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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47화 (1,047/1,214)

1047화. 진주를 캐는 사람들

이튿날, 해가 높이 뜨고서야 주망칠은 조금씩 술이 깼는데, 심협에게서 어제의 일을 듣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 도우, 이제 와서 말 바꾸기 없습니다.”

“누가 그런답니까? 내 지금까지 한 번도 술자리에서의 약속을 어겨본 적 없소.”

주망칠이 눈을 부릅뜨며 불쾌하다는 듯 항변했다.

“다행이군요.”

다만, 주망칠은 이내 다시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한데 도우는 도대체 뉘십니까? 정말로 남해 용궁으로 가서 따질 생각입니까?”

“저는 보타산의 제자인데 사문 선배의 명을 받은 터라 수화명단을 모아야 합니다. 사문의 명이니 거역할 수 없지요.”

심협은 미리 준비해둔 거짓말을 풀어놓았다. 사실 완전히 거짓말도 아니었다. 자신의 도려인 섭채주가 보타산의 제자이니 자신 또한 보타산 문하라고 칭하는 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터였다.

“그래서 이리 대담하군요. 좋습니다. 이대로 굶어 죽느니 가서 속시원히 따져나 봅시다. 내 안내하리다!”

주망칠은 말을 마치더니 심협을 빤히 바라봤다.

“무슨 뜻입니까?”

심협은 그가 곁눈질로 탁자의 술잔을 가리키는 것을 눈치챘지만 짐짓 모르는 척했다.

“지금부터 큰 모험을 떠나는데 술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주망칠은 당당하게 말했다.

“아, 그런 말이었소? 한데 술을 마셔도 좋지만, 절대 취하면 안 되오.”

심협이 웃으면서 선주 한 병을 더 꺼내 따라주려는데, 주망칠은 대뜸 술병을 낚아채더니 마개를 열어서 냄새를 깊이 맡고는 씩 웃었다.

“일이 잘못될까 봐 걱정하는 거라면, 내 좀 참았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 축하주로 마시리다.”

그러더니 그는 술병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주 도우는 시원시원해서 좋군요. 그럼 바로 출발합니까?”

“뭘 그리 서두르십니까? 이제 보수 이야기부터 하시죠. 수화명단 찾는 걸 도와드리면 뭘 주시겠소?”

주망칠이 심협을 말리고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선옥을 드리지요. 얼마나 드리면 되겠습니까?”

심협의 반문에 주망칠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선옥도 좋긴 한데, 저는 이 선주가 더 탐나는군요. 이건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거 아닙니까.”

“주 도우, 이 선주의 효능을 알고 이러시는 거 아니오?”

“무슨 소리인지 도통 모르겠소만? 흐흐흐.”

심협이 웃으며 묻자 주망칠은 짐짓 모르는 척했다.

선가옥양(仙家玉釀)은 선주인 만큼 재료도 평범하지 않았다. 심협에게는 별 쓸모가 없지만, 주망칠 같은 대승기 수사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선가옥양은 그리 많지 않아서 아까 그게 마지막 병이오.”

그 말에 주망칠은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허나, 내 대승기 수련에 도움을 주는 단약이 있으니 원하신다면 사례로 드리지요.”

“정말입니까?”

주망칠은 대승 초기에 들어선 이후로 한계에 이르러 백여 년을 다음 경지로 나아가지 못해 나날이 해이해졌고, 점차 술에 빠져들다가 남해 대학으로 와서 진주를 캐며 한가롭게 지내게 된 것이었다.

심협은 군말 없이 노란색 단약을 바로 그에게 던졌다.

황급히 받아 든 주망칠은 그 향기만 맡았을 뿐인데도 말할 수 없는 상쾌함이 느껴지자 화색이 돌았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이번 일이 끝나고 이 단약의 도움을 받으면 단숨에 대승 초기를 넘어서 잘하면 대승 후기까지 올라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닙니다. 내 이름은 심협이니 원한다면 심 도우라고 부르십시오.”

심협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심협은 경지를 대승기 초기 정도로 숨겼는데, 주망칠은 다 이유가 있겠거니 싶어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출발할 수 있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가시죠.”

주망칠이 바보처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과 주망칠은 바로 낙하도를 벗어나 청수도(靑須島)로 향했다.

청수도는 대학십도 중 방일도 다음으로 큰 섬이자 진주를 캐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이 섬의 지형이 특수했기 때문이다. 대학 깊은 곳까지 연결된 이곳의 통로는, 수식족이 번식하고 서식하는 심해까지 곧장 연결되어 있다. 또한, 대학에 사는 물 요괴의 공격도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심협은 모습을 바꾼 채 주망칠과 함께 청수도 남부와 홍엽도(紅葉島)가 맞닿는 곳에 도착했다. 멀리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와 돌아보니 백 장 크기의 폭포가 하얀 물결을 일으키며 대학 깊은 곳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대학은 단순히 섬이 고리 모양으로 감싼 바다가 아니라 지형이 비교적 높은 열 개의 섬이 가운데를 둘러싼 지형으로, 중앙의 커다란 구멍으로 바닷물이 모여들었다.

열 개의 섬 사이에 있는 네 개의 폭포는 쉬지 않고 남해의 바닷물을 빨아들였지만, 천만 년이 지나도 대학의 수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곳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터였다.

땅속으로 통하는 지심통로(地心通路) 입구는 폭포에서 멀지 않았다. 두 사람이 도착해보니 산벽 한쪽에 몇 장 크기의 둥근 돌문이 보였다. 문에 새겨진 수많은 물고기와 용 무늬로 보아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 분명했다.

입구 밖에는 수많은 새우 병사와 게 장수들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남해 용궁의 군사들인 듯했다.

심협 등이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용궁의 새우 병사가 앞을 막아섰다.

“누구냐! 이곳에 함부로 들어가려 들다니, 죽고 싶은 게냐?”

대장인 붉은 머리의 새우 병사가 앞으로 나서며 호통쳤다.

주망칠이 허둥지둥하자 심협이 태연하게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저희는 진주를 캐는 사람들인데 용궁의 명령을 받고 대학으로 들어가 수화명단을 캐고자 왔습니다.”

주망칠은 곁눈질로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는 심협을 보고는 속으로 역시 보타산 제자라고 감탄했다.

“용궁의 명? 용왕님의 친서는 갖고 있나?”

새우 병사가 의심스러운 듯 물었다.

당연히 그런 것을 가졌을 리가 없으니 다시 그럴듯한 이유를 대서 얼버무리려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태자 전하!”

새우 병사들이 갑자기 엎드리며 예를 올렸다.

심협과 주망칠이 황급히 돌아보니 금색 갑옷을 입은 키 큰 사람이 위병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머리에는 뿔이 우뚝 솟았고, 얼굴에는 금색 비늘 무늬가 가득했으며, 눈에는 사나운 기운이 풍겼다.

심협과 주망칠도 얼른 포권하며 뒤로 물러섰다.

“저자는 누굽니까?”

심협이 주망칠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한참 뒤에야 주망칠이 전전긍긍하며 전음으로 대답했다.

“남해 용왕의 장자 오전(敖戰)입니다.”

그들은 본래 대충대충 넘어가려 했는데 여기서 하필 태자를 마주쳤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지나쳐 가던 오전이 갑자기 휙 돌아서며 병사들에게 물었다.

“이자들은 누구냐?”

“예, 태자 전하. 용궁의 명으로 수화명단을 캐기 위해 왔다고 합니다.”

“너희도 징집을 받고 온 것이냐?”

“예!”

오전이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심협은 재빨리 대답했다.

“이름이 뭐냐?”

“심갑정(沈甲程)이라 합니다.”

주망칠은 어이가 없어 하마터면 허허 웃을 뻔했다.

‘와, 이 뻔뻔함 좀 보게!’

다행히 그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허리 숙여 답했다.

“저는 주망칠입니다.”

그가 솔직히 말한 이유는 가명을 쓰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용궁 위병들 사이에 섞여 있는 인간족은 모두 진주를 캐는 사람들인데, 대부분 그와 아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오, 네가 바로 주망칠이냐?”

“예, 전하. 한데 저를 아십니까?”

주망칠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들에게 듣기로는 진주 캐는 실력은 네가 최고라고 들었다. 다른 자들이 찾지 못하는 수화명단까지 찾아낸다던가.”

오전이 진주 캐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하자 주망칠은 좋아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몰라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래, 잘 왔다. 나를 따라오너라.”

이렇게 두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오전 일행을 따라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에 들어가자 시야가 어두워졌지만, 안으로 한참을 들어가니 적응이 됐다. 동굴 안의 사방 벽에도 푸른 빛이 나타나 주위를 밝혀줬다.

아래로 향하는 비스듬한 통로가 시야 끝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 금방 눈에 들어왔다.

한 시진 정도 걷자 마침내 출구로 보이는 환한 빛이 나타났다.

출구로 나오니 거대한 지하 동굴이 나타났는데, 등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고, 용궁 사람들이 즐비했다.

동굴 중앙에는 10여 장 크기의 푸른색 보선(寶船) 한 척이 정박해 있었다.

보선의 모습은 매우 특이해 비사(飛梭)와 매우 비슷했고, 그 위에 세워진 누각은 양식이 단출했다.

자세히 보니 범선이든 누각이든 보선 곳곳에 부문이 가득 새겨져 있었고, 서로 연결되어 거대한 부진을 이루었다.

이러한 부진의 선들이 교차하는 지점에는 수화명단이 박혀 있었는데, 그 수가 3백여 개는 되어 보였다.

그가 주위를 자세히 둘러보고 있는데, 보선에서 누군가가 날아와 그들 앞에 내려왔다. 영력 파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보니 남해 용왕 오흠이었다.

“부왕(父王)을 뵙습니다.”

오전이 바로 예를 올리자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따라서 예를 올렸다.

“호선 법진(護船法陣)에 365개의 수화명단이 필요하거늘, 아직도 50여 개가 부족하다. 모두 찾았느냐?”

오흠은 기분이 언짢았는지 차갑게 물었다.

“부왕, 남해의 모든 수화명단을 쓸어담은 터라 당분간은 찾을 수 없을 듯합니다. 다만, 제가 십도의 진주 캐는 자들을 전부 끌고 왔으니 이들이 있으면 충분한 수화명단을 캐낼 수 있을 겁니다.”

오전이 이마에서 땀을 흘리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으니 널 탓하지 않겠다. 어쨌든 최대한 빨리 이들에게 수화명단을 모으게 하여라. 수화명단을 모아오면 모두에게 상을 내리겠다.”

“안심하십시오. 이번에는 제가 직접 이들을 이끌고 가서 반드시 사명을 완수하겠습니다.”

“오냐.”

오흠이 마침내 만족한 듯 미소를 짓더니 심협 등을 훑어보고는 별다른 말 없이 보선으로 돌아갔다.

주망칠은 오흠이 멀어지는 것을 보며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다.

“심 도우, 이거 상황이 이상하게 됐습니다. 용궁의 수화명단을 훔치기도 전에 저들이 수화명단을 찾는 것을 도와주게 생겼습니다.”

주망칠이 침울해진 말투로 심협에게 전음을 보냈다.

“벌써 그리 걱정할 것 없소. 이왕 온 거 천천히 상황을 지켜봅시다.”

심협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여유롭군요!”

“저들이 도대체 무슨 꿍꿍이고 어떤 보물을 탐내고 있는 건지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이 얼마나 좋은 기회요?”

“그게…… 저도 궁금하긴 궁금하오나, 호기심 때문에 목숨을 잃을까 걱정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망칠은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있는 한, 목숨을 잃을 일은 없을 겁니다.”

심협의 위로에도 주망칠은 속으로 비난했다.

‘자기가 무슨 진선이나 태을의 신선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타산의 이름 없는 어린 수사 주제에 말은 청산유수군!’

주망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던 심협은 차분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시지요.”

두 사람이 몰래 전음을 나누는 사이, 오전은 이미 사람들을 데리고 이동하고 있었다.

“모두 잘 들어라! 이번 일은 사안이 중대하니 수화명단만 찾아낸다면 한 알에 선옥 2백 개로 쳐주마. 또한, 남해 용궁의 수족령(水族令)도 하사하여 용궁의 보호를 받게 해주겠다.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니다. 알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좋아! 힘을 내보자고!”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보상에 모두가 소리쳤다.

“출발!”

오전의 명령에 모두가 일제히 그를 따라 지하 동굴의 다른 끝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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