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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40화 (1,040/1,214)
  • 1040화. 봉상(封賞)

    “오늘 여러분을 모신 것은 설례가 대당 관부를 맡게 되었다는 증인을 세우기 위함이기도 하나, 또한 여러분과 함께 청구 호족을 어떻게 처리할지 상의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청구산 쪽의 호족은 패배했지만, 절반의 세력이 건재한 데다 호조가 부활하였으니 우습게 볼 수 없습니다.”

    원천강이 자리에 앉고는 말했다.

    “청구 호족은 감히 각지의 성을 공격하고 각 문파의 장로와 제자 그리고 수많은 백성을 죽였으니 이 죄는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저는 모든 종문이 연합하여 추살령(追殺令)을 내릴 것을 건의합니다. 청구 호족이 어느 구석에 숨어 있든지 반드시 찾아내 모조리 멸하여 이 원한을 갚아야 합니다!”

    이정이 가장 먼저 큰소리로 외쳤다.

    “아미타불. 그렇게 모두 죽이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빈승이 들은 정보에 의하면 청구 호족이 이번에 성을 공격한 것은 모두 유소짐의 지시였답니다. 이 요족은 이미 죽었고 대다수 호족은 그녀에게 속은 것이니 죽을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호조가 부활한 지금, 청구 호족을 상대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공동선사가 합장하며 말했다.

    “공동선사의 말은 틀렸습니다. 요족은 우리 인, 선 두 종족과 본래부터 틈이 있었으니 이런 이족 요물들에게는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습니다. 청구 호족을 완전히 제거해야만 후환이 남지 않습니다. 호조를 상대하는 것이 걱정이라면, 우리 천정이 천병과 천장을 파견하여 이 대요를 처리하리다!”

    이 말에 청련선자와 공동선사, 금갑 청년 모두 표정이 변했다.

    삼계에는 대당 관부나 화생사, 보타산, 오장관, 방촌산 같은 큰 종문이 많은데, 문파의 정교한 도법과 실력이 뛰어나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문파들도 천정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고, 심지어 힘을 합친다 해도 적수가 되지 못한다.

    유일하게 천정에 비할 수 있는 곳은 서천영산(西天靈山)인데, 당삼장이 서경을 취한 이후로 서천영산은 봉산(封山)에 가까울 정도로 세상일에 간섭이 적었다. 자연히 서천 불문도 오랫동안 인간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반면 서천영산과 달리 천정은 근래까지 빈번히 하계의 일에 간섭했다.

    인간 세계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어서 대문파들과 요, 마 두 종족이 서로 철저하게 나누고 있었기에 천정의 이런 움직임에 몇몇 대종문은 일찍부터 은근히 경계해왔다.

    만약 천정 대군이 내려온다면 인간 세계의 모든 세력권을 잠식하려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청련선자와 공동선사, 금갑 청년의 표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이 도우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다만, 삼계의 정세가 바뀌어 청구 호족뿐만 아니라 다른 요족도 우리 인, 선 두 종족과 조금씩 멀어지고 있지요. 그러니 천정 대군이 내려와 호족을 칠 생각이라면 다른 요족도 함께 제거하여 천하에 태평을 가져다주는 게 어떻습니까?”

    그곳에 있는 사람 중 유일하게 담담했던 원천이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그, 그건……?”

    이정의 표정이 변했다.

    인간 세계의 요족들은 세력이 막강하다. 다른 곳은 말할 것도 없고 사타령의 세 요왕들만 해도 껄끄러운 존재였다. 이들이 찾아오면 천정은 매우 조심스럽게 대접했다. 세 요왕의 배후에는 서천영산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요족 세력, 예를 들어 화과산과 적뢰산, 반사동 등도 쉽게 볼 수 없다. 그러니 인간 세계의 요족을 전부 쓸어버리겠다는 말은 이정도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었다.

    청련선자 등은 이정이 난처해 하는 모습을 보고는 내심 통쾌했다.

    “이 도우도 본인의 의견이 타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으니 다시 상의해봅시다.”

    원천강이 담담하게 말했다.

    * * *

    심협은 최대한 서둘러서 장안성으로 향했다. 지금 그의 속도라면 하루도 걸리지 않아 도착할 터였다.

    몇 차례 혼란을 겪은 이 천하제일 거성(巨城)은 이미 만신창이였지만, 대당은 국력이 강성하여 성 곳곳이 재건되었고 활기가 넘쳤다.

    심협은 아직 복구되지 않은 곳을 보면 안타까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금세 회복해가는 대당에 대한 자부심이 솟구쳤다. 장안성은 절반이 무너졌지만, 대당의 국력이면 반년도 되기 전에 과거의 휘황찬란한 모습을 되찾을 터였다.

    대당 관부로 향하고 있는데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심 도우십니까?”

    심협이 멈추고 돌아보자 검은 옷을 입은 청년이 멀리서 날아오고 있었다. 천기성을 방문했을 때 두 번이나 자신의 수발을 들어준 주명이었다.

    “주 도우! 장안성에는 무슨 일로 오셨소?”

    심협은 반가우면서도 의아해 물었다.

    “심 도우를 만나기 위해 왔습니다. 심 도우께서 언 사형에게 준 물건을 성주님께서 매우 중히 여기시어 곧바로 천기성의 모든 창고를 조사하여 심 도우께 필요한 재료를 모두 모았습니다. 제가 전해드리러 온 것이고요.”

    주명이 둥근 고리 모양의 저물 법기를 꺼내 공손하게 두 손으로 건넸다.

    심협은 천기성에 부탁한 일이 이렇게 빨리 결실을 맺을 줄은 몰랐기에 감탄하며 저물 고리를 받아서 신식을 넣었다. 그곳에는 세 개의 물건이 들어 있었다. 그중 하얀색 영충(靈蟲)은 몸이 백옥으로 만든 것처럼 맑고 투명했으며 아홉 개의 하얀색 영문이 어렴풋이 보였다.

    “옥맥구향충!”

    심협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이미 진선 후기 절정에 도달해 이제 태을기로 들어설 준비를 해야 했는데, 천기성이 이토록 빨리 태청단에 필요한 주재료 중 하나를 보내준 것이다.

    두 번째 물건은 사발만 한 금색 돌덩이였는데, 반짝거리는 금빛에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구천금정!”

    심협은 이번에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천기성이 정말로 구천금정을 찾아낸 것만 해도 놀라운데 그것도 이렇게 클 줄이야. 이전에 찾은 금정까지 더하면 현황일기곤의 위력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심협은 경지가 올라가면서 현황일기곤의 위력이 따라오지 못했는데 이제 이 곤봉의 위력을 더 높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세 번째 물건은 머리통만 한 옥갑이었다.

    옥갑을 열어보니 각종 재료가 빼곡히 들어 있었는데, 태청단의 나머지 부재료들이었다. 이 부재료들은 그리 진귀한 편은 아니지만, 전부 모으자면 번거로운 데다 시간도 오래 걸릴 터였다.

    천기성이 모든 재료를 모아줬으니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

    이제 주재료는 대라불수 하나만 있으면 된다.

    “성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심 도우께서 천기성에 베푼 은혜에 비하면 부족하니 본문의 제자들이 다른 재료를 모으는 대로 보내드리겠다 하셨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니 더 찾지 않아도 되오. 또한 애초에 이런 재료와 교환하기 위해 그것을 천기성에 준 것은 아니니, 이 점을 주 도우가 소부자 성주님께 좀 전해주시오.”

    “성주님께 전하긴 하겠는데, 성주님께서 어떻게 나오실지는 저도 모르겠군요.”

    주 도우가 당황하며 말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대화를 나눴는데, 장안성의 전쟁 상황이 주된 주제였다.

    대화를 마친 후, 심협은 대당 관부로, 주명은 장안성의 천기성 주둔지로 향했다.

    심협이 대당 관부 입구에 도착하자 육화명이 맞이하러 나왔다.

    “심형, 정말로 왔군! 한데 어찌 이리 오래 걸렸나? 상처는 다 나았나?”

    육화명이 반가워하며 심협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는 이상할 정도로 기뻐했는데, 기운의 파동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다만 육화명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이전보다 몇 배나 예리해서 가까이 다가가자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였다.

    ‘칠정검결! 위력이 청구산에 있을 때보다 더 강해졌군. 한데 대당 관부 안에서 왜 검결을 시전하고 있는 거지?’

    심협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따져 묻지는 않았다.

    “이미 다 나았소. 한데 정말로 왔다니, 그게 무슨 뜻이오? 내가 오늘 올 줄 알고 있었소?”

    “원 국사께서 대당 관부 입구를 지키다가 자네가 오면 맞이하라고 오늘 새벽에 전갈을 보내오셨네.”

    새벽만 해도 청구산에 있었던 자신이 오늘 올 것을 원천강이 미리 알았다니, 천존 경지에 들어선 이후로 점복(占卜) 신통이 입신(入神)의 경지에 오른 듯했다.

    “원 국사님의 신통은 역시 대단하구려. 원 국사님과 정 국공을 뵈려고 온 것이니 육형께서 안내 좀 해주십시오.”

    그는 순식간에 수만 가지 생각을 떠올리며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지난 싸움에서 중상을 입으셔서 지금 요양 중이시라 현재 대당 관부는 설례 대인께서 이끌고 계시네. 마침 지금 원 국사님과 내청에서 논의 중이시니 안내해 주겠네.”

    육화명이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 국공께서 중상을? 마침 최근에 치료 신통을 수련했는데 효과가 나름 괜찮으니 국공께 도움이 될지도 모르오.”

    그가 말한 치료 신통은 당연히 황제내경으로, 이 공법이면 아무리 심한 부상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정교금은 그동안 자신에게 잘 대해줬으니 그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심형의 호의에 스승님을 대신에 감사하네. 사실 원 국사께서 이미 치료에 능한 분을 모셔와서 스승님을 치료 중이니 안심하게. 우선 설례 대인과 원 국사께 안내해 주겠네.”

    육화명이 앞장서서 안내했고, 두 사람은 금방 어느 대전에 도착했다.

    원천강은 조용히 대전에 앉아 있었는데, 그의 기운은 매우 허무하고 희미하여 마치 구름 같기도 하고 안개 같기도 했다.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옆에는 금갑 청년이 서 있었는데, 극도로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저 사람이 설례인가? 태을기 고수 같군. 대당 관부에 저런 존재가 있었다니, 숨은 인재로구나.’

    심협의 감각에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마저 뚫을 한 자루 신창이 서서 광망을 만 장까지 뿜어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원천강과 정반대였다.

    “국사님, 설례 대인.”

    육화명이 공수하며 예를 올렸고, 심협도 공수로 예를 올렸다.

    “심 소우, 고생 많았네. 역시 도우는 날 실망시키지 않는군.”

    원천강이 웃으며 말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합친 덕분에 사명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심 도우, 겸손할 것 없네. 내 육화명과 다른 대당 관부 제자들로부터 그대의 활약을 모두 들었네. 공을 따지면 그대가 바로 수훈(首勳) 공신일세.”

    설례는 이렇게 말했지만, 표정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원 국사님, 설례 도우. 과찬이십니다. 전 그저 대당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허허, 심 소우의 심성에 내 깊이 감복했네. 허나 대당 조정은 공을 세우면 반드시 상을 내리지. 다른 이들도 모두 상을 받았으니 심 소우가 상을 안 받으면 말이 안 되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뭐든지 말해보게.”

    “심형, 나와 백형, 섭 소저도 모두 조정의 상을 받았으니 사양하지 말게.”

    원천강의 말을 육화명이 받았다.

    “국사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염치 불구하고 대라불수를 청합니다.”

    “대라불수? 그건 선품의 영재라 대당 관부 보물 창고에도 있을지 확실치 않군. 사람을 보내서 알아보겠네. 창고에 없다면 내가 다른 곳을 찾아서라도 반드시 구해주지.”

    설례가 곧바로 손을 들어 사람을 부르려 했다.

    “아닙니다. 제가 가서 찾아보겠습니다.”

    육화명이 자진해 나섰다.

    “그것도 좋겠군. 그럼 부탁하네.”

    설례가 고개를 끄덕이자 육화명이 곧장 멀리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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