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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31화 (1,031/1,214)
  • 1031화. 융합

    “좋아, 그럼 마지막. 왜 이런 일을 벌인 거지?”

    심협의 질문이 끝남과 함께 미소의 웃음이 사라졌다. 그녀는 칼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심협을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죠? 그건 다 인간족과 선족의 탐욕과 삼계 질서의 부패 때문이 아니었나요? 우리 청구 호족은 과거 삼계가 치우 마족에게 대항할 때 큰 힘을 보탰는데도 우리를 구석으로 몰아놓고 인간족의 부속물로 취급했잖아요. 안 그래요?”

    “인간족과 선족이 언제 청구 호족을 억압했다는 거지? 대당 관부가 향양진에 군대를 주둔시킨 것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일 뿐, 청구산 경계를 한 번도 넘은 적이 없잖아.”

    “인, 선 두 종족은 오랫동안 청구 호족과 요족을 시기해오고 끊임없이 횡포를 부려왔어. 게다가 삼계의 자원을 모조리 차지하고는 우리 요족을 이런 구석지고 험난한 곳으로 몰았지. 심지어 두 종족 수사의 사냥감으로 삼았고, 이 원수를 갚지 않고 넘어가란 말이야?”

    “그래서 마족과 결탁하여 장안성의 백성들을 죽이고 신마의 우물을 열려고 한 거였나? 신마의 우물이 열리면 요족은 부흥할 수 있을지 모르나 마족 또한 강해질 터. 심지어 치우의 봉인에도 영향이 갈 테니 치우가 봉인을 깨고 나오면 삼계는 다시 도탄에 빠져들겠지. 그리되면 너희 요족도 화를 면치 못할 텐데 정말 그래도 좋다는 건가?”

    심협의 말에 미소는 말없이 장안성 쪽을 한참이나 바라본 후에야 시선을 돌렸다.

    “세 가지 질문에는 답했으니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아도 되겠죠?”

    그녀는 고개를 내젓고는 허공에 결인한 뒤 한 걸음 물러났고, 몸이 회백색 안개로 들어서자 바로 사라졌다.

    그 무렵, 청구산 중턱에서는 훼멸명왕이 끈질기게 붙잡고 있던 여우 법상에서 갑자기 광망이 번쩍이더니 커다란 몸이 그대로 폭발했다. 강력한 기류가 훼멸명왕을 휩쓸었다.

    치익!

    기이한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빼곡한 붉은 광망이 마치 천만 개의 화살처럼 사방으로 날아가면서 주위의 벽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훼멸명왕의 몸에도 수많은 구멍이 생기면서 금제 영광이 대부분 사라졌다. 훼멸명왕은 땅에 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 * *

    수만 리 떨어진 장안성. 천막처럼 뒤덮었던 여우의 허상이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짓누르던 기운도 전부 사라졌다.

    장안성을 공격하던, 네 명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는 이 광경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바로 전장을 빠져나갔다.

    원천강도 쫓아가지 않았다.

    “원 도우,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저들이 왜 갑자기 물러난 거죠?”

    이정과 청련선자 등이 다가오며 물었다.

    원천강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몇 걸음을 걸으며 손으로 추산하기 시작했다.

    “청구의 전쟁이 끝나고 호족이 대패하였군요. 다만 호조가 다시 살아났고, 완전한 회복까지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합니다.”

    잠시 후, 그가 눈을 뜨며 말했다.

    처음에는 기뻐하던 사람들도 호조가 부활했다는 말에 이르자 표정이 전보다도 더욱 심각해졌다.

    * * *

    심협은 미소가 사라진 쪽을 물끄러미 보며 전신편과 현황일기곤, 순양검 전부를 다시 챙겨 넣었다.

    다른 세 사람도 안도한 표정으로 각자의 법보를 챙겼다.

    땅에서 노란 빛이 반짝이더니 천살시왕이 심협의 소매로 들어갔다.

    “주인님.”

    조비극이 유소짐의 은색 지팡이와 설백의 은거울을 비롯해 그녀의 저물 법기를 가져와 심협에게 넘겼다. 미소는 급히 가느라 유소짐의 저물 법기를 챙겨가는 것도 잊은 듯했다.

    유소짐은 심협 혼자서 막은 것과 다름없었기에 누구도 그가 저물 법기를 챙기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심협은 이 물건들을 살펴보고는 챙겨 넣으며 조비극에게 물었다.

    “몸은 괜찮은 것이냐?”

    “예, 본명음기가 손상되긴 했지만, 형흉신광이 있으니 진선 귀물 몇 마리만 흡수하면 금방 보충될 겁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휘둘러 조비극을 건곤대에 넣었다.

    이어서 그는 신식으로 소요경 안을 살폈다.

    소요경 안에서는 거울 요괴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는데, 몸에는 푸른 빛이 반짝였고 미간에 매서운 살기가 감돌았다.

    거울 요괴 옆에는 짚으로 만든 소인과 금색 화실이 놓여 있었다. 바로 정두칠전서였다.

    화령자는 거울 요괴 앞에 가부좌를 틀고는 금색 정원사리를 쥔 채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사리 주위에는 칠색의 불광이 솟아올랐고, 금빛이 거울 요괴 미간으로 향하더니 검은색 살기를 제압했다.

    유소짐이 중요한 순간에 중상을 입은 것은 심협이 전투 중 손에 넣은 그녀의 피를 이용해 거울 요괴가 정두칠전서를 사용하도록 한 것이었다. 다만 정두칠전서는 발동할 때마다 사용자가 저살의 기운에 물들게 되어 있었다.

    “좀 어때?”

    “괜찮습니다. 감정이 폭주하려 했을 때 화령자 선배님께서 전수해주신 무량전토 심법을 수련하니 많이 안정됐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거울 요괴가 눈을 뜨며 답했다.

    “다행이야. 불문의 사리는 하나밖에 없으니 대신 자비(慈悲)라는 불문의 성물을 주마. 그걸 지니고 있으면 살기를 억제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게다.”

    심협이 안도하고는 금륜(金輪) 법보를 소요경 안으로 넣어 거울 요괴에게 건넸다. 이 금륜은 그가 염열의 저물 벋기에서 얻은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거울 요괴는 금륜을 받자마자 뜨거운 기운이 몸을 타고 흐르면서 머릿속의 살기가 크게 줄었다.

    “거울 요괴를 계속 돌봐줘.”

    “걱정 말거라.”

    화령자는 심협을 안심시키고는 계속해서 정원사리를 발동했다.

    심협은 화령자의 능력을 믿었기에 안심하며 신식을 거뒀다.

    “오라버니, 신마의 우물이 열리면 치우의 봉인에도 영향이 생긴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섭채주가 다가오며 물었다.

    “그냥 추측일 뿐이야. 신마의 우물에는 새로운 몸과 피를 정련하는 이능이 있다 하니 혈맥이 어지러운 요족에게는 중요하겠지. 그들이 천존의 경지에 들어서지 못하는 장애를 없애줄 테니까. 그런데도 마족이 몇 차례나 그들을 도와 신마의 우물을 열려고 했다면 치우의 봉인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백소천과 언무사는 처음 듣는 말이었기에 적잖이 놀랐다.

    ‘미소는 신마의 우물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언젠가 다시 보게 되겠군. 미소는 상당히 강력해 보이니 조심해야겠어.’

    그는 미소가 사라진 곳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비록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어쨌든 마침내 청구산 대전에서 승리했다. 원천강의 당부를 저버리지는 않은 셈이었다.

    심협이 현양화마 변신을 해제하자 커다란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는 이번에 현양화마 신통을 오랫동안 사용한 터라 변신을 해제한 뒤의 부작용을 걱정했는데, 예상과 달리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오히려 힘이 넘쳤고, 심지어 경맥 안의 마기도 폭주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의아해하던 심협은 전투 중 황제내경이 스스로 운공했던 것이 기억났다.

    ‘이 공법은 근본이 안정적이고 원기를 회복시켜 준다. 지금 내 몸 상태도 황제내경과 관련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에 기뻐하며 몸을 살펴보려는데, 산 아래에서 몇 사람이 날아왔다. 육화명과 강신천, 칠살, 연시였다. 연시는 땅으로 내려오자마자 검은 빛이 되어 심협의 소매로 들어갔다.

    청구산 정상 곳곳의 검흔과 곤봉 자국을 본 육화명 등은 적잖이 놀랐다.

    육화명은 표정이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유소짐의 시체를 발견했다.

    “유소모주!”

    강신천과 칠살도 유소짐의 시체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들은 이미 청구산 호족의 상황을 조사한 터라 유소짐이 태을 후기의 고수임을 알고 있었다. 이번 청구산 대전에서 그들이 가장 꺼리고 두려워하던 상대였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죽어 있을 줄이야.

    “설마…… 그대들이 그녀를 죽인 건가?”

    육화명이 묻자 심협이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육화명은 이곳에서 이렇게 많은 일이 일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더욱 놀랐다. 심지어 호조의 환생이 나타났다니, 이와 비교하면 향양진의 전투는 애들 장난이었다.

    다행히 모든 것이 이미 끝나가고 있었다.

    “향양진 쪽은 어떻소?”

    백소천의 질문에 육화명도 향양진 전투가 어떻게 마무리됐는지를 전했다.

    “하얀색 안개? 미소의 소행이었을까?”

    마지막에 호족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이야기에 백소천의 눈빛이 굳어졌다.

    “아무래도 그런 듯하오. 청구 호족과 모든 문파는 이미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는데 호조의 환생이 나타난 데다 모든 청구 호족을 데리고 사라졌으니 조만간 큰 소동이 일어날 모양이오.”

    육화명이 눈살을 찌푸리며 걱정스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심협은 문득 유소짐 일파의 호족들이 생각났다.

    ‘유소짐의 말대로라면 그 호족들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건데, 혹시 미소가 데려간 걸까?’

    정말 그렇다면 청구 호족은 원기까지는 상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더욱이 자신은 이번에 청구 호족과 원수가 되었으니 앞으로 천하를 돌아다닐 때 더욱 조심해야 할 터였다.

    한데 그때, 산 아래에서 몇몇 둔광이 빠르게 날아왔다.

    호족이 물러나자 만리청운진도 거두어들였고, 연합군 수사들이 청구성으로 난입하여 성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청구 호족은 이곳에 오랜 세월 정착했으니 얼마나 많은 자원과 보물을 모아놨을 것인가. 육화명과 칠살, 강신천도 마음이 동해 청구 성으로 향했다.

    “언형, 백형. 청구성 곳곳은 보물 창고와 같으니 두 사람도 어서 가보시오. 두 사람도 이번에 고생 많았으니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소.”

    그는 이미 호족 비밀창고에서 몇 개의 만년화린목을 얻었으니 다른 물건에는 관심이 없었다.

    “심형, 날 뭐로 보는 건가? 날…… 반쪽짜리 출가인 취급하는 건가?”

    “백형이 그렇다면, 난 먼저 가보겠소.”

    언무사는 매우 흔쾌히 여기고는 둔광이 되어 날아갔다.

    “출가인 백형도 어서 가보시죠. 화생사 제자들이 다른 사람하고 싸우기라도 하면 어쩔 거요?”

    심협이 실실 웃으며 농을 건네자 백소천이 멈칫했다.

    “하지만 자네 몸이…… 호법이 없어도 괜찮겠나?”

    “괜찮소. 그리고 채주가 있는 데 무슨 걱정이오?”

    그제야 백소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럼 나도 가보겠네.”

    백소천마저 떠나가자 청구산 정상에는 이제 심협과 섭채주만 남았다.

    심협은 유소짐의 시체를 건곤대에 넣었다. 유소짐은 호조의 힘을 빼앗기면서 힘의 반동으로 죽었으니 기본적인 요력은 미소에게 흡수되지 않고 여전히 시체에 남아 있었다. 이는 연시를 만드는 데 아주 좋은 재료였기에 다른 법보나 법기보다 훨씬 더 진귀했다.

    그는 태을에 근접한 연시를 만드는 동안 연시를 만드는 기술에 작은 성취가 있었으니 마침내 솜씨를 발휘할 때가 온 것이다.

    “채주, 이번 대전에서 고생이 많았는데 가서 전리품을 챙겨야 하지 않겠어?”

    “수많은 생명이 참살되었고 청구성 안의 모든 물건도 피로 물들었어요. 그런 걸 챙겨봤자 뭐 하겠어요?”

    심협도 더는 권하지 않고 가부좌를 틀었고, 현양화마 신통을 운공했다.

    그에게는 호족들의 보물보다 당장 몸 상태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했다.

    이번 전투에서 심협은 위험을 무릅쓰고 치우무결로 체내의 마기를 최대한 발동하면서 현양화마 신통의 위력을 끌어올렸다. 그 뒤에는 황제내경이 저절로 몸에서 운공하여 그 신통에 적지 않은 변화를 줬다.

    현양화마는 그가 만들어낸 신통이었기에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치우무결과 황제내경은 오랜 단련을 거쳐 극치에 달한 공법이다. 이런 공법으로 보충한다면 현양화마의 위력은 완전히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번 전투를 통해 그게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됐을 뿐만 아니라, 현양화마와 치우무결 그리고 황제내경이 조화롭게 잘 어울림을 알게 됐다.

    심협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심호흡을 하고는 두 눈을 감고 세 개의 신통을 동시에 운공하기 시작했다.

    흑, 금, 녹색 광망이 몸에서 번득이더니 그의 몸 주위에서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섭채주가 옆에서 가부좌를 틀고 호법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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