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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51화 (1,051/1,214)
  • 1051화. 힘겨운 항해

    그때, 전방에서 갑자기 수식족의 포효가 들려왔다. 심협은 서둘러 앞을 돌아봤다. 그러자 전방에서 거대한 해저의 암류가 마치 용이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곧장 달려들었다. 열한 명의 수식족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이들이 끌던 보선도 위로 솟구쳤다.

    심협은 서둘러 선미의 난간을 붙잡은 덕에 배 밖의 광막에 충돌하지는 않았다. 반면 아까 그를 비웃었던 용궁 수사들은 모두 밖으로 튕겨 나갔고, 몸을 제어하느라 손발을 허우적댔다.

    가장 앞에 서 있던 오흠이 손을 들어 허공을 누르자 손에서 뿜어져 나온 금빛이 선체에서 높이 올라가 뱃머리를 강하게 눌렀고, 해류를 돌파하며 안정을 되찾으려 했다.

    그가 법력을 계속해서 방출하자 선체에 잔잔한 파문이 일어나더니 강력한 영압이 사방을 억누르면서 흔들리던 보선이 점점 안정을 되찾았다.

    열한 명의 수식족도 안정을 되찾고는 다시 보선을 끌고 질주했다.

    이 무렵, 대학 해역은 완전히 달라져서 전방의 바닷물은 붉은색으로 변했다. 금제가 보선을 보호하고 있음에도 배 위의 사람들은 작열하는 열기가 다가오자 바짝 긴장했다.

    심협은 수식족 아이와 바다 요괴가 더는 보이지 않자 시선을 거두고 뱃머리 쪽을 살폈다.

    혼란스러운 해류 속에서 남해 용왕이 강력한 법력으로 제어해도 완전히 안정되지는 않았고, 크고 작은 해수의 시체가 하나둘 떠올랐다. 시체의 대부분은 이미 뼈만 남은 상태였으나, 일부는 매우 크고 아직 살도 남아 있었다. 다만 이들도 심하게 부식되어 회백색을 띠었다.

    오흠은 눈앞의 광경에도 놀란 기색 없이 오히려 흥분한 듯했다.

    일각 정도 지나자 보선의 궤도가 갑자기 기울더니 억제하지 못하고 오른쪽으로 미끄러져 가는 게 느껴졌다.

    이와 동시에 본래 혼란스럽던 해류는 완전히 사라졌고, 대신에 규칙적으로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해류가 나타났다.

    심협이 뱃머리로 다가가 고개를 들고 먼 곳을 보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망망한 해역에 매우 거대한 소용돌이가 만들어지더니 중앙에 생겨난 커다란 불기둥이 대학 해면을 향해 솟구치고 있었다. 대학 밖에서 십도를 본다면 섬으로 둘러싸인 내해의 중앙에서 마치 누군가가 거대한 기둥으로 휘젓는 것처럼 성난 소용돌이가 일어난 것을 볼 수 있을 터였다.

    소용돌이 중앙에서 작열하는 불꽃은 해수면을 뚫고 나온 한 송이 요염한 홍련(紅蓮) 같았고, 들끓는 해역 곳곳에서 하얀 김이 치솟았다.

    대학 위를 오랫동안 맴돌던 검은 구름에서는 뇌성이 울려 퍼졌고, 번개가 번쩍이더니 비가 억수 같이 쏟아졌다.

    십도의 주민들을 깜짝 놀라 해안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섬의 높은 곳으로 올라가 비를 맞으면서 이 광경을 구경했다.

    대해 깊은 바닷속. 열한 명의 수식족이 이끄는 보선은 소용돌이의 물살에 휩쓸려 점점 격렬해지는 해류 속에서 보선의 방향을 안정시키려고 끊임없이 애썼다.

    그러나 갈수록 강해지는 파도의 힘에 그들도 더는 어쩔 수 없었다. 남해 용왕이 옆에서 계속 도왔음에도 역부족이었다.

    보선 위의 사람들도 소용돌이 중심의 거대하기 그지없는 불꽃 장벽과 타오르는 화염을 바라보며 입이 바짝 말랐고, 모두가 마른 침을 삼켰다.

    “부왕, 염수화맥의 뿜어내는 위력이 예상보다 더 강합니다. 저들이 버틸 수 있겠습니까?”

    오전은 앞의 수식족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오흠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갔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보선 밖의 부문과 수화명단의 눈부신 광망으로 만들어진 금제 광막도 혹독한 시련을 받고 있었다.

    심협은 짐짓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냉정하게 염수화맥의 힘을 분석하고 있었다.

    ‘타오르는 온도만 놓고 보면 금오진화와 막상막하였다. 게다가 화맥의 규모가 이리도 방대하니, 만약 저기에 빠졌다가 제때 나오지 못한다면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더 걱정한 것은 열한 명의 수식족이었다.

    수식족은 오랫동안 연옥해에서 살아온 덕에 염수화맥과 가장 오랫동안 교제해온 종족인 만큼 화맥에 어느 정도 저항력이 있겠지만, 저 폭발하는 불꽃의 힘 앞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사이, 갑자기 변화가 일어났다. 혼란스러운 해류 속에서 작은 산만 한 고래 뼈가 날아와 열한 명의 수식족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직전이었다.

    ‘안 돼!’

    그들은 피할 수가 없었기에 심협이 경악했다.

    더는 실력을 감출 때가 아니었다. 우선 저들을 구한 뒤, 오흠을 꺾어 저들을 풀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런 생각으로 나서려는 순간, 갑자기 앞에서 금빛이 번쩍이더니 금룡의 허상이 포효하며 보선 광막을 뚫고 날아가 거대한 고래 뼈와 충돌했다.

    쾅!

    굉음이 울려 퍼졌다.

    거대한 고래 뼈는 산산조각 나더니 사방으로 튀었고, 금룡의 허상도 허공으로 사라졌다.

    열한 명의 수식족은 화를 면했지만, 갑작스런 폭발에 놀란 듯 일순 혼란이 일어났다. 보선이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멍청한 놈들! 진정하지 못할까!”

    오흠이 갑자기 소리쳤다!

    그의 외침과 함께 경지의 기운이 순식간에 폭발하여 진선 절정에 도달했고, 남해에 있는 만큼 그의 힘은 더욱 웅장해져 곧 태을 경지에 근접했다.

    심협은 일전에 동해 용왕을 공격했던 세 명의 용왕 중 오흠이 실력을 가장 많이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 생각이 맞았다.

    이 기운이 퍼져 나가자 수식족은 거대한 산에 짓눌린 것처럼 꿈쩍도 할 수 없었고, 해류가 이끄는 대로 함께 미끄러져 가야만 했다.

    “부왕님, 거의 다 왔습니다.”

    오전이 크게 외치자 보선 위의 사람들은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렸다. 거대한 불꽃 장벽이 이미 백 장 정도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오흠은 뱃머리를 잡고 고개를 내밀어 거대한 불기둥 아래를 내려다봤다. 해저 바닥에는 용암 화맥이 흘렀는데, 대량의 불길이 뿜어져 나와 안에 검은 균열이 생긴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저기가 입구다! 저쪽으로 돌려라!”

    오흠의 명령에 열한 명의 수식족이 바로 몸을 틀어 불기둥 아래로 내려가려 했다.

    하지만 거대한 불기둥과 너무 가까웠고, 주위에 생성된 소용돌이의 흡인력이 매우 강해 방향을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가 없었다.

    이를 본 오흠이 다시 법력을 발동하자 몸에서 금빛이 솟구쳤고, 금룡의 허상이 그의 머리에서 솟아 나와 거대한 불기둥과 충돌했다. 그 반동으로 수식족이 방향을 바꾸도록 도우려 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금룡은 금제 광막을 뚫고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온몸이 화염에 휩싸이더니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보선은 여전히 불꽃 기둥으로 끌려가는 중이었다.

    열한 명의 수식족이 걸친 갑옷이 짙은 붉은색에서 투명한 붉은색으로 변했고, 곳곳이 빨갛게 달아올라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기미를 보였다. 갑옷만이 아니라 그들도 더는 버틸 수 없어 보였다.

    “방향을 바꿀 수가 없어! 안 돼!”

    주망칠이 놀라서 소리쳤다.

    그때, 선미에서 갑자기 충돌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모두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더니 깜짝 놀랐다. 백 장에 이르는 문어 모습의 바다 요괴가 여덟 개의 거대한 촉수로 방어 광막을 뚫고 들어와 배를 붙든 것이다.

    그들이 요수의 습격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온몸에 화상을 입은 바다 요괴가 보선을 반대 방향으로 끌어당겨 그들이 거대한 불꽃 기둥에서 도망칠 수 있게 도운 것이었다.

    ‘진짜로 따라오다니!’

    당연히 이들은 그 수식족 아이와 바다 요괴였다.

    하지만 바다 요괴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조금 늦추는 데 그쳤을 뿐, 곤경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용왕 폐하, 저 수식족들의 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허나 모든 수식족을 풀어주고 함께 끌게 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보니, 모두가 비웃던 심협이었다.

    “부왕님, 저자의 말이 옳습니다.”

    오전도 바로 동의하자 오흠은 잠시 생각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순간에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겠지.”

    그렇게 말을 하긴 했으나 그는 심협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급하니 추궁하지 못하고 바로 소매를 휘둘렀다.

    선체의 부문 하나가 번득이자 뱃머리의 부진에서도 광망이 뿜어져 나왔고, 이어서 수식족이 하나둘 나타났다. 이들은 모두 선체와 연결된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전력을 다해 보선을 끌어라!”

    오흠의 외침에 뱃머리에 선 백여 명의 수식족이 비명을 지르며 전력을 다해 헤엄쳤다. 그러자 보선의 방향이 간신히 틀어졌고, 염수화맥의 균열로 향할 수 있었다.

    보선의 용궁 수사들이 기뻐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 제안이 큰 역할을 했다. 돌아가서 상을 내리마.”

    “감사합니다, 폐하.”

    오흠이 돌아보며 칭찬하자 심협은 포권을 올렸다. 입가에는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거대한 보선은 수식족 덕에 해저로 향했는데, 칠흑 같은 균열과 불과 10장도 남지 않았을 때 갑자기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의 동시에 10여 개의 금색 검광이 보선 뒤쪽에서부터 빠르게 날아갔다.

    오흠이 흠칫 놀라는 순간, 검광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눈앞을 워낙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막을 겨를도 없이 10여 자루의 비검이 보선의 금제 광막을 뚫고 뱃머리로 떨어지는 것을 바라만 봐야 했다.

    “이놈!”

    분노에 찬 오흠의 외침과 동시에 검명이 미친 듯이 울려 퍼졌고, 쇠사슬이 끊어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100여 명의 수식족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지 못했지만, 자신들을 속박하던 쇠사슬이 끊어지면서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사실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우두머리인 수식족 고래가 우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가장 먼저 보선을 버리고 먼 곳으로 도망치자 나머지 수식족이 곧장 뒤를 따랐다.

    보선은 수식족들이 사라지고도 한동안은 관성으로 인해 여전히 해저로 향했다. 다만 거대한 불꽃 기둥의 흡인력 때문에 선미가 끌려갔다.

    보선의 뒤를 잡고 있던 바다 요괴와 수식족 아이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함께 끌려가고 말았는데, 이를 본 심협은 곧장 뛰쳐나갔다. 그는 보선을 보호하는 광막으로 돌진해 바다 요괴의 거대한 몸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은 주먹을 쥐더니 거대한 불꽃 기둥을 내리쳤다.

    오른팔이 바닷속에서 빠르게 팽창하더니 치우지박이 나타나 불꽃 기둥과 충돌했다.

    콰쾅!

    폭발음이 강하게 울려 퍼졌다!

    심협은 팔이 순식간에 불꽃에 휩싸이자 극심한 통증에 자기도 모르게 숨을 헉하고 들이켰다. 거대한 충격과 함께 심협과 바다 요괴, 수식족 아이는 보선과 함께 바깥쪽으로 튕겨나가 불꽃 기둥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심협의 몸에 붙은 불꽃은 꺼지기는커녕 그의 몸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옷 반쪽이 불에 타고 피부가 녹았다. 살과 근육도 불꽃에 녹아내려 순식간에 하얀 뼈가 드러났다.

    극심한 통증을 참던 심협은 갑자기 불꽃의 온도가 낮아진 것을 느꼈다. 돌아보니 바다 요괴의 촉수 두 개가 그를 감싸고는 대신 불꽃을 막아냈다.

    심협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서둘러 비검을 회수하고 축지척을 꺼내 들었다.

    그가 축지척을 발동하기도 전에 보선의 뱃머리는 검은색 균열로 파고들었고, 엄청난 흡인력에 보선 전체가 순식간에 균열 속으로 들어갔다.

    쾅!

    균열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둔탁한 폭발음이 울렸다.

    균형을 잃은 보선은 앞으로 기운 채 해저 바닥에 처박혔고, 그대로 수십 장을 미끄러진 후에야 간신히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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