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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53화 (1,053/1,214)

1053화. 연옥에서 벗어나다

한편, 심협은 전광이 번쩍이는 혈색 광맥을 보고도 전혀 우려하지 않았다. 다만 팔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것이 조금 거슬릴 뿐이었다. 염수화맥으로 인한 화상은 예사롭지 않아서 회복이 매우 느린 것은 물론이고 경맥의 손상도 매우 심했다. 살과 근육, 피는 모두 회복되고 법력도 흘렀으나, 엄청난 고통은 여전했다.

곧 용암이 다시 차오를 것이라는 오흠의 말이 사실임을 심협도 알고 있었기에 시간을 길게 끌 수는 없었다.

그는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주먹을 쥐었고, 이를 악문 채 극심한 통증을 참아내며 주먹을 휘둘렀다.

꽈르릉!

한 줄기 권강(拳罡)이 하늘 높이 솟구치면서 주위의 은색 전광이 그 충격에 갑자기 폭발했다.

심협은 오전을 넘어 연대와 오흠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흠칫 놀랐다.

이를 본 오전은 무시당했다는 사실에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포효하며 심협에게로 다시금 달려들었다. 손에 든 창, 벽력이 심협의 얼굴로 곧장 찔러 들어오며 은색 전광을 뿜어냈다.

하지만 심협은 어느새 한 손에 현황일기곤을 꺼내 들었고, 이 곤봉을 크게 휘둘러 강력한 기세를 폭발시켰다.

오전의 벽력은 상당한 법보였지만, 현황일기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더욱이 사용하는 사람의 경지에서도 한참 차이가 났기에 두 법보가 충돌하는 순간, 오전은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힘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창끝에서 뿜어져 나온 전광은 폭발음과 함께 곤봉의 금빛에 사라졌다.

오전은 창과 함께 뒤로 훌훌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남해 용왕은 아들이 산벽에 처박히는 모습을 봤지만, 황금월을 내려놓지 않았다. 돌벽의 화맥은 이미 절반이나 부서졌으니 이제 한두 번만 더 내려치면 완전히 부술 수 있을 터였다.

그는 아들을 내버려둔 채 다시 부월을 휘둘렀다.

쾅!

오전의 몸이 산벽과 충돌하는 소리와 오흠이 부월을 내려치는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화맥들은 하나둘 잘려나가 이제 몇 개 남지 않았고, 이제 한 번의 도끼질만 더해지면 완전히 부서질 터였다.

“멈춰!”

심협은 오흠이 다시 황금월을 드는 모습을 보고는 외쳤다.

물론 오흠이 멈출 리가 없었다. 그는 부월의 날에서 금빛을 뿜어내며 몇 가닥 남지 않은 최후의 화맥을 내리쳤다.

꽈르릉!

폭발음과 함께 화맥이 완전히 부서졌고, 하나둘씩 식어가기 시작했다.

동굴은 일순 고요해졌다. 머리 위에서 계속 들려오던 화맥이 폭발하는 소리도 이 순간을 기점으로 조금씩 잦아드는 듯했다.

오흠은 아무것도 개의치 않고 곧장 붉은 연대 앞으로 돌아가 조룡척목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의 팔이 나오는 순간, 아래의 붉은 연대에서 갑자기 광망이 뿜어져 나오더니 연꽃잎에서 솟아오른 붉은 불꽃이 순식간의 그의 팔을 녹였다.

“저런 멍청한!”

이를 본 심협은 욕설을 퍼부었다.

저 붉은 연대가 이곳의 염수화맥을 이루는 관건이고 벽의 나무 모양 화맥은 근원에서 흩어져 나가는 것임을 심협은 진작 알아챘다. 그러니 화맥을 끊어도 붉은 연대가 쉽게 식기는커녕 오히려 위의 염수화맥이 이변을 일으킬 뿐이었다.

“끄아악!”

오흠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지 못했지만, 독하게 이를 악물더니 뼈만 남은 손으로 조룡척목을 잡아당겨 연대 중앙에서 뽑아냈다.

조룡척목이 뽑혀 나오자 연대의 불꽃도 따라와 계속해서 오흠에게로 달려들었다.

심협은 열한 자루의 순양비검을 쏜살같이 날렸다. 주작과 금오, 두 종류의 검령이 동시에 나타나 날개를 펴고 그 불꽃으로 뛰어들었다.

오흠은 연대의 불꽃에 정신이 쏠린 터라 심협의 공격을 막을 겨를이 없었고, 열한 자루의 비검에 팔을 베이고 말았다.

이미 뼈만 남은 채 염수화맥의 불꽃에 휩싸여 있던 팔이 검광에 베이자 두 개의 조룡척목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오흠은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다른 손을 내밀어 조룡척목 하나를 잡았다. 다른 하나는 주작 검령이 깃든 비검에 실려 공중에서 빠르게 돌더니 심협에게로 날아갔다.

두 개의 조룡척목이 좌우로 흩어지자 연대에서 함께 솟아오른 불꽃도 우왕좌왕하더니 둘로 나뉘어 양쪽으로 쫓아갔다.

오흠은 멀리 피해 조룡척목을 저물 반지에 넣었다. 심협도 순양비검에서 조룡척목을 받아 챙겼다.

한순간 허공에 떠 있던 두 줄기 불꽃은 목표를 잃은 것처럼 좌우로 맴돌다가 다시 하나가 되어 붉은 연대로 돌아갔다.

연대의 색이 어두워졌고, 그 위에서도 더는 열기의 파동이 뿜어져 나오지 않았다.

“어서 연대를 가져와라!”

오흠이 큰소리로 외치자 오전은 힘겹게 일어서더니 용왕의 명에 따라 암홍색 연대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순간, 땅속 동굴이 갑자기 강하게 흔들리더니 머리 위의 공간을 나누던 광막이 부서지면서 아직 식지 않은 염수화맥이 갈라진 바위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전은 염수화맥이 곧 자신에게 쏟아지려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이를 악문 채 암홍색 연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심협이 한발 빨랐다.

열 자루의 순양비검이 붉은 연대를 가마처럼 들어 올렸고, 열 마리의 금오 검령이 받친 채 주위를 맴돌다가 곧장 심협에게 돌아왔다.

심협은 빠르게 물러나면서 소요경을 열어 그 안으로 들여보냈다. 만일을 대비해 열 자루의 순양비검도 함께 안에 남겨 금오검령이 지키도록 했다.

심협이 보선의 건너편에 도착해보니 조비극은 여전히 용궁 수사들과 싸우고 있었다. 바다 요괴는 수식족 아이를 보호하며 일진일퇴하고 있었다.

그들 머리 위에서도 염수화맥의 용암이 원래 갈라졌던 틈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동굴 곳곳이 붕괴하면서 용암이 침투해왔다.

심협은 혈백원번으로 몸을 보호한 채, 한 손으로는 현황일기곤을 들고 돌진하면서 앞을 가로막는 용궁 수사들을 날려보냈다. 뒤이어 조비극에게 건곤대로 돌아갈 것을 명했다.

바다 요괴와 수식족 아이, 주망칠은 심협이 서둘러 다가오는 것을 보자 화색이 돌았다.

“어서 들어가!”

심협이 다시 손을 휘두르자 소요경의 빛의 문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주망칠은 망설이지 않고 빛의 문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한시라도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바다 요괴와 수식족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고, 이에 다급해진 심협이 소리쳤다.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해!”

그가 외치면서 손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바다 요괴는 그의 뜻을 이해하고는 서둘러 수식족 아이를 안아 들더니 곧장 갈라진 틈으로 돌진했다.

이를 본 심협은 당황했다. 염수 용암이 곧 뒤덮으려는 것을 보고 이들을 말리려던 그는 문득 아까 바다 요괴가 자신을 보호해준 장면이 떠올랐다. 그 요괴는 저 화맥을 막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내 쾅 하며 무너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머리 위의 동굴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커다란 바위가 염수화맥과 섞여 아래로 떨어졌다.

바다 요괴도 길이 막혀 나아가지 못했고, 용암이 흐르는 바위가 그들을 덮치려 했다.

그 순간, 심협이 날아오르더니 소요경을 거두고는 발천난봉을 시전했다.

삽시간에 수많은 곤봉의 허상이 눈보라처럼 휘몰아쳤고, 떨어지던 바위들은 산산조각이 났다.

한편, 오흠과 오전 또한 이곳으로 돌아왔는데, 두 사람은 용궁 사람들에게 보선을 조종하게 하여 천천히 상공으로 떠올랐다.

“저들을 죽여라! 절대 도망치지 못하게 해라.”

오흠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자 보선의 용궁 병사들이 일제히 술법을 시전했고, 술법의 광망이 심협 등에게로 쏟아졌다.

심협의 발천난봉이 거침없이 겹겹의 허상을 만들어내 쏟아지는 공격들을 전부 흩어버렸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도망칠 틈을 놓치고 말았다.

그때, 거대한 촉수가 옆에서 튀어나와 보선에 빨판을 붙이더니 어마어마한 힘으로 잡아당겼다. 이제 막 날아오른 보선은 그대로 땅으로 끌려가 추락했다. 선미에서 연기가 솟아올랐고, 선체는 부서졌으며, 수십 개의 수화명단이 떨어져 보선을 보호하던 보호 법진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더는 제대로 가동하기 힘들어 보였다.

“저 망할 짐승 놈이 죽으려고 작정했구나!”

오흠은 극도로 분노하여 황금월을 머리 위에서 빙빙 돌리더니 바다 요괴를 향해 힘껏 던졌다.

광망을 뿜어내며 허공에서 빠르게 회전한 황금월은 날카롭고 둥근 칼날이 되어 바다 요괴에게로 곧장 날아갔다.

이를 본 심협은 어쩔 수 없이 발천난봉을 거두고는 황금월을 쳐냈다.

챙!

충돌음과 함께 황금월은 오흠에게로 돌아갔다.

그때, 머리 위에서 바위와 용암이 쏟아졌다.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어 당황하던 심협은 갑자기 허리가 꽉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 뒤이어 그를 휘감은 촉수가 곧장 위로 잡아 당겼다.

염수화맥에 뒤덮이려는 순간, 그의 몸은 바다 요괴의 촉수에 완전히 가려졌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더는 견디기 힘든 열기와 함께 그의 눈앞이 마침내 밝아졌고, 그를 감싸고 있던 커다란 촉수가 점점 풀어진 것이었다.

서둘러 빠져나온 심협은 이미 연옥해로 돌아왔음을 알게 되었고, 서둘러 피수결을 시전했다.

연옥해의 온도는 이전보다 뜨거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바로 앞에 바다 요괴가 온몸이 회백색이 된 채 몸 곳곳에 커다랗고 노란 수포가 가득했다. 이미 혼절한 요괴의 상태는 처참했다.

심협은 그의 상처를 자세히 살펴보려 했는데, 아래 해저에서 갑자기 폭발음이 울려 퍼지더니 용암이 해저에서 솟구쳤다.

그는 한 손으로 바다 요괴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수식족 아이를 안은 채 수법(水法)을 시전하여 수룡을 탄 것처럼 빠르게 해수면으로 올라갔다. 용암이 뒤에서 바짝 쫓아왔기에 지금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재 바다 요괴는 본체로 변한 상태라 너무 크고 육중해서 아무리 전력을 다해도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금방이라도 용암에 따라잡힐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무리 지어 헤엄쳐 오더니 심협의 뒤를 둘러 용암을 막아줬다. 그가 풀어주었던 수식족들이었다.

심협은 문어 요괴와 수식족 아이를 건넸고, 이들의 보호 아래 순조롭게 곧장 해수면으로 올라갔다.

* * *

바다 위로 올라온 심협은 기뻐할 겨를도 없이 깜짝 놀랐다. 대학십도 중 아홉 개가 사라졌고, 가장 높고 큰 방일도 역시 일부만 수면 밖으로 드러난 상태였다. 또한, 이 해역 수면 위로 짙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심협은 방일도로 올라왔고, 수식족이 따라 왔다.

수식족 아이가 일족을 향해 작고 특이한 소리로 한참 무엇인가를 전했는데, 아마도 심협이 자신들을 구해주었던 상황을 설명하는 듯했다.

수식족의 지도자가 사랑스럽다는 듯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안아 들더니 심협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다른 일족도 그를 따라 인사했다. 다만 이들의 몸은 뻣뻣해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물속에서 온몸을 흔드는 것 같았다.

“고맙다, 인간족.”

수식족 수령이 인간의 언어로 말했다.

“아닙니다. 약속을 지켰을 뿐입니다.”

심협은 수식족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수식족 아이가 바로 다가오더니 한 무더기의 수화명단을 심협에게 건넸다.

심협은 거절하지 않고 전부 거뒀다.

“그는 괜찮은 겁니까?”

심협은 문어 요괴를 바라보며 물었다.

“화상이 심하긴 하나 큰 문제는 아니니 우리가 잘 돌봐주면 된다.”

“이번 폭발로 터전이 모두 파괴되었으니 이제 어떻게 할 계획입니까? 남해 용궁의 눈 밖에 났으니 그들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심협의 말에 수식족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사실 자신들은 피해자인데 돌아갈 곳마저 없어진 것이었다.

“우리 수식족은 대대로 불을 쫓아다니며 살아왔는데 이제 염수화맥이 사라졌으니 설령 터전이 온전하더라도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다.”

“음…… 그렇다면 제가 좋은 곳을 추천해드리죠.”

심협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오, 그게 어디지?”

“동해 수역에 축융분지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동해의 절역(絶域)으로, 용암과 화산이 곳곳에 있어서 뜨겁기 그지없죠. 안에 적지 않은 화염 흉수가 도사리고 있지만, 당신들이 살기에 무리는 없을 겁니다.”

“좋은 곳인 것 같군.”

수식족 수령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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