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4화. 천존에 근접한 언갑
쾅!
굉음과 함께 호조 조각상이 부서지면서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튀었다.
심협은 크게 당황했다. 조각상이 이렇게 쉽게 부서졌다는 것이 믿기 어려웠던 것이다.
다음 순간, 그는 본능적인 위기감이 들었고, 그와 동시에 강력하기 그지없는 영압이 뒤에서 폭발하는 게 느껴졌다. 미처 피할 틈도 없이 유소짐의 장풍에 얻어맞은 그는 날아가 근처의 벽에 처박혔다.
쾅!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산 절반이 무너졌고, 먼지가 일어나고 돌이 비 오듯이 떨어졌다.
심협은 돌더미 아래서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오장육부가 다 손상됐고 경맥도 여러 곳에 균열이 생겼으며 뼈도 얼마나 부러졌는지 알 수 없었다. 몸이 그야말로 너덜너덜했다. 일찌감치 현양화마 신통을 시전하지 않고 원래의 몸으로 이 공격을 맞았다면 그대로 터져서 죽었을 터였다.
하지만 조각상을 부쉈으니 이 일격을 헛되이 맞은 셈은 아니었다.
그가 전력으로 황제내경을 운공하자 법력이 저절로 솟구쳐 안개처럼 변하여 몸 곳곳으로 녹아들었다.
황제내경은 정말 신비로운 신통이었다. 몸 곳곳의 상처가 순식간에 나았고 고통도 많이 사라졌다.
심협은 바로 벌떡 일어나 입가의 피를 닦고는 히죽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금세 굳어버렸다.
연기가 사라지는 동시에 저 멀리 제단이 보였는데, 아무런 손상도 없었다. 호조의 조각상 역시 어떤 손상도 없이 서 있었다.
‘환술이었나!’
심협의 안색이 크게 어두워졌다.
‘호족의 특기를 내가 잊었다니.’
청구 호족의 환술이 비록 적뢰산의 옥호 일족에는 미치지 못한다지만, 이미 천존에 가까워진 저 늙은 여우가 시전한 환술이면 제아무리 심협이라 해도 쉽게 간파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애송아, 이 중요한 물건을 내가 방비 없이 내버려 뒀겠느냐? 어떠냐, 절망이 느껴지느냐? 네가 넘을 수 없는 격차를 느꼈느냔 말이다. 하하하!”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속으로 내심 놀랐다. 방금 그 일격으로 심협을 죽이지 못한 것은 실로 예상 밖이었다.
유소짐의 말에 모든 자신감이 사라진 심협은 실로 좌절했다.
“네가 강한 것도 맞고 청구국 국주를 서서히 죽음으로 몰아세울 정도로 계략이 뛰어나니 네 적수가 아닌 것도 사실이다! 허나 인간족과 호족은 이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으니, 내 비록 적수가 아니어도 끝까지 싸울 것이다!”
차가운 목소리로 그렇게 외치는 동안 그의 몸에서 미약한 금빛과 검은빛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다시 싸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심협의 낯빛이 갑자기 붉어졌고, 번득이던 금빛과 검은 빛이 갑자기 무너졌다. 그는 입에서 피를 뿜으며 비틀거렸고, 벽에 기대어 간신히 몸을 가누었다.
이를 본 유소짐의 표정이 변했다.
“이 간사한 놈! 서 있기도 힘든 주제에 감히 날 상대로 농간을 부리고 시간을 끌어? 죽여주마!”
그녀는 분노에 차 외치고는 여우 법상의 발톱을 강하게 휘둘렀다.
하늘을 뒤흔드는 강력한 힘이 압박해오자 근처에 회오리 같은 기의 파도가 일어났다.
그 순간, 심협의 얼굴에 걸려 있던 죽을 것 같은 표정이 싹 사라지더니 눈에서 섬뜩한 광망이 번득였다. 동시에 그는 소매를 크게 휘둘렀다.
노란 그림자, 천살시왕이 나타나더니 그의 몸을 안고는 빠르게 옆으로 피했다. 심협은 시간을 끌며 회복할 시간을 벌었지만, 시간이 너무 짧아서 미처 회복하지 못했고, 몸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유소짐의 은색 지팡이 끝에서 혈광이 폭증하자 핏빛 광선이 이전보다 빠르게 날아가 순식간에 심협 앞에 도달했다.
천살시왕은 번천인을 꺼내지도 못하고 힘을 다해 심협을 옆으로 던졌고, 자신이 핏빛의 광선을 몸으로 막았다.
푹!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천살시왕은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면서 멀리 날아갔다. 상처 근처의 피부는 불에 탄 것처럼 검게 그을렸다.
“하하하! 이제 태을 연시도 없으니 이제는 어떻게 막을 생각이지?”
유소짐이 차갑게 비웃으며 궁지에 몰린 쥐를 잡으려는 것처럼 법력을 천천히 은색 지팡이에 주입했다.
지팡이 끝에서 혈광이 빛나더니 순식간에 심협에게 날아왔다.
심협은 피하려 했지만, 오장육부에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와 숨을 들이켜야 했고, 일순 몸이 느려지면서 혈광이 가슴을 관통하려 했다.
그 순간, 한 줄기 검광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칼날이 넓은 대검이 검광에서 나타나더니 커다란 방패처럼 심협의 앞을 막았다. 눈부신 은빛이 감도는 검신에는 고전체로 곤오라고 쓰여 있었다.
펑!
굉음이 울려 퍼졌다.
혈광이 대검에 꽂히자 검신이 크게 떨리면서 무형의 거대한 힘이 휘몰아쳤고, 뒤에 있던 심협도 그 충격에 날아갔다.
이때, 검신에서 그윽한 은빛이 솟구치더니 은색 소용돌이로 변하여 혈광을 전부 흡수했다.
뒤이어 둔광이 하늘에서 내려왔고, 그 안에서 나온 사람이 대검의 자루를 잡았다. 바로 언무사였다.
언무사가 팔을 휘두르자 곤오 대검의 칼끝에서 은빛 소용돌이가 일어나 아까 흡수한 혈광을 되돌려 보냈고, 순식간에 유소짐의 앞에 나타났다.
유소짐은 깜짝 놀랐다. 여우 법상을 조종하여 이 공격을 막기에는 이미 늦었기에 그녀는 은색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온 눈부신 은빛을 혈광을 향해 날렸다.
깡!
금속이 충돌하는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혈광은 일격에 사라졌지만, 유소짐도 뒤로 밀려났다.
언무사가 양손을 연속으로 휘두르자 금빛이 연달아 번득이더니 십육불타 언갑이 나타나 각자 금빛을 뿜어내며 유소짐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 허공에서 또다시 두 사람이 내려왔다. 가장 먼저 온 것은 백소천이었다. 그는 내려오자마자 손을 내밀어 충격으로 밀려나는 심협을 잡고는 손에서 금빛을 발하여 체내로 주입시켰다. 심협의 상처 부위에 수많은 핏발이 일어나 빠르게 교차하면서 합쳐졌다. 여기에 황제내경까지 더해지자 상처가 빠른 속도로 아물었다.
“언형, 백형, 어떻게 온 것이오?”
창백해졌던 심협의 얼굴이 빠르게 핏빛을 되찾았다.
“주인님, 제가 두 사람을 모셔왔습니다. 향양진 쪽의 청구 호족은 패퇴한 상황이라 우선 두 분께 지원 요청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심협 옆에 도착했는데, 바로 귀장 조비극이었다.
“호족이 패하다니, 무슨 헛소리냐! 내 이미 휘하들에게 향양진을 지원하라 일렀거늘, 어떻게 패한단 말이냐!”
유소짐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녀는 지금 십육불타 광진에 막혀 진을 파훼하려 했으나, 조비극의 말을 듣고는 우선 향양진 쪽을 살펴보기 위해 신식을 펼쳤다. 그녀의 신식이 단숨에 반경 수백 리를 뒤덮었다.
다음 순간, 유소짐의 표정이 크게 어두워졌다. 조비극의 말대로 청구 호족은 이미 패했고, 그녀 휘하의 호족들도 보이지도 않았다.
심협이 이 광경을 보고는 눈을 치켜뜨며 전음으로 화령자와 소통했다.
“네가 한 거야?”
“그럴 리가! 기령에 불과한 나한테 어디 그런 대단한 신통이 있다고!”
화령자가 바로 부인하자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소짐 휘하의 호족을 모조리 잡거나 감금하는 것은 확실히 화령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유소짐! 이 기운은…… 이게 도대체?”
백소천은 유소짐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이쪽의 상황을 알아채고는 얼굴빛이 바뀌었다.
“그녀가 도산설의 호조의 힘을 흡수했고, 지금도 저 호조 조각상을 통해 감정의 힘을 흡수하고 있으니 실력이 곧 천존 경지에 도달할 거요.”
심협이 전음으로 설명했다.
“천존 경지!”
백소천과 언무사가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그렇게까지 걱정할 것 없소. 내게 천존급에 근접한 언갑이 있으니 한동안은 유소짐을 막아낼 수 있을 게요.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저 호조 조각상을 파괴하는 것이오.”
백소천의 도움으로 상처가 어느 정도 회복된 심협은 계속해서 전음을 보냈다.
“천존에 근접한 언갑?”
언무사의 두 눈이 커졌다.
이전의 향양진 대전에서 언무사는 자신의 진안을 지키는 데 온 신경이 집중된 탓에 훼멸명왕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심형이 말한 게 그때 그 언갑인가? 그 언갑이 천존에 근접한 실력이 있다면 심형 말대로 힘을 합쳐서 저 조각상을 부수는 게 가장 중요하겠군.”
백소천은 이전에 봤던 훼멸명왕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언무사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현재 유소짐은 다시 냉철해져 있었다. 휘하의 부하들이 어디로 갔든 심협 등의 연합군을 이끄는 자들만 해결하면 이 전투는 청구 호족의 승리가 되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녀가 여우 법상에서 쏜살같이 튀어나오더니 곧장 언무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여우 법상은 그 뒤를 따라 심협과 백소천에게 돌진했다. 두 발톱에서 칼날 같은 조망이 나타나 심협에게로 날아들었다.
온 신경을 다해 경계하며 유소짐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음에도 언무사는 그 빠른 속도에 경악했다.
그는 재빨리 곤오검을 들어 앞을 막았고, 자신은 대검의 뒤에 숨었다.
꽝!
유소짐의 공격이 곤오 대검에 떨어지자 강력한 충격이 전해졌고, 언무사는 뒤로 튕겨 나갔다.
이를 본 심협이 서둘러 다가와 전신편을 휘둘러서 유소짐을 제지했다. 동시에 그가 다른 손을 뒤로 휘두르자 눈부신 광망이 번쩍이면서 훼멸명왕이 나타났다. 몸의 영광이 이미 회복되고 몸도 몇 배로 커져서 여우 법상과 비슷했다.
훼멸명왕은 열일전부에서 태양 같은 불꽃을 뿜어내며 여우 법상을 향해 가로로 휘둘렀다.
여우 법상은 상당한 영지를 가졌는지 발톱의 방향을 바꿔 열일전부를 막았다.
쾅! 쾅!
두 번의 굉음과 함께 유소짐과 여우 법상의 공격이 모두 막혔다.
“내가 막고 있을 테니 두 사람은 서둘러 저 호조 조각상을 부수시오! 안에 금제가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심협의 전음을 들은 언무사는 안 그래도 유소짐과 자신의 격차를 알았기에 무리하게 버티다가 헛된 죽음을 맞는 대신 곧장 제단 쪽으로 날아갔다.
백소천은 심협과 오랫동안 알아 왔기에 마음이 통했고, 그 판단에 조금의 의심도 없었기에 바로 하얀 빛이 되어 제단 쪽으로 돌진했다.
조비극은 장룡적을 꺼내 불었다. 그러자 단전에서 갑자기 검은 불꽃이 타오르더니 빠르게 몸 곳곳으로 번졌다.
피리 소리가 퍼지자 허공에 육안으로 보이는 음파가 나타나 유소짐을 향해 날아갔다.
유소짐은 언무사와 백소천이 제단에 도착한 것을 보자 초조해졌다.
“저리 비켜라!”
그녀가 손을 휘두르자 거대한 발톱이 허공에 나타나 심협을 압박해왔다.
심협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고, 몸을 돌볼 틈도 없이 전력으로 체내의 법력과 마기를 뽑아내 현양화마 신통에 주입했다.
그의 몸에서 금빛과 검은 빛이 갑자기 강해지더니 피부의 금빛과 마문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서로 뒤엉켰고, 하나로 합쳐질 기미를 보였다.
심협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현양화마 신통을 깨닫게 된 것은 법력과 마기의 조화를 위해서였지만, 두 기운은 언제나 경계가 분명했다. 변신할 때도 반은 마화가 되고 반은 선(仙)이 되었는데, 지금 두 기운이 합쳐지면 현양화마 신통도 완벽해지지 않으니 화가 될지 복이 될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가 현양화마의 힘을 전신편에 주입하자 신편이 갑자기 대량의 검은빛을 뿜어내며 거대한 발톱을 강하게 두들겼다.
꽝!
경천동지할 굉음이 울려 퍼졌다.
심협은 뒤로 날아가며 피를 뿜었지만, 유소짐도 뒤로 두 걸음 정도 물러났다.
한쪽에서 맞붙은 여우 법상과 훼멸명왕도 막상막하였다. 훼멸명왕은 힘을 최대한 발동한 터라 몸의 영광이 몇 배나 짙어졌고, 열일전부에서 솟구치는 불꽃 뱀에 의해 주위의 허공이 불에 탄 것처럼 일그러졌다.
쾅!
굉음과 함께 훼멸명왕도 뒤로 밀려났지만, 여우 법상의 공격을 막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