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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18화 (1,018/1,214)
  • 1018화. 공모(共謀)

    거의 같은 시각, 청구성 뒤쪽 높은 산의 호조 제단. 검은 빛이 하늘 높이 솟구치더니 도산설이 나타났다.

    유소모주가 은색 지팡이를 들고 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그녀가 전송 법진으로 자신을 이곳으로 불러들인 게 분명했다.

    “대장로, 이게 무슨……?”

    도산설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주위의 땅에서 몇 개의 붉은색 사슬이 갑자기 튀어나와 그녀의 팔다리를 묶었다. 사슬에서 붉은 빛이 번득이면서 그 위로 세밀한 부문이 떠오르며 금제의 파동이 흘러나왔다.

    도산설이 발버둥 치자 사슬에서 천둥소리가 울리더니 암홍색 뇌전이 뿜어져 나와 그녀의 몸에 떨어졌다.

    “크아아!”

    도산설은 두 눈을 홉떴다. 마치 전기가 근육과 뼈를 타고 흐르는 듯한 느낌에 오장육부에도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잠시 후, 얼마 남아 있지 않았던 힘마저도 봉인된 듯 도산설은 바닥에 쓰러졌다.

    “유소짐(有蘇鴆), 네가 감히! 날 감금해서 뭘 하려는 것이냐?”

    도산설이 목이 터져라 외쳐대자 유소모주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얼마 만에 불려보는 이름인가! 스스로도 가물가물한 이름을 어린 후학에게 불렸음에도 그녀는 개의치 않고 웃었다.

    “설아, 넌 겨우 진선기 수사이니 선조의 힘을 받아들이고 발휘하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 그러니 그 힘을 내게 넘기거라. 복수는 내가 대신 해주마.”

    “이 힘이 탐났다면 어째서 호령옥을 내게 넘긴 거지? 날 이용한 것이냐?”

    도산설은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채고는 분노했다.

    “흥! 그래도 멍청하지는 않구나. 호조의 힘은 매우 강력하니 받아들이는 사람의 몸과 혼백에도 큰 부담이 된다. 아무나 받아내지 못하지. 나와 네 모친이 백 년 전부터 호조를 소환할 방법을 연구해오고도 지금까지 쓰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허나 몇 년간의 깨달음과 다른 이의 도움으로 전가술(轉嫁術)을 만들어냈지.”

    “전가술? 설마……?”

    “그래. 먼저 누군가에게 호조의 힘을 받아들이게 하면 그 충격까지 고스란히 받게 되지. 그 뒤에 그 힘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네 몸에서 야성이 크게 약해졌으니 내가 다시 받아들일 때는 부담이 줄겠지.”

    유소짐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도산설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녀는 총명했기에 진즉 모친의 죽음이 유소짐과 큰 관련이 있음을 눈치챘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하며 호조의 힘을 받아들였었다. 이는 모든 문파에 복수하고 동시에 먼저 호조의 힘을 얻어서 유소짐을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호조의 힘을 받아들일 때 큰 부담과 위험이 따를 것임은 그녀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이에 상응하는 준비도 해뒀건만, 이 모든 것이 유소짐의 계략이었을 줄이야.

    “그딴 식으로 날 이용할 생각은 마라! 차라리 같이 죽자!”

    도산설의 표정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입에서 포효가 터져 나왔다.

    삽시간에 강력한 힘이 다시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눈가는 가늘고 길어졌다. 눈동자가 빨갛게 물들었고, 몸에는 털이 점점 촘촘해졌다. 반조의 징조가 점점 심해지는 것이었다.

    “흥! 헛수고 마라! 아무리 발악해도 그 금고 법진에서는 못 빠져나온다!”

    유소짐이 차갑게 비웃더니 은색 지팡이를 가볍게 휘두르자 그 끝에서 은빛이 흘러나와 제단 법진에 떨어졌다. 뒤이어 파직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고, 이전보다 열 배는 강력한 보라색 전류가 뿜어져 나왔다. 도산설은 순식간에 검게 그을려 다시 땅에 쓰러졌다.

    “모두가 청구 호족을 위한 것임을 너도 이해할 것이다.”

    유소짐은 천천히 제단으로 걸음을 옮기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산설 앞에 선 그녀는 눈빛이 더욱 차가워지더니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면서 주위의 돌기둥과 제단 중앙의 호조 조각상에 다시 광망이 비쳤다. 다만 이번에는 허화한 호조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호족의 희망이여 내게 오라!”

    유소짐이 짧게 외치고는 은색 지팡이를 들어 도산설의 미간을 찍었다.

    다음 순간, 하늘을 찌르는 광진이 제단에서 번득이더니 도산설 체내에 담긴 호조의 힘이 수문 열린 것처럼 뿜어져 나와 은빛으로 빛나는 은색 지팡이를 타고 유소짐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유소짐이 하늘을 향해 통쾌하게 울부짖는 사이 바다처럼 웅장한 힘이 단전으로 들어왔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망과 기운도 끊임없이 솟구쳤다.

    이와 동시에 호조 조각상의 두 눈에도 홍망이 번득였고, 벌어진 입에서는 소리 없는 웃음이 흘러나왔으며, 붉은색 파동은 놀라운 속도로 제단에서 다시 퍼져 나갔다.

    * * *

    향양진 전장. 청구 호족의 힘이 갑자기 줄어들자 수사 연합군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바로 반격을 시작했다. 청구 호족은 연달아 패배하여 향양진에서 완전히 쫓겨났다.

    배민 장군과 육화명 등은 도산설의 이변을 감지하고는 바로 추격을 명령했다.

    연합군은 육문금쇄진에서 나와 호족 대군 안으로 쳐들어갔다.

    천살시왕 등의 활약으로 청구 호족의 진선 존재는 이제 일고여덟 명밖에 남지 않은 데다 반조의 힘이 사라지면서 연합군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곳곳에서 피바람이 불고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짧은 순간에 청구 호족 대군은 2할이나 줄어들었다.

    “멈추지 말고 호족을 전멸하라!”

    배민 장군이 등 뒤의 대검을 휘두르자 초록색 빛의 대검에서 눈부신 빛이 몸을 감쌌다. 그가 아무런 망설임 없이 호족 대군 안으로 뛰어들어 검을 휘두르자 수백 줄기의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모든 검기가 물처럼 푸른빛을 띠었고, 허공에 10여 개의 집채만 한 초록색 연꽃이 만들어졌다.

    이 검련(劍蓮)에서 강력한 힘이 뿜어져 나오자 주위의 모든 것이 얼어붙었고, 공기마저 강철처럼 변했다. 검련이 뒤덮은 영역의 청구 호족은 모두 피를 뿜었고, 몸이 검련을 향해 끌려가 날카로운 검기에 베였다.

    “천명검법(天命劍法)! 전 왕조 검선(劍仙) 이태백(李太白)의 신통이 아닌가!”

    진안에서 빠져나와 추격하고 있던 육화명은 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어서 그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 대당 관부의 각종 신통을 호족 대군에 떨어트려 피바람을 일으켰다.

    칠살, 언무사, 강신천 등도 대진에서 나와서 전력을 다해 공격했다.

    백소천은 눈앞의 참상을 차마 보지 못하고 조용히 염불을 외웠다.

    “백형은 어찌 아녀자 같은 자비를 베푸는 것이오? 청구 호족과 우리는 이미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소. 지금 저들을 멸하지 않으면 후에 우리 종파와 인간족 모두가 저들의 피비린내 나는 보복에 당하게 될 것이오!”

    육화명의 차가운 목소리에 백소천은 일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핏빛 파문이 청구산 정상에서 전해져왔고, 동시에 쇠약해져 가던 청구 호족의 기운이 다시 빠르게 증폭하기 시작했다.

    “죽여라!”

    청구 호족이 포효하며 미친 듯이 연합군을 향해 반격했다.

    그들 몸에 나타난 반조 현상도 더욱 짙어져서 수많은 호족 수사가 여우 요물의 형태로 변했다. 거침없이 휘두르는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은 마치 피에 굶주린 야수 같았으며, 공세도 이전보다 훨씬 더 거셌다.

    육화명과 칠살 등은 깜짝 놀라 서둘러 연합군의 공세를 멈추고는 방어 진형으로 바꿔서 대응했다.

    * * *

    청구산 제단. 유소짐의 힘은 점점 강해져 갔고, 도산설의 몸에서는 털이 계속해서 떨어져 내렸으며, 외모도 점점 원래대도 돌아갔다. 다만 눈빛만은 여전히 혈광으로 번득였다.

    한데 그때, 그녀 뒤에서 갑자기 초록색 빛이 반짝이더니 율척이 허공을 뚫었다. 그곳에서는 두 사람이 나타났다.

    “심협!”

    유소짐은 심협의 등장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한편, 심협은 눈앞의 광경을 본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왜 자기들끼리 싸운 거지?’

    아까 도산설과 싸울 때 그녀의 몸에 축지척의 표식을 남겨 쫓아왔건만, 눈앞에 이런 광경이 펼쳐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유소모주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만큼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법진을 부숴!”

    그는 섭채주에게 전음으로 말하고는 추운축전화에서 천둥소리를 울리며 사라졌다. 다음 순간, 그는 유소짐 뒤에 나타나 금색 검홍을 내리쳤다.

    섭채주의 등 뒤에는 영광이 반짝이더니 금과 백의 나비 날개가, 손에는 약목신궁이 나타났다. 거대한 금빛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땅에서 뻗어 나온 암홍색 사슬을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유소짐 뒤편 허공에서도 파동이 일어나더니 회색 옷을 입은 세 사람이 나타났고, 그중 한 명이 짙은 녹색 장검으로 붉은색 검홍을 쳐냈다.

    다른 사람이 팔을 휘두르자 뱀 모양의 하얀 빛이 번개처럼 날아갔다. 사골연편(蛇骨軟鞭)은 엄청난 기세로 심협의 몸을 가격했다.

    마지막 한 명은 곧바로 심협을 지나 섭채주 앞에 나타나더니 오른손에 잔상을 남기며 금색의 거대한 활을 붙잡았다. 동시에 왼손은 거대한 주먹 허상이 되어 날아갔다.

    펑! 펑!

    두 번의 굉음과 함께 심협과 섭채주는 동시에 제단 오른쪽 뒤편으로 튕겨 나갔다. 더욱이 그들이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벽에 처박히기 직전, 발아래에서 갑자기 초록색 광망이 번득이더니 호령(狐靈) 악귀가 튀어나와 두 사람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었다.

    심협이 섭채주의 손목을 잡고는 다른 손으론 금색 검홍을 휘둘렀다. 검광이 지나간 곳마다 파직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금색 불꽃이 10장까지 뿜어져 나가 순식간에 백여 마리의 호령을 베었다.

    섭채주도 곤륜경을 꺼내 검은 빛의 벽으로 두 사람 뒤에서 달려드는 호령 악귀를 막았다.

    “어서 가! 이곳에 유소모주가 설치한 금제가 있어!”

    적과 흑의 그림자가 땅에서 튀어나왔다. 바로 화령자와 조비극이었다.

    화령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심협 소매의 소요경으로 들어갔고, 조비극은 장룡적을 꺼내 불었다.

    귀청을 찢는 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자 주위에 있던 호령 악귀가 우뚝 멈추더니 갑자기 유소짐을 향해 달려들었다. 장룡적에는 악귀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심협은 조비극을 건곤대 안으로 넣은 후, 유소짐의 반응을 살피지도 않고 추운축전화에서 광망을 뿜어내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멀리 도망칠 기세였다.

    한데 그때, 땅에서 갑자기 초록색 빛이 흐르더니 거대한 사람 모양의 호령이 불쑥 튀어나왔다. 크기가 30장에 이르러 마치 작은 산 같은 존재가 두 사람 앞을 가로막았고, 그 몸에서 뿜어져 나온 유광(幽光)이 추운축전화를 스쳐 지나갔다.

    추운축전화의 뇌광이 일순 눈 녹듯 사라졌다.

    거대한 호령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날카로운 포효가 가볍게 장룡적의 소리를 뒤덮었고, 호령 악귀들은 정신을 차렸다. 이어서 거대한 호령과 합쳐져 눈 깜짝할 사이에 견고한 결계를 만들었으니, 바로 만호적멸진이었다.

    “이건……?”

    진 안에 갇힌 심협과 섭채주는 호령의 얼굴을 보고는 두 눈이 커졌다.

    땅에 쓰러져 반항할 힘을 잃은 도산설은 눈물을 흘렸다. 이 호령이 다름 아닌 그녀의 모친, 청구국 국주였던 것이다.

    “너무 잔인해요. 청구국 국주는 이미 죽었는데 혼백마저 강제로 구금해 만호적멸진을 만들다니……. 이러면 다시는 환생할 수 없을 텐데…….”

    섭채주가 충격을 받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청구국 국주의 혼백이 주령(主靈)이라면 이 법진을 파훼하기는 쉽지 않겠어.”

    심협은 다른 사람을 동정할 틈이 없었다. 어떻게든 빠져나가서 유소모주가 호조의 힘을 얻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곧장 축지척을 사용하여 강제로 대진의 공간을 뚫고 빠져나가려 했다.

    그때, 회색 옷의 세 사람이 다시 쫓아왔다. 그들이 동시에 손을 펴자 손에서 암홍색 두개골이 날아올라 만호적멸진 주위를 맴돌았다.

    세 개의 두개골에서 흉망이 뿜어져 나오자 암홍색 광망이 마치 외투처럼 만호적멸진을 뒤덮었다.

    두 빛은 서로 닿자마자 바로 합쳐지기 시작했고, 축지척의 광망은 잠시 반짝이더니 바로 꺼졌다.

    심협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공간의 힘이 완전히 구금되어 축지척으로도 뚫을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세 분의 도움에 감사드리오. 나중에 호족은 반드시 한마음이 되어 그대들과 큰일을 도모할 것이오.”

    유소짐이 이를 보고는 안도하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본래 동맹이니 서로 돕는 것은 당연하죠. 게다가 저 두 사람은 오랫동안 우리의 적이기도 했습니다. 저들을 죽이고 나면 저들의 보물은 모두 우리의 것입니다.”

    회색 옷을 입은 세 사람 중 누군가가 여자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이오.”

    유소짐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회색 옷의 세 사람도 다른 말 없이 일제히 허공의 법진을 바라봤다.

    대진 안에는 호령 악귀가 바닷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심협 등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들은 이미 영식이 없었지만, 심협의 순양검과 그 위의 태양진화를 본능적으로 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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