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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61화 (1,061/1,214)
  • 1061화. 만요맹(萬妖盟)

    격전 중이던 여섯은 두 사람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

    특히 흑의의 중년 남자는 심협을 보는 순간 화색이 돌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심 도우, 접니다! 원구요, 원구! 나 좀 살려 주시오!”

    비록 외모가 많이 변했지만, 중년 남자의 얼굴에는 과거 원구의 모습이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네 마리 물고기 요물은 경계심을 높이며 들고 있는 수차(水叉)에서 푸른 빛을 뿜어내 몇 배나 커진 수백 개의 푸른색 수뇌를 뿜어내 사방에서 원구와 청년을 공격했다. 심협이 나서기 전에 두 사람을 죽일 속셈이었다.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 벌레떼와 방패로 막으려 했다.

    “어딜!”

    심협이 싸늘한 표정으로 외치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네 개의 눈부신 검광이 그의 손에서 날아가 단숨에 네 마리 물고기 요물의 몸을 관통했다.

    물고기 요물들은 몸이 꿰뚫리는 순간까지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고, 불꽃에 휩싸여 법보와 함께 잿더미가 되어 완전히 사라졌다. 푸른색 수뇌는 원구 등의 몸에 닿기도 전에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이 광경에 원구와 청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 네 마리 요물은 벽룡담(碧龍潭)의 벽수(碧水) 물고기 요물들로, 수강신뢰(水罡神雷)를 뿜어내는 단조로운 공격밖에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육체가 매우 단단해 진선 수사의 법보 공격도 막아낼 정도였다. 한데 심협은 개미를 눌러 죽이듯 단숨에, 그것도 한꺼번에 네 마리를 죽여버린 것이었다.

    원구는 몰래 신식을 펼쳐 심협의 경지를 감지했으나, 마치 텅 빈 곳을 보는 것처럼 조금도 감지할 수 없었고, 이에 더욱 놀랐다. 그는 동해 용궁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진선 후기 존재도 적잖이 만나봤는데, 그들에게서는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이는 동해 용왕 오광을 비롯한 소수의 몇몇에게서 받은 느낌과 같았다.

    “심 도우, 경지가…… 태을기에 도달한 겁니까?”

    원구가 더듬더듬 물었다.

    “원구, 장안에서 헤어진 후로 동해로 온 줄은 몰랐군. 이전에 오장관의 백과선회에서 오홍 형을 만났었는데, 그때 네 얘길 하더군.”

    심협은 대답 대신 담담하게 말했고, 원구는 흠칫 놀라며 표정이 굳었다. 그때 그는 마겁을 피해 동해 용궁으로 숨었고, 오홍의 신임을 얻기 위해 심협의 비밀을 적잖이 폭로한 적이 있었다.

    “심 도우, 용서해주시오. 그때는 워낙 절박해서 그만…….”

    원구가 난처한 표정으로 사과했으나, 심협의 표정은 싸늘했다.

    원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분위기가 냉랭하게 굳어버렸다.

    그때, 회색 머리 청년이 다가와 심협에게 허리를 숙이며 예를 올렸다.

    “선배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오늘 화를 면치 못했을 겁니다.”

    그제야 긴장된 분위기가 조금씩 풀어졌다.

    원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회색 머리 청년에게 고맙다는 눈빛을 보냈다.

    “별것 아니오. 한데 귀하의 복장을 보아하니 동해 사대상맹 중 일약재 문하인 것 같소만?”

    심협도 정말로 원구를 나무랄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기에 슬쩍 한번 노려보고는 바로 회색 머리 청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습니다. 후배 일약재의 두천(杜天)이라 합니다.”

    “두 도우였구려. 그나저나 왜 여기서 공격을 받고 있었던 것이오?”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제를 돌렸다.

    “저와 원 도우는 이곳 해역으로 진귀한 약재를 구하러 왔다가 우연히 벽룡담의 물고기 요물들을 마주쳐 포위당했던 겁니다.”

    “우연히 마주친 것뿐인데 다짜고짜 공격했다는 거요?”

    “심 도우, 설마 지금 동해의 상황에 대해 모르는 겁니까?”

    원구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동안 장안성에 머무느라 동해에 오지 못했어.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그렇군요. 한 달 전, 만수문(萬水門)이 남선교룡(藍線蛟龍)을 사냥하면서부터 사건이 시작되었죠.”

    “만수문!”

    심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여러 번 동해에 온 적이 있어 이곳 상황을 잘 아는 편이었다. 만수문은 동해의 대종문으로, 동해 용궁과 여아촌을 제외하면 가장 큰 인간족 세력이었다. 문 내에는 몇 명의 진선기 수사가 있어, 비록 대당 관부나 보타산 등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 차이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여아촌은 은세(隱世) 문파였기에 동해 구역에서 일어난 일에 관여하지 않았고, 동해 용궁은 더더욱 인간족 수사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니 동해 구역에서는 만수문이 인간족 종파 중 으뜸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만수문의 한 진선 장로가 제자들과 함께 진선기의 남선교룡을 사냥하자 그간 자중하던 동해 교룡 일족이 총출동하여 만수문으로 쳐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반나절 만에 만수문의 호종 대진인 벽해천파진(碧海天破陣)을 부수고 천 명 가까운 인간을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전부 도살했지요!”

    원구가 겁에 질린 눈빛으로 계속 말했다.

    “교룡 일족? 내가 알기로는 동해 교룡 일족이 비록 약하지는 않지만 그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은 것으로 아는데 단번에 만수문을 몰살시켰다고?”

    “저도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만수문을 멸문한 교룡 일족은 동해 구역의 다른 대형 요족들과 연합하여 만요맹(萬妖盟)이라는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만수문을 무너트린 위세를 몰아 동해의 다른 인간족 문파를 공격하고 있는데, 승승장구하고 있지요. 현재 동해 구역의 인간족 종문은 벌써 절반이나 멸문했습니다. 만요맹은 위세가 나날이 커져 동해 영역의 모든 인간족 수사를 몰아내고 동해에 만요의 나라를 세우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동해의 모든 인간족 수사를 몰아내다니요? 터무니없는 자신감이구려. 동해는 중토와 매우 멀어 대당 관부나 화생사, 천기성 같은 세력이 직접 관여할 수는 없다지만, 그들 또한 동해의 진귀한 영재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 그중 일부 거대 종문이 나서기라도 한다면 만요맹이 어찌 막아내겠어요? 또한, 동해 용궁도 그대로 두고 보지는 않을 거예요.”

    섭채주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저희 사대상맹도 이번 사건의 영향을 받아 힘을 합쳐 싸웠으나 참패를 당했지요. 만요맹에는 태을경 대요가 있었습니다.”

    두천이 나서서 말했다.

    “태을 경지의 대요?”

    심협의 눈빛이 굳어졌다.

    태을 경지는 인간계에서도 절정의 전력이라 어느 종문 세력이든 태을경 수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인간계에서 손꼽히는 세력이 된다.

    한데 만요맹에 태을 경지의 요물이 있다니,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

    “만요맹에 대해 더 아는 게 있나?”

    심협이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만요맹은 최근 위세가 대단하지만, 자신들에 대해 알리는 것을 매우 꺼려서 더는 아는 정보가 없습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생각에 잠겼다.

    “심 도우, 이번에 동해에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제가 기꺼이 돕겠습니다.”

    원구는 분위기가 누그러진 것 같자 바로 아부하듯 말했다. 심협이 태을 경지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니 관계를 회복한다면 적잖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린 듯했다.

    “동해의 어떤 장소를 찾으러 왔다.”

    “장소요? 제가 그동안 동해에 쭉 살았으니 곳곳의 지형과 세력 분포를 훤히 꿰고 있습니다. 제게 맡겨주시죠.”

    “원 도우가 그리 말하니 그럼 함께 가지.”

    심협은 가볍게 웃고는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금빛이 원구를 감싸더니 소요경 안으로 끌고 갔다.

    “두 도우, 저는 볼일이 있으니 이만 가봐야겠소.”

    심협은 두천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섭채주와 함께 무지개가 되어 동해 용궁으로 향했다.

    두천은 그 뒷모습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노란 빛이 되어 떠나갔다.

    * * *

    “오라버니, 원구는 왜 데려가는 거예요? 우리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긴 했어도 경지가 너무 낮으니 함께하다가는 위험만 늘어날 거예요.”

    섭채주가 이해할 수 없는지 불쑥 물었다.

    “그게, 다른 일 때문인데…….”

    심협은 말끝을 흐리더니 전음을 보냈다.

    “그랬군요. 오라버니는 동해의 변고가 정말로 만요맹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이 정도로 알려졌다면 거짓은 아닐 거야. 다만, 동해 요족에서 태을 경지의 대요가 나타났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아.”

    “오라버니, 너무 고민하지 말아요. 만요맹 일은 동해 용궁이 잘 알고 있을 테니 그곳에 가면 알게 되겠죠.”

    “그래.”

    심협도 더는 그 문제를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 * *

    동해 용궁. 금과 백의 빛이 반짝이더니 두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심협과 섭채주였다.

    “어떤 놈들이 감히 동해 용궁에 쳐들어오는 것이냐?”

    두 명의 새우 병사가 바로 달려들었다.

    심협은 두 병사를 난처하게 할 의사가 없었기에 소매를 휘둘러 이들을 가두고는 곧장 안으로 날아갔다.

    “오라버니, 이렇게 돌진해 들어가기보다는 먼저 방문 의사를 알리고 기다리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아니야, 용궁은 규율이 엄격해서 통보를 기다리면 언제 오형을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이게 더 효율적이야.”

    그는 이미 태을 경지의 수사였기에 허례허식을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한데, 주위의 다른 병사들이 이를 보고는 곧장 달려들었다.

    심협은 이들과 싸우기 귀찮아 연연나금의를 발동하여 자신과 섭채주의 모습을 지우고 용궁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였다.

    “멈춰라!”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고, 새우 병사들은 우뚝 멈췄다.

    “이 두 분은 동해 용궁의 귀빈이니 무례하게 굴지 마라!”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벽수야차였다.

    “네!”

    새우 병사들이 일제히 대답하고는 허리를 숙이며 물러갔다.

    벽수야차가 나타나자 심협은 연연나금의의 발동을 풀었다.

    “허허, 심 도우. 이렇게 빨리 또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오늘은 무슨 일로 동해 용궁을 방문하셨습니까?”

    벽수야차는 환하게 웃으며 심협을 반겼다.

    “오늘은 오형에게 중요한 물건을 돌려드리러 왔습니다.”

    심협이 임랑환을 툭 치며 말했다.

    “그랬군요. 안으로 들어가셔서 차 한잔하시죠.”

    벽수야차는 심협이 심혈구이주를 빌렸던 사실을 알고 있는지 환하게 웃으며 두 사람을 용궁 안으로 안내했다.

    셋은 곧 편전에 도착했고, 두 명의 산호 시녀가 용궁 특산 영차를 내왔다.

    “오형은 동해 용궁에 있소?”

    심협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바로 물었다.

    “계십니다. 폐하께서는 지금 진룡전에서 용궁의 일을 처리하고 계시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제가 용왕님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벽수야차는 인사하고는 물러갔다.

    심협과 섭채주는 차를 마시면서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도 오지 않았다.

    “오라버니 말대로 동해 용궁의 일 처리는 확실히 능률이 떨어지네요.”

    섭채주가 웃으며 말했다.

    “마침 잘됐어. 이 기회에 원구한테 물어보면 되니까.”

    심협이 소매를 휘두르자 원구의 모습이 나타났다.

    “여기는…… 동해 용궁입니까?”

    원구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단숨에 눈치채는 걸 보니 원 도우는 동해 용궁에 대해 잘 아는 모양이군.”

    심협이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심 도우, 제가 도우의 비밀을 폭로한 것은 분명 제 잘못입니다. 도우가 나를 벌한다 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원구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는 눈을 감았다. 원하는 대로 벌하라는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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