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033화 (1,033/1,214)
  • 1033화. 신수(神樹)

    “대도법칙이란, 천지 만물에 담긴 현묘함을 말한다. 조금만 깨달아도 우리 같은 수사의 수련이나 법보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이익이 있지. 사실, 선기라는 것도 대도법칙이 담긴 법보라고 할 수 있어.”

    “그럼 명홍도가 생명의 정혈과 신혼을 흡수하고 성장하는 것도 이 선기에 담긴 대도법칙의 신통이란 말이지?”

    심협이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역시 바보는 아니구나! 이런 흉악한 대도법칙은 매우 드물지. 예부터 지금까지 이런 선기는 몇 없었다. 그대로 내버려둬서 명홍도의 힘이 어떤 한계를 돌파한다면 영지가 생기거나 환골탈태하여 모습이 변형되어 진정한 절세의 흉마(凶魔)가 될지도 모른다.”

    “그럼 큰일이지. 그럼 헌원 황제는 명홍도 안에 어떤 금제를 넣어놓은 거야? 돌려서 말하지 말고 속 시원하게 얘기해줘.”

    “참을성 좀 기르면 안 되겠나? 아무튼, 헌원 황제가 명홍도에 어떤 금제를 넣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단, 한 가지는 확실해. 이 금제는 명홍도의 핵심본원을 봉인했을 뿐, 대도법칙을 봉인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도 명홍도에 다른 사람의 정혈과 신혼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는 거고. 다만 흡수한 혈혼(血魂)의 힘이 핵심본원으로 녹아 들어가지 못하고 도신(刀身)에만 축적되어 있다가 발동하면 뿜어져 나오는 게다. 그렇게 축적한 혈혼의 힘이 많으면 많을수록 공격력이 강해지는 거지.”

    “그랬군. 헌원 황제는 왜 그런 고생을 한 거지? 그냥 이 도를 완전히 봉인하면 더 안전하지 않았을까?”

    심협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으나, 이어서 이번에는 고개를 갸웃했다.

    “명홍도의 대도법칙은 흡수류에 속하는데, 이런 신통은 강력한 영성이 있다. 이를 완전히 봉인하면 산 사람이 단식하는 것과 같으니, 명홍도에 상처가 가거나 혹은 완전히 파손되고 만다.”

    “그렇구나.”

    헌원 황제는 아무래도 보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전에 명홍도의 흉성이 아직도 남아 있고 헌원 황제의 봉인이 풀리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헌원 황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총명한 사람인 것 같다. 이 도의 도심(刀心)은 봉인되어 있고 겉의 살기는 네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이니 앞으로 걱정하지 않고 이 도를 마음껏 써도 될 게야.”

    화령자가 명홍도를 돌려주며 덧붙인 마지막 말에 심협의 귀가 번쩍 뜨였다. 이 명홍도의 위력에 푹 빠졌지만, 화령자의 경고 때문에 함부로 사용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럴 걱정이 사라진 것이다.

    그는 명홍도를 챙겨 넣고 선천연보결로 연화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다른 보물을 살폈다. 현황일기곤과 혈백원번은 약간의 손상을 있었을 뿐이었다. 순양비검 몇 자루는 영성에 손상을 입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기에 잘 온양하면 원기를 회복할 수 있을 터였다.

    파손이 가장 심한 것은 천두금준으로, 내부의 금제가 완전히 부서졌다. 그러나 다행히 이 법보 안의 수많은 재료의 영성이 아직 남아 있어서 다시 만들 수 있을 듯했다. 화령자가 있으니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천두금준에 가장 중요한 구천금정이 부족했고, 심협은 현재 혈백원번이라는 위력이 더 강력한 방어 법보가 있으니 급할 것은 없었다.

    자질구레한 일을 마친 심협은 소매에서 금빛을 쏘아 보내 훼멸명왕을 감싸고는 소요경 안으로 넣은 뒤, 눈을 감고 계속 수련하려 했다.

    “어라? 심협, 이건 뭐냐?”

    갑자기 들려온 화령자의 목소리에 심협은 눈을 뜨고 신식을 소요경 안으로 넣었다.

    화령자가 손에 검은색 물체를 들고 있었다. 돌 같은데 위에는 나뭇결이 있었고, 기운도 매우 기이했다.

    “어디서 난 건데?”

    “어디서 나기는, 훼멸명왕이랑 같이 왔지. 몰랐어?”

    화령자의 반문에 당황한 심협이 주위를 둘러보니 멀지 않은 곳에 방금 그 돌과 같은 검은색 물체가 또 있었다. 그는 소매를 휘둘러 끌어왔다.

    이 물건이 손에 닿자 따뜻하고도 단단한 가운데 부드러운 것이 돌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신식으로 살펴보니 이 물건의 기운은 비록 기이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기억을 더듬던 심협은 이내 기억해냈다.

    “이건 조령 조각상의 파편이야!”

    “조령 조각상!”

    화령자의 흥분된 목소리와 함께 갑자기 소요경 공간이 열리더니 그가 밖으로 나왔다. 그는 모습을 드러내기가 무섭게 부서진 호족 조령 조각상 앞으로 다가가더니 유심히 조각상 터를 살폈다.

    호법을 서던 섭채주가 영문을 알 수 없어 돌아보니, 심협이 화령자를 방해하지 말라는 손짓을 했다.

    “그래, 확실해. 이건 세계수의 파편이야!”

    화령자가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 말했는데,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세계수?”

    그 말을 들은 심협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세계수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것은 아니었다. 이 나무는 상고의 신수로, 이미 거의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한데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그래서 소요경 공간 너머에서도 이 여우 조각상의 기운이 이상하다고 느꼈던 거였군. 역시 그랬어. 이건 세계수의 목재를 조각하여 만든 거다.”

    “나도 전에 세계수 파편을 본 적이 있는데, 생김새나 기운이 전혀 달랐어.”

    심협이 다가오며 말했다.

    이전에 오장관의 백과선회에서 누군가 이 물건으로 오장관의 선과와 교환하려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봤던 세계수는 노란색에 토속성 영력이 가득했었다. 한데 눈앞에 있는 이 파편에는 순수한 음기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세계수는 천지에서 진귀한 영목으로 모든 원기를 흡수하는 신통이 있으니 흡수한 원기가 다르면 기운도 달라진다.”

    화령자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설명했다.

    “모든 원기를 흡수한다니!”

    그가 들고 있는 이 파편의 음기는 매우 순수했고 또 사라질 기미조차 없어서 천성적인 음속성 영목과 다를 것이 없었다. 한데 그게 다 음기를 흡수해서 이렇게 된 것이란 말인가!

    그는 양팔의 풍뢰영문을 발동하여 뇌전의 힘을 조각상 파편에 주입했다.

    금뢰의 힘은 음기와 상극이라 조각상 파편의 검은색이 빠르게 사라졌다.

    이어서 조각상 파편에서 흡입력이 생겨나 금뢰의 힘을 흡수하더니 금세 금색 뇌광으로 빛났고, 빠르게 퍼져갔다.

    잠시 후, 심협이 들고 있던 파편은 금색 영목이 되어 있었다. 겉에서는 수시로 가느다란 금색 뇌전이 번쩍였다.

    “이럴 수가!”

    심협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금뢰의 힘을 흡수한 것도 놀라웠지만, 이토록 작은 파편이 1할의 법력으로 발동한 금뢰를 흡수했다는 점이 더욱 놀라웠다.

    옆에 있던 섭채주도 눈을 반짝이며 심협이 들고 있는 파편을 바라봤고,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말았다.

    “고작 그 정도로 놀라다니. 세계수는 상고 시기에 인간계와 천계를 관통하는 신수였으니 그런 힘이 있는 거다.”

    “세계수가 인간 세계와 천계를 관통했다고?”

    천계는 구천 위의 지극히 먼 곳으로, 진선의 존재인 심협도 누군가의 안내가 없으면 함부로 갈 수 없는 곳이다. 한데 세계수가 그곳까지 닿아 있었다니, 서적에서 이 신수를 가리켜 천지를 잇는 다리라고 할 만했다!

    “그래. 나도 아주 오래전에 옛 서적에서 본 것인데, 천지가 개벽했을 때, 처음에는 선족, 인간족, 마족 모두 인간 세계에 살았다. 이후 부주산 천주가 붕괴하고 천궁이 붕괴했으며, 홍수가 대지를 뒤덮는 등 수많은 천재가 일어나 인간 세계에 수많은 생명이 죽자 여와 대신이 오색석으로 천궁을 막았다. 그제야 그 화가 비로소 진정됐지.”

    심협은 옛날이야기를 듣는 아이처럼 귀를 쫑긋 세웠다.

    “하지만 그 일들로 인해 인간 세계의 지맥이 흔들리자 영기가 나날이 희박해지고 탁기(濁氣)가 왕성해졌다. 탁기를 배척하지 않는 인간족이나 마족과 달리 선족은 영기의 근원에서 탄생한 존재이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가야만 했다. 그렇게 이동하던 그들은 곤륜산에서 하늘을 관통하는 건목(建木)을 발견했고, 그 나무를 타고 올라가 천계를 찾아냈지. 그때부터 건목에 세계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심협과 섭채주는 흥미진진한 화령자의 상고 비화를 들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식견이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럼 곤륜산에는 지금도 세계수가 있어?”

    심협이 기다리지 못하고 물었다.

    “상고 때 세계수는 누군가에 의해 잘려서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화령자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고, 심협 역시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늘을 관통하는 나무를 직접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누가 세계수를 자른 거죠?”

    “그건 나도 모른다.”

    섭채주의 물음에 화령자는 고개를 저었다.

    심협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설명을 마친 화령자는 사방으로 흩어진 조각상 파편을 찾아서 조령 조각상 터에 쌓는 동시에 양손을 결인하여 어떤 신통을 시전하려 했다.

    “뭐 하는 거야?”

    심협이 궁금한 듯 물었다.

    “청구 호족이 어째서 세계수로 조령 조각상을 만들었는지 궁금해서.”

    “세계수는 모든 원기를 받아들일 수 있으니 호조의 힘이나 다른 힘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그런 것 아니겠어?”

    “그럴 수도 있지. 다만, 아까 대연무량천기진을 제어할 때 이 조각상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거든. 그래서 혹시나 해서 살펴보려는 거다.”

    화령자는 설명하는 동안에도 손으로 비술을 시전했다. 그러자 손끝에서 붉은 빛이 날아가 모든 조각상 파편을 감쌌다.

    파편들에서 갑자기 수많은 붉은 실이 떠오르더니 서로 합쳐져 눈 깜짝할 사이에 조각상 절반이 다시 만들어졌다. 나머지 절반은 섭채주의 약목신궁에 완전히 부서진 터라 남은 파편은 이것뿐이었다.

    화령자는 두 사람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하고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붉은 빛줄기가 절반의 조각상으로 들어갔다. 조각상에서는 갑자기 파문 같은 붉은 빛이 떠올랐는데, 모종의 탐색 신통인 듯했다.

    화령자는 부서진 조각상 터 옆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서 무언가를 열심히 들어 올렸다.

    심협과 섭채주는 말없이 기다렸다.

    “오라버니, 저 세계수 파편을 두 개 정도만 주실 수 있나요?”

    섭채주가 전음으로 심협에게 물었다.

    “물론이지. 그런데 어디다 쓰려고?”

    “보타산은 오행술과 회복비술 외에도 특수한 보석비술(寶石祕術)에도 능해서 특수한 재료를 본명 정혈에 더하면 각종 기이한 보석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그 보석들을 법보에 넣으면 위력이 강해지죠. 세계수는 상고의 신목이고 또 원기를 저장하는 이능이 있으니까 목속성 보석을 만들기에 최적의 재료예요.”

    섭채주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보석비술?”

    이전에 만났던 보타산 제자들을 생각해보니 적지 않은 이가 법보에 기이한 보주를 꽂아서 법보의 위력을 높였다. 보타산의 특별한 연보(煉寶) 비법이라 생각하긴 했는데 그게 바로 보석비술인 모양이었다.

    “그래, 이따 줄게. 그런데 그 특수한 보석은 외부인도 사용할 수 있어?”

    심협은 보석비술에 호기심이 생겼다.

    “보석비술은 본문의 공법을 근간으로 삼을 필요가 없으니 구결만 알고 있으면 외부인도 사용할 수 있어요.”

    섭채주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주위를 둘러보고는 초록색 옥간을 몰래 심협에게 건넸다.

    심협이 이를 받고 신식을 넣었다.

    옥간에는 수많은 보석 제작법과 발동술이 적혀 있었는데, 보석마다 효과가 달랐다. 어떤 것은 공격력을 높여줬고 어떤 것은 방어력을 높여줬으며 또 어떤 것은 영화(靈靴), 비주 종류 법보의 속도를 높여줬다.

    법보 자체의 위력을 높여주는 평범한 보석만이 아니라 희귀한 보석도 있었는데, 그것은 법보에 새로운 능력을 부여할 수 있었다. 공격 보석을 법보에 꽂으면 발동하여 공격할 때마다 5할의 확률로 2차 피해를 줄 수 있고, 흡령(吸靈) 보석은 전투 중에 상대의 법보에 담긴 영력을 흡수하여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위력을 낮출 수 있었다. 게다가 이 보석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에 자신의 피를 떨어트리면 주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 보석비술은 부적이나 법보와 달라서 새로운 세상을 여는 듯했고, 심협은 식견이 한층 넓어졌다. 다만 안타깝게도 연제 과정이 너무 복잡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데, 지금은 할 일이 많으니 한가하게 제작할 시간이 없었다.

    심협은 세계수 파편을 조금 남겨서 자신이 연구하고 나머지는 섭채주에게 줘서 보석을 만들어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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