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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30화 (1,030/1,214)
  • 1030화. 세 가지 질문

    두 진의 격렬한 충돌에 폭발음이 연달아 터졌고, 대연무량천기진의 하얀 안개가 끓어오르듯이 휘몰아쳤다.

    다른 세 사람이 황급히 심협을 돌아봤다.

    “오라버니, 금제의 허점을 찾은 건가요?”

    “대충. 잠시 후에 내가 신호를 줄 테니 모두 함께 진을 공격합시다.”

    화령자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심협은 대충 둘러댔고, 섭채주 등은 그런 것을 따지는 대신 얼른 각자의 법보를 준비했다.

    소요경 안. 화령자가 양손을 빠르게 결인하자 하얀 바둑판 법진은 벌써 절반이나 주위의 회백색 광막으로 들어갔다. 광막 안개의 움직임은 점점 격렬해졌고, 수많은 새가 일제히 울어대는 것 같은 굉음이 퍼졌다.

    화령자는 두 손으로 기이한 법결을 그리더니 짧게 외쳤다.

    “파(破)!”

    바둑판 진법이 하얗게 빛나면서 갑자기 폭발하더니 수많은 바둑알 모양의 기이한 부문으로 변하여 주위의 회백색 광막 안으로 들어갔다.

    회백색 광막의 모든 안개가 사라지면서 그 위로 하얀 빛이 떠올랐는데, 그 광경은 마치 밤하늘의 별들이 눈부시게 번쩍이는 것만 같았다.

    대연무량천기진이 웅웅 거리며 점점 얇아지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심협은 현황일기곤과 전신편을 꺼냈다.

    광막의 하얀 점이 점점 더 빨리 반짝이다가 마지막에는 쾅 하는 굉음과 함께 하얀 빛이 열 배나 솟구쳤고, 회백색 광막이 빠르게떨려왔다.

    “왼쪽 위! 구석! 빨리!”

    화령자의 다급한 목소리에 심협이 그곳을 올려다보니 광망이 유달리 어두워서 주위의 영광과는 은은히 단절되어 있었다.

    “모두 지금이오!”

    현황일기곤과 전신편에서 흑과 금의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교룡처럼 맹렬하게 날아갔다.

    섭채주와 백소천, 언무사도 법보를 발동하여 심협의 뒤를 따라 공격했다.

    연이은 굉음이 천둥처럼 울려 퍼지자 회백색 광막이 맹렬하게 흔들렸다.

    미소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이렇게 빨리 진법의 약점을 찾아내다니, 내가 얕본 모양이군. 그래도 상관없다.”

    그녀는 시선을 거두더니 한 손을 유소짐의 머리에 얹었다. 그러자 손에서 눈부신 붉은 빛이 솟구치면서 유소짐 체내의 혼란스럽던 호조의 힘이 미소의 손으로 모여들었다.

    호조의 힘이 약해지자 유소짐은 체내의 고통이 줄어들었고, 간신히 눈을 떴다.

    “너는…… 미소? 네가 여기는 어떻게……? 지금 뭘 하는……?”

    그녀는 미소의 모습을 보자 어리둥절했다.

    “너와 도산설이 청구 호족의 깃발을 일으킬 것이라 기대했건만, 너희는 그럴 그릇이 아니었다. 내 몸이 아직 최상의 단계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어쩔 수 없으니 힘을 회수해가겠다.”

    미소가 담담하게 말했다.

    “힘을 회수하다니! 넌 미소가 아니구나! 설마……?”

    유소짐은 뭔가 생각났는지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미소는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손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의 붉은 빛과 함께 손바닥에 붉은 소용돌이가 나타나 빠르게 회전하자 호조의 힘이 빨려오는 속도가 몇 배나 빨라졌다.

    미소의 손에 모여든 붉은 빛은 주먹만 한 암홍색 구슬이 되었다.

    구슬 안에는 꼬리 아홉 달린 선호의 허상이 어렴풋이 보였는데, 강력한 영압을 뿜어내고 있었다.

    호조의 힘이 흡수될 때마다 유소짐의 몸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그녀의 피부는 금방 빛을 잃었고, 수분이 빠르게 빠져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말라 갔다.

    “미소…… 아니, 선조님…… 다시, 다시 한번 기회를…….”

    유소짐이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내 이미 두 번의 기회를 주지 않았느냐. 도산설을 이용하여 충격을 감소시키는 것을 허락했고, 부서진 조각상을 합쳐줬다. 하지만 넌 그 두 번의 기회를 모두 잡지 못했다. 그러니 날 원망하지 마라.”

    미소가 담담하게 말하면서 손가락을 연속으로 움직이자 손 위의 붉은 소용돌이가 자욱해지면서 마지막 남은 호조의 힘까지 모두 뽑아냈다.

    유소짐은 기운과 함께 생기마저 사라져 마른 시체가 되어 쓰러졌다.

    그때였다.

    쾅!

    굉음이 울렸고, 회백색 광막이 폭발하면서 심협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주향(一炷香: 향 한 대가 연소되는 시간, 약 30분) 만에 진을 부수다니, 훌륭하구나. 허나 이미 늦었다.”

    미소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섭채주 등은 표정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심협은 담담해 보였지만, 눈 깊은 곳에는 먹구름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바로 공격하려는데, 화령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조용히 울려 퍼졌다.

    “심협, 내 소연천원진은 이미 대연무량천기진에 흡수되었으니 조금만 버티면 이 금제를 우리가 제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일단 시간을 벌어라.”

    “미소, 내 추측대로라면 네가 진짜 호조겠지?”

    심협은 화령자의 말을 듣고는 내색하지 않고 모았던 법력을 천천히 흩어 버리고는 막 공격에 나서려던 섭채주 등을 말렸다.

    “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세요?”

    미소가 미묘한 웃음을 띤 채 담담하게 물었다.

    “첫째, 네 기운은 유소짐이나 도산설과는 달리 호조의 힘이 몸에서 날뛸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완벽하게 그 힘을 장악하고 있지. 호조 본인 외에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할 터.”

    “일리가 있네요. 그럼 두 번째는?”

    미소가 씩 웃으며 계속해서 물었다.

    “내가 직접 겪어본 호조의 힘은 매우 강인하지만 오만하여 통제하기 어려워 유소짐도 대진을 이용하여 도산설의 체내에서 호조의 힘을 뽑아냈다. 한데 그 대진이 부서졌는데도 너는 가볍게 유소짐의 힘을 뽑아냈지. 이것이 네가 호조의 힘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두 번째 증거다.”

    “마지막 세 번째는 연시와 귀총이 어딘가에 숨어서 내가 유소짐과 나눈 대화를 들은 것이겠죠?”

    미소가 차갑게 웃으며 발로 땅을 굴렸다.

    쾅! 쾅!

    두 번의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먼 곳의 땅이 갑자기 폭발하더니 두 줄기 붉은 빛기둥이 하늘 높이 솟구쳤고, 천살시왕과 조비극이 튀어나왔다.

    이 광경을 본 심협의 표정은 한층 어두워졌다.

    “제게 계속 말을 거는 것은 지원군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대연무량천기진을 연화할 시간을 버는 거죠? 어떤 힘이 빠르게 이 진법을 장악하는 게 선명하게 느껴지네요.”

    미소가 유유히 웃으며 말했다.

    심협은 모든 계획이 발각되자 깜짝 놀랐지만, 표정은 담담했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태산처럼 침착하며 손에 쥔 모든 수단과 힘을 사용하는데 능하니, 도산설과 유소짐이 패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군요. 오라버니가 청구 호족이 아닌 것이 너무 안타깝네요.”

    미소는 침착한 심협의 모습에 감탄했다.

    “안타깝긴 마찬가지군. 내 모든 안배가 간파당했으니 실력으로 승부를 내는 수밖에 없겠어!”

    심협은 담담하게 말하고는 전신편과 현황일기곤에서 광망을 뿜어냈다. 열여섯 자루의 순양검도 허공으로 떠올랐다.

    다른 세 사람도 법보에서 빛을 번득이며 심협의 명만 떨어지면 바로 달려들 준비를 했다. 저 어린 여우가 기이하긴 했지만, 기운은 태을 후기라 도산설이나 유소짐보다 훨씬 약하니 네 사람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오늘은 흥이 깨졌으니까 더는 안 싸울 거예요.”

    미소가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심협은 의아했지만, 다른 세 사람은 내심 안도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번 청구 호족과 수사 연합군의 싸움은 청구 호족이 졌어요. 결과가 정해진 싸움을 왜 계속하겠어요? 그러니 오늘은 이만하고, 다음에 또 만나죠.”

    미소가 담담하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떠나려 했다.

    “잠깐! 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 네가 정말 호조인 거야?”

    심협의 양발에서 뇌광이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미소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에 섭채주 등은 깜짝 놀랐다.

    유소짐의 호조의 힘은 이미 미소에게로 넘어갔으니 다시 빼앗기는 불가능했다. 미소라는 저 호족은 태을 후기에 불과하지만, 얼마나 대단한 수단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런 그녀가 먼저 싸움을 멈추겠다는데 심협이 그 앞을 막아섰으니 놀랄 만도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불만 없이 다가와 심협 옆에 섰다.

    “용기가 가상하군요. 내 싸움을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그대들을 죽이는 것은 벌레를 죽이는 것만큼이나 쉽답니다.”

    미소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오늘은 나도 충분히 싸웠으니 더는 싸우고 싶지 않아. 내 질문에 대답해주면 순순히 비켜주지.”

    심협은 미소의 살기를 못 본 것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정말로 못 죽일 것 같나요?”

    미소의 얼굴에 순식간에 살기가 흐르면서 옷이 펄럭였다. 짙은 살기가 네 사람을 뒤덮어왔다.

    섭채주와 백소천, 언무사는 깜짝 놀라 각자 법보를 쥐었고, 법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허세 부리지 마. 네가 호조 본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유소짐의 몸에서 호조의 힘을 강제로 뽑아내느라 원기의 소모가 심해서 지금은 빈껍데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심협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섭채주 등은 의아한 얼굴로 미소를 살펴봤다.

    “흥! 역시 안목이 좋군요. 확실히 원기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래도 그대들을 상대할 정도는 된답니다.”

    “그렇겠지. 네가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 네 사람이 달려들어도 못 이길 거야. 하지만 너 역시 온전하게 물러나기는 힘들걸?”

    심협의 말에 미소는 눈살을 찌푸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야. 그저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해주면 길을 열어주지. 어때?”

    “좋아요. 전에 베풀어 준 은혜도 있으니 대답해주죠. 물어보세요.”

    미소는 심협을 살펴보더니 천천히 살기를 거두며 말했다.

    “첫째, 네가 호조가 맞아?”

    미소는 피식 웃으며 대답하려 할 때였다.

    “잠깐! 당신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우리가 어떻게 알지? 문제에 대답하기 전에 심마를 걸고 맹세하시오. 안 그러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겠소.”

    언무사가 갑작스레 끼어들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호족은 심마를 걸고 맹세하지 않아요. 뭐, 내 말을 못 믿는다면 어쩔 수 없죠.”

    미소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것 같으니 맹세는 안 해도 돼. 그냥 질문에 대답이나 해.”

    심협은 유명귀안으로 세밀하게 관찰하면 사람의 상태나 눈빛 변화를 알아내어 그 말의 진위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 영목은 마기가 침투하면서 위력이 더 정진한 터라 미소가 태을 후기라 해도 상대를 간파할 자신이 있었다.

    “호조는 상고 시기에 이미 죽었어요. 나는 그녀의 환생이죠.”

    미소는 의외라는 눈으로 심협을 보고는 담담하게 답했다.

    “호조의 환생이라…… 그랬군.”

    심협은 유명귀안으로 살핀 결과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여겼다.

    “둘째, 장안성에서 일어난 두 번의 습격과 청구산에서의 모든 일은 네가 주도한 건가?”

    “아니라고 하면 믿을 건가요?”

    미소는 웃으면서 되물었다.

    심협의 눈에 푸른 빛이 감돌았다. 미소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지만,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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