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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68화 (1,068/1,214)
  • 1068화. 대거(大渠)

    심협은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화령자의 엄청난 지식에 감탄했다. 다만 그는 꿈속 세계에서 천존 경지로 들어설 때 심마의 방해를 전혀 느끼지 못했기에 의문은 남았다.

    ‘혹시 꿈속 세계의 내가 짊어진 도체와 연관이 있는 건가?’

    또 다른 가능성은, 그곳에서의 자신은 천 년 전의 세계에서 왔으니 그 세계와는 아무런 근본적인 인연도 없으니 심마가 방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만약 영보로 삼재지법을 막아서 심마를 견딜 수 있다면 심마대법이 왜 필요하지? 원 국사와는 관계가 나쁘지 않으니까 잘 말하면 그 비술을 알려줄 거야. 그리고 내게는 보물이 많으니 그 비술을 시전하기에도 충분하지.”

    “그 방법이 현묘하긴 하나 그것은 부정한 방법으로 자신의 심마를 속이는 것에 불과하니 임시방편일 뿐이다. 설령 그렇게 해서 천존의 겁을 지난다 해도 후에 대천존의 경지로 들어설 때는 심마가 더 강력해지지.”

    화령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구나.”

    “그러니 이번에 용아와 청청을 다시 만난 것은 어렵게 얻은 기회다. 다음에 만나면 어떻게 해서든 두 사람에게서 심마대법을 얻어야 한다. 무조건!

    “그래, 최선을 다해볼게.”

    화령자의 당부에 심협이 조용히 답했다.

    * * *

    그 무렵, 하늘을 찌를 듯한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가 강적을 물리치자 동해 용궁 사람들이 열렬히 환호한 것이다.

    오홍과 섭채주가 다가왔다. 오홍은 이미 안색이 회복된 것으로 보아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심형, 잠깐 못 본 사이에 경지가 이 정도까지 정진했을 줄은 몰랐소. 감복했소.”

    “과찬이오. 오형은 태을 경지로 들어선 이후에 경지를 다지지 못해 실력을 오롯이 펼치지 못했을 뿐, 경지를 안정시킨다면 금전 같은 자는 절대 오형의 적수가 안 될 거요.”

    심협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지만 오홍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분명 모든 실력을 보이지 않았지만, 금전은 막강했다. 또한 법칙 신통까지 시전할 수 있는 자이니 자신이 태을 경지에 완전히 들어선다 해도 이길 수 있다고는 확신할 수 없었다.

    강적은 물러갔지만 만요맹의 위협은 사라진 게 아니었기에 오홍은 바로 명령을 내려 동해 용궁의 방어를 강화하고 습격에 대비했다.

    용궁 곳곳의 금제가 발동되자 겹겹의 광막이 빠르게 용궁 전체를 뒤덮었다. 그야말로 난공불락 같았다.

    이 광경을 본 심협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심형, 앞으로 며칠 동안은 경지를 안정시켜야 하니 동해지연을 찾는 일을 며칠 미뤄야 할 것 같소.”

    오홍이 자질구레한 일을 모두 처리하고는 심협에게 말했다.

    “급한 일은 아니니 괜찮소.”

    심협은 재촉하지 않았고, 오홍에게 태을 경지 초입 때 주의해야 하는 일들을 알려줬다.

    오홍은 감사 인사를 남기고는 폐관에 들어갔다. 심협과 섭채주도 동해 별원의 동부로 돌아가 폐관했다.

    * * *

    사흘이 지나 찾아온 오홍은 온몸의 기운이 줄어든 것이 근간을 확실하게 다진 듯했다.

    “동해 용궁은 역시 저력이 대단하군요. 사흘 만에 경지를 안정시키다니, 감복했소.”

    “어디 내 공이겠소? 조룡의 혼이 도와준 덕분이지.”

    오홍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심협, 조룡척목의 절반을 오홍에게 주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오호의 미간에서 광망이 번득이더니 조룡의 혼이 나타나서는 심협을 노려보며 일갈했다. 조룡의 혼은 조룡척목 절반을 모두 연화했는지 형체가 이전보다 훨씬 실체에 가까웠다. 완전히 실체로 변할 기미를 보였다.

    “당신도 척목 절반을 얻었으면서 뭐 그리 욕심이 많소?”

    심협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조룡의 혼은 심협이 매우 거슬렸지만, 이미 약속한 바가 있으니 그저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입을 다물었다.

    “자, 이제 동해지연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실 차례요.”

    “물론이다. 단, 나도 함께 가겠다.”

    “당신도 간다고?”

    “당연한 말을! 동해지연의 기이함은 예측할 수 없으니 안내가 없으면 내가 위치를 알려줘도 너희는 들어갈 수 없을 게다.”

    “조룡 선배가 동행하면 좋긴 한데, 당신이 가면 오형도 같이 가야 하잖소? 동해 용궁의 정세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는데 오형이 없어도 되겠소?”

    심협이 오홍을 돌아보며 물었다.

    “병력을 집중하여 용궁을 지키게 했으니 당분간은 별문제 없을 거요. 게다가 목적지도 동해 영역 안이니 용궁에 일이 생기면 바로 돌아오면 되겠지.”

    심협도 그제야 안도했다.

    “아, 조룡 선배. 전에 북명거린에 대해서도 물어봤는데 대답을 안 해주셨소. 북명거린이 뭔지 아십니까?”

    그는 잊기 전에 곧장 물어봤다.

    “북명거린? 처음 듣는데……. 이름만 들어보면 북명 바다와 연관이 있는 것 같군. 허나 북명의 바다에 큰 비늘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심협은 내심 실망했지만, 그래도 동해지연을 찾았으니 큰 수확이었다.

    “심 도우, 섭 도우, 오 도우. 이번에 멀리 나갑니까? 전에 말했던 그 동해지연입니까?”

    원구가 갑자기 동부에서 날아오며 물었다.

    “위험한 곳이니 원 도우는 여기 남아서 기다리는 게 좋겠어.”

    “안 됩니다! 이전에 어떤 위험이든 함께하겠다고 심 도우와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어찌 식언(食言)할 수 있겠소? 함께 가겠습니다.”

    심협의 말에 원구가 단호하게 말했다.

    “원구, 넌 대승기에 불과한데 따라가서 어쩌겠다는 거냐? 방해만 될 뿐이다.”

    오홍이 거침없이 말했다.

    “심 도우에게 공간 법보가 있으니 거기 숨어 있으면 방해는 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내 비록 실력은 부족하나 고술은 대가이니 비경을 탐색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원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 말도 일리가 있군. 위험을 무릅쓸 각오가 됐다면 함께 가자.”

    심협이 잠시 생각한 끝에 고개를 끄덕이자 오홍도 더는 따지지 않았다.

    * * *

    며칠이 지났다. 동해 상공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었고, 파도가 용솟음쳤으며, 폭풍이 휘몰아쳤다.

    길이가 10여 장에 이르는 금홍색(金紅色)의 용주보선 한 척이 높은 파도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평온하게 바다를 누비며 나아갔다.

    심협을 비롯한 네 사람은 모두 뱃머리에 서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저 먼 곳에 성벽처럼 높이 솟은 구름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폭풍이 심상치 않은데 정말 돌아가지 않아도 됩니까?”

    원구가 시커먼 구름 벽을 바라보다가 바다와 이어져 있는 곳을 보며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동해의 용왕이 여기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심형, 나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동해의 주인이긴 하나 동해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것은 아니오. 이 바다의 기상은 변화무쌍한데 내가 모든 곳을 다스린다면 피곤해서 죽지 않겠소?”

    “그래도 동해 용왕이 직접 모는 용주가 동해에서 전복한다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오형이 그런 망신을 당하지는 않겠지요.”

    “어쨌든 저 폭풍은 내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게 아니오. 저것은 일 년 내내 바다에 웅크리고 있다가 가끔씩 폭발하는데, 그때마다 크기가 열 배는 커진다오. 그래도 지금은 안정기니 당분간은 폭발하지 않을 것 같소.”

    그사이 용주는 벌써 백 장이나 나아가 검은 구름의 벽과 더 가까워졌다. 용주 주위의 바닷물은 남색에서 점점 검은색으로 변해갔고, 바닷물의 흐름도 몇 배는 빨라졌다.

    곧 용주가 검은 구름 벽으로 들어갔고, 어둠을 헤치며 수십 장을 나아갔다. 그리고 그제야 저 앞에서 조금씩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뿌연 수증기가 하늘 전체를 가리고 있었는데, 심협은 짙은 안개 너머 전방에 두 개의 우뚝 솟은 두 개의 산 같은 것을 어렴풋이 보았다. 한데 그가 일행에게 막 일깨워주려던 순간, 용주가 쿵 하며 무언가와 충돌했다.

    곧이어 용주의 끝부분이 거대한 물줄기에 휩쓸려 균형을 잃었고, 옆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를 본 오홍이 손으로 슬쩍 누르자 본래 난폭했던 파도가 서서히 가라앉았고, 흔들리던 용주는 거대한 암초 옆을 부드럽게 빠져나갔다.

    다시 앞으로 조금 더 나아가자 허공의 안개가 마침내 사라지기 시작했다. 심협은 그제야 두 개의 커다란 그림자를 제대로 볼 수 있었는데, 바로 백 장 높이의 석상들이었다.

    두 석상은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었는데, 반라에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고, 긴 수염이 가슴까지 늘어진 모습이었다. 하나는 커다란 도끼를, 다른 하나는 거대한 낭아봉을 든 채 눈을 부릅뜨고 서로 노려보는 모습은 마치 두 개의 문신(門神) 같았다.

    “저게 뭘까요?”

    섭채주가 물었지만, 심협도 정체를 몰라서 궁금해하던 터였다.

    “듣기로는 동해의 수맥이 시작되는 곳이 거대한 섬이었는데, 그곳에는 대거(大渠)라는 거인국이 있었다고 했소. 그곳의 백성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몸이 몇 장이나 되고, 성년이 되면 수십 장에 이르며, 걸출한 자는 무려 백 장까지 큰다고 했소.”

    오홍이 대신 답했다.

    “대거…… 나도 옛 서적에서 본 적이 있소. 많은 설명은 없었지만, 그 나라 백성들은 매우 용맹하고 수명 또한 길며 무력을 숭상한다 했소. 한데 어째서인지 갑자기 역사에서 사라졌다지요.”

    심협이 말했다.

    “전설에 따르면, 내전이 일어나면서 두 나라 국왕이 치열하게 싸운 끝에 공멸했다 하오.”

    “그건 잘못된 소문이다.”

    오홍의 말이 끝나자마자 조룡의 목소리가 그와 심협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럼 진실을 알려주십시오.”

    심협이 물었다.

    “그 나라는 전란으로 멸망한 것이 아니라 동해가 요동치면서 유례없는 대지진이 일어나 멸망했다. 그 지진으로 나라 전체가 동해지연 안으로 빠져들면서 사라지게 된 게지.”

    조룡은 설명을 덧붙였다.

    “당시 대거의 백성들은 전멸하지는 않았고, 일부가 무사히 도망쳐 다른 곳에서 번성했다. 다만 오랜 세월의 변천을 겪으면서 대부분은 순수한 거인의 혈통이 아니게 됐지.”

    “그렇군요.”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었다.

    “앞에 조심!”

    원구가 갑자기 외쳤고, 모두가 황급히 앞을 돌아보니 해역 중앙에 갑자기 해수면을 높이 뚫고 나온 뾰족한 돌벽이 나타났다. 마치 거대한 종유석이 밀림처럼 빼곡하게 즐비해 있는 것 같았다.

    오홍은 서둘러 용주를 조종해 그 사이를 피해서 지나갔다. 다행히 용주가 그리 큰 편은 아니었고, 오홍의 조종 실력이 상당해서 무사히 그 해역을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가기도 전에 전방에 거의 똑같은 뾰족한 돌벽이 또 나타났고, 그제야 심협은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는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그 순간, 오홍의 가슴속에 경종이 울려 퍼졌고, 조룡의 목소리도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조심해라! 저건 암초가 아니라…….”

    조룡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용주 아래의 바닷물이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갑자기 아래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안으로 거대하기 그지없는 심연의 입구가 보였다.

    오홍이 곧바로 용주보선을 허공으로 띄워 심연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한데 거의 동시에 용주보선 앞뒤로 날카로운 암초가 동시에 솟아 올라오더니 그들에게 그대로 부딪치려 했다.

    심협은 그제야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 뾰족한 회백색 돌벽은 해수면에 드러난 암초가 아니라 심하게 마모된 괴수의 이빨이었다.

    그들은 배와 함께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괴수의 입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저 거대한 입이 닫히면 모두 괴수의 뱃속으로 매장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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