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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26화 (1,026/1,214)
  • 1026화. 구사일생

    펑!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은색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온 광망은 평범한 사람의 엄지 정도 굵기였지만, 순식간에 열일전부를 뚫고 훼멸명왕의 가슴을 찔렀다. 두 번째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훼멸명왕은 가슴팍의 갑옷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몸도 뒤로 밀려났지만, 그대로 열일전부를 강하게 내리쳤다.

    유소짐은 바로 피하려 했는데, 훼멸명왕이 갑자기 앞으로 열일전부를 집어던지고는 양팔을 벌려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려 했다.

    깜짝 놀란 유소짐이 황급히 피했으나, 훼멸명왕의 오른팔 어딘가에서 초록색 빛이 반짝이더니 초록색 부문이 나타났다. 그 빛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심협이 전신편을 검은색 허상으로 만들어 전력을 다해 휘둘렀다. 채찍의 허상이 곧장 유소짐의 머리를 향해 뻗어갔다.

    유소짐이 황급히 옆으로 피했지만,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전신편에 어깨가 뚫렸다.

    펑!

    “크아악!”

    유소짐의 몸이 산 아래로 추락했다.

    심협은 유소짐을 쫓아가지 않고 백소천과 언무사 쪽을 바라봤다.

    두 사람은 지금도 조령 조각상을 뒤덮은 광막을 공격하고 있었는데, 이 광막은 너무나 견고했다. 더욱이 호조 조각상의 공격도 매우 강력해 두 사람은 오히려 큰 부상을 당했고, 법보와 언갑도 많이 손상되었다.

    심협은 마음이 무거웠다. 자신이 우세를 점한 것도 기이한 비술을 사용한 데다 운이 따른 것일 뿐, 유소짐이 다시 당할 리가 없다. 게다가 현양화마 신통은 점점 불안정해졌고, 체내의 법력도 바닥나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속전속결로 끝내야 했다.

    심협이 소매를 휘두르자 청과 금의 두 빛줄기가 언무사와 백소천 근처에 떨어졌다.

    “이걸 사용하십시오!”

    백소천이 황급히 손을 들어 푸른 빛줄기를 받았는데, 이는 1척 길이의 접선(摺扇), 바로 성한선이었다.

    언무사도 손을 휘둘러 금빛을 받았다. 금빛이 허공에서 끊임없이 커지더니 그의 옆에 도착했을 때는 금색 화포가 되었다.

    “신장화포?”

    언무사는 놀란 정도가 아니라 경악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신장화포는 천기성의 비전 언갑이인데 어떻게 심협이 이 법보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조령 조각상 주위의 광막은 난공불락이라 신장화포로도 힘들 듯한데…….’

    그러나 신장화포에 손을 대는 순간, 그의 표정이 달라졌다. 이 신장화포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동은 예상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이 화포라면 금제를 부술 수 있겠어. 백 도우, 바로 이 법보를 연화할 테니 잠시 호법을 서주세요!”

    언무사는 의심과 놀라움을 억누르며 백소천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가 고개를 돌려 보니, 백소천은 두 손으로 접선을 든 채 반쯤 넋을 놓고 있었다.

    언무사는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불러도 미동이 없는 백소천을 놔두고 바로 백여 장을 물러나 십육불타 언갑에게 호법을 서게 한 뒤 신장화포를 연화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신장화포를 사용해본 적이 있었기에 금제에 익숙했고,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연화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터였다.

    한편, 백소천은 손에 쥔 푸른 접선에서 왠지 모르게 알 수 없는 익숙한 기운을 느꼈다.

    부채를 펼쳐서 옅은 푸른색 선면(扇面)이 드러나자 회전하는 모양의 성운 소용돌이가 떠올랐다. 그는 한 번 봤을 뿐인데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자신은 알지 못했지만, 백소천의 두 눈에는 푸른빛이 감돌았고, 환상에 빠진 것 같았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눈동자에는 성단(星團)이 비쳤다.

    이 모습을 본 심협은 의아했지만, 두 사람을 믿기로 하고 훼멸명왕과 함께 산 아래로 날아갔다.

    유소짐과 거대한 여우 허상이 위로 날아올라 허공에서 격전이 벌어졌다.

    한편, 소요경 안에서는 초록색 법진이 섭채주의 몸을 뒤덮고 있었다. 천지영기가 사방에서 몰려와 그녀의 몸으로 주입되었다. 회복류 법진 같았다.

    법진 위에서는 화령자가 초록색 법진을 운공하고 있었다. 수시로 허공의 은빛 문을 통해 바깥 상황을 살피는 그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무렵, 심협은 왼손으로는 전신편을, 오른손으로는 현황일기곤을 휘둘렀다. 수많은 채찍과 곤봉의 허상이 유소짐에게 쏟아졌다.

    언뜻 보기에는 막상막하 같았지만, 화령자의 안목은 심협의 법력이 이미 바닥난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하지만 자신은 기령에 불과하고 명화연로 안에 담긴 영력밖에 사용할 없기에 저런 고수의 싸움에는 끼어들 수가 없었다.

    거울 요괴도 이곳에 있었지만, 그녀도 방법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그때, 섭채주의 눈꺼풀이 떨리더니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드디어 깨어났구나! 어서 보타산 신통으로 심협의 법력을 회복시켜다오. 법력이 금방 바닥날 게다.”

    “뭐라고요?”

    섭채주는 그 말을 듣자마자 흐릿했던 정신이 번쩍 들며 허공의 은빛 문을 돌아봤고, 곧장 결인하여 초록색 빛을 은빛 문 안으로 쏘아 보냈다.

    * * *

    청구산 중턱. 격렬한 전투에 천지가 들썩였다. 훼멸명왕과 여우 허상의 싸움이 특히 격렬했다. 발과 주먹이 허공을 흔들었고, 천지를 무너뜨렸다. 격전의 여파만으로도 주위의 모든 것이 무너지고 파괴됐다.

    심협과 유소짐의 전투도 격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신법을 극한으로 시전한 두 사람이 환영처럼 교차할 때마다 충돌음이 허공을 울렸다.

    두 사람이 갑자기 전투를 멈추면서 심협은 뒤로 날아갔고, 연거푸 몇 걸음 물러난 뒤에야 몸을 가눌 수 있었다. 그는 숨을 크게 헐떡였다.

    그를 감싼 마문 갑옷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특히 다섯 줄기 손톱자국이 가장 눈에 띄었다. 갑옷이 거의 다 부서져 매우 낭패스러워 보였고, 법력도 거의 다 소모되면서 현양화마의 몸이 불안정해졌다. 뿜어져 나오는 검은 빛과 금빛 광망은 거의 다 사라졌고, 마기가 그의 몸에서 벗겨지고 있었다.

    “법력과 마기를 융합하는 신통을 어떻게 익혔는지는 모르겠다만 안타깝게도 경지가 너무 낮으니 신통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하는구나. 이제 끝내자!”

    유소짐이 차갑게 비웃고는 은색 지팡이를 휘둘렀다.

    빼곡한 지팡이 허상이 거대한 산의 허상이 되어 날아왔고, 심협을 중심으로 반경 몇 리가 전부 지팡이 허상에 뒤덮이면서 무시무시한 기세가 느껴졌다.

    심협은 법력이 바닥났기에 강인한 육체의 힘으로 전신편과 현황일기곤을 휘둘러 지팡이 허상을 하나하나 부쉈다. 그러나 더 많은 지팡이 허상이 계속해서 몰려오자 점점 버거웠다.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인가?’

    아무리 의지가 굳건해도 법력이 소모된 지금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뒤에서 파동이 일어나더니 유소짐이 귀신처럼 나타나 은색 지팡이에서 검기 같은 빛을 뿜어냈다. 열일전부의 일격을 관통한 그 빛이었다.

    빛이 단전을 노리고 오자 심협은 열석보를 시전했지만, 완전히 피하지 못해 크게 베였고, 상처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다.

    한데 그때였다. 그의 몸에서 은빛 문이 반짝이더니 초록색 빛이 튀어나와 몸으로 들어왔다. 이 초록 빛이 몸을 감싸자 주위의 천지영기가 빠른 속도로 텅 빈 단전으로 모여들었다.

    가문 땅을 적시는 비처럼 흑과 금의 광망이 되살아나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채주!”

    심협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마음 한편이 안정되었다. 전신편과 현황일기곤의 영광도 강력함을 되찾아 교차하며 은색 지팡이의 허상에 맞섰다.

    굉음과 함께 지팡이 허상으로 만들어진 산이 완전히 폭발했고, 은빛이 되어 흩날렸다.

    “이럴 수가!”

    심협의 법력이 모두 소모됐음을 간파하고 맹렬하게 공격하던 유소짐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망할 인간족 놈, 이렇게 끈질기다니!”

    그녀는 심협의 강한 의지에 조금 감탄하고는 곧장 다음 공격을 시전했다. 은색 지팡이가 다시 수많은 허상으로 변했고, 설백의 은거울도 그녀의 머리 위로 떠올라 수많은 은백의 눈보라를 뿜어냈다.

    아홉 개의 꼬리를 휘두르자 붉은 불꽃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 붉은 불구름이 되어 심협을 뒤덮었다.

    심협은 현재 법력이 절반 정도 회복된 상태였는데, 섭채주가 소요경 안에서 쉬지 않고 회복 신통을 시전해준 덕에 곧 완전히 회복될 듯 했다. 이에 법력을 아끼지 않고 전력으로 발천난봉과 전신편 신통을 시전했다.

    열여섯 자루 순양검도 날아가 다시 금광검진을 펼쳐 유소짐를 포위했다.

    양쪽 모두 더는 손에 사정을 두지 않으면서 쌍방의 공격은 더욱 격렬해졌다.

    두 사람 사이에서 화염이 연달아 터져 수많은 불꽃 화산처럼 폭발했고, 광포한 기류가 미친 듯이 사방으로 휘몰아쳤고, 소용돌이가 생겨나 하늘 높이 솟구쳤다. 전투의 규모와 기세 모두 옆에서 싸우고 있는 훼멸명왕과 여우 법상 못지않았다.

    한데 심협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법력을 사용할 때마다 황제내경이 스스로 운공돼 상처가 초록빛과 함께 빠르게 아물어갔다. 그의 피부에도 미약한 초록색 무늬가 떠올라 본래 불안정하던 현양화마 신통도 점점 안정되어갔다.

    * * *

    청구산 정상의 제단. 백소천은 여전히 광활한 별바다에 빠져 있었는데, 그를 중심으로 수많은 별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 현묘한 느낌에 취하여 점점 빠져들어 갔다. 머릿속에서는 어째서인지 성한선 안의 각종 금제들과 신통의 변화가 떠올랐는데, 여전히 알 수 없는 익숙함이 느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쾅!

    포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허공이 강하게 흔들렸다!

    현묘한 별바다에 빠져 있던 백소천 또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데 더욱 놀랍게도, 자신이 들고 있는 부채가 저절로 연화되어 있었다!

    그의 주위에 있던 별바다도 갑자기 줄어들어 다시 성한선으로 들어갔고, 대량의 별빛도 체내로 녹아들었다.

    별빛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백소천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는데, 온몸의 기운이 갑자기 변했고 경지도 정진해 있었다. 본래 진선 중기였던 그는 현재 진선 후기에 다다라 있었다.

    다만 아직은 기운이 불안정하여 위아래로 파동을 뿜어내고 있었다.

    “백형, 멍하니 있지 말고 어서 도와주시오!”

    옆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돌아보니 언무사가 다시 조령 조각상 주위의 금제에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곤오검은 수십 장 길이의 은색 비홍(飛虹)으로 변하여 조령 조각상을 베었는데, 그 기세는 마치 벼락이 치는 것 같았다. 십육불타 언갑도 사방에서 조령 조각상을 공격했다. 각종 불문 신통이 일제히 떨어졌다.

    하지만 이 정도 공격은 간지럽다는 듯, 조령 조각상은 암홍 광막이 잠깐 떨릴 뿐 조금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언무사는 십육불타 언갑의 뒤를 쫓아 조령 조각상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빛을 피했다. 그는 조령 조각상과 거리를 좁히려는 듯 최대한 접근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조령 조각상은 마치 영지가 있는 것처럼 두 눈에서 뿜어내는 붉은빛을 더 늘려 언무사의 접근을 막았다.

    이 광경을 본 백소천이 바로 날아가 법력을 성한선에 주입했다.

    성한선의 소용돌이가 갑자기 눈부신 푸른 빛을 발하자 마치 이 부채에서 수많은 별들이 튀어나온 것처럼 나타나 그의 몸 전체를 휘감았다.

    대해와 같은 웅장한 기운이 별들에서 뿜어져 나오자 멀리서 교전하던 심협과 유소짐마저 깜짝 놀라 그쪽을 돌아봤다.

    “저게 뭐지?”

    유소짐은 위협적인 기운을 느낀 반면, 심협은 단번에 성한선에서 나오는 기운임을 알아챘다. 다만 그 법보가 백소천의 손에 들어가자마자 이렇게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유소짐은 조령 조각상을 보호하는 금제의 강력함을 잘 알고 있었지만,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었기에 머리 위의 설백 은거울을 향해 결인했다.

    은거울에서 갑자기 영광이 빛나더니 대량의 은색 폭설이 쏟아져 나와 순식간에 반경 수백 장을 뒤덮었고, 대번에 심협까지 휩쓸었다.

    당황한 심협은 전신편과 현황일기곤에서 광망을 강하게 뿜어내 주위를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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