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3화. 법상을 부수다
“네놈들이 죽고 싶어 안달이 났구나!”
유소짐의 눈에 분노의 빛이 스쳐 지나가더니 은색 지팡이를 들어 훼멸명왕을 가리켰다.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찌르며 울려 퍼지더니 눈부신 붉은 선이 지팡이 끝에서 뿜어져 나가 순식간에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 순간, 붉은 선은 훼멸명왕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나타나더니 곧장 명왕의 머리로 날아갔다.
훼멸명왕도 두 눈에서 보라색 뇌광을 빛내며 멸세뇌광을 뿜어냈다.
꽈꽝!
두 줄기 빛이 허공에서 서로 충돌하자 격렬한 폭음이 울렸고, 멸세뇌광은 빠르게 뒤로 밀려났다.
심협은 유소짐의 일격이 평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강력할 줄은 몰랐기에 긴장하며 바로 심념을 발동했다.
천살시왕이 순식간에 훼멸명왕 옆에 나타나 번천인을 강하게 휘둘러 붉은 선을 공격했다.
땅!
금속끼리 맞부딪히는 소리가 울리더니 집채만 해진 번천인의 아래에서 불꽃이 튀었고, 강렬하게 떨리면서 뒤로 튕겨 나갔다.
놀란 유소짐은 은색 지팡이를 들고 뭔가 하려 했는데, 뒤에서 뇌광이 번쩍이며 심협이 튀어나오더니 현황일기곤의 빼곡한 곤봉 허상으로 뒤덮었다.
이에 그녀가 차갑게 비웃고는 손바닥에서 다시 붉은색 광망을 뿜어내 방패를 만들더니 현황일기곤의 공격을 가볍게 막았다.
하지만 심협은 애초에 유소짐이 막아낼 것을 알고 시도한 공격이었다. 그는 계획한 대로 소매를 휘둘렀고, 그러자 갑자기 찬란한 금빛이 빛나더니 수많은 금색 검광이 날아가 금색 구름처럼 그녀에게 쏟아졌다.
금광검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광의 검기가 햇살처럼 끊임없이 유소짐에게 떨어졌다.
“이런 잡기술 따위를 부리다니!”
유소짐이 가소롭다는 듯 비웃고는 바로 귀신처럼 옆으로 피하려 했다.
한데 땅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어느새 하얀색 법진이 나타나 강력한 금고의 힘을 발했고, 유소짐은 일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금광검진이 몰려와 유소짐을 포위했다.
유소짐의 안색이 조금 변하더니 황급히 호체 신통을 시전하여 몸 밖으로 보광을 뿜어냈다. 보광은 붉은색 영호(靈狐)의 모습이 되어 모든 검광과 검기를 막아냈다.
심협이 이를 악물고는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마기가 뿜어져 나가 거대한 검은색 마조로 변하여 유소짐을 향해 날아갔다. 바로 치우지박 신통이었다.
뒤이어 그가 왼손으로 검결을 맺자 금광검진에서 뿜어져 나가는 검기가 투과력이 더 강한 금색 검사로 변하여 붉은색 영호에게 날아갔다.
훼멸명왕도 날아와 두 눈에서 보라색 뇌전을 뿜어내 검광 검진을 지나 유소짐을 공격했다.
옆에서 천살시왕도 번천인을 꺼내 유소짐을 강하게 내리쳤다.
쏟아지는 공격에 유소짐의 호체 보광이 격렬하게 떨리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유소짐의 표정이 변하더니 황급히 전력으로 몸 주위의 여우 모양 호체 보광을 유지했다. 동시에 손에서 설백의 은색 거울을 꺼내 접근해오는 금광검진을 비췄다.
거울에서 광망이 폭증하자 수많은 은색 화광이 폭설처럼 미친 듯이 솟구쳤고, 순식간에 하늘 절반을 가렸다. 금광검진이 이에 휩쓸렸고, 훼멸명왕과 심협, 천살시왕도 은색 폭설의 감옥에 갇혀버렸다.
“폭설 속에서는 뜨거운 태양도 가려질 수밖에 없다.”
유소짐이 나지막하게 외쳤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하늘에 가득한 폭설이 갑자기 몇 배로 강해지더니 천살시왕과 심협, 금광검진 심지어 훼멸명왕까지 그 은색 보경으로 끌려갔다.
“하앗!”
심협이 크게 기합을 내지르자 온몸의 검은빛과 금빛이 치솟았고, 현양화마의 몸도 다시 3할이나 커졌다. 특히 몇 배로 커진 팔은 무시무시한 힘을 뿜어내며 허공으로 주먹을 날렸다.
훼멸명왕과 금광검진의 위력도 마찬가지로 폭증하여 주위로 뿜어냈다.
무시무시한 기의 파도가 바로 사방으로 휘몰아치자 주위의 은색 폭설은 순식간에 날아갔지만, 가운데 포위되어 있던 유소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심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심혈을 기울여 유소짐을 겨우 포위했고 모든 강력한 수단을 시전하여 전력을 퍼부어 공격했건만, 상대는 쉽게 도망쳤다.
“이렇게 강할 줄이야…….”
마음이 무거워진 그는 결인하여 금광검진을 해체했다.
현양화마와 훼멸명왕 언갑 그리고 금광검진까지 사용하느라 소모가 매우 심했다. 그의 법력이 평범한 진선 후기보다 풍부하다 해도 신혼의 힘은 갓 태을의 단계로 돌파했기에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그때, 은빛이 옆에서 날아와 금광검진으로 변한 열 자루 순양검을 휘감더니 멀리서 끌어당겼다. 자세히 보니 방금 그 은색 폭설이었다.
현재 은색 폭설의 힘은 매우 강해져서 심협은 순양검을 잡지도 못했고, 열 자루의 순양비검은 은색 폭설에 휩쓸려 갔다.
표정이 어두워진 그는 바로 훼멸명왕을 조종하여 불꽃이 번쩍이는 열일전부로 폭설을 내리쳤다.
그때, 근처의 허공에서 물결 같은 파문이 일어나더니 거대한 붉은 손바닥이 튀어나와 열일전부를 움켜쥐었고, 도끼는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심협은 당황하지 않고 검결을 맺었다.
훼멸명왕의 다른 팔이 갑자기 희미해지더니 힘껏 휘둘렀고, 명홍도에서 초록빛 도의 허상이 날아갔다. 희미한 모습이 은빛 폭설 옆에 나타나 휙 베었다.
은색 폭설이 잘리면서 폭발하자 열 자루의 순양비검이 빠져나와 심협을 향해 돌아왔다.
커다란 붉은 손바닥 옆의 허공에서 천둥 같은 포효가 울렸고, 계속해서 광란의 파동이 일어나더니 제단 천장에 거의 닿을 듯한 거대한 선호법상(仙狐法相)이 나타났다. 법상 안의 허공에는 누군가 서 있었는데, 바로 유소짐이었다.
강력하기 그지없는 기세가 거대한 여우 법상에서 폭발하자 심협과 훼멸명왕, 천살시왕 모두 뒤로 날아갔다.
심협이 비틀거리며 전열을 가다듬고는 돌아온 순양비검과 명홍도를 거두었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유소짐을 살폈다.
현재 유소짐 몸 밖에 나타난 여우 법상은 이전에 장안성을 습격했던 그것이었다. 비록 색깔은 조금 달랐지만, 심장이 졸아들 정도의 두려운 위압감은 아직도 생생했으니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심협은 그제야 믿을 수 없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도산설과의 연결은 끊어졌는데도 유소짐의 기운이 어째서인지 아직도 끊임없이 강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금방이라도 문턱을 넘어 완전히 천존 경지로 진입할 듯했다.
그때, 옆에 있던 훼멸명왕 몸의 영광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안의 선옥이 모두 소모된 것이다.
심협은 혀를 차더니 소매를 휘둘러 훼멸명왕을 거뒀다.
훼멸명왕의 원기만 소모된 것이 아니라 그의 법력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섭채주는 의식을 잃은 채 소요경 안에 있으니 법력을 회복시켜줄 사람도 없었다. 그저 가까운 곳에 선정을 놔두고 그 안의 법력을 흡수하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심협, 무작정 공격할 게 아니라 유소짐 뒤의 저 제단을 유심히 봐라. 저 위의 호족 조령 조각상이 관건이다. 저 조각상이 지금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는 감정의 힘을 쉬지 않고 모아서 저 늙은 여우에게 전해주고 있다.”
화령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소요경 안에서 들려왔다.
줄곧 싸우느라 바빴던 심협과는 달리 그는 전장의 세태를 더욱 자세히 살필 수 있었고, 법진에 정통했기에 더 빨리 단서를 찾아낼 수 있었다.
“감정의 힘?”
호조 조각상을 힐끗 보니 희미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신식을 운공하여 조심스레 유소짐을 피해 호조 조각상을 살펴보니 정말로 특수한 기운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와 유소짐에게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이 기운들은 매우 희박한 데다 천지영기가 아니었기에 화령자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절대로 발견하지 못했을 터였다.
심협이 몰래 창혼주를 발동하여 이 기운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들의 표정에는 기쁨, 슬픔, 분노, 흉포함 등 각종의 복잡한 감정이 가득했고, 그 감정들이 천지를 뒤덮으며 압박해왔다.
심협은 깜짝 놀라서 서둘러 신식을 거뒀다. 조심스레 살펴본다고 했지만 결국 유소짐에게 들통난 것이다.
“호조 조각상을 알아채다니, 제법이구나. 그렇다면 더더욱 살려 보낼 수 없지!”
유소짐이 차갑게 내뱉더니 한 걸음 내딛어 붉은 빛과 함께 사라졌다.
곧바로 심협 앞에서 파동이 일어나더니 유소짐과 여우 법상이 귀신처럼 나타났고, 거대한 발톱이 돌풍을 일으키며 머리 위로 떨어졌다.
심협은 유소짐의 움직임을 유의하고 있었기에 그녀가 걸음을 떼자마자 발에서 뇌광을 뿜어내며 순식간에 사라져 일격을 피하고는 수백 장 떨어진 제단 밖으로 날아갔다.
지금까지의 대전으로 견고하던 조령 제단도 이미 만신창이였고, 곧 무너질 지경이었다.
그가 원래 서 있던 자리는 허공이 어두워지더니 곧이어 한 덩어리 빛에서 뿜어져 나온 격렬한 파동에 허공이 강하게 흔들렸다. 땅에는 커다란 손 모양의 구멍이 생겼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손 모양의 커다란 구멍은 가장자리가 거울처럼 매끄러웠다. 강력한 힘이 엄청난 속도로 공격해야만 생겨날 수 있는 흔적이었기에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이를 본 심협은 오싹 소름이 돋아 다시 뒤로 날아가 거리를 더 벌렸다.
“요족은 반고 대신의 감정이 변한 화신들이라 이 감정의 힘이 그들에게는 힘의 원천이다. 호족이 물려받은 것은 질투의 힘인데, 천백 년 전, 그들은 인간족과 선족이 삼계의 복지동천을 차지하여 번성한 것에 일찌감치 불만을 품어왔다. 그렇게 쌓인 질투와 원망의 힘은 무궁무진하여 너 같은 일개 진선기 수사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소요경 안의 화령자가 바깥의 상황을 바라보며 서둘러 말했다.
“진짜야? 날 도망치게 하려는 건 아니지?”
심협이 눈살을 찌푸렸다.
유소짐이 지금 보여준 실력은 엄청났기에 그도 자신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당연히 아니다. 내 비록 청구 호족이 어떻게 호조를 부활시켰는지 모르겠다만, 절대 완벽하게 부활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만약 완벽한 부활이었다면 이렇게 외부의 감정의 힘을 빌리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 네가 저 조각상을 부순다면 유소짐의 법상도 버티지 못하고 부서질 게야!”
화령자의 말에 심협은 희망이 생겼다. 저 거대한 법상만 부순다면 유소짐의 실력이 아무리 강해도 이길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그때, 전방의 허공에서 붉은 빛이 번쩍이더니 유소짐이 조종하는 여우 법상이 다시 날아왔다. 이를 본 심협은 발에서 뇌광을 뿜어내며 다시 피해 허공으로 들어가서 사라졌다.
“똑같은 수법이 두 번이나 통할 거라 생각했느냐!”
유소짐이 차갑게 비웃고는 손을 휘둘렀다.
은빛이 손에서 날아가 여우 법상의 미간에 박혔는데, 바로 그 설백의 은색 거울이었다. 법상 미간에서 겹겹의 눈부신 붉은빛이 생겨나더니 사방에서 은거울을 압박해왔다.
설백의 은거울은 콰직 하는 소리가 연달아 울리더니 순식간에 부서지고 축소되어 은색의 세로 모양 눈으로 변했다. 가느다란 은빛이 거기서 뿜어져 나와 근처의 허공으로 들어갔다.
허공이 격렬하게 떨리더니 대량의 폭설 같은 은빛이 뿜어져 나오자 심협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얼른 금빛이 되어 멀리 날아가려 했다.
유소짐이 차갑게 웃고는 왼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자 여우 법상도 똑같은 동작을 했다.
날아가던 심협 주위에 파동이 일어나더니 다섯 줄의 커다란 붉은색 광흔이 나타나 그의 몸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놀이는 끝이다! 이제 죽어라!”
유소짐의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가더니 여우 법상이 주먹을 꽉 쥐자 다섯 줄의 붉은색 광흔이 합쳐졌다. 마치 절세의 신병이 심협의 몸을 몇 조각으로 벤 것만 같았다.
하지만 조각 난 몸이 갑자기 푸른 거울 같은 물빛으로 변하더니 사라졌다. 바로 거울 요괴의 경상 분신이었다.
유소짐은 일순 당황했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발밑에서 붉은 빛을 뿜어냈고, 거의 동시에 그녀와 여우 법상이 사라졌다.
그 순간, 조령 제단 앞에 뇌광이 번쩍이더니 심협이 나타나 곧바로 무시무시한 검은 빛을 뿜어내는 전신편을 호조 조각상을 향해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