기 암류(暗流)가 솟구치더니 심협의 몸이 곧장 바닷물을 뚫고 가면서 물속에 생겨난 소용돌이 통로가 그 거대한 음혼의 머리를 관통했다.
다음 순간, 수천 개의 검광이 종회무진으로 누비며 거대한 음혼의 머리를 갈기갈기 찢었다.
“이럴 수가!”
눈물 요괴는 경악했다. 이제 자신은 심협의 일합도 받아낼 수 없을 터였다.
그녀가 멍하니 있는데, 거울 요괴가 다가와 어깨를 톡 건드리더니 도망가자는 손짓을 했다.
모두가 곧장 거리를 향해 내달렸다.
이 무렵, 이미 주위의 거대한 음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거리에도 수많은 물 요괴와 귀물들이 달려들었다.
“크아아!”
선두에서 거리를 빠져나간 심협이 옆으로 돌아서기도 전에 그 방향에서 짐승의 포효가 들려왔다.
소머리에 몸통은 물고기, 온몸에 푸른 비늘이 달린 괴물이 입을 크게 벌리고 미친 듯이 포효했다. 음파로 만들어진 광포한 파도가 압박해 왔다.
심협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소머리 괴물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 주먹에 힘이 모여들었고, 태을급 법력이 뿜어져 나오면서 금색 허상이 되어 순식간에 물살을 제치고 곧장 괴물의 몸을 가격했다.
쾅!
굉음이 울려 퍼졌다!
괴물의 몸이 순식간에 폭발했고, 암홍색 피가 순식간에 물속에 흩날렸다.
짙은 피비린내에 자극을 받은 물 요괴들은 더욱 흉포해졌고, 미친 듯이 심협 등을 쫓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은 물고기 요괴와 귀물들로 막히고 말았다.
“더는 피할 수 없으니 길을 뚫는 수밖에 없겠소.”
오홍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심협이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조룡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정말 다른 길은 없는 겁니까?”
주위에 가득한 물 요괴와 귀물을 모두 상대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데다, 저 어두운 곳에 더 강력한 괴물이 있을지도 모르니 가능한 한 싸움은 피하고 싶었다.
“이 망할 곳은 내 기억과 달라도 너무 달라서 아무리 둘러봐도 기억과 일치하는 곳이 보이지 않아.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전혀 판단할 수가 없다.”
조룡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주위에서 음혼과 요물들이 파도처럼 몰려오자 모두가 법보를 꺼내 대비했다. 이들 뒤의 어떤 돌벽에서 하얀 광망이 점점 빛나기 시작했는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일행 중 법력이 가작 약한 원구는 눈치껏 뒤로 물러났다. 자기 몸이나 잘 지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게 그에게는 최선이었다.
모두의 신경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음혼과 요물에게 몰려 있을 때, 돌벽의 하얀 빛이 점점 더 밝아지면서 뒤틀리기 시작했다.
원구는 뒤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자 조심스럽게 돌아섰는데, 그만 소매가 하얀 빛의 가장자리에 닿고 말았다.
그 순간, 하얀 빛이 커지면서 강력한 흡입력을 뿜어내 순식간에 그를 집어삼켰다.
“살려줘!”
그의 비명에 깜짝 놀라 돌아본 일행은 허공에 나타난 공간의 소용돌이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술법을 시전하여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빠르게 확장된 하얀 빛은 먼저 섭채주와 눈물 요괴를 집어삼켰다. 이를 본 심협이 손을 뻗어 섭채주를 잡으려 했지만, 그 또한 강력한 흡입력에 함께 휩쓸리고 말았다.
거울 요괴와 오홍도 곧바로 하얀 빛에 집어 삼켜져 완전히 사라졌다.
음혼과 요물들이 바짝 쫓아왔지만, 남은 것은 천천히 돌고 있는 하얀 빛뿐이었고, 심협 등의 기운은 모두 사라진 후였다.
* * *
눈앞에서 흑백의 빛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느낌이 들었고, 몸은 마치 물살에 휩쓸려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실제로 이들은 허공에서 그대로 추락하는 중이었다.
심협은 물속에 풍덩 빠졌고, 간신히 몸을 가누고는 물속에서 나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주위를 둘러보니 환경이 낯설지 않았다. 분명 동해 근처 해안의 어느 해역이었다. 다만 섭채주 등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눈을 감고는 신식을 방출하여 주위를 빠르게 살폈다.
잠시 후, 번쩍 눈을 뜨더니 어디론가 빠르게 날아가 해안가의 얕은 모래사장에 도착했다.
저 멀리 해안가에 누군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서 밀려오는 바닷물에 옷을 씻고 있는 게 보였다.
“원구.”
심협이 다가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심 도우!”
원구가 죽다 살아난 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아봤다.
“다른 사람들은 못 봤어?”
심협이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저도 방금 여기 도착했습니다.”
원구가 고개를 젓고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지금도 하늘이 빙빙 돌고 어지러워서 앞에 있는 심협의 모습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방금? 얼마나 됐는데?”
심협이 뭔가를 예리하게 눈치챘다.
“반각(1각은 약 15분) 정도 됐을 겁니다.”
원구가 태양혈을 문지르며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도 안 돼! 내가 널 발견하고 여기로 오는 데 반각은 걸렸어! 그렇다면 나보다 더 늦게 여기로 보내졌다는 건가?”
“정말입니다. 어지러워서 아무것도 못 하고 호흡만 정돈하고 있었으니까 틀림없습니다.”
원구의 확신에 찬 말에 심협은 말없이 다시 눈을 감고는 주위를 자세히 살폈다.
한참 뒤에야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 공간의 통로가 불안정해서 우리를 보내는 시간대가 다른 모양이군. 보내진 장소는 더욱 다르고.”
그 말에 원구는 속으로 공간의 힘에 몸이 찢겨나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로서는 다른 사람을 걱정할 여력이 없었다.
“이제 괜찮으면 다른 사람들을 찾아보자.”
“네, 그럼 흩어져서 찾아보죠.”
원구는 고개를 흔들며 대답하고 일어났는데, 일순 휘청거렸다가 간신히 몸을 가누었다.
“좋아, 그럼 내가 저쪽으로 가지.”
심협이 내륙 쪽을 가리켰다. 그곳은 지형이 매우 복잡하고 나무가 무성해서 돌아다니기에 더 힘들어 보였다.
“그럼 제가 바다 주위를 돌아보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찾든 못 찾든,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여기로 돌아와.”
심협이 높게 떠 있는 태양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상의한 후 각자 날아서 일행을 찾아 떠났다.
심협은 이동하는 내내 신식을 방출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바닷가로 돌아가 원구에게는 어떤 소식이 있는지 알아보려던 때였다.
펑!
갑자기 굉음이 들려왔다.
그는 바로 더 높이 날아올라 눈을 감고 주위를 자세히 살폈다.
한순간 온갖 소리가 더욱 선명해졌고, 그 안에서 은연중에 서로 싸우고 죽이는 소리가 섞여들었다. 불에 타는 냄새가 바닷바람을 타고 간간이 코를 찔렀다.
심협은 천천히 눈을 뜨고는 그 소리와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눈이 커졌다.
그곳은 바로 여아촌이 있는 쪽이었다.
심협은 곧장 그쪽으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