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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28화 (1,028/1,214)
  • 1028화. 협공

    언무사는 몰래 전음부를 꺼내 산 아래의 육화명 등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했다.

    백소천도 같은 생각이었으나 언무사가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을 보고는 땅에 쓰러진 심협을 살폈다.

    그 순간, 그는 눈빛을 살짝 번득이더니 갑자기 성한선을 높이 들어 아래로 크게 휘두르며 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반투명한 별빛이 성한선에서 뿜어져 나오자 그는 그 자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심지어 아무런 기운조차 남기지 않았다.

    유소짐은 휙 돌아보며 양손을 붉은 빛으로 번득이며 허공에 휘둘렀다.

    언무사 앞의 허공이 어두워지더니 집채만 한 주먹 허상이 나타나 벼락처럼 떨어졌다.

    화들짝 놀란 언무사가 바로 언갑을 꺼내 막으려 했지만, 한 발 늦고 말았다. 그는 주먹 허상에 두들겨 맞아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가더니 제단 밖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또 하나의 주먹 허상이 방금 전까지 백소천이 있던 곳을 두들기자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공간에서 어지러운 수면 같은 파동이 일더니 광포한 기운의 파도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백소천은 나타나지 않았다.

    유소짐은 표정이 살짝 굳었고, 이내 뭔가를 알아챈 듯 심협 쪽을 돌아봤다.

    심협의 두 눈은 여전히 감겨 있었지만, 몸이 저절로 땅에서 떠오르더니 빠르게 멀리 날아가며 투명해졌고, 이제는 몸의 절반이 사라졌다.

    “은신술? 어림없다!”

    유소짐은 차갑게 비웃으며 한 손을 앞으로 내밀어 꽉 쥐었다.

    3장에 이르는 붉은색 조망(爪芒) 다섯 개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순식간에 심협 앞에 도달하더니 그 위의 상공 어딘가를 움켜쥐었다.

    “윽!”

    가벼운 신음이 들려오더니 일고여덟 개의 별빛 칼날이 허공에서 튀어나와 다섯 개의 조망을 막았다.

    퍼펑!

    불꽃 같은 영광이 터지면서 반경 수십 장으로 퍼져나갔다 이어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별빛 칼날은 성한성의 또 다른 신통인 운성참(殞星斬)이었다. 이 신통의 위력은 비록 약하지는 않으나 유소짐의 일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 백소천은 한 줄기 조망에 가슴을 가격당해 중상을 입었다.

    백소천의 제어가 사라지자 심협의 몸도 다시 본래대로 돌아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죽어라!”

    유소짐은 차가운 살기를 뿜어내며 팔을 들었다.

    은색 지팡이가 그녀의 손으로 돌아왔고, 그 끝에서 은빛이 반짝이더니 검기 같은 은빛이 곧장 날아갔다. 똑바로 보지도 못할 만큼 눈부신 은빛이 허공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심협 앞에서 은빛이 반짝이더니 그대로 가슴을 관통했고, 피가 튀며 마문 갑옷이 부서지면서 구멍이 뚫렸다.

    심협의 몸은 또다시 날아가 벽에 처박혔고, 그대로 굴러떨어졌다.

    “흥! 진선기 따위가 이렇게 끈질길 줄이야.”

    유소짐은 눈살을 찌푸렸다.

    백소천과 언무사는 비록 중상을 입었지만 경험이 풍부한 자들답게 위기의 순간 중요한 명맥만큼은 보호하여 아직 살아 있었다. 그러나 유소짐 역시 이를 간파하고 있었다.

    심협도 가슴이 뚫린 채 기운이 빠르게 쇠약해져 갔지만, 아직 죽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목숨을 보전하는 특수한 수단을 사용했으리라.

    “저 두 놈은 몰라도 네놈은 당장 완전히 소멸해주마!”

    유소짐은 가장 꺼려지는 심협을 향해 팔을 힘껏 휘둘렀다.

    은색 지팡이가 은빛이 되어 심협의 머리를 향해 곧장 날아가 생기를 완전히 끊으려 했다.

    한데 그녀가 승리를 확신하는 순간, 깜짝 놀랄 광경이 펼쳐졌다!

    은색 지팡이가 머리 바로 앞까지 다다랐을 때, 가만히 쓰러져 있던 심협이 갑자기 움직였다. 두 발에서는 뇌광이 번쩍였고, 뒤로 두 줄기의 굵은 번개를 뿜어냈다. 땅에는 두 개의 큰 구덩이가 생겼다.

    그 힘을 빌려 몸을 옆으로 날리면서 절체절명의 순간에 은색 지팡이의 일격을 피했고, 감고 있던 두 눈도 번쩍 떴다. 맑은 두 눈이 드러났다.

    사실, 그는 가슴이 뚫리기 직전에 미리 대개박술로 심장의 위치를 옮긴 덕에 중상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의식을 잃은 척한 것은 유소짐을 속여서 경계를 늦추는 한편 머릿속의 환력을 막아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 어렵게나마 환력을 막아낼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유소짐은 경악했다. 강력한 미천동술은 태을의 존재도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이거늘, 진선 후기 수사가 어떻게 막아낼 수 있단 말인가?

    허나 지금껏 심협이 보인 믿기 힘든 행보로 미루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세상은 언제나 기이한 일로 가득하고 천지조화를 일으키는 자는 예부터 항상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내가 저놈을 너무 과소평가했구나!’

    그녀는 내심 초조해졌지만, 조령 조각상을 떠날 수는 없었기에 오른손에서 붉은 빛을 뿜어내 심협에게로 던졌다.

    허공에 붉은 빛이 번쩍이더니 쿵 하는 굉음과 함께 궁전만 한 혈홍색 여우 발톱이 나타나 불의의 일격을 가했다.

    은색 지팡이도 허공에서 방향을 바꿔 다시 은빛이 되어 심협에게로 날아갔다.

    심협은 두 발에서 뇌광을 번쩍여 지팡이의 공격을 피한 뒤 벌떡 일어섰다. 이어서 그가 한 손을 휘두르자 혈색의 광망이 몸 앞에서 반짝이더니 혈백원번이 나타나 발톱을 막아냈다.

    이와 동시에 혈백원번에서 혈광이 번쩍이자 핏빛 인영이 허공으로 날아올라 다시 빠르게 심협의 몸으로 떨어졌다.

    혈신부체 신통을 시전하자 주위의 천지영기가 빠르게 그의 체내로 몰려들어 기류를 형성했다. 가슴의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고, 뼈가 자라 눈 깜짝할 사이에 거의 완쾌되었다.

    혈신부체에는 치료 효과가 없지만, 천지영기를 끌어올 수 있기에 치료에 큰 도움이 됐다.

    기운이 3할이나 증가한 심협은 유소짐이 반응하기 전에 소매를 휘둘렀다.

    소매에서 쏘아져 나간 열여섯 자루의 순양비검이 기이한 검기를 뿜어내며 유소짐을 향해 날아갔고, 제단 곳곳에서 매서운 검광과 무서운 기세를 뿜어냈다.

    피할 곳이 없었던 유소짐은 기합과 함께 양손에서 붉은 빛을 뿜어내며 두 팔을 휘둘렀다.

    붉은 손톱 허상이 빼곡히 나타나 하늘 가득한 검광과 충돌하자 경천동지할 굉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열여섯 자루 순양검의 위력은 강력했지만, 지금의 유소짐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않았기에 얼마 후 검광은 모두 무너졌다.

    유소짐은 눈빛을 날카롭게 번득이며 또다시 어떤 신통을 시전하려 했지만, 그전에 심협이 검광 사이에서 번개처럼 나타나 그녀 앞에 나타났다.

    높이 들어 올린 오른손의 전신편에서 시커먼 노룡처럼 굵은 빛줄기가 솟구치더니 유소짐의 머리로 떨어졌다.

    “크아아!”

    유소짐은 분노의 외침과 함께 온몸에서 붉은 빛을 뿜어내며 오른손으로 허공을 잡았다.

    거대한 붉은 발톱 두 개가 나타나 하나는 가볍게 전신편을 잡았고, 다른 하나는 잔상을 남기며 심협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심협이 기합과 함께 왼쪽 주먹을 휘두르자 검은색 빛줄기가 뿜어져 나가더니 허공에 파문을 일으키며 이 거대한 발톱과 충돌했다.

    퍼펑!

    마치 두 개의 산이 충돌한 것처럼 굉음이 울려 퍼졌고, 주위의 허공에서는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은색 빛줄기와 붉은 발톱이 동시에 부서졌다. 허나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 심협과 달리 유소짐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나 심협은 전혀 실망하거나 좌절한 기색 없이 외쳤다.

    “지금이다!”

    흠칫 놀란 유소짐은 잔뜩 경계하며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고, 거대한 신식까지 널리 퍼뜨렸다. 그러나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어디서 수작질이냐!”

    그녀는 심협의 허세에 속아 넘어갔다는 생각에 잔뜩 화가 나 양손에서 붉은 빛을 뿜어내며 다시 공격하려 했다.

    그때였다. 유소짐의 두 눈이 퍽 소리와 함께 터졌고, 두 줄기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끄아악!”

    유소짐의 처절한 비명과 함께 몸을 감싼 붉은 빛은 격렬하게 파동을 일으키더니 순식간에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거의 동시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칠흑 같은 영광을 감싼 전신편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채찍이 지나는 곳마다 허공에는 어두운 궤적이 생겨났다.

    채찍이 유소짐의 어깨를 두들기자 펑 하는 굉음이 울렸다. 유소짐의 거대한 몸은 뒤로 날아갔고, 조령 조각상을 움켜쥐고 있던 아홉 개의 꼬리도 느슨해졌다.

    조각상의 모습이 드러나자 심협은 눈이 반짝이더니 소매를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뒤에 빛의 문이 나타났고, 그 안에서 섭채주가 튀어나왔다.

    약목신궁을 든 섭채주가 두 팔을 당겨 완벽한 호를 그리자 빛의 화살이 신궁에 나타나 금빛을 뿜어냈다.

    “안 돼!”

    유소짐은 이 상황을 감지하고는 절규했다.

    섭채주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시위를 놓았다. 금빛 화살이 모든 것을 가르는 파공음을 내며 날아가 호족 조령 조각상의 미간을 뚫었다.

    퍼펑!

    폭발음이 널리 울려 퍼졌다.

    금빛 태양이 제단에서 번쩍였고, 조령 조각상의 금색 균열이 갈라지더니 쾅 소리와 함께 터져 나갔다.

    심협은 순식간에 조각상 옆에 나타나 전력으로 유명귀안 신통을 운공해 조령 조각상을 관찰했다. 뒤이어 그의 양손에서 흑망이 뿜어져 나오더니 두 개의 흉악한 마조가 만들어졌다. 그는 부서진 조각상에서 뿜어져 나올 혈광을 언제든 치우지박 신통으로 공격할 수 있게 대비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이번에는 조각상에서 혈광이 나오지 않았다. 조령 조각상은 금빛 화살이 만들어낸 금색 태양에 대부분이 삼켜졌고, 나머지 조각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거나 잿더미가 되었다.

    뒤이어 기이한 붉은색 파동이 조각상이 있던 곳에서부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광망이 유소짐을 스쳐 가는 순간, 그녀의 몸을 감싼 붉은 빛이 끓어오르더니 체내에서는 호조의 힘이 제어를 잃고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유소짐의 이마에 설백의 여우 털이 빠르게 자라나더니 다시 순식간에 벗겨졌고, 머리의 뾰족한 귀도 다시 줄어들었다. 천존에 가까웠던 기운 또한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도산설 때와 같은 상황이 일어나자 심협은 안도했지만, 아직 방심하지 않고 전광이 되어 유소짐에게로 돌진했다.

    * * *

    향양진 밖. 육화명과 칠살, 강신천, 배민은 연합군과 향양진 군대를 지휘하며 남은 청구 호족을 추격했다.

    청구 호족의 진선 존재는 이미 몰살됐는데, 이는 태을에 근접한 심협의 연시가 활약한 덕이었다. 거의 모든 진선 호족은 이 연시의 손에 죽었다.

    검은 연시의 움직임은 귀신 같았고, 공격은 번개처럼 빨랐으며, 육신은 난공불락이었다. 손에 든 두 대검에서는 신혼을 공격하는 무서운 음뢰가 뿜어져 나왔고, 진선 호족들은 몇 합 겨루지도 못하고 죽어갔다.

    진선 호족의 지휘가 사라지자 다른 호족들은 투지를 잃었다. 다만 이들의 몸에는 호조의 힘이 아직 남아 있었기에 연합군의 공세에도 완강히 버텨냈고, 전투는 장기화될 기미를 보였다.

    언무사의 전갈을 받은 육화명 등은 초조했지만, 연합군 역시 진선기의 지휘가 필요했기에 지금 그들은 이곳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한데 그때,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 파동이 청구산 쪽에서부터 퍼지기 시작했다. 이 파동이 향양진까지 미치자 모든 호족이 몸을 크게 떨더니 기운이 빠르게 감소하기 시작하면서 중구난방으로 쓰러졌다.

    “어떻게 된 거지? 누가 독을 쓴 건가?”

    강신천이 손을 들어 추격을 멈추게 하고는 경계하며 신식을 퍼트렸다.

    “독이 아니오. 못 느꼈소? 청구산의 방대한 기운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소. 아무래도 저쪽에서 반조의 근원을 파괴한 모양이오!”

    육화명이 청구산 쪽을 바라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연합군은 크게 기뻐했다.

    “하늘이 돕는구나! 청구 호족의 수장이 사라지고 저들의 실력도 크게 약해졌으니 어서 저들을 멸하여 죽어간 동문들의 복수를 합시다!”

    “옳소!”

    “저 요물들을 쓸어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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