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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41화 (1,041/1,214)

1041화. 검명(劍鳴)

“원 국사님, 설 대인, 감사합니다.”

심협은 크게 기뻐하며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대라불수를 구해 바로 태청단을 제련한다면 태을기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세 사람은 한가로이 대화를 나눴다. 설례는 차갑고 엄숙해 보이긴 해도 예의 바르고 신뢰가 가는 힘이 있어서 대화하는 동안 심협은 경계심이 반으로 줄었다.

“육화명에게 청구 대전 때의 내상 때문에 남아서 치료하느라 늦어졌다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무탈한 것 같군.”

“국사님 덕분입니다.”

“청구산 대전에 대해서는 육화명에게 들었네만, 유소짐과 호조 관련해서는 많이 알지 못하더군. 자네가 자세하게 들려주겠나?”

“예.”

심협은 두 호족에 대해 이야기했다. 물론 화령자나 명홍도, 세계수 그루터기 등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숨겼다.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후 원천강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청구 호족의 저력은 예상보다 강력했습니다. 혹시 국사께서는 대연무량천기진의 존재와 장안성을 공격한 검은 여우의 근원이 청구산임을 미리 아시고 저희를 청구산으로 보내신 것은 아닌지요?”

심협이 원천강에게 물었다.

장안성으로 오는 동안 그는 화령자와 함께 청구산의 모든 전투를 복기해봤다. 그 결과, 대연무량천기진이 청구 호족이 일으킨 모든 계획의 핵심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청구산에 나타난 호조 법상이나 장안성의 거대한 검은 여우 모두 대연무량천기진을 통해 나타난 것이다. 원천강을 비롯한 강자들이 장안성에서 대연무량천기진의 힘 절반을 제압하지 않았다면 청구산의 연합군은 청구 호족의 상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심협은 주명에게서 청구 대전 당시 장안성의 전황을 들었는데, 원천강은 청구산 쪽의 상황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점술은 한계가 있어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네. 그저 장안성에 나타난 여우와 청구 호족이 관련 있을 거라는 생각에 양쪽에서 싸워 어느 쪽이라도 승리하면 될 것이라 여겼을 뿐이네.”

원천강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원천강의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국사님, 제가 이번에 뵙기를 청한 것은 중요한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육형 등이 청구산을 떠난 후로 조사를 해봤는데, 여러 단서를 찾아냈습니다.”

그는 옥침으로 시공간을 넘어본 일까지 모두 설명했다. 원천강은 본래 옥침에 대해 알고 있으니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

“소부자가 역시 옥침을 고쳐줬군. 그 보물은 시공간 법칙 신통이 시공간을 넘나드는 것이니 역시 신기한 물건이로군.”

원천강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청구 호족이 여러 성을 공격했던 것이 모두 감정의 힘을 모으기 위함이었군! 그렇다면 마족도 역시 이 일에 참여한 것인가!”

설례는 옥침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고 눈을 번득였다. 그의 등에서는 금색 창이 웅웅 떨려왔는데, 당장 뛰쳐나가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 것 같았다.

“마족이 청구 호란에 참여한 목적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유천이 말한 북명거린이 중요한 단서 같긴 한데, 혹시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대당 관부가 마족의 동향을 살펴보게 함으로써 향후 마족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바로 대응하게 함과 동시에 북명거린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다.

“북명거린? 들어본 적 없네.”

원천강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설례도 아무 말이 없는 것을 봐서는 모르는 것 같았다.

심협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화령자나 원천강 같은 해박한 존재들조차 모르다니, 북명거린을 조사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가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북명거린은 그들만이 사용하는 명칭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설례가 갑자기 말했다.

“일리가 있군. 그렇게 따지니 생각나는 것이 있긴 하네.”

원천강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게 무엇입니까?”

“북명거린의 이름이 거린이면 크기가 매우 큰 것이겠지. 북명이라는 두 글자는 북명해와 연관이 있어 보이네. 이전에 서적에서 북명해의 이수인 북명곤(北冥鯤)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 매우 거대하고 온몸을 뒤덮은 비늘은 불과 번개로도 뚫을 수 없다더군. 북명해에만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누군가는 동해에서 그 흔적을 발견했다기도 하네.”

“그럴 가능성도 있겠군요.”

화령자도 북명거린과 북명해를 연관해 추측한 바 있기에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그는 북명곤에 대해 물어보려 했다.

한데 그때였다. 거대한 검의 울부짖음이 멀리서 들려왔고, 땅도 미세하게 떨려왔다.

이 검명(劍鳴)에는 극도로 날카로운 검의가 담겨 있어서 심협 체내의 열여섯 자루 순양검도 소동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는 표정이 급변해 검명이 들려오는 곳을 돌아봤다. 멀지 않아서 대당 관부 내가 분명했다.

“휴우, 국공 대인이 결국은 여기까지 온 건가.”

원천강도 그곳을 돌아보며 탄식했다.

설례 역시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순식간에 빛줄기가 되어 사라졌다.

“정 국공이라뇨?”

심협이 놀라서 물었으나, 원천강은 대답하지 않고 소매를 휘둘러 하얀 빛으로 자신과 심협을 뒤덮었다. 하얀 빛에서 진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눈앞이 밝아졌고, 다음 순간 심협은 어느 건물 근처에 나타났다.

설례와 한 백발노인이 무거운 표정으로 건물 밖에 서 있었고, 그 건물에서는 두껍고 큰 하얀 빛줄기가 하늘 끝까지 솟아올랐다.

신식을 펼쳐 건물 안의 상황을 살펴보니,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바로 정교금과 육화명이었다.

육화명의 몸 주위에는 몇 줄기 금빛이 감돌았는데, 무언가에 갇힌 듯한 모습이었다.

맞은편의 정교금은 매우 늙어 보였고, 칠흑 같던 수염과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었으며, 강인하던 근육은 한없이 약해져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눈빛만큼은 유달리 날카롭게 번득였다.

정교금은 오른손을 육화명의 머리에 얹은 상태였는데, 손에서는 끊임없이 금색 부문이 흘러나와 이 제자의 몸으로 주입되고 있었다.

육화명은 온몸이 하얗게 빛났고, 상랭구주가 머리 위에서 웅웅 떨었다. 하늘 끝까지 솟구친 하얀 빛줄기는 바로 상랭구주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

“정 국공께서 저렇게 변하시다니! 지금은 무얼 하고 있는 겁니까?”

심협은 정교금의 모습을 보고는 경악하며 물었다.

“정 국공은 호족에게 조종당하여 도기가 완전히 붕괴된 탓에 기름이 다 떨어진 등불처럼 되어버렸네. 죽기 전에 본명원기와 수년간의 수련과 깨달음을 육화명에게 전수해주고 있는 걸세.”

원천강의 설명에 심협은 표정이 급변해 신식으로 두 사람을 살폈다. 다음 순간, 그곳에서 사라져 방 안 정교금 옆에 나타나더니 오른손으로 점혈했다.

그의 손끝에서 여덟 개의 영롱한 초록색 빛이 뿜어져 나와 정교금의 허리와 복부 사이의 여덟 군데 요혈을 찔렀다. 바로 생사팔문이었다.

방 안의 설례와 백발노인이 이 광경에 깜짝 놀랐다. 특히 심협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던 백발노인은 노발대발했다.

“이런 방자한! 네놈은 누구냐? 당장 멈추지 못할까!”

노인이 호통을 치며 소매를 휘둘렀다.

여든한 개의 은빛 은침이 소매에서 빼곡하게 날아갔다. 은침은 심협의 몸 곳곳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는데, 아무런 소리도, 기운의 파동도 없었다.

그때, 하얀 빛이 반짝이더니 모든 은침을 휩쓸었다. 원천강이 나선 것이다.

“호도대사, 멈추시오! 심 도우는 대당 관부의 벗이지 결코 적이 아니오.”

“저자가 국공 대인을 해할 뜻이 없다는 것은 저도 압니다! 허나 국공 대인은 지금 전수 중이라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랬다가는 정 국공이 생명을 잃을 뿐더러 육 현질의 신혼도 중상을 입을 겁니다!”

“호도대사, 안심하시오. 심 도우는 비록 어리지만 경지가 깊고 또 신중하니 다 계산이 있을 게요.”

원천강이 평온한 표정으로 말하며 소매를 휘두르자 은침들은 호도에게 돌아갔다.

호도는 여전히 머뭇거리는 기색이었지만, 이내 은침을 전부 거뒀다.

한편, 심협은 당연히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황제내경을 운공하여 여덟 개의 초록색 빛을 안개처럼 바꿔 아무런 방해 없이 정교금의 몸에 주입했다. 이에 전수 자체에는 아무런 영향도 가지 않았다.

초록색 빛은 활기찬 생기가 가득하여 정교금은 정신이 돌아왔고, 간신히 고개를 들어 심협을 돌아봤다.

“심협, 자네도 왔는가. 다시는 못 보고 가는 줄 알았네. 허허.

정교금은 쉰 목소리로 말하며 기운 없지만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국공 대인, 잠시 멈추십시오. 제게 대인의 목숨을 구할 방법이 있습니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여 기운을 흘려보내십시오!”

“지금 자네가 시전하는 공법이 범상치 않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네. 다만,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안다네. 육신만이 아니라 신혼의 힘까지 착취당하여 수년간 수련한 심지로 간신히 마지막 원기를 지키고 있는 걸세. 신농(神農)이 부활한다 해도 날 구하지 못할 것이니, 괜히 애쓰지 말게.”

그 말에 심협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아직 황제내경을 높은 경지까지 수련하지 못했다. 만약 육신의 중상이나 신혼의 부상 치료라면 자신이 있지만,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은 현재 단계에서는 불가능했다. 그러니 고집을 부리다가는 자칫하면 정교금의 전수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한데 그때였다.

“심 소우, 지금 자네가 시전한 것이 황제내경인가? 원모가 당돌하게 자네의 법력 절반을 빌려 조종하는 것을 용서하게나!”

원천강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더니, 그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심협의 몸 반쪽과 법력 절반이 갑자기 제어를 잃었다. 왼손이 허공으로 올려져 보이지 않는 힘으로 정교금의 몸을 뒤덮었다.

정교금 머릿속의 신혼이 흔들리더니 정백(精魄)이 강제로 밖으로 뽑혀 나왔다.

“심 소우, 술법을 시전하여 이 정백을 보호해주게. 그럼 정 국공에게 일말의 생기가 생길지도 모르네.”

원천강의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울려 퍼지자 심협은 기뻐하며 황제내경의 호혼집법(護魂之法)을 시전하여 정교금의 정백을 감쌌다.

하얀 빛이 정교금의 머릿속에서 빠져나와 순식간에 심협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심협의 눈앞이 밝아지더니 그도 방 밖으로 돌아갔고, 몸의 제어권도 돌아왔다.

그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청구산에서 호조의 힘을 장악한 도산설, 유소짐과 연달아 싸우면서 실력이 상당히 올라왔다 여겼는데 원천강의 수단에는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심협은 곧장 마음을 추스르고는 원천강에게 전음을 보냈다.

“국사님, 방금……?”

“심 소우,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말게.”

원천강이 전음으로 답하자 심협은 말을 아꼈다.

한편, 이 무렵 정교금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더욱 강해진 오른손의 금빛이 육화명의 몸으로 주입되고 있었다. 미간에서도 정광이 뿜어져 나와 육화명의 머릿속으로 주입되었다.

정교금의 몸은 빠르게 투명해졌다. 체내의 경맥과 혈육이 마치 어떤 비술에 착취당한 것만 같았다.

반대로 육화명의 기운은 점점 더 강해져 갔고, 표정에는 칠정검결의 기쁨, 분노, 두려움, 생각, 슬픔, 놀람, 걱정이 연달아 나타났다.

두 사람의 상황을 지켜보던 중, 육화명이 감았던 두 눈을 번쩍 뜨자 두 줄기 희미한 광망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매우 방대한 신혼의 힘이 머릿속에서 폭발했다.

심협은 전신편의 서혼대진으로 신혼의 힘이 태을 단계로 돌파했는데, 육화명의 신혼의 힘에 비교하면 아직도 약했다.

‘육형의 신혼의 힘이 이렇게 강해지다니!’

그는 매우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데 육화명의 신혼의 힘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일곱 가지 서로 다른 성질의 혼력은 불처럼 뜨겁기도 하고 물처럼 부드럽기도 했으며, 매우 변화무쌍했다.

두 사람의 신식이 만난 순간, 육화명의 신식이 갑자기 뒤엉켜 오더니 심협의 신식을 흡수할 기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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