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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39화 (1,039/1,214)

1039화. 구사일생

푸른 채찍이 미소의 몸을 휘감자 반경 수십 장의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갇힌 것처럼 멈췄다. 심지어 미소의 몸에서 반짝이던 영광도 멈춘 상태였다.

“네가 각성한 것은 금고 부류의 법칙이구나. 훌륭하긴 한데 법력이 너무 약해.”

미소의 몸에서 갑자기 눈부신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을 휘감은 여섯 개의 채찍이 차례대로 부서져 수많은 푸른색 부문이 되어 호불귀의 꼬리로 흘러 들어갔다.

호불귀는 중상을 입어 뒷걸음질 치며 피를 뿜었다.

그때, 하얀 광환이 옆의 허공에서 번개처럼 날아와 호불귀를 뒤덮었다.

호불귀는 억제된 법력을 강제로 운공하여 피하려 했으나, 눈앞의 허공에서 하얀 파문이 일더니 그 안에서 한 쌍의 눈동자가 나타나 기이한 마력을 뿜어냈다.

호불귀는 모든 정신이 그 눈동자와 마력에 집중되었고, 우뚝 멈췄다.

하얀 빛의 고리가 내려와 호불귀의 몸을 묶었다.

“호조님, 힘을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함부로 쓰시면 안 됩니다. 필요하신 게 있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하얀 빛의 고리가 날아온 곳에서 파문이 일더니 백의의 소녀가 나타났다.

소녀의 머리에 자란 두 개의 귀를 봐서는 청구 호족인 듯했고, 한 손에는 두꺼운 서적을, 다른 손에는 옥으로 만든 하얀 붓을 들고 있는 모습이 다소 어리숙해 보였다.

하지만 두 눈을 자세히 바라보니 백의의 호족 소녀는 두 눈동자가 심연처럼 깊고 어두웠다. 어렴풋이 보이는 두 개의 소용돌이가 천천히 돌았는데, 마치 사람의 신혼을 깊이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동술을 거둬라. 너의 미천동술이 최고 경지에 도달했다고는 하나 아직은 원만하지 못하니 그 위력을 제어할 수 없다. 호불귀는 경지가 약하여 장시간 너에게 조종당하면 신혼이 손상을 입는다. 청구 호족은 인재가 부족하니 재능 있는 자는 소중히 대해야 한다.”

미소는 멍하니 서 있는 호불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백의의 호족 소녀가 눈을 감았다가 뜨자 눈동자의 기이한 소용돌이가 사라졌다.

호불귀는 몸을 크게 떨더니 눈빛이 맑아졌고, 미소와 백의의 소녀를 힐끗 보고는 바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의 몸을 둘러싼 하얀 빛의 고리에서 강력한 금고의 힘이 뿜어져 나와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입을 벌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백의의 소녀는 호불귀를 무시하고 도산설 옆으로 다가가더니 안타까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다가 붓을 들어 그녀의 미간에 댔다. 순수한 요력이 깊은 바다에 빠진 것처럼 주입되었지만, 도산설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아이는 유소짐에게 호조의 힘을 빼앗기면서 본명원기가 크게 손상되고 경맥도 메말라가기 시작했다. 그런 방법으로는 그녀를 살릴 수 없어.”

미소도 다가오며 그렇게 말하자 백의의 소녀는 움찔했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요력을 도산설의 몸에 주입했다.

“어리석은 것.”

미소가 고개를 가볍게 젓고는 한숨을 쉬었다.

법력을 주입할수록 백의의 소녀는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고 숨이 차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도산설은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멈춰라. 넌 지금 태을기로 돌파할 관문에 있으니 원기가 손상되어서는 안 된다.”

미소가 눈살을 찌푸리며 소매를 휘두르자 백의 소녀의 술법이 끊겼고, 뒤로 세 걸음 물러났다.

“호조님, 부디 이 아이의 목숨을 구해주십시오.”

백의의 소녀가 미소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내 경지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으니 이 아이를 구할 방법은 일월도과(日月道果)를 사용하는 것뿐이다. 그 열매는 네가 천존 경지로 들어설 희망인데 괜찮겠느냐?”

“제가 진 빚이 너무나 큽니다.”

백의의 소녀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유소짐의 음모와 호조의 힘을 계승할 때 생길 위험을 너는 저 아이에게 모두 말해줬다. 다만 이 아이의 심지가 굳건하지 못해 복수에 눈이 멀어서 이 지경이 된 것뿐인데 네가 무슨 빚을 졌다는 게냐!”

미소의 호통에도 백의의 소녀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瞳)아, 넌 도산설과 달리 총명하고 냉정하며 안목 또한 예리하다. 청구 호족 중 오직 너만이 내 정체를 간파했지. 청구 호족의 미래가 모두 네게 달려 있으니 경거망동하지 말아라.”

미소가 부드럽게 말했다.

“호족의 첫째 공주이면서 청구국과 모든 문파의 전쟁을 막지 못하고 어머니가 죽어가는 것을 바라만 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도산설까지 중상을 입었으니 이 모든 것은 제 잘못입니다. 만약 도산설을 구하지 못한다면 제 심경(心境)에 심마가 생겨 천존 경지는커녕 태을기도 순조롭게 돌파하지 못할 것입니다.”

백의의 소녀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청구국 첫째 공주? 도산동(塗山瞳)! 도산설의 언니 도산동이었어! 내가 왜 당신을 기억하지 못한 거지?”

옆에서 듣던 호불귀가 눈을 번쩍 뜨며 소리쳤다.

그의 머릿속에 한 폭의 그림이 떠올랐다. 청구산에서 도산동과 만났던 기억들이었다.

호불귀는 소름이 돋았다. 청구 호족의 땅이 익숙지 않았던 그가 어떤 청구 호족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 유소짐의 정보도 알아봤는데, 그때 정보를 알려준 사람은 모두 도산동이었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났던 곳은 어두운 대전이었다. 마치 정보를 교환하고 있는 듯했다. 호불귀가 떠나려는 순간, 눈앞이 갑자기 하얗게 변하더니 그는 의식을 잃었다.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왜 내가 당신을 완전히 잊어버린 거지?”

호불귀가 소리쳤다.

“이미 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도산동의 미천동술에 그녀 스스로 각성한 법칙의 힘을 더하면 두 눈이 마주치는 순간 상대의 신혼을 조종할 수 있지. 누군가에게 자신의 존재를 잊게 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미소가 바라보며 말했다.

“저의 신통 경화수월(鏡花水月)입니다. 본래 그대를 이용하여 유소짐의 계획을 무너트릴 생각이었는데 안타깝게도 마지막에 모든 공이 무너졌어요. 그래서 경화술을 시전하여 청구산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요. 당신은 나 때문에 여러 번 위험에 빠졌었지요. 정말 미안했어요.”

도산동이 호불귀에게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세상에 그런 신통도 있단 말인가?”

호불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기까지 설명한 미소와 도산동은 호불귀에게 신경을 끄고 서로를 바라봤다.

미소와 눈이 마주친 도산동의 눈빛은 확고했고,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다.

“그리 결정했다면 네 맘대로 하거라.”

미소가 무심하게 내뱉고는 호두만 한 푸른 영과를 꺼냈다. 그 위에는 어떤 신비하고 현묘한 무늬가 가득했다.

푸른 영과가 미소의 손에서 날아오르더니 보이지 않은 힘에 끌려 도산설에게로 날아갔다. 뒤이어 미소가 손을 가볍게 흔들자 도산설의 입이 벌어졌고, 푸른 영과가 쏙 하고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호조님!”

도산동은 기뻐하며 절을 올렸다.

미소는 덤덤한 얼굴로 결인하여 하얀 빛으로 도산설의 몸을 뒤덮었다.

“이상한 일이군. 도산설의 생사팔문(生死八門)에 원기가 주입된 흔적이 있구나. 이 상고의 치료 비술은 오래전에 실전됐는데 나 말고 또 누가 알고 있는 거지?”

미소가 조금 놀란 듯 중얼거렸다.

“생사팔문! 도산설은 쭉 호불귀와 같이 있었으니 그가 알고 있을 겁니다.”

도산동은 두 눈에서 기이한 빛을 발하며 호불귀를 돌아봤다.

호불귀의 눈에서 광망이 은은하게 빛났다. 미소가 가리킨 곳은 심협이 이전에 그에게 시전했던 치료 지법(指法)이었다. 그 치료법에 이런 엄청난 의미가 있을 줄은 몰랐다.

미소의 표정도 흔들렸지만, 그녀는 말없이 손가락을 칼처럼 하여 도산설의 가슴 복부 곳곳을 연달아 찍었다. 심협이 이전에 호불귀를 치료할 때 썼던 수법과 똑같았다.

부드러운 푸른 빛이 도산설의 입에서 퍼지더니 빠르게 온몸에 흘렀다. 희미하고 약했던 기운이 갑자기 빠르게 회복되었고, 창백한 안색도 점점 혈색을 되찾았다.

도산동이 감동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미소에게 감사의 절을 올렸다.

“가자.”

미소가 소매를 휘두르자 회백색 안개가 외딴집 전체를 뒤덮었다.

“무엇 하는 게요!”

호불귀가 다급히 외쳤다.

미소는 그의 외침을 무시했고, 회백색 안개가 빠르게 짙어지면서 그 일대를 완전히 뒤덮었다.

안개가 사라졌을 때, 외딴집과 그 안에 있던 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 * *

장안성 대당 관부의 어느 좁고 긴 의사청(議事廳).

청련선자와 이정, 공동선사 등이 좌우로 나뉘어 앉아 있었다.

세 사람 외에도 영웅호걸의 풍모가 느껴지는 금색 갑옷의 청년이 서 있었는데, 등에 맨 금색 창의 기운과 하나로 합쳐져 서로를 구분할 수 없었다.

청련선자는 눈을 감은 채 정양하고 있었다. 이정은 칠보영롱탑을 쉬지 않고 쓰다듬었고, 공동선사는 눈을 감은 채 한 손을 세워서 선주(禪珠)를 만지작거렸다. 금갑의 청년은 가만히 서서 유달리 빛나고 섬뜩한 예망이 번뜩거리는 눈으로 문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아 분위기가 매우 무거웠다.

그때,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원천강이 무거운 표정으로 들어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원 국사, 정 국공의 상처는 어떻습니까?”

이정이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정교금은 호족이 시전한 비술에 조종당하여 거대한 검은 여우의 그릇이 되었는데, 다행히 천존 경지로 돌파한 원천강이 전투 중에 이 여우의 몸을 뚫고 들어가 그를 구해냈다. 그러지 않았다면 부상이 심했던 정교금의 몸 상태로는 끝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원천강이 구해내긴 했어도 부상이 너무 심해 지금까지도 치료 중이었다.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국공 대인은 안 그래도 부상이 심했는데 그 여우에게 본원의 힘을 절반이나 흡수당해 지금 기름이 떨어진 등불과 같은 상태입니다.”

원천강이 고개를 내저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정말로 방법이 없는 겁니까?”

금갑 청년이 황급히 물었다.

“지금 호도대사(胡圖大師)께서 국공 대인을 보살피고 있으니 하늘의 뜻에 맡기는 수밖에…….”

원천강이 탄식하자 그들도 서로를 바라볼 뿐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호도대사는 대당 황실의 공봉(供奉)으로, 치료와 구제에 능했다. 의료와 회복으로 명성이 자자한 보타산도 그보다 뛰어나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었다.

“정 국공의 일은 자신의 조화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설령 운 좋게 살아남는다 해도 실력은 절반 이상 줄어들 겁니다. 그래서 폐하와 상의하여 설례(薛禮)가 대당 관부를 맡는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원천강이 금갑 청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미타불. 정 국공은 의로운 자라 하늘이 도울 것이니 아무 일 없을 겁니다. 또한, 설 도우라면 호란 뒤의 소동을 충분히 잠재울 수 있을 터. 감축드립니다.”

공동선사가 불경을 읊으며 말하자 청련선자 등도 일제히 금갑 청년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급갑 청년, 설례는 이 일을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담담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포권하여 답례하고는 바로 함께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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