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050화 (1,050/1,214)
  • 1050화. 행방불명

    주망칠 손 위의 수화명단을 보자 어두웠던 오전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심지어 다른 진주꾼들도 주망칠의 등에서 구세주 같은 광채를 본 듯했다. 그를 질투하거나 원망했던 자들도 그런 심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이를 지켜본 심협은 내심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자신처럼 낯선 자가 갑자기 나서서 이 많은 수화명단을 찾았다고 하면 다른 사람의 의심을 샀을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진주꾼인 주망칠이 나섰으니 의심하는 자가 없었다.

    이곳의 소란이 보선에까지 전해지자 남해 용왕 오흠이 내려왔다.

    “왜 이리 시끄러운 것이냐?”

    “부왕, 수화명단을 전부 모았습니다.”

    오전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외치자 오흠 또한 기뻐하며 한걸음에 다가왔다. 특히 스물여덟 개의 수화명단 중 무려 스물세 개를 주망칠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얼굴이 환해졌다.

    “이것을 다 어디서 구했느냐?”

    “제가 이전에 발견했던 연옥해의 어느 동굴에서 찾은 것입니다. 나중에 필요할 때 캐려고 아껴두었는데, 이번에 용왕님의 용안을 뵈니 더는 숨길 수 없었습니다.”

    주망칠은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놨던 그럴싸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큰 공을 세웠으니 상을 받아 마땅하구나.”

    오흠은 주망칠의 말이 거짓이 아닌 듯하자 크게 칭찬했다.

    그는 바로 연기사를 불러 수화명단을 가지고 가 보선에 박으라 명했다. 마지막 보완 작업을 마무리하게 한 것이다.

    “오전아, 이들을 데려가 상을 내려라. 특히 이자에게는 큰 상을 내리거라.”

    오흠이 주망칠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분부했다.

    “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돌아가려고 돌아섰고, 주망칠과 심협만이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용왕 폐하, 저는 상 대신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말해보아라.”

    오흠은 현재 기분이 좋았기에 오전에게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먼저 가게 하고는 주망칠에게 말했다.

    “저희 두 사람은 일개 산수로서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있으니, 용궁 휘하로 들어가 용왕님과 태자 전하를 모시고 싶습니다.”

    주망칠은 심협이 미리 알려준 대로 절을 올리며 말했고, 심협도 서둘러 엎드렸다.

    오흠은 잠시 말없이 심협 등을 살펴보았다.

    심협은 진즉 기운을 숨겼지만, 지금 그의 신혼은 강하고 신식의 힘은 태을 수사에 맞먹었으니 제아무리 오흠이라 해도 어떤 허점을 알아내지 못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소인은 대승 초기에 오랫동안 묶인 상태라 이번 생에는 더 이상 돌파는 가망이 없으니, 유일한 방법은 용궁 휘하로 들어가 많은 공을 세우는 것뿐입니다. 용왕 폐하, 소인의 진주 캐는 솜씨는 모두가 알듯이 매우 능통하고 대학십도에서 연옥해로 잠수할 수 있는 것은 저뿐이옵니다. 폐하께 더 많은 수화명단을 바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주망칠은 그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바로 덧붙였다.

    이 말을 듣고서야 오흠은 껄껄 웃었다.

    “안 그래도 이번에 연옥해로 가야 하는데, 네가 함께 간다면 큰 쓸모가 있겠구나. 두 사람은 배에 올라 능력을 발휘해 보거라.”

    “감사합니다. 폐하.”

    심협은 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연신 감사 인사를 올렸다.

    “너희가 용궁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면 용궁은 절대 너희를 소홀히 대하지 않을 것이다. 대승 초기의 한계 따위는 용궁의 재력이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지.”

    오흠은 웃으면서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때, 오전도 다시 돌아왔고, 그들은 함께 용궁 보선으로 올랐다.

    심협은 모두의 뒤에서 계속 고개를 숙인 채 황송해하는 척을 하고 있으니 모두가 그를 주망칠의 부하라 여겨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보선이 매우 넓어 보이지만, 사실은 공간이 한정되어 있었다. 또한, 선체 곳곳에는 부문이 설치되어 있고, 유달리 두껍게 만들어져 있었다. 보선에는 일고여덟 명의 용궁 수사가 있었는데, 모두 진선기였다.

    “연옥해에 가봤으니 화수화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겠구나?”

    오흠의 질문에 주망칠은 대답하기 전에 전음으로 심협에게 물었다. 어설픈 거짓말로는 오흠을 속일 수 없음을 알기에 심협은 사실대로 말하게 했다.

    “용왕 폐하, 저도 연옥해의 산호해에서만 수화명단을 찾아낼 수 있었을 뿐, 더 깊은 곳의 화수화맥으로 가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라 감히 가보지 못했습니다.”

    “괜찮다. 이번에 우리와 함께 가서 견문을 넓히는 기회로 삼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폐하.”

    그들은 선실 앞쪽으로 걸어갔는데, 심협은 선실 뒤쪽 공간에 금제의 법진으로 봉인한 공간이 있음을 알게 됐다.

    ‘수식족이 갇혀 있는 곳인가보군.’

    그때, 몇 명의 연기사가 배 밖에서 서둘러 돌아와 오흠에게 보고했다.

    “폐하, 수화명단의 설치가 완성되었으니 보선을 연화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말에 오흠은 크게 기뻐하더니 바로 사람들을 이끌고 선실에서 나가 배 밖으로 향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뱃머리 아래로 내려가더니 부문 법진이 새겨진 곳에 손을 올려놨다. 그러자 법진에서 금색 문로가 환하게 빛나더니 중앙에서부터 보선 구석구석까지 퍼지기 시작했다.

    오흠의 방대한 법력도 금색 문로에서부터 퍼져 나가 빠르게 보선 전체를 연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선에서 금색 파문이 일어났고, 오흠에게 완전히 연화되었다.

    그가 소매를 휘두르자 보선에서 뿜어져 나오던 금빛이 순식간에 줄어들어 새끼손가락 만한 빛으로 변하여 오흠의 소매로 들어갔다.

    ‘배에 없는 건가?’

    심협의 눈빛이 흔들렸다.

    오흠이 언제든 보선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은 배에는 살아 있는 존재가 없다는 뜻이니 잡혀 온 수식족은 다른 곳에 갇혀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은 이미 죽어서 연기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심협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주망칠에게 전음을 보내 곧바로 수식족의 행방을 묻게 했다.

    주망칠이 헛기침을 하더니 한참을 머뭇거린 뒤에야 가까이 다가갔다.

    “보선의 연화를 감축드립니다.”

    “네가 수화명단을 구해온 덕분에 이렇게 빨리 끝낼 수 있었다.”

    오흠이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해했다.

    “폐하, 소인이 수화명단을 캐러 연옥해 수식족 취락에 가봤는데, 어째서인지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큰일이라 영문을 알고 계신지 감히 폐하께 여쭙고 싶으니 부디 절 탓하지 말아 주십시오.”

    주망칠이 침을 삼키며 말했다.

    “궁금한 게 무엇이냐?”

    오흠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혹시…… 폐하께서 수식족을 잡아들이신 것이옵니까?”

    “그건 왜 묻는 게냐?”

    오흠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고, 옆에 있던 오전의 표정도 싸늘해졌다.

    주망칠은 등에 식은땀이 흘렀고, 괜히 심협 때문에 죽는 것 아닌가 싶어 심호흡을 하고서야 겨우 진정이 됐다.

    “그게……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저희 진주를 캐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수식족이 배출한 수화명단으로 먹고살아왔으니…….”

    갈수록 그의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의 대답을 듣자 오흠은 갑자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넌 이제 진주 캐는 자가 아니라 용궁 사람인데 무얼 그리 신경 쓰는 것이냐?”

    “아……. 예, 맞습니다! 소신의 머리가 잠시 어떻게 됐나 봅니다. 그걸 잊었군요!”

    주망칠은 서둘러 심협에게 전음을 보냈다.

    ‘어떡합니까, 계속 물어볼까요?’

    ‘아닙니다. 그랬다가는 저들의 의심을 살 것입니다. 저들이 수식족을 잡아들였다는 것은 그들이 필요하다는 뜻일 테니 여기까지 합시다.’

    그렇게 생각한 심협은 상황이 아직 분명하지 않으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부왕, 대학의 이상(異象)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을 봐서는 염수화맥에 들어갈 때가 아닌가 봅니다. 더 기다려 보는 게 어떠십니까?”

    오전의 물음이 끝나자마자 동굴 전체가 크게 흔들리면서 모래와 자갈이 끊임없이 떨어졌고, 통로에서는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도 우리를 돕는 모양이군. 사해를 일통(一統)할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다.”

    오흠은 걱정하기는커녕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손을 휘둘렀다.

    열욕해로 향하는 통로에 바닷물이 역류하며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닷물을 차단하는 금제가 부서진 것이다.

    “출발한다!”

    오흠은 명을 내리고는 곧장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그의 몸 주위에 저절로 피수 장벽이 나타났다.

    다른 진선기 용궁 수사들도 곧장 뒤를 따랐다. 다만 오전은 바로 출발하지 않고 심협 등을 먼저 보냈다.

    심협과 주망칠은 서로 마주 보고는 각자 피수주 모조품을 입에 머금고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통로에서 나와 열욕해로 들어서자 심협과 주망칠의 몸은 바로 상승하는 해류에 휩쓸려 떠올랐다.

    뒤에서 따라오던 오전이 양손을 휘두르자 두 줄기 격류가 그들의 발목을 휘감아 아래로 끌어내렸다.

    이후, 이들은 오전에게 이끌려 무사히 용궁 보선에 올랐다.

    보선의 금색 부문이 모두 번득였고, 사방에 박힌 수화명단의 눈부신 광망이 배 주위로 퍼져 거대한 광막을 이루더니 보선 전체를 뒤덮었다.

    오전이 심협 등을 데리고 보선에 왔을 때, 오흠 등은 뱃머리에 서서 어떤 술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뱃머리를 보니 몸길이가 10여 장이 이르는 열한 마리의 해마 같은 존재들이 보였다. 실종된 수식족이 틀림없었다. 그들의 목에 채워진 금빛 쇠사슬이 선체와 연결되어 있었다. 보선을 끄는 일꾼 신세로 전락했음이 분명했다. 그들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너희 일족의 목숨은 내 손에 달려 있다. 그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얌전히 말을 들어라. 일이 끝나면 너희를 모두 풀어주겠다.”

    오흠의 싸늘한 시선이 중앙의 수식족에게 향했다. 그 수식족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좋은 선택이다. 출발!”

    오흠의 명이 떨어지자 수식족들의 몸에서 광망이 번득였고, 몸 앞의 물결이 흔들렸다. 뒤이어 이들은 보선을 끌고 물결을 헤치며 해저 방향으로 빠르게 잠수했는데, 그 속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심협은 마침내 가슴 속의 무거운 돌덩이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수식족이 살아만 있다면 기회를 봐서 그들을 구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용궁의 보선은 금세 열욕해와 화탁해를 지나 연옥해로 들어섰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의 바닷물은 이전보다 혼탁했고, 바닷물의 색깔도 주황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때, 오흠이 다시 명을 내리자 열한 명의 수식족은 방향을 바꿔 질주했다.

    심협은 계속해서 신식 파동을 억누르고 있음에도 보선이 가는 방향에서 느껴지는 성난 파도와 같은 강렬한 천지영기 파동을 감지할 수 있었다.

    보선이 쉬지 않고 전진할 때마다 전방의 바닷물도 더는 얌전히 있지 않고 해류가 서로 충돌하면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열한 명의 수식족은 혼란스러운 바닷물에서도 능숙하게 최적의 길을 찾아내 평온하게 염수화맥을 향해 질주했다.

    보선이 흔들릴 때마다 심협은 똑바로 서 있기 힘들었고, 배가 좌우로 흔들릴 때 미끄러진 탓에 옆의 난간을 잡고서야 몸을 가눌 수 있었다.

    용궁 사람들은 이를 보고는 깔깔대며 비웃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심협이 몰래 배 뒤쪽을 돌아보니 혼란한 해류 속에서 두 개의 작은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수식족의 그 아이와 바다 요괴가 몰래 쫓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한데 그가 자세히 살펴보기도 전에 거대한 해류가 갑자기 옆에서 덮쳐왔다. 거대한 보선이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선미가 휩쓸렸고, 순식간에 백 장 정도 옆으로 밀려났다가 간신히 진정되었다.

    심협은 배의 난간을 잡고 간신히 일어나 다시 뒤쪽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제발 더는 쫓아오지 마라.’

    심협이 속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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