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032화 (1,032/1,214)
  • 1032화. 선기(仙器)

    청구성에서는 몇몇 연합군 수사가 동맹이고 뭐고 보물 앞에 이성을 잃은 채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다행히 육화명 등 각 문파의 대표들이 제자들을 단속하였기에 큰 소통은 일어나지 않았다.

    * * *

    청구산으로부터 수백 리 떨어진 어느 산의 정상. 미소는 바위 위에서 눈을 감은 채 가부좌하고 있었다.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두 손으로 든 암홍색 구슬을 끊임없이 운공하며 그 안에 담긴 힘을 흡수했다.

    잠시 후, 그녀의 두 눈이 천천히 떠졌고, 구슬은 점점 그녀의 가슴으로 녹아 들어가 사라졌다.

    미소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한층 더 강해져서 태을 절정에 도달했다. 이제 천존 경지까지 한 걸음 남겨둔 상태였다.

    저 멀리 청구성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은은하게 빛났다.

    그때, 미소 뒤에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뭉쳐졌다. 장안성에서 봉을 들고 있던 검은색 그림자였다. 그는 수만 리를 가로질러 청구산까지 이른 것이다.

    “본체를 다시 찾은 것을 감축드리오.”

    검은 그림자가 껄껄 웃으며 미소를 향해 포권했다.

    “경지도 다 회복하지 못했는데 축하받을 일이 뭐가 있겠소?”

    미소는 상대의 등장에도 놀라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신혼이 본체에 돌아가고 기운이 형체로 돌아가면 절정의 실력으로 회복되는 것은 금방이거늘, 어찌 그리 겸손을 떠시오?”

    검은 그림자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의 합작은 이미 끝났을 텐데 날 무슨 일로 찾아온 것이오?”

    미소가 차가운 눈으로 검은 그림자를 힐끗 노려보며 물었다.

    “합작이 끝났다니? 그대는 완전히 부활했지만, 우리는 장안성에서 신마의 우물이 있는 곳도 아직 못 찾았소!”

    검은 그림자가 웃음을 거두며 차갑게 대꾸했다.

    “그게 사실이오? 내 이미 장안성 사상천시대진의 근본을 뒤흔들었는데도 그대의 눈으로 신마의 우물 입구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대가 자랑하던 두 눈이 그리 쓸모없을 줄은 몰랐구려.”

    “장안성의 신마의 우물이 있는 곳은 찾아냈소. 다만, 마지막 고비에서 원천강 그 망할 작자가 그곳을 봉인해 버렸으니 계략을 다시 짜야 하오. 그대는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순수한 원기를 보충해야 하지 않소? 이번에도 함께해보겠소?”

    검은 그림자가 야릇하게 웃으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이전에는 장안성의 수비가 약했기에 쉽게 성공했지만, 이 격변으로 대당은 방촌산처럼 방어를 강화할 것이오. 게다가 원천강까지 있으니 그대와 나, 둘이서 장안성에 갔다가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텐데?”

    “당연히 우리 둘만으로는 어렵겠지. 허나 신마의 우물에 관심을 보이는 요족은 많지 않소? 그들과 함께한다면 어렵지 않을 것이오.”

    “청구 호족은 이번에 피해가 워낙 커서 힘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오. 그러니 한동안은 이 일에 참여할 겨를이 없을 것 같소.”

    미소가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삼계의 대란이 곧 닥쳐올 것이니 천존 경지에 도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소. 그대는 비록 전생의 힘을 회수했으나 새로 태어난 몸은 평범한 청구 호족에 불과하고 혈맹의 힘도 순수하지 않지. 그러니 호조의 힘만으로 천존의 경지를 돌파하는 것은 무리요. 한번 잘 생각해보시오.”

    검은 그림자는 불쾌했는지 눈빛이 어두워졌다.

    미소는 검은 그림자의 말에 흔들렸는지 생각에 잠겼다.

    그때였다.

    “두 선배님께서 대화하시는 일에 저도 흥미가 있는데, 저희가 동참해도 되겠습니까?”

    허공에서 갑자기 공간 파동이 일렁이더니 세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이전에 유소짐을 도왔던 그 회의인들이었다.

    미소는 그들을 보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으나 의외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너희가? 정말 신마의 우물을 열고 싶은 건가?”

    검은 그림자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차갑게 비웃었다. 그들에게 적의가 있는 듯해 보였다.

    “인, 선 두 종족이 신마의 우물을 차지한 지 오래되었으니 이제 주인이 바뀔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회의의 노인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희는 호 도우와 다르니 너희들과 힘을 합칠 생각은 없다. 물러가라.”

    검은 그림자는 거침없이 거절했다.

    “어찌 이리 매정하게 거절하십니까? 우선 저희의 의견을 들어본 다음에 거절하셔도 늦지 않을 겁니다.”

    회의의 노인은 화를 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저들이 지금 나타난 것은 나름의 준비가 있기 때문일 테니 우선 얘기는 들어보도록 하죠, 원(猿)형.”

    미소가 시선을 돌리며 말하자, 검은 그림자도 그녀를 바라봤다.

    두 사람이 아무 말도 없자 회의의 노인이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주위에 갑자기 대량의 검은 안개가 나타나 그곳에 있는 모두를 뒤덮었다.

    잠시 후, 검은 안개는 사라졌고 그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 * *

    청구국 뒤쪽의 산 정상. 심협은 시도를 중단한 상태였다.

    치우무결과 황제내경은 모두 경천동지할 신통인 만큼 두 개를 융합하여 현양화마신통 안으로 넣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다만 그는 몇 번의 시도로 어느 정도 감을 잡았기에 세 개의 공법을 융합할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의 옆에는 거대한 언갑인 훼멸명왕이 누워 있었다. 방금 그가 산 중턱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심협은 신식으로 언갑의 상태를 자세히 살폈다. 이 언갑은 그의 가장 중요한 전력이었기에 절대로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됐다.

    안타깝게도 훼멸명왕의 파손은 심각했는데, 특히 몇 번이나 심협을 대신해 공격을 받아내면서 가슴을 관통까지 당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발동하느라 안에 있던 금제에도 적지 않은 손상이 생겼다.

    그래도 다행히 훼멸명왕의 근본이 훼손되지는 않았기에 수리는 가능했다.

    심협에게는 천언궁에서 얻은 대량의 언갑 재료가 있었고, <천언진경>에는 훼멸명왕의 제조법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게다가 비록 언사는 아닐지라도 화령자라는 절정의 연기술사가 있으니 훼멸명왕의 수리는 걱정할 것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심협은 조금 안심이 됐다.

    육화명 등은 아직 청구성에서 보물을 찾는 중이었기에 심협은 유소짐과 소효를 비롯한 청구 호족들의 법보와 저물 법기를 꺼내 자세히 살펴봤다.

    우선 유소짐의 법보를 탐색했다. 가장 강력한 것은 역시 은색 지팡이와 설백의 은거울이었다. 이름은 옥휘장(玉輝杖)과 설화환경(雪花幻鏡)으로, 두 법보 모두 금제가 64도에 도달해 있었다.

    옥휘장은 무슨 재료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단단하기로는 현황일기곤 못지않았다. 지팡이 안의 금제는 순양검과 비슷하게 예리한 공격 금제였다. 64도의 금제가 한꺼번에 폭발한다면 그 위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단번에 훼멸명왕의 몸을 관통한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설화환경의 금제는 환술과 금고 위주로, 거울 안에는 특수한 공간이 있었다. 짙은 은색 광망과 기이한 부문으로 가득한 이 공간은 심협의 식견으로도 그 금제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또한, 거울 공간 가장 깊은 곳에 무언가 있었는데, 아직 연화하기 전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다.

    다른 자들에게서 가둬들인 법보는 상대적으로 평범했기에 지금의 심협에게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법보들을 거둔 뒤 저물 법기 안의 다른 물건들을 살펴본 심협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청구 호족은 역시 상고 시기부터 전해 내려온 종족답게 자원이 풍부했다. 저물 법기 안의 물건들은 상당했는데, 특히 유소짐의 저물 법기에만 해도 선옥이 수십만 개가 들어 있었다. 훼멸명왕의 힘을 발동하기 위해 10여만 개의 선옥을 썼는데, 전부 보상을 받고도 넉넉히 남았다.

    다른 진귀한 재료도 매우 많았지만, 심협을 만족시킨 것은 오직 한 가지 물건이었다.

    소매를 휘두르자 사람 머리통만 한 보라색 정석이 나타났다. 그 위에는 뇌정 같은 신비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황량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렇게 큰 선령뇌석(仙靈雷石)을 얻게 될 줄이야. 이제 뇌신추를 고칠 수 있겠어!”

    뇌신추는 일전에 명홍도에 잘려나갔으나 마땅한 재료가 부족하여 지금까지 수리하지 못했다. 선령뇌석과 뇌신추는 근원이 같으니 이제 수리할 수 있을 터였다.

    “선령뇌석! 천계에만 있는 유일한 선석이지. 수만 년 전, 천정이 천형대(天邢臺)를 만들기 위해 10만 천병을 파견하여 이 뇌석을 가져간 이후로 이제 극소수만 남았을 텐데 여기서 보게 되다니!”

    화령자가 선령뇌석의 기운을 감지하고는 말했다.

    “천형대가 뭐 하는 곳이야?”

    “천형대는 천정의 신비한 장소 중 하나다. 천지에 있는 뇌정의 힘을 끌어모아 특정한 때에 방출하지. 예를 들어, 인간계의 수사가 진선기로 돌파할 때 내려오는 뇌겁의 힘 또한 천형대에서 나오는 것이다.”

    “천정에 그런 곳이 있을 줄이야!”

    “인정하기 싫지만, 천정은 삼계 중 가장 신비로운 곳이자 천지대도가 모여드는 곳이지. 기회가 되면 가봐라. 수련에 도움이 많이 될 게다.”

    심협은 천정에 호기심이 생겼지만, 지금은 갈 방법이 아니었기에 우선 선령뇌석을 내려다봤다.

    “화령자, 이 뇌석으로 뇌신추를 수리할 수 있겠어?”

    “그날 이후로 이미 뇌신추의 연구는 끝난 상태다. 그 추를 자른 것이 명홍도라서 다행이지. 명홍도가 너무나 예리한 탓에 뇌신추의 금제 자체는 크게 손상되지 않았거든. 적합한 뇌속성 영재만 있었으면 진즉 고쳤을 게다. 선령뇌석이 있다면야 식은 죽 먹기지.”

    “그럼 부탁해.”

    심협은 선령뇌석을 소요경 안에 넣었다.

    한데 그는 문득 궁금한 것이 떠올라 신식을 거두기 전에 물었다.

    “명홍도 말인데……. 전에 연달아 여러 명을 죽인 뒤에 갑자기 위력이 강해지고 예상을 뛰어넘는 공격을 펼쳤거든. 그런데 그 일격 이후로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어. 왜 그런 거야?”

    “그래? 한번 줘봐.”

    화령자도 호기심이 생긴 듯해 심협은 명홍도를 소요경에 넣었다. 화령자는 도를 받아 자세히 살폈다.

    빨리 끝날 것 같지 않았기에 심협은 다시 다른 저물 법기를 살폈고, 그 작업이 마무리됐을 무렵 화령자도 명홍도의 연구가 끝났다.

    “하! 그랬군! 이제 알겠어. 헌원 황제는 애초에 이런 금제를 설치한 거였어! 아무래도 그 노인네도 이 보도를 버리기는 아까웠나 보군.”

    화령자가 감탄하면서도 낄낄댔다.

    “도대체 뭔데? 나한테도 좀 알려줘.”

    “설명하자면 긴데……. 이야기는 선기(仙器)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전에 내가 명홍도는 사람의 정혈과 신혼을 흡수하여 위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했던 것 기억하느냐?”

    “당연하지.”

    심협은 이번 일이 선기와 관련됐다고 하자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선기란 무엇인지 알고 있나?”

    “그게…… 잘은 모르겠어. 법보를 초월한 존재라는 정도만…….”

    심협은 화령자가 왜 화제를 돌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대답했다.

    “그럼 법보가 어떻게 하면 선기로 올라가는지도 알고 있나?”

    “그건 왜 묻는 거야?”

    “다 필요하니까 묻는 거지. 그걸 알지 못하면 명홍도에 생긴 이변의 원인을 말해줘도 이해 못 할 테니까.”

    “법보가 선기가 되는 과정은 잘 모르지만, 먼저 법보 안의 64도 금제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알고 있어. 이것도 네가 얘기해준 거지만…….”

    “그렇다. 사실 법보 안의 금제를 하나로 합치는 것은 법보에 대도법칙(大道法則)이 더 편리하게 탄생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대도법칙?”

    심협은 또다시 처음 듣는 이야기가 나오자 솔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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