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046화 (1,046/1,214)
  • 1046화. 주망칠(朱莽七)

    심협은 은근히 두 개의 선옥을 더 건네며 물었다.

    “주인장이 아까 말한 대학의 이상한 현상은 또 무엇입니까?”

    노인은 두 개의 선옥을 받아 주머니에 넣은 뒤에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손님도 먹구름을 보셨을 겁니다. 대학 십도의 상공에는 한 번도 먹구름이 뒤덮인 적이 없었지요. 제가 여기 근 백 년을 살았는데,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는데 며칠 전부터 이곳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왔지 뭡니까. 그런데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내리고, 새벽마다 천둥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 시간이 항상 정확하니 이상하다고 할 수밖에요.”

    설명을 끝까지 들은 심협은 내심 실망했지만, 남은 선옥을 노인에게 건넸다.

    “보아하니 손님은 호탕한 귀인이신 듯하군요. 손님께서 누설하지 않겠다고 보증만 하신다면 제가 몰래 남은 수화명단을 손님께 팔겠습니다.”

    노인은 배시시 웃으며 선옥을 챙겨 넣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정말입니까?”

    그 말에 심협은 귀가 솔깃했다.

    “어디서 감히 손님을 속이겠습니까? 다만, 물건이 매우 귀해서 지금 수화명단의 가격이 낮지가 않습니다. 손님께서는 몇 개를 원하시는지요?”

    “가격이 어떻게 됩니까?”

    노인이 손가락 세 개를 들며 말했다.

    “하나에 선옥 삼백 개입니다.”

    가격을 듣자 심협은 일순 당황했고, 곧장 계산했다. 자신이 필요한 것은 백 개, 대략 선옥 삼만 개 정도이니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노인은 심협이 아무 말도 없자 자신이 가격을 너무 높게 부른 게 아닌가 싶어서 눈치를 봤다.

    “손님, 제가 가격을 높게 부른 것이 아니라 진짜로 물량이 적어서 가격이 배로 뛴 것뿐입니다.”

    심협은 정신을 차리고는 속으로 허탈하게 웃었다. 수화명단의 가격이 예상했보다 훨씬 쌌기 때문이다. 우린 선자가 구해와 달라고 한 물건인 만큼 그는 가격이 지심화련만큼 비쌀 거라 여겼다.

    “가격은 문제없습니다. 백 개 정도 필요하니 주인장께서 좀 모아주십시오.”

    “네? 백 개요?”

    “왜 그러십니까?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손님, 농담하시는 겁니까? 우리 대학십도의 1년 물량이 80개도 안 되는데 백 개라니요. 남해 용궁이 사 가지 않아도 그 정도면 적어도 2년 전에 예약해야만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있습니다.”

    노인장은 심협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설명했다.

    “수화명단 생산이 그 정도밖에 안 됩니까?”

    심협은 당황하고 말았다.

    “손님, 전혀 모르셨군요. 수화명단은 대협의 수식족이 바닷속 화맥(火脈)을 먹고 소화하기 어려울 때 뱃속에서 만들어지는 결정입니다. 그게 수년에 걸쳐 몸 밖으로 배출되는데, 그때마다 뱃속의 울림이 마치 천둥이 치는 것 같다 하여 화수명단이라고 불립니다. 그들은 대학 깊은 곳에 살고 있는 데다 겁이 워낙 많아서 배출한 화수명단 대부분을 찾기 어려운 은신처에 두지요. 진주를 캐는 사람들도 찾는 것이 매우 어려워 생산량이 매우 낮은 겁니다.”

    “그렇군요…….”

    “아무래도 손님이 헛걸음하신 것 같습니다. 백 개의 화수명단을 모으기는 불가능합니다.”

    주인장도 고개를 내저었다.

    “우선 여기 있는 거라도 전부 주십시오.”

    심협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가진 게 세 개뿐인데, 그거라도 드릴까요?”

    “부탁드립니다.”

    노인은 돌아서서 내실로 들어갔고, 잠시 후 보라색 나무 상자를 들고 다시 나왔다.

    노인이 계산대에 상자를 올려놓고 뚜껑을 열자 수박씨만 한 둥근 정석 세 개가 들어 있었다. 안은 불꽃처럼 붉고 겉은 차가운 얼음처럼 푸른, 이 투명한 정석은 화수라는 이름이 걸맞았다.

    심협은 물건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선옥을 내주고 물건을 챙겼다. 주인장은 자루를 들고 선옥을 센 뒤에 바로 집어넣었다.

    심협은 인사를 남기고는 다른 상점으로 가서 운에 맡겨보기로 했다.

    한데 그가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뒤에서 주인장이 다시 불렀다.

    “손님, 잠시만요.”

    심협이 몸을 돌려 바라보니 주인장이 달려와 몰래 종이 한 장을 건네줬다.

    “손님, 오늘 십도를 다 돌아다녀도 수화명단 백 개를 모으는 건 불가능합니다. 대신, 이곳으로 가서 이 사람을 찾아가면 기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노인이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심협은 다시 감사를 표하고는 돌아섰다.

    가게에서 나와 쪽지를 펴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낙하도(落霞島), 수유촌(水兪村), 주망칠(朱莽七).’

    손가락을 비벼 종이를 태운 심협은 바로 주망칠이라는 사람을 찾아가지 않고 우선 상점 하나하나를 다 찾아가 봤다.

    저녁 무렵이 돼서야 모든 상점을 돌았지만, 노주인장에게서 몰래 산 세 개의 수화명단이 전부였다.

    그제야 심협도 다른 섬에 가서 운에 맡겨보겠다는 생각을 접고 노주인장이 말한 그 사람을 찾아 낙하도로 향하기로 했다.

    바다의 노을은 평소 보던 것과 크게 달라서 넓은 바다가 알록달록 물들었다. 바다와 하늘이 닿는 곳에서는 뚜렷한 경계가 보이지 않아서 마치 하늘과 땅이 합쳐져 커다란 한 폭의 그림이 된 것 같았다.

    심협은 저녁노을을 맞으며 가장 서쪽에 있는 낙하도로 날아갔다.

    이 섬은 방일도보다 확실히 작았고, 섬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은 한 곳뿐이었다. 흩어진 촌락은 또 적지 않아서 한참을 돌아다니며 길을 묻고 나서야 수유촌을 찾을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주망칠은 진주 캐는 사람으로, 이 섬에서는 유명인이었다.

    열 개의 섬에는 진주 캐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일이라 이들은 네다섯 명에서 많으면 열 명까지 무리를 이루어 움직였다.

    그러나 주망칠은 예외다. 그는 언제나 독불장군처럼 홀로 진주를 캐러 나갔고, 누구와도 협력하지 않았다. 이전에 다른 사람과 함께 일했다가 배신을 당해 하마터면 대학 안에서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을 사람들이 알려준 방향으로 걸어가 마을 안의 깊고 외딴곳에 도착하자 야자수 숲 아래 2층짜리 나무집이 보였다. 한 점의 빛도 없이 어두웠다.

    심협은 집에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하늘을 찌르는 술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코를 비볐다. 자신이 잘 찾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망칠 선생, 집에 계십니까?”

    심협이 집 앞으로 와서 큰소리로 외쳤다.

    나무 건물 안은 조용했고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주망칠 선생!”

    다시 불러봤지만,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가 신식을 펼쳐 살펴보려는데, 2층 문이 끼익 열리더니 온몸에서 술 냄새를 풍기는 남자가 술병을 들고 비틀거리며 나왔다.

    크지 않은 키에 약간 말랐고, 얼굴에는 수염이 가득한, 마흔 전후의 남자가 눈살을 찌푸린 채 심협을 보고 있었다.

    “누, 누가 날……?”

    그는 말을 더듬었고, 손을 뻗어 난간을 잡으려다가 그만 헛손질을 하며 발을 헛디뎠다.

    심협이 옆으로 살짝 피하자 그 남자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집 앞의 모래사장은 푹신해서 떨어져도 다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우아하지 못하게도 머리를 모래에 박은 채 엉덩이는 하늘로 솟은 자세였다. 다만 그 와중에도 기가 막히게 손을 치켜 들어 술병은 무사했다.

    심협은 옆에 서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사내는 일어서기는커녕 우렁차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허! 완전 술꾼이군.”

    심협이 고개를 두어 번 젓고는 손을 휘두르자 법력이 그의 몸을 스쳐갔다.

    엉덩이를 내민 채 땅에 박혀 있던 수염투성이의 남자는 갑자기 정신이 말짱해지자 엉덩이를 뒤로 젖히면서 땅에서 머리를 뽑고는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주망칠 선생, 깨셨습니까?”

    심협이 웃으며 말하자 그 남자가 멍하니 고개를 돌리더니 불쾌한 표정으로 심협을 바라봤다.

    “법술이 참 대단하구려. 한데 왜 쓸데없이 남의 취기를 날려버린 거요?”

    심협은 그 말에 어이가 없었다.

    사실 그도 주망칠이 대승기 수사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진주를 캐는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운 높은 경지였다.

    “전 보재당 주인장 소개로 왔습니다. 여기로 오면 화수명단을 살 수 있다던데요.”

    “없어. 없어! 없으니까 썩 꺼지시오!”

    주망칠은 화가 났는지 심협을 보지도 않고 그대로 집으로 들어갔다.

    “제가 경솔하여 도우의 취기를 없앴군요. 실례를 용서하십시오.”

    주망칠은 대답하지 않고 등을 긁적이며 나무문을 밀고 막 들어가려 했다.

    그가 문을 닫으려는 순간, 심협이 재빨리 덧붙였다.

    “주 도우, 남해 용궁이 대학을 봉쇄한 일로 화가 나서 집에서 술로 나날을 보내고 계신 겁니까? 그렇다면 제게 마침 아주 좋은 선주(仙酒)가 있는데, 한잔하시겠습니까?”

    이 말에 주망칠은 멈칫했고,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이내 쾅 하고 문을 닫았다.

    심협은 실망하지 않고 선주의 뚜껑을 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향(酒香)이 널리 퍼졌고, 나무문이 끼익 열리더니 주망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서 얘기하시오.”

    심협은 씩 웃으며 바로 들어갔다.

    등불을 켜고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앉았다.

    심협이 소매를 휘두르자 탁자에 백옥 술잔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선주를 따라주었다.

    주망칠은 사양하지 않고 잔을 들어 단숨에 마셨다.

    술이 목구멍을 지나 뱃속으로 미끄러지자 불에 타는 것처럼 뜨거운 기운을 뿜어내 그의 위뿐만 아니라 단전까지 뜨거운 기운으로 가득 차는 것 같았다.

    주망칠은 표정이 변했다. 그제야 심협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 진짜 선가의 선주임을 알아챈 것이다.

    심협은 그의 표정 변화를 보고는 미소 지으며 바로 또 술잔을 채워주었다.

    이번에는 단숨에 마시기 아까웠는지 잔을 쥔 손이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주 도우,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선주는 도우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너무 큰 도움이라고 해서 걱정할 것도 없고요.”

    그 말에 주망칠은 잠깐 망설이더니 바로 단숨에 털어 넣었다.

    심협은 느긋하게 한잔을 마신 후, 스스로 따라서 다시 한잔을 마셨고, 두 사람의 잔을 채웠다.

    몇 순배가 돌자 주망칠이 마침내 버티지 못하고 손으로 술잔을 덮었다.

    “내 추측이 맞는다면 당신 용궁에서 온 사람이지?”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심협은 반박하지 않고 반문했다.

    “남해에서는 오직 당신들 같은 용족만이 이렇게 물건 아까운 줄 모르고 선주를 물처럼 마시잖아.”

    주망칠이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주 도우는 용궁에 불만이 많은가 봅니다?”

    심협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정말 용궁 사람이 아니오?”

    주망칠이 의심스럽다는 듯 머뭇거리며 다시 물었다.

    “물론 아니오. 그저 수화명단을 사러 온 사람입니다.”

    “흥! 용궁 그놈들이 다 빼앗아 갔는데 나한테 수화명단이 어디 있겠소?”

    그의 말에 심협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용궁이 그리 많은 수화명단을 왜 가져간 겁니까?”

    심협이 다시 술을 따라주며 묻자 주망칠은 말없이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전 정말 용궁 사람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강제로 수화명단을 빼앗아 갔다면서요? 제가 강제로 빼앗았소?”

    “뭐, 하긴…….”

    주망칠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털어놓았다. 대학(大壑) 깊은 곳에 이보(異寶)가 나타나자 남해 용궁이 그것을 차지하려고 대학을 봉쇄하고 어떤 수사도 들여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대학 깊은 곳에 흐르는 염수화맥(炎燧火脈)이 용궁의 앞길을 막았는데, 수화명단으로 만든 용주(龍舟)만이 이 화맥을 건널 수 있었다.

    “용궁이 만들고자 하는 용주가 방대하니 대학십도에 있는 수화명단을 싹 쓸어간 게요. 하여간 세력이 강한 것들은 모두 날강도라니까!”

    주망칠은 생각할수록 화가 치미는지 다시 술을 들이켜며 한탄했다.

    “그렇다면 대학십도에는 수화명단이 전혀 남아 있지 않겠군요?”

    “당연하지! 용궁이 협박하고 회유해 싹 가져갔소. 다들 남해에서 먹고사는 신세인데 누가 감히 남해 용궁 같은 거물과 척을 지려 하겠소? 용궁과 척을 지느니 차라리 보타산과 척을 지라는 말까지 돌고 있소.”

    주망칠이 한숨을 쉬고는 다시 선주를 들이켰다. 취기가 돌았는지 얼굴이 빨개졌다. 술을 즐기기 위해 평소에는 경지로 취기를 억누를 필요가 없었는데, 이번 선주는 보통이 아니어서 억제조차 못 하고 잔뜩 취해버린 것이었다.

    “그럼 수화명단을 얻으려면 용궁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이 말이군요.”

    심협이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렇지. 지금은…… 거기밖에 없지.”

    혀가 꼬이기 시작한 주망칠이 고개를 들어 심협을 바라보더니 뒤늦게 놀란 듯 물었다.

    “뭐? 용궁으로 쳐들어가려고?”

    “그럴까 하는데, 길이 익숙하지 않아서 고민입니다.”

    “좋아! 용궁으로 가서 따질 생각이라면, 나도…… 나도 간다!”

    주망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가슴을 치며 호기롭게 외쳤다.

    심협은 그제야 맑게 웃었다.

    “그럼 약속한 겁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주망칠은 그대로 탁자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심협은 홀로 술을 마셨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