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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29화 (1,029/1,214)
  • 1029화. 갇히다

    누군가의 외침에 여기저기서 호응이 쏟아졌고, 살기등등한 연합군 수사들이 수많은 법보와 병기로 공격하며 돌진했다.

    한데 그때, 주위의 허공에서 파문이 일더니 하얀 안개가 갑자기 튀어나와 청구 호족을 뒤덮었다. 안개로 들어간 연합군 수사들의 공격은 바닷속에 빠진 것처럼 사라졌다.

    안개는 순식간에 퍼졌다가 순식간에 줄어들어서 사라졌다. 쓰러져 있던 청구 호족들도 안개와 함께 사라졌고, 허공에는 연합군 수사들의 법보들만 목적을 잃고 무질서하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누구냐! 숨어 있지 말고 당장 모습을 드러내라!”

    육화명 등은 어리둥절했지만, 여전히 경계하며 외쳤다.

    하지만 사방은 고요했고, 이들은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 * *

    청구산 정상의 제단. 심협이 순식간에 유소짐 앞으로 돌진하며 모든 힘을 끌어모아 전신편을 휘둘렀다.

    꽈릉!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유소짐은 운석처럼 벽에 처박혔고, 피를 뿜어냈다. 본래 창백했던 얼굴은 더욱 핏기를 잃었지만, 그녀의 머리는 그대로였다. 위기의 순간, 유소짐이 폭주하는 호조의 힘을 간신히 억눌러 치명타를 피한 것이었다.

    심협은 가볍게 혀를 찼다. 호조의 힘이 폭주했을 때, 도산설은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한 반면, 유소짐은 태을 후기 존재답게 저항을 해왔다.

    “간다!”

    심협은 실망하지 않고 다시 공격에 나섰다. 유소짐의 기운은 이미 쇠약해졌고, 체내에는 통제가 불가능한 호조의 힘이 있으니 태을 후기의 존재라 해도 다시 전세가 뒤집힐 가능성은 없었다.

    소매를 떨치자 전신편이 검은 빛이 되어 유소짐의 정곡으로 날아들었다.

    유소짐은 그 와중에도 아직 힘이 남았는지 재빨리 옆으로 피했다.

    하지만 전신편에서 갑자기 거대한 검은색 소용돌이, 흡혼대진이 나타나 반경 10여 장을 뒤덮었다.

    소용돌이에 휩쓸린 유소짐은 마치 수많은 개미가 신혼을 갉아먹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지자 움직임이 일순 느려졌다.

    어두운 소용돌이에서 나온 검은 빛이 순간 유소짐의 가슴을 찔렀고, 그녀는 뒤로 튕겨 나갔다.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긴 상태였다.

    흡혼대진이 빠르게 돌자 유소짐의 신혼의 힘은 둑이 터진 것처럼 쏟아져 나갔고, 몸에 남아 있던 마지막 힘도 마침내 완전히 사라졌다.

    심협은 날카로운 눈빛을 번득이며 결인했고, 검은색 예망이 전신편에서 날아가 독사처럼 유소짐의 머리를 찌르려 했다.

    한데 그때, 유소짐 앞에서 갑자기 하얀 빛이 번득이더니 땅 하는 굉음과 함께 검은색 예망은 부서졌고, 전신편도 튕겨 날아갔다.

    섭채주가 뒤에서 빠르게 다가오더니 이 광경을 보고는 표정이 급변했다.

    어렵게 유소짐을 몰아세웠는데 지금 놓친다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된다.

    약목신궁에서 두 줄기 번개 같은 금빛 화살이 날아가 순식간에 유소짐의 머리와 단전 앞에 다다랐다.

    허공에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백소천과 언무사가 나타났다. 두 사람은 신식으로 이곳의 상황을 이미 파악한 상태였다. 곤오검과 성한선이 두 줄기 날카로운 기운을 뿜어내며 유소짐을 노리고 날아갔다.

    그러나 유소짐 전방의 허공에서 다시 하얀 빛이 반짝이더니 곤오검과 성한선은 그대로 튕겨 나갔고, 약목신궁의 금빛 화살들도 금빛으로 부서졌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심협의 눈에서 푸른 빛이 일렁이며 양손으로 허공을 잡았다.

    금색 뇌전이 허공을 뚫으며 날아가 유소짐 앞의 허공에 꽂혔고, 그곳에서 하얀 빛이 퍼지더니 가녀리고 영롱한 누군가가 나타났다.

    “미소?”

    심협은 상대의 정체를 알아채고는 흠칫 놀랐다. 그녀는 바로 오래전에 헤어져 소식을 알 수 없었던 어린 여우, 미소였다. 다만 이제 열일고여덟 살 정도가 된 그녀는 맑은 눈과 오똑한 코, 매혹적인 몸매가 혼이 빠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마치 천지의 모든 아름다움이 그녀에게 집중된 것 같았다.

    섭채주와 백소천, 언무사의 표정이 굳었고 서둘러 심협 옆으로 다가왔다.

    미소가 고개를 살짝 기울여 심협을 바라봤는데, 이전과 같은 발랄함과 친근함은 없었다. 오직 차가움 뿐이어서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그녀의 기운도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서, 비록 유소짐에게는 미치지 못해도 어느새 태을 후기에 도달해 있었다. 그 기운에서 호조의 힘이 느껴졌다.

    “그런 거였나? 너도 호조의 힘을 계승했구나. 아니, 요력을 이용해 그 힘을 억지로 받아들이느라 유소짐과 도산설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했지만, 너는 호조의 힘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어. 대체 넌 누구지?”

    심협은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가슴 속에서는 거친 파도가 몰아쳤다.

    “호호호! 역시 원천강이 아끼는 자답군요. 안목이 보통이 아니에요.”

    환하게 웃는 미소의 모습은 마치 얼음을 녹이는 봄날의 햇살처럼 고왔다. 심지어 심협의 강력한 심지로도 가슴이 요동칠 정도였다. 더욱이 부주진신법이 저절로 운공되지 않은 것을 보면 이는 매혹 신통이 아니라 미소의 천성적인 매력이라는 뜻이었다.

    심협을 유심히 바라보던 미소가 갑자기 손을 들어 허공을 쥐자 유소짐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그녀의 발밑으로 떨어졌다.

    심협이 번개처럼 달려들어 전신편에서 검은 빛을 발하며 강하게 휘둘렀다.

    꽈르릉!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검은 빛이 만개하는 가운데, 100장 길이의 거대한 채찍 허상이 하늘을 떠받치는 신병처럼 미소에게로 떨어졌다.

    짧은 시간에 호조의 힘을 가진 두 명과 고전을 치른 터라 섭채주의 회복 신통으로도 피로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세 번째 호조 천존의 출현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섭채주와 백소천, 언무사 또한 동시에 공격을 퍼부었다. 금빛 화살과 검기, 별빛이 미소와 유소짐에게 날아갔다.

    미소는 무표정한 얼굴로 네 사람을 훑어보더니 발로 땅을 딛었고, 가볍게 결인한 손을 내밀었다.

    갑자기 회백의 광막이 솟아나더니 네 사람의 공격을 완벽히 막아냈다.

    굉음이 연이어 울려 퍼지고 찬란한 광망이 폭발하면서 모든 법보가 튕겨 나갔다.

    회백색 광막 또한 크게 흔들렸지만, 갈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광망이 빠르게 퍼져나가 커다란 그물처럼 펼쳐졌다.

    심협 등은 백전의 용사답게 이 광경을 보고는 곧장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순간, 미소의 눈이 초록색 불꽃처럼 번득이며 요동쳤다. 바로 조령 조각상이 시전했던 미천동술이었다.

    초록빛 광파가 퍼져나가자 미처 방비하지 못한 네 사람은 머릿속이 혼미해졌고, 우뚝 멈췄다.

    이 틈에 회백색 광막이 합쳐져 수십 장에 이르더니 네 사람을 뒤덮었다. 광막 안팎으로 회색 빛이 반짝일 때마다 안개가 피어올라 순식간에 두꺼워졌다.

    미소의 미천동술은 조령 조각상만큼 강하지 않았기에 심협은 부주진신법을 시전해 금세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세 사람은 그만큼 신혼의 힘이 강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표정이 굳은 심협은 곧장 축지척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표정은 담담했지만, 무척 초조했고 심지어 화가 났다. 어렵게 유소짐을 쓰러뜨렸거늘, 상태를 알 수 없는 미소가 다시 튀어나오다니!

    미소가 유소짐 체내의 호조의 힘을 빼앗으려는 건지 아니면 그녀를 치료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쪽이든 상황은 더욱 나빠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바로 진에서 빠져나가 저 어린 여우를 막아야 했다!

    하지만 축지척의 초록 빛은 순식간에 꺼졌고, 그들은 이 공간에 완전히 갇혀 버렸다.

    심협은 어두워진 표정으로 현황일기곤과 열여섯 자루의 순양검을 꺼내 전력으로 진을 부수려 했다.

    그런데 그때, 화령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잠깐! 이 광막은 보통 금제가 아니라서 힘으로는 부술 수 없다. 내가 살펴보겠다.”

    그 말에 심협은 분노를 통제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간신히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며 법보를 거뒀다.

    투명한 파문이 소요경에서 퍼져 나와 주위를 휩쓸었다.

    심협도 유명귀안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동시에 진혼 비술을 운공했다.

    “정신 차려!”

    그의 목소리가 파도처럼 퍼지자 섭채주와 백소천, 언무사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차례대로 깨어났다.

    “여기가 어디지? 저 호족에게 당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진 건가?”

    “당황할 것 없소. 아까 그곳이오. 이 하얀 안개는 금제요.”

    심협은 얼떨떨한 백소천에게 설명했다.

    “저 호족들은 정말 끈질기군. 늙은 여우를 처리했더니 이번에는 어린 여우가, 그것도 저렇게 강력한 어린 여우가 나타나다니. 이제 어쩌면 좋지?”

    백소천이 당황한 기색 없이 혀를 차며 물었다.

    “이 광막은 현묘해 공법 법보로도 빠져나갈 수가 없소. 지금 파훼법을 찾고 있으니, 그때까지는 각자의 신통으로 시도해봅시다.”

    심협의 말에 세 사람 모두 표정이 굳더니 일제히 신통을 시전했다.

    심협은 유명귀안을 극한으로 발동했고, 두 눈에 잠들어 있던 마기가 떠올라 푸른 빛에 광망이 감돌았다.

    시력을 최대한을 끌어올렸지만, 안타깝게도 법진을 전혀 파헤치지 못했다. 다시 초조해지자 체내의 마기가 들끓었고, 눈에는 혈광이 감돌았으며, 포학한 심정이 솟아올랐다.

    ‘안 돼!’

    심협은 얼른 황정경으로 마기를 억제하려 했지만, 효과는 생각만큼 좋지 않았다.

    그때, 몸에서 갑자기 초록색 빛이 번쩍이더니 들끓던 마기가 제압되었다.

    ‘황제내경?’

    심협은 흠칫 놀랐다. 황제내경에 마기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헌원 황제는 치우의 대적이었다. 그러니 황제내경이 마기를 억제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심호흡을 한 그는 전력으로 황제내경을 운공했다. 몸의 초록빛이 빠르게 퍼져나가 금세 몸 곳곳을 가득 채웠다.

    현양화마 신통의 작용 아래 초록색 영문과 검은색 마문은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조화를 이루며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눈동자의 혈광도, 포악한 기분도 모두 사라졌다. 심협은 기이할 정도로 냉정해졌다. 심지어 바깥의 위기 상황에도 더는 초조해하지 않았다.

    심협의 몸에서 일어난 일련의 변화는 전광석화처럼 지나갔기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세 사람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 주위의 금제를 탐색했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심협이 전음으로 금제의 파훼법을 찾았는지 물으려는데, 화령자의 흥분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알겠다! 알겠어! 이건 대연무량천기진(大衍無量天機陣)이야! 그러니 허공까지 봉인할 수 있었던 거지! 한데 상고 시기의 기진(奇陣)인 대연천기진이 겨우 이 정도일 리가 없는데……?”

    “대연무량천기진?”

    심협은 그 이름을 듣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과거 한 서적에서 이 진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지맥의 영력과 천시(天時), 지리(地利)를 결합한 천계의 진으로, 그 안에 갇힌 사람에게 무한한 변화를 주는 극강의 혼곤(昏困)의 힘이 있다고 전해진다. 비록 십대진법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상급의 상고 기진(奇陣)임은 분명했다.

    “파훼법은 알고 있어?”

    심협이 다급하게 물었다.

    “온전한 대연무량천기진이라면 적어도 열흘은 걸렸겠지만, 이 진법은 불완전한 상황이니 파훼하는 것도 어렵지 않지.”

    “어서 알려줘.”

    “아무리 불완전하다고 해도 일개 기령인 나 혼자서는 파훼할 수 없다. 허나 눈에는 눈, 진(陣)에는 진이지. 곡현성반의 소연천원진(小衍天元陣)으로 진을 부수고 허점을 만들어낼 테니 그때 다 함께 그 허점을 노려라.”

    “알겠어.”

    심협이 서둘러 대답했다.

    그 순간, 곡현성반에서 은빛이 뿜어져 나와 바둑판 같은 하얀 법진을 퍼뜨렸고, 회백색 광막과 충돌하며 안으로 녹아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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