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045화 (1,045/1,214)
  • 1045화. 남해에서 단약을 찾다

    “네, 제가 그 심협입니다.”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우린 선자는 그런 심협을 살펴보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태청단 제작을 도와드리죠.”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대신 저도 한 가지 부탁이 있으니까요.”

    “말씀하십시오.”

    심협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해 바닷속 3천 리를 들어가면 대학(大壑)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안에 물과 불이 공생하는 특이한 종족이 있다 합니다. 그들 종족에게서 수화명단(水火鳴丹) 백 개를 가져다주시죠. 보수는 그것으로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심협이 바로 요구를 받아들이려는데 옆에서 흑곰 요괴가 끼어들었다.

    “우린 선자, 그 요구는 좀…….”

    “곰탱이는 입 다물어!”

    우린 선자가 바로 호통쳤다.

    “아니, 그래도…….”

    우린 선자의 눈빛이 싸늘해졌고, 흑곰 요괴는 곧장 입을 다물었다.

    “강요하려는 건 아닙니다. 이 일을 해낸다면 제작해드리겠지만, 하지 않겠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좋습니다. 약속은 지키실 거라 믿습니다.”

    심협의 대답에 우린 선자는 씩 웃고는 그대로 산골짜기로 돌아갔다.

    “휴, 심형. 왜 하겠다고 한 건가? 내가 조금만 더 매달렸으면 바로 해주겠다고 했을 텐데…….”

    “흑곰 도우, 너무 걱정 마시오. 더 위험한 곳도 갔다 온 내가 아니오? 우린 선자가 필요하다는 그…… 수화명단? 그것만 모아오면 빚지는 것도 없고 좋지.”

    심협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심형, 이건 얼마나 위험한가의 문제가 아닐세. 자네는 모르겠지만 그건…….”

    “곰탱이, 한 마디만 더 하면 앞으로 단약은 없다!”

    흑곰 요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우린 선자의 경고가 산골짜기에서 울려 퍼졌다.

    그 말에 흑곰 요괴는 움찔했고, 입을 다물었다.

    “됐소. 흑곰 도우, 호의는 내 잘 알겠소.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해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이를 본 심협의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휴, 그럼 행운을 빌겠네.”

    흑곰 요괴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두 사람은 바로 산골짜기에서 나와서 낙가산을 향해 걸었고, 도중에 심협이 물었다.

    “한데 흑곰 도우, 우린 선자의 기운이 범상치 않은 게 평범한 보타산 수사가 아닌 것 같던데…….”

    “정확하게 봤네. 우린 선자…… 그녀는 인간족이 아니라 나와 같은 요족이라 할 수 있지.”

    “내 추측이 맞았군. 그럼 그녀의 본래 모습은 무엇이오?”

    “그게…….”

    흑곰 요괴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말하기 곤란하면 하지 않아도 괜찮소.”

    심협도 더는 묻지 않고 웃었다.

    “심형, 이번에 내가 법지(法旨)를 받아서 함께 가기 힘들 것 같네.”

    “괜찮소. 나 혼자 다녀오겠소.”

    흑곰 요괴가 미안해하며 말하자 심협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곳은 수많은 요족이 도사리는 곳인데, 그중에는 남해 용왕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대요도 있으니 조심하게. 절대 무리하지 말고.”

    흑곰 요괴가 엄숙한 표정으로 당부했다.

    “알겠소. 내 조심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심협이 포권하며 말했다.

    * * *

    하루 뒤, 보타산 섬 밖의 해역 상공. 심협과 섭채주가 바람을 맞으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며칠 후면 돌아올 거니까 배웅하지 않아도 돼.”

    심협이 섭채주의 얼굴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며 말했다.

    “경지가 많이 오르긴 했지만 기초가 튼튼하지 않아서 스승님이 적잖은 화근을 찾아내셨어요. 강제로 폐관수련에 들어가야 하는 것만 아니면 같이 가는 건데…….”

    “그건 내 탓도 있어. 매번 날 위해 나서느라 경지를 굳건히 할 틈이 없었잖아. 이번에 폐관하면서 잘 정양하면 될 거야.”

    섭채주가 미안해하며 말하자 심협이 더 미안해했다.

    “이건 제가 찾아낸 대학수역도(大壑水域圖)예요. 꼭 몸조심해야 해요.”

    옥간을 받은 심협이 웃으며 작별 인사를 하고는 검을 타고 멀어져갔다.

    섭채주는 멀어지는 심협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돌아서려는데, 옆에서 푸른 빛이 잔잔하게 물결치더니 청련선자가 나타났다.

    “당시 이 스승의 눈이 틀렸구나. 그의 성장은 확실히 놀라울 정도야.”

    “스승님의 안목이 뛰어나시니 절 알아보셨고, 제 안목이 나쁘지 않아 그를 알아본 거랍니다.”

    섭채주는 심협과 부부가 된 이후로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았기에 청련선자가 심협을 인정하자 진심으로 기뻐했다.

    “우린이 이번에는 또 무슨 생각인 것인지 모르겠구나. 왜 하필 수화명단을 모아오라고 했는지…….”

    “위험한 일인가요?”

    섭채주가 표정이 굳어 물었다.

    “지금 그의 경지면 위험하지는 않겠지만, 쉽지는 않을 거다”

    청련선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말에 섭채주는 고개를 숙이고 더는 말이 없었다.

    “어리석은 것. 이 스승이 위험은 없다 하지 않느냐.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에도 계속 폐관만 할 셈이냐?”

    청련선자가 제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빨리 폐관을 마치고 나와서 오라버니를 기다리겠습니다.”

    두 사제는 함께 낙가산으로 돌아갔다.

    * * *

    남해의 거센 물결이 하늘까지 치솟았다.

    심협은 어검을 타고 구름 위를 날았고, 한 손으로 옥간을 든 채 감지하며 수역의 방향을 분별했다.

    남해 수역은 동해 다음으로 컸고, 수성이 온화하고 수많은 섬이 즐비하여 경관만 따지자면 사해에서 단연 으뜸이었다.

    심협이 남쪽으로 2천 리쯤 날아갔을 때, 맑은 하늘에 갑자기 성벽이 우뚝 솟은 것처럼 커다란 구름이 드리웠다. 마치 하늘 절반을 커다란 솥뚜껑이 앞을 뒤덮은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크고 두꺼운 둥근 모양의 구름이 더 선명해졌고, 그 안에서는 뇌성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강력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왜 채주가 준 옥간의 내용과 다르지?”

    옥간의 기록에 따르면 대학이란 곳은 남해에서 특수한 환형(環形)의 섬이었다.

    특수하다고 한 이유는 이곳이 고리 모양의 섬이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열 개의 산이 연달아 이어져 있는 것인데, 이 산들의 높이가 모두 해수면보다 높아서 고리 모양의 산처럼 보였다.

    그중 여덟 산 사이사이의 협곡을 통해 주위의 해수가 환형의 산맥 중앙으로 밀려 들어와 산맥 중앙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대학이 존재했다. 그렇게 흘러들어온 바닷물이 네 개의 낙차가 큰 폭포를 이루었다.

    경치의 기이함으로 말하면 대학은 진정한 형승지지(形勝之地)였다.

    심협이 찾는 수화명단은 연기와 연단에 모두 유용한 영재로, 환형산맥 중앙 대학 깊은 곳에 사는 특이한 수족인 수식족(水喰族)이 생산하고 있었다.

    이 물건은 그리 진귀한 편은 아니었다. 잎사귀 아홉 개의 지심화련 같은 것과 비교하면 한참 떨어졌다.

    하지만 별것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데, 이 물건이 만들어지는 숫자가 많지 않기에 매년 진주를 캐는 사람들이 대학 깊은 곳으로 들어가 채취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어떻게 수화명단을 채취하는지 외부인에게 결코 말하지 않으려 했다.

    심협은 진주를 캐는 자들을 찾아서 값을 치르고 살 계획이었다. 그러고 나서 부족하면 직접 대학 깊은 곳으로 가서 캐올지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대학이 눈앞에 다가오자 심협은 그중 가장 큰 섬인 방일도(蚌一島)로 내려갔다.

    섬 주위는 하얀 모래사장이었고, 안으로 수십 장을 걸어가자 야자수 숲이 우거졌다. 더 안으로 들어가자 무성한 숲이 나타났고, 그 사이로 건물이 어렴풋이 보였다.

    머리 위에 먹구름이 드리워서인지 섬의 분위기는 음산하기까지 했다. 심협은 야자수 숲을 지나 마을 앞에 도착할 때까지 섬에서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지 못했다.

    마을로 들어서자 마침내 행인이 몇 명 보였다. 이들은 마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어딘가 우울한 느낌이 있었다.

    잠시 살펴보니 이곳의 건물 양식은 대당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대부분이 난간식의 2층짜리 나무 건물이었고, 처마는 넓고 경사졌으며, 지붕에는 기와가 아니라 목재나 풀들이 덮여 있었다.

    심협은 행인을 붙잡고 상점 위치를 물은 뒤 곧바로 상점으로 향했다.

    수십 장에 이르는 이 상점 거리가 섬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 길 양쪽으로 상점들이 즐비했고, 거리를 오고 가는 행인도 다른 곳보다 많았다.

    심협은 비교적 큰 상점을 찾아 들어갔다.

    상점 안에서 바로 주인 남자가 다가와 심협을 향해 포권했다.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찾으십니까?”

    심협은 상점 내부를 살폈다. 벽마다 진열대가 박혀 있었는데 그 위에는 각양각색의 법보 기물이 놓여 있었는데, 종류가 매우 다양했다. 그중에는 단약이 든 병과 항아리, 영재가 든 상자, 각종 법기, 부적이 있었다. 다만 모두 품질이 높지 않은 편이라 심협의 눈에 차지 않았다.

    “주인장, 여기 수화명단이 있습니까?”

    심협이 시선을 거두며 묻자 어째서인지 주인장은 당황하더니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왜 그러시오?”

    “손님, 이를 어쩝니까? 저희 가게에 있던 수화명단은 이미 다 팔렸습니다.”

    중년의 주인장은 어색하게 웃더니 미안한 듯 고개를 내저었다.

    심협이 곧장 다른 상점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이 주인장은 줄곧 그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의혹이 가득했다.

    다른 상점에서는 몸매가 가냘픈 부인이 심협을 맞이했다.

    심협이 화수명단을 원한다고 말하자 부인도 이전의 중년 주인장과 비슷한 표정으로 이미 모두 팔렸다고 말했다.

    심협은 의아했지만 더 묻지 않고 상점에서 나왔다.

    하지만 연달아 열다섯 개의 상점을 돌아다니고도 모두 팔렸다는 답변만 들었을 뿐이었다.

    열여섯 번째 상점에 들어가자 한 노인이 심협을 맞이했다.

    “주인장, 여기에도 화수명단이 없습니까?”

    허리가 조금 굽은 노인이 멈칫하더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희 보재당(保齋堂)에는 물건이 있긴 한데 손님께는 팔 수가 없습니다.”

    그 말에 심협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물건이 있는데 팔 수가 없다뇨? 장사를 안 한다는 소리입니까?”

    “멀리서 오신 분이라 아직 모르시나 봅니다. 최근 남해 용궁에서 대학에 사자를 보내 대학 십도(十島)의 모든 수화명단을 사들였습니다. 한동안은 화수명단을 외부인에게 팔지 말라는 칙령까지 내려왔지요.”

    노인이 조금 머뭇거리며 설명하자 심협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화수명단을 사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다른 사람한테도 팔지 못하게 하다니, 횡포가 아닌가!

    “남해 용궁이 왜 그러는 겁니까?”

    “그게…… 저희도 잘은 모릅니다만, 아마도 최근에 대학 안에 일어난 이상한 현상과 관련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노인은 의미심장하게 말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를 본 심협은 몇 개의 선옥을 꺼냈다.

    “주인장, 제가 이곳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처음 와서 사정을 몰라서 그러니 가르침을 좀 주십시오.”

    심협이 웃으며 선옥을 건네자 노인이 냉큼 받으면서 말했다.

    “그게…… 저도 들은 이야기이긴 한데, 가르침까지는 아니라서 손님께 도움이 될까 싶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그…… 이 대학 골짜기가 남해의 형승지지이긴 하지만 수화명단과 묵옥산호(墨玉珊瑚) 외에는 별다른 산물이 없습니다. 남해 용궁도 이곳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간섭도 거의 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최근에 어찌 된 영문인지 남해 용궁에서 갑자기 많은 하병해장(蝦兵蟹將)을 보내와서 화수명단을 쓸어가고 또 대하를 잠시 봉쇄하여 다른 사람의 출입을 막았지 뭡니까. 소문에 의하면 그 아래에 어떤 지보가 나타났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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