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043화 (1,043/1,214)

1043화. 응향(凝香)

“신마의 우물에는 천하에서 가장 순수한 영력과 마기가 들어 있어 수행의 한계를 돌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되네. 설령 천존의 한계라도 말일세. 나 또한 장안성 신마의 우물 입구를 지키면서 그 영력의 도움을 받은 덕에 순조롭게 천존기로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일세.”

덧붙은 원천강의 말에 심협은 마음이 조금 흔들렸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한, 신마의 우물에는 선, 마 두 개의 힘이 현묘하게 운공하고 있고, 이 우물 깊은 곳에는 그 두 힘이 극변(極變)하고 있네. 전해지는바, 상고 시절 헌원 황제와 마제 치우가 신마의 우물에 들어갔다가 각자 황제내경과 치우무결이라는 두 절세의 공법을 깨달았다더군. 자네 몸에는 선, 마 두 개의 힘이 있고 또 그 힘을 융합할 수 있는 신통을 모색하고 있지 않은가. 신마의 우물에 들어간다면 자네에게 큰 도움이 될 걸세.”

원천강이 심협의 두 눈을 살피더니 살며시 웃었다.

현양화마 신통이라는 숨겨둔 패를 원천강이 한눈에 간파하자 심협은 가슴이 철렁했다. 동시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원천강의 설명은 확실히 그의 가려운 부분을 건드렸다. 요 며칠, 그가 가장 신경 쓴 일이 바로 황제내경과 치우무결을 융합하여 현양화마 신통을 완벽하게 하는 것이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진전이 거의 없었다.

만약 원천강의 말대로 신마의 우물 안에 정말로 선, 마 두 힘의 극변이 존재한다면 현양화마 신통에 도움이 될 것은 자명했다.

“또한, 신마의 우물 입구에는 천지대도가 자연발생적으로 만든 금제가 존재하는데, 내가 가진 영부의 금제에 정혈을 떨어트리면 우물을 지키는 자가 되어 이후에도 자유롭게 신마의 우물에 출입할 수 있지.”

“우물을 지키는 자요? 원 국사님이 장안성 땅속의 신마의 우물 입구를 지키는 자입니까?”

심협이 고개를 번쩍 들며 물었다.

원천강은 말없이 웃으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손바닥에 흑백, 두 가지 색깔의 신비한 부문이 떠올랐다. 문짝 같은 부문에 흑백의 기운이 감돌았으며, 공간의 힘 파동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원 국사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높게 평가해주시니, 승낙하지 않으면 너무 몰인정하다 하겠군요.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심협은 흑백의 부문을 보고 잠시 생각하더니 곧이어 은백 영부를 받았다.

“그럼 부탁하네.”

원천강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눈빛은 한결 편안해졌다.

두 사람은 한참을 더 대화했고, 심협은 신마의 우물에 관한 더 많은 정보와 북명곤에 관한 정보를 듣고서야 인사를 남기고 나왔다.

하얀 옷을 입은 날카로운 눈매의 청년이 문밖에서 서 있었다. 마치 심협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는 심협이 나오자 바로 다가왔다.

“심 선배님, 후배 백풍(白楓)이 국사님의 명을 받아 숙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백의의 청년이 공손하게 말했다.

“그럼 부탁드리오.”

심협은 아직 대라불수를 얻지 못했기에 거절하지 않았다.

* * *

깊은 밤. 반투명한 인영이 몰래 장안성 땅속으로 잠입했고, 금방 땅속 깊은 곳 지하 영맥 근처에 도착했다. 바로 연연나금의로 모습을 감춘 심협이었다.

그는 신식을 펼쳐 지맥을 자세히 살폈다.

심협이 계속 장안성에 머문 것은 대라불수를 기다리기 위함인 동시에 청구 호족이 감정의 힘을 모으기 위해 장안성 지맥에 설치한 법기를 찾기 위함이기도 했다.

이 수단에 흥미를 보이는 이유는 천언진경에 담긴 귀언과 같은 특이한 종류의 언갑 때문이었다. 그중 몇 종류의 언갑은 감정의 힘을 이용하면 위력이 강해진다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다만 천언노인은 감정의 힘을 모으는 데에는 특출나지 않아서 매번 모을 때마다 막대한 재력과 시간이 소요됐다. 그러니 호족의 이 수단을 얻게 되면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호조는 감정의 힘을 모아 만들어진 존재인 만큼 이 수단을 미리 잘 알아두면 나중을 대비할 수 있을 터였다.

또한, 화령자의 판단에 의하면 이 물건이 세계수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8할은 됐다. 그가 가진 세계수는 너무 적어서 도천신살대진 진기를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니 세계수 조각을 하나라도 더 모아야 했다.

하지만 신식으로 장안성 지맥을 한 바퀴 다 돌았음에도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이상하군. 왜 없지?’

심협은 눈살을 찌푸렸다.

‘청구 호족이 물러갈 때 가져갔나? 아니면 대당 관부 사람이 발견하고 가져간 걸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번 찾아봤지만, 여전히 발견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돌아가려던 그때였다. 법맥 안의 검은색 씨앗이 갑자기 움직이더니 뿌리 하나가 지맥의 어느 곳으로 향해 갔다.

심협은 뭔가 생각났는지 오른손으로 재빨리 허공을 잡았다.

금색 용 발톱이 허공에 나타나 뿌리가 찌른 곳을 움켜쥐었다.

찌익!

뭔가 찢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사람 머리통만 한, 나무로 된 둥근 구슬이 굴러떨어졌다.

회백색 구슬에 가득 새겨진 부문은 모종의 진법 같았다.

검은색 뿌리가 이 구슬을 찌르려 했지만, 금색 손이 한 발 빨랐다.

‘이런 곳에 숨겨놓다니, 검은색 씨앗이 같은 근원의 기운을 감지하지 못했다면 놓칠 뻔했어.’

이 구슬은 정말로 세계수로 만든 것이었는데, 안의 영력은 음기가 아니라 일전에 청구산 조령 조각상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바로 감정의 힘이었다.

‘이것을 이용해 감정의 힘을 모았으니 안의 힘이 음기에서 감정의 힘으로 바뀐 것도 정상이겠지. 하지만 도천신살대진을 만들 기에는 무리겠어.’

심협은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고는 회백색 구슬의 문로를 꼼꼼히 살폈다.

“확실해! 이 진문은 감정의 힘을 흡수할 수 있는 현묘한 법진이다. 아무래도 상고 향신도(香神道)의 비전인 응향금제(凝香禁制) 같군. 향신도는 일찍이 상고 시기에 멸문했거늘, 이 금제가 아직도 전해질 줄이야.”

소요경 안의 화령자가 기뻐하며 말했다.

“향신도?”

“상고의 문파로,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허나 일반 백성의 신앙의 힘을 모을 수 있는 신통으로 문하 제자들이 포교하여 모은 신앙의 힘으로 경지를 정진했지. 그 특별한 수련법으로 상고 시기에는 꽤 유명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며 구슬을 쓰다듬었다. 이것만 있으면 감정의 힘을 모으기가 훨씬 수월해질 터였다.

심협은 원하는 물건을 얻었느니 곧장 숙소로 돌아갔다.

한데 심협이 사라진 곳에서 멀지 않은 허공에 더 투명한 누군가가 조용히 서 있었다. 낮에 심협에게 숙소를 안내해줬던 백풍이었다.

그는 사라지는 심협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사라졌다.

* * *

이틀 뒤, 심협의 숙소.

방 안의 탁자에 옥갑이 놓여 있었고, 안에는 신기한 영과가 들어 있었다.

이 열매의 가장자리에는 푸른 잎사귀가 달려 있었고, 중간에 통통한 손바닥 같은 황금색 열매가 맺혀 있었다.

심협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 열매가 바로 대라불수였다. 대당 관부에 이 열매가 없었기에 원천강과 설례는 천궁에서 이 보물을 교환해 왔다.

“대라불수가 확실하다. 게다가 연수가 3천 년을 넘었으니 태청단을 만들기에 넉넉하겠군.”

화령자도 방 안에서 대라불수를 살펴보더니 말했다.

심협은 서적에서 대라불수의 기록만 봤지 실물을 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화령자의 말을 듣고는 안도했다.

“대라불수까지 얻었으니까 이제 태청단만 만들면 되는 건가.”

“심협, 찬물을 끼얹어서 미안한데, 태청단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재료는 비취지란이다. 한데 네가 가진 지란은 양이 부족해서 한 번 만들 양밖에 되지 않아. 그러니 반드시 최고의 연단대사를 찾아가 부탁해야 한다. 혹시라도 실패하면 모든 것이 끝이야.”

심협 역시 이미 이 문제를 고려하고 있었다.

인간 세계의 대종문에서 연단에 가장 정통한 것은 보타산이다. 저번에 흑곰 요괴가 그에게 가져다준 화련단의 품질도 최고였다. 그러니 태청단을 만들기로 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곳이 보타산이었다.

“이미 생각해놨으니까 문제없어.”

심협이 환하게 웃었다.

반나절 뒤, 청과 홍의 둔광이 장안성을 떠나 먼 곳으로 날아갔다. 바로 심협과 섭채주였다.

섭채주는 보타산 제자들을 이끌고 장안성으로 와서 청련선자와 합류한 뒤 줄곧 이곳에 머물렀다.

심협은 장안성에 있는 보타산 주둔지에서 섭채주를 만나 연단을 부탁했다. 섭채주는 당연히 흔쾌히 승낙했고, 심협과 함께 보타산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잠깐만, 채주야. 들를 곳이 있어.”

심협은 장안성을 나오자마자 둔광을 멈추고 음령산맥을 바라봤다.

“오라버니, 음령산맥 고분에 가보고 싶은 건가요?”

섭채주는 이미 심협으로부터 음령산맥의 고분에 관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고분 깊은 곳의 군혼(軍魂)은 엄청난 재산이야. 원래 그것들은 땅속 깊은 곳에 숨어 있어야 하는데 청구 호족과 요족들이 장안성을 공격할 때 고분까지 들어갔다 왔으니 군혼이 발각됐을지도 몰라. 확인해봐야겠어.”

“그래요, 그럼 지금 가봐요.”

전신편 안의 서혼대진도 심협이 말해준 바 있기에 섭채주도 군혼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바로 음령산맥으로 향했고, 곧 고분에 도착했다.

둘은 곧장 고분 가장 아래층에 도착했는데, 순식간에 안색이 변했다. 봉인되어 있던 군혼들의 별기둥이 모조리 부서져 땅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별기둥 안의 군혼들은 보이지 않았고, 일말의 음기조차 남지 않았다.

“내 예감이 맞았어. 군혼들을 누군가 먼저 빼갔어.”

심협은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부서진 기둥의 흔적을 봐서는 최근 일 같은데 누구 소행인지는 알 수가 없네요.”

섭채주가 부서진 기둥을 주워 들고 말했다.

평정을 되찾은 심협은 창혼주를 발동하여 부서진 기둥에 남아 있는 기운을 살폈다. 약간의 마기가 느껴졌다.

“마족?”

청구 호족은 마족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으니 놀랄 일은 아니지만, 마족 중 누구의 짓인지 알고 싶었다.

그는 임랑환을 바라봤다. 안타깝게도 옥침을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힘을 다 모으려면 한참 멀었기에 과거로 넘어가 살펴볼 수는 없었다.

“군혼이 이미 사라졌으니 여기 더 있어도 의미가 없겠군. 가자.”

심협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고, 두 사람은 바로 그곳을 나왔다.

* * *

장안성 밖. 심협과 섭채주는 나란히 걷고 있었다.

청련선자는 이미 다른 제자들을 이끌고 먼저 남해로 돌아간 터라 섭채주는 심협과 함께 방촌산에 들렸다가 보타산으로 가기로 했다.

두 사람이 걷고 있는데 성 밖 길옆으로 작은 찻집이 보였다. 본래 쉬고 갈 생각은 없었지만, 나이 많은 노점상이 그들을 불렀다.

“손님들, 잠시 쉬었다 가시죠. 제가 금방 차 한잔 올리겠습니다.”

심협은 왠지 반가워하며 섭채주와 함께 낡은 탁자를 잡고 앉았다.

주위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대성, 무슨 연유로 저희를 부르셨습니까? 그것도 이런 식으로요?”

그 말을 듣자 허리를 숙이고 즐거운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찻물을 주려던 노인이 멈칫하더니 찻주전자를 탁자 옆에 내려놨다.

“노손의 칠십이 변화를 이렇게 금방 파악하다니. 이 녀석, 못 본 사이에 신식의 힘이 크게 정진했구나. 하하하!”

노인도 위장하지 않고 바로 인정했다.

“대성의 기운은 참으로 독특하니까요. 대성께서 끝까지 모르쇠로 나오셨다면 저도 확신하지 못하고 제가 잘못 봤나 했을 겁니다.”

섭채주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나자 그제야 상황을 알 것 같았다.

“대성, 솔직히 말씀드리면 안 그래도 지금 방촌산으로 가서 보리선조께 산하사직도를 돌려드릴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붙드시다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죠?”

“스승님의 명으로 네게서 산하사직도를 받아가기 위해 왔다.”

여전히 노인의 모습을 한 손오공이 두 사람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잘됐네요! 이번에 청구산 호족 일이 워낙 시급해 먼저 처리하느라 제때 돌려드리지 못했으니 대성께서 선조님께 잘 좀 말씀해주십시오.”

심협이 송구해하며 말했다.

“청구국 일은 대당 관부가 이미 방촌산에 연통을 넣어 선조님께서도 알고 계시니 괜찮다.”

손오공이 부채를 흔들고 웃으며 말했다.

“다행입니다.”

심협도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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