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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19화 (1,019/1,214)
  • 1019화. 물러날 곳이 없다

    유소짐은 도산설 체내에 담긴 호조의 힘을 뽑아내느라 바빴기에 대진의 호령 악귀를 발동하여 공격할 틈이 없었다. 심협을 죽이는 임무는 회색 옷의 세 사람에게 맡겼다.

    세 사람은 양손으로 동시에 법결을 맺고는 허공에 내밀어 자신의 정석(晶石) 해골을 발동했다.

    두개골에서 혈광이 강하게 번득이더니 두 눈에서 검은색 소용돌이가 일어났고, 그 안에서 검은색 마화가 타오르는 듯했다.

    심협은 훼멸명왕 언갑을 꺼냈다. 멸세쌍목에서 보라색 빛이 번쩍이더니 두 줄기의 실제 같은 보라색 전광이 뿜어져 나가 법진 결계에 꽂혔다.

    콰쾅!

    거대한 전광이 결계 안에서 폭발하자 요란한 굉음이 울렸고, 대량의 호령이 소멸했다. 그러나 금고 법진은 크게 흔들리긴 했어도 부서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심협이 여덟 자루의 비검을 날려 손에 쥐고 있던 순양검과 합치자 붉은색 검광이 갑자기 폭발하여 몇 배로 밝아졌다.

    다른 손에서는 초록색 빛이 번득이더니 명홍도가 나타났다. 그는 명홍도를 휘두르는 동시에 훼멸명왕을 이용해 공격했다. 결계가 부서질지 살펴볼 생각이었다.

    한데 그때, 해골의 눈에서 휘몰아치던 검은색 소용돌이 안에 있던 검은 불꽃이 세차게 솟아올라 순식간에 두 겹의 법진을 뚫고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심협은 불꽃에서 익숙한 치우의 기운이 느껴지자 이 마화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호령 악귀는 용솟음치는 마화에 닿자 타들어 가기는커녕 오히려 착 달라붙어 순식간에 마화의 외투를 입었다. 이 검은 마염의 옷을 입은 호령 악귀들은 더는 순양검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제히 몰려들었다.

    심협은 장검의 검광을 순식간에 수십 장이나 뻗어 마염에 휩싸인 호령의 몸을 베었다.

    하지만 호령 악귀는 칼날에 닿은 일부만 검광에 잘려나갔고, 나머지는 조금 뒤로 밀려났을 뿐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한편, 뒤에서도 마찬가지로 대량의 마염 호령이 섭채주에게 달려들었다.

    섭채주는 곤륜경에서 검은 빛의 파동을 뿜어내 막았다. 하지만 몸에 마염을 두른 호령은 모두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비록 검은 빛 파동이 파도처럼 몰려나왔지만, 수많은 호령이 잽싸게 피해 섭채주에게 달려들었다. 그것들의 눈은 피에 대한 갈망이 가득했다.

    “하!”

    섭채주가 기합을 내지르자 다른 손에 있던 기다란 비단이 날아갔다. 선법이 솟구쳐 나오고 겹겹의 채색 빛을 띠며 끊임없이 길어져 이 호령 악귀들을 전부 묶어서 쓸어버리려 했다.

    손목을 흔들어 구천선릉을 거둔 그녀는 그 위에 남은 불에 그을린 흔적을 보고는 가슴이 쓰라렸다. 이 보물은 스승이 준 것이라 줄곧 아껴왔건만, 검은색 마염과 잠깐 닿은 것만으로도 손상을 입고 영광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녀가 분노에 휩싸여가는데 심협의 외침이 들려왔다.

    “조심해!”

    진선 절정의 기운을 뿜어내는, 여우 머리에 사람을 몸을 한 악령이 갑자기 검은색 파동에서 튀어나왔다. 온몸에는 마염의 갑옷을 입고 손에는 마염으로 만들어진 장창을 쥐고 있었다. 그 악령은 두 마리 호령의 가슴을 뚫고 곧장 섭채주의 심장을 찔러 왔다.

    섭채주의 선릉이 바로 날아올랐고, 허공에서 그물처럼 변하여 마염의 장창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창끝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더니 각도를 틀어 곧장 선릉의 보호를 뚫고 섭채주의 가슴을 찌르려 했다.

    그 순간, 갑자기 금색 술잔이 섭채주 앞에 나타나 영광을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눈부신 금색 광망이 내려와 섭채주를 보호했다. 창끝이 천두금준의 금색 광막을 찌르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뚫지는 못했다.

    여우 머리의 악령은 이를 보고는 화가 난 듯 성큼 걸어와 장창에 힘을 더 줘 보호막을 일격에 관통하려고 했다.

    한데 그때였다. 누군가 그것의 뒤에 나타나 도를 휘둘렀다.

    초록색 광망을 뿜어내는 명홍도는 푸른색 물이 흐르는 것처럼 순식간에 악령의 뒤를 베었다.

    푹!

    이어 가벼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광이 몸을 뚫고 지나가자 호령은 반으로 갈라졌고, 비명을 질러댔다. 절반으로 갈라진 몸은 초록색 도광에 둘러싸이더니 그대로 흡수되었다. 도신의 살기는 더욱 짙어졌다.

    “괜찮아?”

    심협이 서둘러 섭채주에게 다가와 순양검과 명홍도에서 뿜어져 나온 수많은 검의 허상과 도광으로 주위의 호령을 깡그리 소멸시키며 물었다.

    “괜찮아요. 다만, 검은색 불꽃에 심상치 않은 강력한 침투의 힘이 있는 모양이에요. 잠깐 닿았을 뿐인데 구천선릉과 천두금준의 상당 부분에 마염이 침투됐어요.”

    섭채주이 말에 천두금준을 거둬 살펴보니 정말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

    반면 심협이 방금 사용한 두 개의 무기는 멀쩡했는데, 이는 순양검의 태양진화가 마기와 상극이고, 명홍도는 곧장 마화와 호령을 흡수했기 때문이었다.

    “저 호령들은 보통이 아니야. 몸에 두르고 있는 마화에서 치우의 기운이 느껴지니 절대 저기에 닿으면 안 돼.”

    심협이 당부했다.

    “여기서 빨리 빠져나가야 해요. 저 늙은 여우의 전승이 끝나면 도망치고 싶어도 못 가게 될 거에요.”

    “이 만호적멸진은 훼멸명왕의 멸세쌍목으로도 부술 수가 없고 축지척으로도 뚫고 나갈 수가 없어. 빠져나가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겠어.”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방의 마염 호령이 다시 공격해왔다.

    이전의 공세와는 전혀 다르게 이번에는 호령들이 파도처럼 밀고 들어왔다. 방대한 숫자로 두 사람을 완전히 뒤덮어버리겠다는 뜻이었다.

    심협과 섭채주는 황급히 전력을 다해 반격에 나섰다. 검광과 도광이 연달아 번쩍이고 검은 빛의 파동이 파도처럼 몰아쳤다.

    하지만 호령의 수는 끝이 없었고, 결국 두 사람은 밀리기 시작했다. 호령들은 포위망을 점점 더 좁혀와 퇴로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그 순간, 섭채주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등의 하얀색 나비 날개에서 광망이 번쩍였다. 시간 신통을 시전하여 형세를 반전시키려는 의도였다.

    “채주야, 서두르지 마.”

    심협이 황급히 그녀를 말리고는 다시 천두금준을 발동했다.

    금색 화광이 공 모양의 광막을 만들어 두 사람을 뒤덮는 동시에 광망이 밖으로 방출되어 마염 호령을 뒤로 밀어냈다.

    명홍도와 순양검이 미친 듯이 춤을 췄다. 검신에서는 불꽃이 솟구쳤는데, 모든 귀물에게 상극인 홍련업화였다.

    공작이 날개를 펼친 것처럼 검기와 도망이 주위의 호령들을 베어 나갔다.

    동시에 노란 빛과 검은 그림자가 반짝이더니 천살시왕과 조비극이 나타나 입에서 시화를 뿜어냈고, 피리에서 음파를 뿜어냈다.

    검은색 마염은 천두금준의 광막에 막혔고, 명홍도와 순양검, 천살시왕 그리고 조비극이 총공격을 퍼붓자 눈 깜짝할 사이에 대량의 호령이 소멸했다.

    이 광경을 본 섭채주는 서둘러 시간 신통을 거두고는 약목신궁으로 빛의 화살들을 쏘아 보내 주위에 있는 호령 귀물을 처치했다.

    심협의 전술은 간단했다. 유소모주가 아무리 많은 호령 귀물을 모았다 해도 전력을 다해 죽이다 보면 만호적멸진은 자연스럽게 무너질 것이다.

    진 밖의 세 사람은 이 광경을 보고는 눈빛을 교환하더니 수중의 법결을 바꿨다.

    호령 악귀들이 공격을 멈추더니 뒤로 물러나 만호적멸진 광막 안으로 녹아들었다.

    이를 본 심협은 눈살을 찌푸렸다.

    바로 그때, 대진의 광막에서 검은색 호령의 허상이 떠오르더니 입을 쩍 벌리고 수많은 검은색 마화를 계속해서 뿜어내 파도처럼 천두금준의 금색 광막을 때렸다.

    이번 마화는 조금 전의 그것과는 달랐다. 매우 끈적해서 금색 광막에 닿자마자 바로 달라붙은 것이다.

    치익!

    금색 광막에서 끊임없이 녹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뿜어져 나오는 금빛은 침식당해 색깔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허공의 금잔도 이리저리 흔들렸고,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검게 물들어갔다.

    심협이 손을 휘두르자 깃발이 펼쳐지는 소리가 나더니 커다란 보라색 깃발이 날아와 두 사람 앞을 막았다. 깃발 위로는 새하얀 해골 그림이 선명했다. 바로 혈맥원번이었다.

    이 깃발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해골 그림이 갑자기 눈을 뜬 것처럼 두 개의 비어 있는 눈에서 빛이 번득였다. 동시에 깃발도 혈광으로 빛났다.

    혈하(血河)가 혈백원번에서 흘러넘치더니 심협 등의 주위를 에워싸 금색 광막을 대신해 주위의 마화를 막았다.

    천두금준의 영광이 거의 다 사라지자 본래 광화로 번득이던 금잔은 거의 검게 물들어 마치 고철처럼 밑으로 떨어졌다.

    심협은 서둘러 손을 내밀어 받았는데, 표정은 매우 평온했다. 만약 다른 것에 침식되었다면 번거로웠겠지만, 마기, 특히 치우의 마기라면 걱정할 것이 전혀 없었다.

    체내의 법력을 팔의 법맥에 있는 검은색 씨앗으로 모았다.

    그는 일전에 천언궁에서 예상치 못하게 이 검은색 씨앗을 사용하여 법보에 물든 치우의 마기를 흡수한 적이 있다. 지금도 천두금준은 치우 마기에 침투됐으니 검은색 씨앗이 몰아낼 수 있을 터였다.

    한데 검은색 씨앗의 뿌리가 튀어나와 천두금준을 찔렀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씨앗은 천두금준의 마기를 흡수할 뜻이 전혀 없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지?”

    심협은 의아했다. 분명히 치우의 마기인데 왜 이번에는 흡수를 못 하는 것인가!

    그때였다.

    쿠르릉!

    굉음이 들려오더니 검은색 마화가 혈맥원번의 혈광을 빠른 속도로 제압해갔다. 금방이라도 완전히 부서질 것 같았다.

    심협은 천두금준을 돌볼 틈도 없이 서둘러 혈백원번을 제어하는 데 집중하여 혈광을 안정시켰다.

    이 깃발은 품질이나 위능이나 모두 천두금준보다 뛰어났지만, 저 기이한 마화의 오염과 침투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깃발 위에는 점점 검은색 반점이 나타나고 있었다.

    심협은 눈살을 찌푸렸다. 예상과 달리 검은색 씨앗이 치우의 마기를 흡수하지 못하니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할지 생각하기 바빴다.

    그때, 소요경에서 화령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협, 만호적멸진은 본래 난공불락인데 지금 겉에 현화마살진(玄火魔殺陣)까지 뒤덮고 있으니 두 진이 같이 있는 한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없다. 살길을 찾으려면 반드시 두 진의 연결을 끊어내야 한다. 둘 중 하나만 부수면 남은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건 나도 알아. 다만, 대진이 견고한 데다 마화까지 침투하고 있으니 쉽지가 않을 뿐이야.”

    “저 마화와 호령의 결합은 매우 기이하여 평범한 방법으로는 파훼할 수 없다. 섭채주의 무력의 힘을 사용해보는 게 어떻겠나?”

    화령자의 제안에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 마화는 법보와 법력의 침투가 강하니까 어쩌면 무력으로 막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때, 섭채주가 끼어들었다.

    “화령자 선배님, 제가 아까 시도해봤는데 제 무력의 힘으로도 막지 못했어요.”

    그러자 화령자는 다시 조용해졌으나, 잠시 후 다시 말을 꺼냈다.

    “네 무력의 힘은 약한 편이 아니다. 다만, 저 마화에 대항할 정도의 힘을 한 번에 폭발시키기에 부족할 뿐. 심협, 너한테 육진편이 있지 않더냐? 그것이 제강 조무가 만든 전신편이라면 곤륜경과 달리 극강의 공격력이 있을 터. 섭채주가 그 안에 담긴 무족의 힘을 끌어내면 어떻겠나?”

    “좋은 생각이야!”

    심협이 눈을 번쩍 떴다. 육진편이 전신편으로 탈바꿈한다면 그 강력함과 그 안에 담긴 섭혼 대진으로 만호적멸진을 부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심협은 곧장 소요경 공간을 열어 섭채주와 육진편을 죽루(竹樓) 안으로 보냈다.

    섭채주는 심협 혼자서 대진의 공세를 막지 못할까 봐 걱정됐다.

    “아직 괜찮으니까 난 걱정하지 마.”

    심협은 섭채주의 마음을 알고는 바로 말했다.

    “알겠어요.”

    섭채주도 바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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