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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17화 (1,017/1,214)

1017화. 검은색 진문

소효와 흑려를 비롯한 호족의 고수들이 연이어 죽자 진안을 짓누르는 압박은 크게 줄었고, 심협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조금만 더 버티면 천살시왕과 섭채주, 거울 요괴 등이 진 안으로 침투한 진선기 호족들을 모두 처리할 것이고, 그리 되면 승기를 잡게 될 터였다.

도산설은 여전히 막강했지만, 광기에 빠진 뒤로는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한 시진도 더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한데 그때, 도산설의 미간에서 갑자기 검은 빛이 번득이더니 흡입력이 뿜어져 나와 눈가의 핏빛을 빠르게 흡수했고, 눈빛은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 광경을 본 심협은 깜짝 놀랐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도산설이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뭔가를 의식했는지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그곳에는 10여 개의 핏빛 빛이 있었는데 그중 절반이나 어두워져 있었다.

“소효 장로와 흑려 장려가 모두 당했다니, 말도 안 돼!”

도산설이 소리쳤다.

“믿기 싫더라도 그게 사실이오. 청구 호족의 패배는 이미 정해졌으니 이만 항복하시오!”

심협이 돌진해오며 수많은 곤봉의 허상으로 도산설의 머리를 내리쳤다.

도산설이 고개를 휙 들더니 아홉 개의 핏빛 꼬리에서 광망을 강하게 뿜어냈고, 꼬리 끝마다 난공불락의 칼날 같은 혈광이 떠올랐다.

그녀가 결인하자 아홉 개의 꼬리가 번쩍이며 희미해지더니 한 개가 열 개, 열 개가 백 개가 되어 순식간에 수천 개의 핏빛의 환상이 만들어져 사방에서 몰려왔다.

퍼펑!

폭발음에 이어 곤봉의 허상이 전부 부서졌고, 심협도 몇 개의 핏빛 환영을 피하지 못한 탓에 땅에 처박혔다.

‘도산설이 이성을 되찾으면 역시 상대하기가 어렵구나.’

심협은 비틀거리며 일어섰으나 눈빛은 매우 어두웠다.

정신을 차린 그가 신통을 운공하자 몸에서 금흑의 광망이 번쩍였고, 그는 몸을 가눌 수 있었다. 뒤이어 두 발에서 뇌광을 뿜어내며 날아오르려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갑자기 팔이 무거워졌다. 도산설의 꼬리 하나가 땅에서 튀어나와 현황일기곤을 감싼 것이었다.

깜짝 놀란 심협이 서둘러 힘껏 빼내려 했지만, 현황일기곤은 마치 꼬리에 달라붙은 것처럼 빠지지 않았다.

다음 순간, 그의 앞에 핏빛 그림자가 번득이더니 도산설이 귀신처럼 나타나 핏빛 손을 휘둘렀다.

그 손이 닿기도 전에 강력한 돌풍이 몰려와 심협은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고, 주위의 허공이 강하게 떨려왔다.

심협은 안색이 급변했고, 다리가 멈췄다. 핏빛 깃발, 혈백원번이 앞에 나타나 활짝 펼쳐지자 두꺼운 핏빛 광막이 생겨났고, 파도 같은 수많은 허상이 그 위에서 번쩍였다.

도산설의 손이 혈백원번을 때리자 쾅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핏빛 광막이 깊게 파였고, 핏빛 파도 허상도 미친 듯이 떨리며 팽팽해졌다.

한숨을 돌린 심협은 나지막하게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주위의 아홉 자루 순양검이 순식간에 하나로 합쳐져 10여 장 길이의 붉은색 대검으로 변했다. 검신에서는 각종 천화가 뿜어져 나와 현황일기곤을 휘감은 꼬리를 강하게 베었다.

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검신의 불꽃이 충돌하면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위세는 무서울 정도였다.

핏빛 꼬리가 단숨에 잘려나가면서 현황일기곤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고도 불꽃 대검은 멈추지 않고 도산설의 팔을 베기 위해 날아갔다.

도산설은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다른 손에 쥐었던 직녀선을 집어넣고는 주먹을 쥐어 혈광을 뿜어내며 불꽃 대검을 향해 뻗었다.

쾅!

이어 굉음이 울려 퍼졌다.

핏빛 태양이 허공에 나타나면서 눈부신 영광이 비쳤고, 주위에는 공간의 파문이 선명하게 일어났다. 불꽃 대검은 튕겨 나가면서 아홉 자루의 비검으로 흩어졌는데, 검광은 매우 어두워진 상태였다.

무시무시한 괴력이 아홉 자루의 순양검을 통해 심협에게 전해졌다. 그 안에는 기이한 떨림의 힘이 담겨 있어서 심협은 몸이 크게 흔들렸고, 오장육부가 수많은 작은 바늘에 찔린 것 같았다. 얼굴의 구멍마다 피가 흘러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는 급하게 뒤로 물러나 황제내경을 운공했다. 체내의 고통이 빠르게 사라졌고, 오관도 금세 회복됐다.

“나의 감파성권(撼波聖拳)을 막아내다니!”

도산설은 놀란 기색으로 감탄하면서도 곧장 쫓아왔고, 순식간에 심협을 따라잡고는 직녀선을 크게 휘둘렀다.

갑자기 바람 소리가 울리더니 수많은 하얀색 바람 칼날이 천지를 뒤덮으며 나타났다. 주위의 육문금쇄진도 전부 부서지며 성난 파도에 파묻혔다.

진안이 코앞이었기에 심협은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는 오른손에서 푸른 빛을 강하게 뿜어내 전해 영역을 펼쳤다.

전해 영역에 휩쓸리자 하얀 바람 칼날은 단숨에 절반이 얼어붙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위능은 실로 엄청나서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날아가 전해 영역을 모두 베었다.

전해 영역의 푸른 빛이 미친 듯이 번쩍이고 흔들렸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것만 같았다.

‘호조의 힘은 역시 강하구나! 나 혼자서는 상대할 수 없겠어!’

심협은 기력이 소진되자 한숨을 내쉬고는 재빨리 진안으로 들어갔고, 전해 영역도 함께 뒤로 물러났다.

“어딜 가느냐!”

도산설이 바로 쫓아와 하얀 빛을 강하게 뿜어내는 직녀선을 휘둘렀다.

대량의 하얀색 바람 칼날이 다시 날아갔다.

심협은 담담한 표정으로 소매를 휘둘렀다.

꽈르릉!

그의 앞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거대한 언갑, 훼멸명왕이 나타났다.

열일전부에서 불꽃이 타오르자 수십 장 크기의 불바다가 만들어지더니 도끼질과 함께 바람의 칼날들과 충돌했다.

꽝! 콰쾅! 펑!

폭발음과 굉음이 연달아 울려 퍼지더니 바람의 칼날은 절반이나 부서졌고, 남은 것들도 불바다에 삼켜졌다.

반면 열일전부의 여세(餘勢)는 약해지지 않은 채 도산설을 향해 날아갔다. 공간이 찢어지면서 기다란 금이 생겼다.

“천존급 언갑이라니!”

도산설은 훼멸명왕의 기운을 느끼고는 신중해져 일단 멈춰 선 후 아홉 개의 핏빛 꼬리를 휘둘러 열일전부를 막았다.

꽝! 콰쾅!

경천동지할 굉음이 연달아 들려왔고, 허공이 완전히 부서질 것처럼 격렬하게 일렁이면서 폭풍이 휘몰아쳤다.

심협은 현양화마 신통을 거두고는 훼멸명왕의 조종실로 들어갔다. 미간에서 뿜어져 나온 정광이 주위의 벽으로 스며들었다.

훼멸명왕의 두 눈에서 보라색 뇌광이 번쩍이더니 커다란 뇌전이 허공을 뚫고 날아가 찢어진 공간을 통해 도산설을 공격했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술법을 시전하여 막기에는 너무 늦었음을 깨달은 도산설은 몸에서 혈광을 뿜어내 핏빛 광막으로 앞을 막았다.

하지만 멸세뇌광(滅世雷光)이 가볍게 핏빛 광막을 찢고는 도산설을 가격했고, 보라색 뇌전의 숲이 그녀를 뒤덮었다.

부근의 허공이 무너질 것처럼 격렬하게 떨려왔고, 도산설도 이미 잿더미가 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한데 그때, 두 줄기 광망이 뇌전의 숲에서 뿜어져 나왔다. 하나는 유암(幽暗)의 혈광이었고, 다른 하나는 변환(變幻) 광망의 분홍색 광망이었다. 뿜어져 나온 두 광망이 하나로 합쳐쳐 수백 장에 이르는 빛의 영역을 이루었다.

두 가지 색의 빛의 영역 안에서 혈광은 아무런 변화 없이 그저 가볍게 반짝였을 뿐이지만, 분홍색 광망은 수많은 몽환적인 그림자가 되어 만화경처럼 번갈아 바뀌어 심신을 혼란스럽게 했다.

강력했던 뇌전의 숲도 두 색깔의 빛의 영역 안에서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해 몇 호흡 만에 완전히 사라졌다.

이를 본 심협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위기감을 느끼고는 곧바로 훼멸명왕을 조종하여 뒤로 물러났다.

빛의 영역에서 광망이 강렬해지더니 순식간에 몇 배로 커져 훼멸명왕을 뒤덮었다.

훼멸명왕은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쉽게 움직일 수가 없었고, 언갑 안의 심협은 눈앞이 흐려지면서 온갖 환상이 나타났다. 그의 강력한 신혼의 힘으로도 막을 수가 없었다.

위기의 순간, 심협은 급히 부주진신법을 운공했다. 머릿속 신혼의 힘이 부주산의 허상으로 변하자 환상들이 일제히 사라졌다.

뒤이어 그가 다시 결인하자 훼멸명왕의 두 눈에서 다시 뜨거운 뇌전이 뿜어져 나와 주위의 분홍색 영역을 공격했다. 두 빛의 영역과 함께 금고의 힘도 크게 줄어들었다.

훼멸명왕의 몸에서 광망이 뿜어져 나오더니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한데 이 언갑이 막 벗어나려던 순간, 세 개의 분홍색 꼬리가 영역 깊은 곳에서 날아와 순식간에 휘감았다.

혈광이 섞인 초록빛 도광이 갑자기 나타나 무서운 살기를 뿜어내며 휙 소리와 함께 세 개의 꼬리를 잘라냈다. 훼멸명왕도 두 가지 색 빛의 영역에서 빠져나와 백여 장 떨어진 곳으로 피했다.

천살시왕이 초록빛 도광 옆에 나타나더니 도광을 움켜쥐고는 그림자가 되어 훼멸명왕 내부로 들어가 심협의 체내로 스며들었다.

명홍도를 움켜쥔 심협은 무시무시한 살기를 느끼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 순간, 두 개의 빛의 영역이 천천히 흩어지더니 한 여인이 나타났다.

도산설의 몸에서 분홍색 광망이 뿜어져 나오며 원래의 혈광과 합쳐져 기운이 크게 솟았다. 반면 안색은 이전보다 훨씬 창백했다.

“호조의 힘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내 혈맥의 힘과 강제로 합쳐야 할 정도로 강한 언갑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 허나 선조님의 보살핌으로 호조의 힘은 이제 완전히 내 것이 되었으니, 너를 첫 제물로 삼겠다!”

도산설의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마다 두 가지 색의 광망이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놀라운 기세는 대진 안의 은색 별빛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육문금쇄대진 안의 수사들은 이 강력한 기세를 감지하고는 표정이 돌변한 반면 호족 사람들은 크게 기뻐했다.

“오라버니 쪽인데…….”

심협과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섭채주는 곧장 기운의 원천을 향해 날아갔다.

한편, 심협은 어두운 표정으로 훼멸명왕을 조종하여 뒤로 날아갔다. 머릿속으로는 빠르게 대책을 생각했다.

그때, 처절한 비명과 함께 도산설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두 가지 색의 광망이 갑자기 격렬하게 충돌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어두워졌다. 또한 그녀의 기운도 빠르게 쇠약해지더니 털썩 쓰러졌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히 호조의 힘을 완벽하게 장악했는데 어째서……?”

도산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외쳤다.

향양진 밖에서는 호족들의 혈광도 빠르게 어두워지면서 기운이 빠르게 쇠약해져 모두가 금세 지친 모습이 되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심협은 일단 훼멸명왕을 멈추고 상황을 살폈다.

금빛이 빠르게 다가오더니 그 안에서 섭채주가 나타났는데, 그녀도 이 광경에 크게 의아해했다.

그때였다.

꽈르릉!

도산설의 발밑에 검은색 진문이 나타나더니 공간의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심협은 화들짝 놀라 서둘러 그녀에게로 날아갔다.

하지만 땅의 법진에서 이미 검은 빛이 하늘 높이 솟구쳐 도산설의 몸을 완전히 뒤덮었다.

심협이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도산설의 모습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땅의 진문도 순식간에 타올라 잿더미가 되어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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