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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48화 (1,048/1,214)
  • 1048화. 험지(險地)로 들어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불구불한 통로 안에 있는 10여 장 크기의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아직 빠져나가기 전인데도 앞에서 뜨거운 기운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이 느껴졌고, 더 가까이 다가가자 동굴 출구 너머 연푸른색 바닷물이 보였다. 더욱이 수면이 동굴 출구보다 훨씬 높아서 입구가 전부 물에 잠겨 있었다.

    호기심에 자세히 살펴보니, 동굴과 바닷물 사이의 결계가 바닷물을 막아서 동굴 안으로 바닷물이 역류하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부터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열욕해(熱浴海)로 들어가 수화명단을 찾는다. 딱 하루를 주마. 최소 스무 개의 수화명단을 찾아야 한다. 찾아낸다면 상을 내리겠지만 개수가 부족하면…… 그 최후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오전이 위압적이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말투로 말했다.

    모든 사람은 결연한 각오로 결계를 지나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한데 바다로 들어가기 전에 모두가 소매에서 푸른색 구슬을 꺼내 입에 물었다. 그 상태로 바닷속으로 들어가자 그들의 몸에 피수결(避水訣)을 시전한 것 같은 푸른 광막이 나타나면서 주위의 바닷물이 밀려나서 숨 쉬고 움직일 만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저게 뭡니까?”

    심협이 의아해하며 전음으로 주망칠에게 물었다.

    “피수주(避水珠)를 모방하여 만든 법기인데, 저걸 사용하면 수법(水法)에 서툰 수사들도 한 시진 정도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죠. 영광이 사라지면 육지로 돌아가 천지영기를 흡수해 다시 피수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망칠이 대답하고는 자신도 구슬을 꺼내 입에 물더니 결계를 뚫고 물속으로 들어가려 했다.

    “나도 하나 주시오.”

    심협이 서둘러 그를 막고는 그에게 살며시 손을 내밀었다.

    “이런 준비도 안 하고 온 겁니까?”

    주망칠이 어이없다는 듯 쏘아붙였다. 그러나 어차피 심협과 한 배를 탄 상황이니, 말은 그렇게 했어도 어쩔 수 없이 하나를 더 꺼내 건넸다.

    “감사하…… 혹시 이거 입에 넣었던 거요?”

    주망칠은 심협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심협은 본래 이런 것은 필요하지 않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자신의 정체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으니 몰래 옷으로 깨끗이 닦고는 입에 물었다. 그리고 결례를 지나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바닷속으로 들어가니 몸이 따뜻해졌고, 주위의 바닷물에서 어떤 힘이 몰려와 밀어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뭔가를 발동할 필요도 없이 입에 문 구슬에서 푸른 광망이 뿜어져 나와 주위의 바닷물과 압력을 전부 밀어냈다.

    심협은 방금 그 수압의 힘에 밀려서 용궁보다 더 깊은 곳인 해구(海溝) 안쪽까지 내려왔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때, 주망칠의 목소리가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뭘 멍하니 있는 겁니까? 어서 따라오시죠.”

    심협은 황급히 아래로 헤엄쳐갔고, 금방 주망칠을 따라잡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은 각자 곳곳으로 흩어져 가고 있었다.

    “주 도우, 안내해주시죠.”

    심협이 웃으며 전음으로 말했다.

    “정말 저들의 일을 도울 생각입니까?”

    “이왕 왔으니 일단은 돕는 척하면서 수화명단이나 찾아보죠.”

    “만약 지금 도우가 원하는 만큼 찾는다면 괜한 모험을 안 해도 되겠지만, 그럴 일은 없겠죠.”

    하루 만에 1백 개는커녕 대여섯 개만 찾아도 다행이라는 것을 심협은 알고 있었다. 아마 보선에 있는 것들을 파내야만 전부 모을 수 있을 터였다.

    “절 따라오시죠.”

    주망칠은 심협을 데리고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두 사람은 금세 해저에 도착했는데, 그제야 해저가 평평하지 않고 더 깊은 곳을 향해 크게 기울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해저의 지형은 매우 복잡했고, 높낮이가 서로 다른 암석들로 가득했다.

    앞서 간 사람들은 숨겨져 있는 수화명단을 찾기 위해 경사면을 돌아다니며 해저의 기이한 돌을 뒤집고 있었다.

    “해저가 정말로 복잡하군요.”

    “안 그랬으면 저 용궁 놈들이 뭐하러 직접 수화명단을 찾지 않고 우리에게 시켰겠습니까? 우리 대부분은 대대로 이곳에 살았으니 익숙하지요.”

    주망칠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경사면 쪽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아직 더 들어가야 합니까?”

    “여기가 수식족이 평소에 수화명단을 배출하는 곳이긴 하지만 여기는 이미 사람들 손을 탈 만큼 탄 곳이니 남은 게 없을 겁니다.”

    “그럼 어디로 갑니까?”

    “열욕해보다 더 깊은 화탁해(火卓海)로 갑니다. 그곳은 수식족이 번식하는 곳과 더 가까우니 어쩌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지요.”

    “이곳 바다는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온도가 높아지는구려. 화수화맥이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까?”

    “맞습니다. 화탁해 아래가 연옥해(煉獄海)인데, 그 아래가 바로 화수화맥입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망칠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깊은 곳으로 갈수록 경사진 해저 대륙의 암석에는 점점 더 많은 구멍이 생겨났고, 그 안에서는 간혹 뜨거운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왔다. 수온도 점점 더 높아져 이제 끓는 물과 다름이 없었다.

    심협은 이때가 돼서야 전방의 바닷물이 옅은 푸른색에서 약간 붉은빛을 띠는 주황색이 되어 머리 위의 바닷물과 선명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됐다.

    ‘여기가 주망칠이 말한 화탁해인 모양이군.’

    이 무렵, 주망칠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더니 다른 진주를 캐는 사람들처럼 해저의 암석 사이를 돌아다니며 천천히 찾기 시작했다.

    암석에는 구멍이 수없이 많았으니, 불규칙하고 번잡하게 얽힌 균열에서 작은 수화명단을 찾는다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다름없었다.

    심협은 바닷속을 한참을 찾아다녔지만, 시력에 자신이 있던 그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사이 주망칠은 하나를 찾아냈다.

    “주 도우, 혹시 비법이 있다면 좀 알려 주시죠. 찾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손에 익으면 다 됩니다.”

    주망칠이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하자 심협은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바닷속을 뒤져야만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초조해진 심협은 신식을 펼쳐서 사방을 찾았지만, 무슨 특별한 법보 영재가 아닌 수화명단에는 강력한 파동도 없었기에 당연히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한데 그때, 심협은 갑자기 뭔가 떠올라 서둘러 주망칠에게 물었다.

    “지금 한 시진은 지난 거 아닙니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입안의 구슬에서 뿜어져 나오던 광망이 갑자기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위로 밀려났던 바닷물이 갑자기 압박해왔고 상황이 다급해지자 심협은 서둘러 피수결을 결인하여 다시 자신을 감쌌다.

    멀지 않은 곳에서 서둘러 다가오던 주망칠은 심협이 무사한 것을 보자 그제야 안심했다.

    “그동안 혼자 다니는 데 익숙해져 있다 보니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군요. 심 도우에게 수법이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주망칠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이때, 심협의 주의력은 주망칠의 피수 광망에 몰려 있었는데, 그의 푸른색 수막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안정적이었다.

    “왜 주 도우의 그 수막은 무사한 거요?”

    심협이 참지 못하고 묻자 주망칠이 혀를 내밀었다. 그의 혀끝에 있는 구슬은 그의 것과는 조금 달라서 위에 미세한 부문이 새겨져 있었다. 만약 심협의 눈이 좋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제 피수주 또한 모방한 것이긴 하나 제련을 통해 제 법력으로 보충이 됩니다. 그러니 더 오래 사용할 수 있지요.”

    주망칠이 혀를 넣으며 전음으로 설명했다.

    “그랬군요. 이것도 도우가 다른 사람들보다 진주를 더 잘 캐는 원인 중 하나겠구려.”

    “아무래도 이쪽도 사정이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으니 수식족이 사는 연옥해까지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 근처에는 화수화맥이 있어서 수온이 매우 높다 보니 수식족 외에는 그곳에서 살 수 있는 생물은 별로 없습니다.”

    “거기서는 수화명단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럴 겁니다. 제가 처음 대학(大壑)에 왔을 때, 위험을 무릅쓰고 연옥해까지 가본 적이 있는데, 그곳의 은밀한 해협에서 대량의 수화명단을 봤습니다. 다만, 그때는 기술이 부족하여 들어가지 못하고 물 요괴에게 부상만 당했죠.”

    주망칠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가보죠.”

    심협이 웃으며 말하자 주망칠은 그의 여유로운 모습에 불쑥 화가 치밀었다.

    “심 도우! 도우는 보타산 계보에 이름이 올라간 수사이니 우리 산수와는 달리 생사가 걸린 위험을 경험해 보지 못했겠지요. 연옥해로 가는 것은 좋지만,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목숨을 잃게 될 겁니다. 나중에 왜 말리지 않았느냐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주 도우가 보기에는 제가 겁 없이 행동하니 걱정되겠지요. 허나 저는 대승 후기 수사인데, 이번에 나온 것은 다 돌파의 계기를 찾기 위함이니 그 어떤 위험이 오더라도 정면으로 부딪칠 각오요.”

    심협은 간신히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휴우, 그럴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습니다. 상황은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슬슬 가보죠. 단, 미리 말해두는 데 문제가 생겨서 위험해지면 내가 제일 먼저 도망칠 거니까 날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심협이 당당하게 말했다.

    주망칠은 여전히 무사태평한 심협을 보고는 더는 말하지 않고 앞장서서 더 깊은 해구로 헤엄쳐 들어갔다.

    그렇게 다시 일각 정도가 지나자 두 사람 앞에는 기울어진 땅이 사라지고 가지런한 절벽이 나타났다.

    그 절벽 아래 바닷물은 색깔이 또 달라서 완전히 주황색이었다.

    피수결 광막 안에 있는데도 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망칠은 잠시 멈춰 심협과 눈을 마주치더니 훌쩍 뛰어서 절벽 아래로 빠르게 내려갔다. 이어서 심협도 서둘러 뒤를 따라갔다.

    주위의 온도가 역시나 급격하게 상승하여 주망칠은 수막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음에도 피부가 눈에 보이는 속도로 빠르게 빨갛게 익어갔다.

    심협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 정도 온도는 그에게는 별것 아니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마침내 해저에 도착했다.

    주망칠에게 설명을 들었을 때는 황량한 곳일 줄 알았는데, 생각과는 달리 붉은 산호가 가득했고, 반투명한 광택이 파도를 따라 좌우로 흔들리는 모습이 진짜 불꽃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주망칠은 이 산호들을 몹시 무서워하는 듯 거리를 벌렸다.

    “조심하십시오. 이것은 염화산호(炎火珊瑚)라는 건데, 안에 뜨거운 화독이 들어 있으니 절대 닿으면 안 됩니다.”

    심협은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자기 몸에 있는 화독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주망칠을 따라 염화산호 구역을 지나가자 저 멀리 회백색의 해암(海巖) 구역이 보였다. 다른 곳과는 높이가 달랐고, 크고 작은 원형 구멍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다.

    “저기가 수식족의 취락(聚落)입니다.”

    “취락이라면서 왜 수식족은 하나도 안 보이는 거죠?”

    “글쎄요? 저번에 왔을 때는 수식족의 새끼들이 밖에서 놀고 있었는데…….”

    주망칠도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이상하군요. 그들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심협이 신식으로 살펴보니 취락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 우선은 수화명단부터 찾죠.”

    주망칠이 앞으로 가서 살펴보려는 심협을 말리며 말했다.

    심협이 고개를 돌려 보니 그의 얼굴은 땀으로 가득했고, 입술도 파래져 있어서 얼마 못 버틸 것 같았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망칠을 따라서 수식족의 취락을 지나 다시 염화산호 구역으로 들어갔다. 이곳의 산호들은 대부분 시들어서 회백색 산호초 숲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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