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042화 (1,042/1,214)
  • 1042화. 혼백을 불러오다

    심협은 머릿속이 어지러워지고 손발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굴에는 슬픔, 기쁨, 걱정 등등의 감정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깜짝 놀라 서둘러 신식을 거두고 부주진신법을 시전했다. 그제야 몸을 제어할 수 있었고, 표정과 감정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수년간의 수련으로 육화명의 칠정검결이 칠정을 다루는 경지에 도달했군.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어.”

    원천강이 기쁜 듯 외쳤다.

    “원 국사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

    심협의 물음에 원천강은 표정이 멍해졌고 머뭇거리며 말을 아꼈다.

    “아, 제가 너무 당돌했습니다.”

    심협은 자신의 실언을 깨닫고 얼른 웃으며 공수했다.

    “하긴, 심 소우는 외부인이 아니니 숨길 것도 없겠지. 칠정검결에 대해서는 백소천에게 들었겠지?”

    원천강이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 백형이 말하길, 이 검결은 칠정에 지배되어 체내의 잠재력을 끌어냄으로써 본래의 힘을 뛰어넘는 위력을 발휘한다고 했습니다.”

    심협이 대답했다.

    “맞는 말이긴 하나 칠정검결의 진짜 신통은 그게 아닐세. 이 검결은 지부의 어떤 선배가 육도윤회를 깨닫고 창안한 절세의 공법으로, 최고 경지까지 수련하면 윤회의 판과 소통하여 전생의 기억과 힘까지 불러올 수 있다네.”

    “전생의 힘이라니요! 육형의 전생이 평범하지 않다는 뜻입니까?”

    심협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렇다네. 육화명의 전생은 유명한 대검객이었지.”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는 묻지 않았다.

    원천강은 정교금이 심혈을 다하는 만큼 육화명의 칠정검결 수련을 도울 중대한 목적이 있었다. 반면 자신은 그렇지 않으니, 대당 관부와 아무리 친하다 해도 남의 사생활까지 알아내려 들어서는 안 될 터였다.

    이제 몸이 완전히 유리처럼 투명해진 정교금이 갑자기 양손으로 기이한 법인을 맺었다.

    쾅!

    굉음과 함께 유리 불꽃이 떠오르더니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자 정교금의 몸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한 줄기 금빛이 그의 몸에서 나와서 육화명의 몸으로 들어갔다. 정교금의 경지가 갑자기 빠르게 정진하여 잠시 후에는 진선 후기 절정에 도달했고, 태을기까지 반걸음도 남기지 않았다.

    이 무렵, 정교금의 몸은 완전히 타버려 허무로 돌아갔다.

    육화명의 경지도 멈추었고, 몸의 금빛도 사라지면서 금고가 해제됐다.

    육화명은 금고되어 있던 와중에도 오감은 남아 있었기에 심협과 원천강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

    “스승님…….”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육화명은 정교금이 사라진 곳을 향해 엎드렸다. 한참이 지나도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원천강은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고는 소매를 휘둘렀다. 하얀 빛이 반짝이더니 방 앞에 선 자들이 모습이 흔들렸고, 이내 사라졌다.

    * * *

    눈앞이 다시 밝아져 보니 이전에 있었던 대전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원천강이 있었으나, 설례와 호도는 나타나지 않았다.

    “국사님, 방금 정 국공이 전수할 때 제 손을 빌려 그 정백을 뽑아내시지 않았습니까? 분명 국공 대인을 구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당연히 사실이네.”

    기대가 담긴 심협의 물음에 원천강이 담담하게 웃고는 소매를 휘둘렀다.

    주먹만 한 붉은 구슬이 허공에 나타났다. 구슬은 정광으로 빛나고 있었는데, 바로 방금 뽑아냈던 그 정백이었다.

    뒤이어 원천강이 초록색 부적을 꺼내 부스러뜨리자 부적은 수많은 초록 빛으로 흩어졌다.

    “심 소우, 계속해서 황제내경으로 이 정백을 보호해주게.”

    심협이 눈을 반짝이더니 손을 들었다. 초록 빛이 손에서 빠져나가 붉은 구슬 안의 정백을 감쌌다.

    이를 본 원천강은 양손을 차륜처럼 결인했다. 수많은 법결이 초목(草木)처럼 변해 구슬 안으로 들어갔다.

    ‘백초소혼결(百草召魂訣)! 원천강이 이걸 어떻게?’

    소요경 안에서 화령자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오자, 심협도 흠칫 놀랐다.

    원천강의 술법을 따라 부적이 변한 수많은 초록빛도 구슬 안에 모여들어 스며들었고, 구슬 안의 정백은 점점 커지면서 기운 파동도 강렬해졌다.

    이 광경을 본 심협은 일순 넋이 나갔다.

    “화령자, 이게 백초소혼결이라고? 어떤 술법이지?”

    “백초소혼결은 상고 신농 일족의 비전술로, 흩어진 신혼을 모을 수 있다. 혼비백산해도 제때 술법을 사용하면 온전히 소환할 수 있다고 들었다.”

    이 말에 심협은 눈빛이 달라진 와중에도 황제내경으로 정백을 보호했다.

    * * *

    어느덧 반 시진이 지났다.

    붉은 구슬 안의 정백은 몇 배나 커져 형체를 갖춘 신혼 소인이 되었다. 그 얼굴은 정교금과 비슷했지만, 아직 두 눈을 감은 채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원 국사님, 역시 대단하십니다. 정 국공이 방금 시전한 것은 모종의 헌제(獻祭) 비술이라 이미 혼비백산했을 텐데, 국사께서 그것을 다시 모아서 혼으로 만드신 것이겠죠?”

    “심 소우의 황제내경과 비교하면 언급할 가치도 없는 사소한 재주일세.”

    원천강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정 국공의 혼백은 이제 괜찮은 겁니까?”

    “내 이미 전력을 다해 흩어진 혼백을 다시 불러왔으니 생명은 보장되었네. 다만 다시 살려내려면 한 번 더 계획을 짜야 할 것이네.”

    “그래도 다행입니다.”

    그 말에 심협은 안도했다. 정교금은 그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었는데 부활할 희망이 있다고 하니 그도 기뻤다.

    “심 소우, 정 국공 일은 당분간 비밀로 하게. 특히 육화명에게 말일세.”

    “어째서입니까?”

    “육화명의 칠정검결은 아직 대성을 이루지 못했네. 슬픔이 그 신통의 진전을 빠르게 해주지. 때가 되면 그에게는 내 직접 말하겠네.”

    “알겠습니다.”

    “고맙네.”

    원천강이 뒤이어 소매를 휘두르자 대전 주위에 하얀 광막이 나타나 사방을 가득 메웠다. 바깥의 모든 소리가 차단됐다.

    “국사께서 뭔가 따로 물으실 게 있는 모양이군요.”

    “심 소우와 대화하면 괜한 힘이 들지 않아서 편하군. 확실히 긴히 의논할 일이 있다네. 심 소우, 지금의 삼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원천강이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최근 들어 요족의 움직임이 빈번해지고 요조(妖祖)마저 이 일에 끼어들었습니다. 마족도 다시 움직이려 하고 있으니, 그들의 목적은 아마도 신마의 우물이겠죠.”

    “정확하게 봤네. 내 알기로 소우는 벌써 몇 번이고 신마의 우물과 관련된 사건에 관여했지. 한데 신마의 우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신마의 우물은 천지영기와 마기의 요충지로, 혈맥이 순수하지 않은 요족에게는 큰 매력이 있습니다. 이 우물 안에 있는 순수한 마기가 그들의 혈맥의 힘을 단련하여 천존의 경지로 올라갈 수 있게 해준다고 들었지요.”

    심협은 원천강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랐지만, 아는 대로 답했다.

    “정확하네. 신마의 우물에는 확실히 그런 능력이 있지. 분명 평범한 요족이 신마의 우물의 힘을 얻게 되면 실력도 크게 정진한다네.”

    원천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우물이 우리 인간족에게도 어떤 효과가 있습니까?”

    “당연히 있다네. 신마의 우물에 담긴 것은 가장 순수한 영력으로, 인간족 수사는 그 영력을 이용하여 육신을 단련하고 법력을 순수하게 할 수 있지. 이 정순한 힘은 한계를 돌파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네. 다만, 우리 인간족은 여와 대신이 만들어낸 존재라, 요족처럼 대대로 전승되는 혈맥의 힘이 없지. 하여, 신마의 우물은 우리 인간족에게는 그저 약간의 도움만 될 뿐, 반드시 필요한 물건은 아닐세.”

    “전에 유소짐에게 듣기를 인, 선 두 종족이 신마의 우물을 점령한 지 오래라 요, 마 두 종족의 불만이 크다 하였습니다. 일전에 사타령의 요족들이 마왕채과 결탁하여 방촌산을 공격한 것도 그곳의 입구를 통해 신마의 우물로 들어가기 위함이었고, 이번에 장안성을 공격한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알고 있습니다. 도대체 신마의 우물로 들어가는 입구가 몇 개나 되는 겁니까?”

    안 그래도 우물에 대해 궁금했던 심협은 마침 원천강이 먼저 그 화제를 꺼내주었으니 이참이 궁금했던 점들을 물어보기로 했다.

    “모두 세 곳이라네. 자네도 알다시피 보제 비경과 장안성에도 있는데, 방촌산은 현재 봉산하였지. 천정, 능파성, 오장관에서 제자들을 파견하여 그곳을 지키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네. 장안성의 입구는 내 이미 술법으로 봉인했고, 천정과 화생사, 천기성, 보타산에서 제자들을 파견하여 지켜주기로 했지. 요족들이 다시 이곳을 공격하기는 쉽지 않을 걸세.”

    “그럼 세 번째 입구는 어디에 있습니까?”

    예상과 달리 원천강이 순순히 답해주자 심협은 의외라 생각했지만, 사양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

    “세 번째 입구는 본래 서천영산에 있었는데, 백 년 전 마겁이 강림했을 때 그 입구가 갑자기 사라졌다네. 지금까지 서천영산은 다른 일을 뒤로 미루고 암암리에 사라진 신마의 우물을 찾고 있지만, 아직 찾지 못했지.”

    원천강이 고개를 저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여기까지 들은 심협은 평온한 표정과 달리 마음속에는 거친 파도가 몰아쳤다. 신마의 우물에 관해 물은 것이 후회될 지경이었다. 원천강이 이런 기밀을 아무 생각 없이 말해줬을 리 없기 때문이었다.

    심협은 슬며시 원천강을 돌아봤는데, 그는 평온한 표정이었으나 입가에 은근히 미소를 띠고 있는 것 같았다.

    “신마의 우물 입구는 공간의 통로 같은 것일 텐데, 그런 게 사라질 수도 있습니까?”

    심협은 원천강이 도대체 무슨 생각인 것인지 떠보기 위해 다시 물었다.

    “그곳은 분명 공간의 통로이지만, 또한 영성이 강하네. 그러니 강력한 공간의 힘이라면 그것을 옮겨가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그 말에 심협은 대뜸 의심이 들었다.

    ‘요족이나 마족의 소행인가?’

    그러나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정말로 그들의 손에 넘어갔다면 굳이 방촌산과 장안성을 공격할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영산에 신마의 우물이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습니까?”

    “많지 않네. 신마의 우물이 세 곳이 모두 있었을 때, 삼대세력이 각자 입구의 힘을 동원하여 세 장의 공간 영부를 만들었네. 접촉하면 세 곳의 신마의 우물을 감지할 수 있게 대비한 것이지. 영산의 신마의 우물이 사라진 뒤 그곳에서 사람을 보내 내게 도움을 청했지만, 당시부터 대당의 정세가 불안하여 여태 돕지 못했네.”

    원천강은 뒤이어 은백색 영부를 꺼냈는데, 신비한 부문이 가득했다. 그가 이 영부를 살짝 흔들자 은백색 파동이 일어나 부근의 허공에 파동이 일어났다.

    “원 국사께서 이 일을 제게 말씀하신 것은 제게 서천영산의 신마의 우물을 찾도록 도와달라는 의미입니까?”

    원천강의 의도를 어느 정도 알아챈 심협은 내심 안도했다. 신마의 우물 입구만 찾는 것이라면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이 일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돼. 세상에는 비밀이 없는 법. 영산의 신마의 우물이 사라진 것을 요마 두 종족이 모를 리가 없다. 만약 네가 찾으러 나서면 그들과 충돌하게 될 거야. 신마의 우물을 찾는 것은 큰 공이라 서천영산이 큰 보상을 해줄 텐데, 쉬운 일이면 원천강이 진즉 사람을 보내서 찾았겠지 너한테 부탁을 했겠느냐.”

    화령자의 목소리가 심협의 머릿속에 들려왔다.

    “정확하네. 지금 요마, 두 종족이 신마의 우물를 노리고 있지.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신마의 우물은 천지영력의 원천이니 야심 가득한 자들의 손에 넘어가서는 안 되네. 대당 관부는 벌써 몇 번이나 난을 겪어 전력이 크세 손상됐고, 본문은 장안성 입구를 지키는 중이라 여력이 안 되네. 심 소우, 믿을 만한 자가 많지 않으니 염치 불고하고 이렇게 부탁하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지금 저의 경지가 진선 후기 절정이 된 터라 태을기 돌파에 집중해야 하니 지금은 국사님의 부탁을 들어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심협의 거절에도 원천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괜찮네. 내 그대에게 부탁한 것은 바로 가서 찾아달라는 게 아니니까. 태을기 돌파에 성공한 후, 유람할 때 주의 깊게 찾아주게. 그거면 된다네.”

    심협은 의아했다. 생각보다 너무 쉬운 조건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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