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069화 (1,069/1,214)
  • 1069화. 북명비경(北冥祕境)

    “오형, 먼저 빠져나가시오.”

    심협이 당부한 뒤 바로 배 밖으로 뛰쳐나가 허공에서 손을 움켜쥐자 현황일기곤이 나타났다. 그는 양손으로 현황일기곤을 잡고 아래로 크게 내리 찌르는 동시에 체내의 법력을 곤봉에 퍼부었다.

    현황일기곤에서 떨리는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백 배로 길어져 괴수의 심연 입구 양쪽을 밀어냈다.

    현황일기곤은 길이가 백여 장에 두께도 수 장으로 길어지더니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닷속으로 마치 바다를 측량하는 거대한 율척처럼 뻗어 나갔다.

    불쌍한 괴수는 입을 다물기도 전에 심협의 곤봉에 목이 막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고, 곧바로 해저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꼭 정해신침(定海神針)를 보는 것 같군.”

    이미 용주를 멀리까지 몰고 간 오홍이 이 광경을 보고는 실소를 터뜨렸다.

    심협의 곤봉은 그대로 구백여 장까지 길어졌다. 해저에 닿은 느낌이 들지는 않았지만, 해수면에 대량의 피가 솟구쳐 나오는 것을 보고서야 그는 현황일기곤을 천천히 거뒀다.

    그때, 바닷물 아래에서 크고 작은 그림자가 빠르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피비린내를 맡고 몰려온 것이다.

    신식으로 대충 쓸어버리고 보니 적어도 삼백여 마리의 물요괴가 이쪽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중에는 수사로 치면 대승기 절정의 수준에 이른 것들도 적지 않았다.

    심협은 곧바로 용주를 돌아갔고, 그제야 오홍이 섭채주와 원구에게 하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방금 그것은 곤경(鯤鯨)이라는 괴수요. 곤의 진정한 후예라고 할 수 있지. 다만 아직 붕(鵬)으로 변할 능력이 없어 평생을 물속에서 살고 있는 것뿐이지요. 보통은 공격성이 없는데, 아마도 우리를 먹을 것으로 착각해 실수로 공격한 모양이오.”

    “글쎄요. 저것의 몸에서 음예(陰穢)의 기운이 어렴풋이 느껴진 걸 보면 실수는 아니었을 겁니다. 그리고 물 아래 요물의 숫자가 적지 않고, 기운도…… 아까 감지하기로는 분명 진선기나 태을기 이상의 요물도 있었으니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될 거요.”

    오홍이 심협의 설명에 덧붙였다.

    “심형 말이 옳습니다. 우리는 이미 동해의 깊은 골짜기에 들어왔는데 동해지연이 있는 이 대학(大壑)이 진짜 동해 수맥의 근원입니다.”

    이는 조룡이 오홍에게 말해준 것이 분명했다.

    “그럼 이제 잠수해서 바다로 들어가야 하나요?”

    “서두르지 마시죠. 그랬다가는 물속의 요물과 귀괴(鬼怪)를 만날 테니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섭채주의 물음에 오홍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귀물도 있습니까?”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대거국 사람들이 해저에 가라앉았으니 그들의 생전 성격이라면 귀물이 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오. 동해지연의 상황은 매우 복잡하니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같소.”

    오홍의 말에 모두 그저 바다의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며 다시 나타날 위험에 대비했다.

    용주는 곧 짙은 검은색 해역 위에 멈춰 섰다.

    “이곳이 대학의 꼭대기입니다. 동해지연은 해저가 만 장에 가까운 구역, 대학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잠시 후 여기로 내려가면 최대한 빨리 동해지연에 도착할 겁니다.”

    오홍의 말에 모두가 마음을 다잡고 대비했다. 한데 보선을 거두고 그들과 함께 해저로 내려가려던 오홍의 갑자기 표정이 돌변했다.

    그는 심협에게 전음을 보내는 동시에 홀로 바닷속 깊이 들어갔다.

    잠시 후, 바닷물이 갑자기 격렬하게 용솟음치더니 심협 등이 동시에 바다 위로 올라왔다. 이들은 각자 요괴 한 명씩을 잡고 협박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머리를 내밀자마자 오홍은 금색 발톱으로 상대의 목을 눌렀다. 그러자 목이 졸린 자가 다급히 외쳤다.

    “주, 주인님!”

    다른 사람의 목을 대고 있던 심협은 그 목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라 돌아봤다.

    “거울 요괴?”

    이어서 자신이 위협 중이던 자를 확인해보니, 다름 아닌 눈물 요괴였다.

    “너희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거울 요괴, 이 멍청아! 어쩌자고 북명비경(北冥祕境)의 정보를 이들에게 흘린 거야?”

    눈물 요괴는 심협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거울 요괴에게 호통을 쳤다.

    “그런 적 없어요!”

    거울 요괴는 억울한 표정으로 답했다.

    “없다고? 그럼 이들이 여기는 어떻게 온 건데?”

    눈물 요괴는 믿지 않는 듯 여전히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해!”

    심협이 태을 경지의 기운을 방출하며 외치자 두 요괴 모두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제야 이들은 심협이 태을 경지에 올라섰음을 알게 됐다.

    “눈물 요괴, 네가 믿건 말건 거울 요괴는 우리에게 북명비경이란 곳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눈물 요괴는 조심스럽게 심협을 힐끗 노려보았다. 딱히 심협의 말을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우리가 여기 온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동해지연으로 가던 중이지. 한데 북명비경이 대체 뭐지?”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눈물 요괴는 그제야 이들이 정말로 북명비경 때문에 온 것이 아님을 조금씩 믿게 됐다.

    “북명비경은 내가 오래전 발견한 신기한 공간이다. 여기 해역 깊은 곳에 있지. 그곳은 물의 영력이 매우 풍부해 요족 수행에 큰 도움이 된다. 다만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적지 않은 위험에 처하게 되지.”

    “그녀가 말한 북명비경이 아무래도 동해지연인 것 같소. 그곳은 동해의 근원이니 당연히 물의 영력이 가장 풍부하겠지.”

    오홍이 말했다.

    “근래에 다른 사람이 이곳에 온 것을 본 적이 있어?”

    “저희 둘은 며칠 전에 아래로 내려가서 수련했고, 그 뒤에도 비경 안의 물 요괴와 귀물들이 끊임없이 소란을 피워서 잠시 피해 있다가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 올라온 겁니다. 올라오자마자 주인님을 만난 거고요. 다른 사람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거울 요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어?”

    심협이 물었다. 그는 요풍과 그 신비의 인물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동해지연을 찾아가려 한 것인지 매우 신경이 쓰였다.

    두 요괴는 곤란한 표정이었다.

    “두 사람, 그러고 보니 우리 동해 용궁과 적지 않은 원한이 쌓여 있지? 그 원한을 지금 청산해볼까? 어때?”

    오홍이 싸늘한 표정으로 내뱉자 두 요괴의 표정이 굳었다. 상대는 태을 경지의 수사 아닌가.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들에게는 승산이 없다. 심지어 도망칠 기회조차 잡지 못하리라.

    “오형, 그러지 마십시오. 거울 요괴, 너희가 난감하다면 우리가 직접 가도 되니까 안심해.”

    심협은 본래 그녀들을 곤란하게 할 생각이 없었기에 안심시켰다.

    “저 아래는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황이 복잡하니 내가 안내하마.”

    눈물 요괴가 말했다.

    “그럼 부탁하지.”

    눈물 요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없이 해저를 향해 내려갔고, 거울 요괴가 바로 뒤를 따랐다.

    심협은 다른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는 피수결을 결인하고 가장 먼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술법을 시전하여 동시에 바닷속으로 뛰어들었고, 곧장 해저로 헤엄쳐 내려갔다.

    눈물 요괴와 거울 요괴는 매우 빨라서 단숨에 수백 장 깊이까지 내려갔다. 심협도 속도를 높여 빠르게 파도를 헤치며 쫓아갔다.

    어둡고 깊은 해구는 밑바닥이 보이지 않았고, 주위에는 물고기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텅 빈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뒤를 따라왔고, 그대로 4천 장 정도를 내려가니 바닷물이 남색에서 완전한 어둠으로 변했다. 한데 다시 수천 장을 내려가자 뜻밖에도 해저 깊은 곳에서 광망이 비쳤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밝아졌다.

    그 근처에 이르자 바닷물에는 난류가 흘렀고, 천지영기도 갈수록 짙어졌다.

    미세한 빛을 통해 주위를 둘러보니 바닷속의 풍경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몸집이 거대한 고래가 수많은 물고기 떼를 쫓아 멀리까지 갔고, 마차 덮개만 한 투명한 해파리가 청록색 빛을 발하면서 천천히 떠다녔다.

    영지가 깨어 있는 수많은 요수들이 그들 곁을 맴돌며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도 보였다.

    해저에 가까워지자 수역에 거대한 성의 폐허가 나타났다. 해저 곳곳에는 매우 거대한 건물 잔해가 우뚝 솟아 있었는데, 고풍스러우면서도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한때 대거국이었던 이곳은 천 년 만 년 바닷물의 침식을 겪으면서 푸른 이끼가 가득했고, 수많은 물 요괴들의 서식지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성에서 백여 장 떨어진 곳에 멈췄다.

    심협이 가만히 바라보자 성의 수많은 건물의 문, 창문 너머로 유령 같은 하얀색 허상들이 몸을 내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몸이 흐릿했고 이목구비가 모호했다. 어떤 것은 키가 백 장에 이르렀고, 어떤 것은 평범한 사람 정도였다. 현재 그것들은 그곳의 주인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외부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섭채주는 이들의 눈빛에 등골이 오싹해져 심협의 옆에 바짝 붙었다.

    “음혼과 귀물에 불과하니 겁내지 않아도 돼.”

    심협이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주인님, 저 음혼과 귀물들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됩니다. 저들 대다수가 이미 귀선급이고 이 해저의 성에서 오랜 세월을 수련해서 실력이…….”

    거울 요괴는 경각심을 일깨워 주려다가 문득 심협이 이미 태을 경지의 수사임을 떠올리고는 말끝을 흐렸다.

    “걱정해줘서 고맙구나.”

    심협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저것들은 신혼의 힘을 흡수할 수 있으니 경지가 부족하면 혼백까지도 흡수당할지 모릅니다. 최대한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래.”

    그들은 다시 아래로 내려가 성의 거리에 도착했다.

    “동해지연은 성 아래에 있는 겁니까?”

    심협이 조룡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그리고 한참의 침묵이 이어지고 나서야 심협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어렵군. 너무 변했어. 내가 와봤던 때와는 전혀 다르다.”

    그 말에 심협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성을 수색해 보면 좀 더 확실해지겠지.”

    조룡의 제안에 심협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눈물 요괴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이 성은 워낙 위험한 곳이라 우리도 모두 둘러보지는 못했다. 우리가 안내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다른 구역은…….”

    눈물 요괴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다른 구역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가능한 곳까지만 안내해줘. 그 후로는 따라오건 돌아가건 마음대로 하고.”

    “좋다. 우리 뒤를 따라와라.”

    혹여나 심협이 말을 바꿀까 우려되는 듯, 눈물 요괴는 곧장 답했다.

    한데 그녀가 앞장서서 길을 안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길 끝의 허공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모호한 하얀색 빛이 나타났다. 주위의 허공이 뒤틀린 것처럼 공간의 파문이 잔잔하게 일어났다.

    “저쪽은 못 가겠는데?”

    눈물 요괴가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저런 게 없었는데, 어떻게 된 걸까요?”

    거울 요괴가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저게 뭐지?”

    “부서진 공간 통로다. 이 성에서 저 하얀 빛들이 있는 곳은 모두 저렇다. 조심하지 않으면 휩쓸려서 산산조각이 나지.”

    오홍의 물음에 눈물 요괴가 설명했다.

    “저 공간의 통로 파편은 매우 불안정해서 여기저기서 떠오른 것 같군.”

    “그렇다. 다만…… 우리가 이전에 이 주위를 살펴볼 때는 저런 것은 없었다. 다른 길로 가야 될 것 같은데…….”

    “왜 그래?”

    눈물 요괴의 걱정스런 표정에 심협이 물었다.

    “다른 길에는 인면괴어가 있는데, 이미 진선 초기의 경지라 상대하기가 까다로워요. 매번 그놈이 우리 둘의 수행을 방해해서 어쩔 수 없이 성 밖으로 도망쳤던 거고요.”

    거울 요괴가 설명했다.

    “진선 초기? 그 정도라면 너희 둘이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지 않나?”

    오홍이 두 사람의 말을 믿지 않는 것처럼 되물었다.

    “그놈 하나였으면 당연히 그렇겠지요. 그런데 그놈과 싸울 때마다 다른 물 요괴들은 물론, 음혼과 귀물까지 몰려왔어요. 한 번 성에 갇히게 되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 도망칠 수밖에요.”

    거울 요괴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은 우리가 있으니 괜찮을 게다.”

    “조심하면 별일 없을 거야. 정 걱정되면 우리끼리 가도 되니까 너희는 가도 좋아.”

    오홍과 심협의 말에 거울 요괴는 눈물 요괴를 바라봤다. 그녀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우리가 더 안내하면 나중에 우리에게도 수확을 나눠줄 건가?”

    “물론이지.”

    눈물 요괴가 머뭇거리다가 묻자 심협은 웃으며 흔쾌히 대답했다.

    그러자 눈물 요괴는 군말 없이 방향을 바꿔서 안내했다.

    대거국의 성은 길이 광장처럼 넓었고, 집들은 모두 성처럼 높았다. 모두가 이곳을 지나는 내내 형용할 수 없는 어색함을 느꼈는데, 계속해서 주위를 맴돌며 엿보는 하얀색 음혼과 귀물들 때문에 더욱 그랬다.

    다행히 눈물 요괴는 이런 일에 익숙했는지 능숙하게 이리저리 피해서 이동했고, 가는 내내 한 마리도 직접 마주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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