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013화 (1,013/1,214)
  • 1013화. 저항

    한편, 호족 대군 후방에는 커다란 혈운이 떠 있었다. 그 위에는 깃발이 펄럭였는데, 평범한 구름이 아니라 법력으로 만든 비행 법기였다.

    10여 명이 그 위에 서 있었다. 가운데에는 차갑고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도산설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오른손을 거두었다. 그 손에는 혈광이 잔잔하게 남아 있었고, 향양진을 바라보는 눈은 미세하게 떨렸다.

    “또 심협인가! 그놈은 우리 청구 호족의 대적이 분명해. 애초에 그놈을 죽였어야 했는데!”

    왼쪽에 서 있던 소효가 중얼거렸다.

    도산설의 오른쪽에는 짧은 수염에 검은 옷의 남자가 서 있었다. 바로 언무사에게 당했었던 흑려 장로였는데, 아직 살아 있었다. 기운으로 봤을 때 이전에 심협의 전해 영역에서 도망쳤던 그 검은 여우가 분명했다.

    흑려는 당시 중상을 입었는데 어째서인지 상처 하나 없었고, 기운은 오히려 더 정진해 태을 경지에 근접해 있었다.

    두 사람 눈에서는 혈광이 많아 사라져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듯했다.

    소효와 흑려 장로 외에도 혈운에는 12명의 청구 호족 장로가 서 있었다. 경지가 가장 낮은 자는 진선 중기였고, 진선 후기도 무려 세 명이나 있었다.

    이들의 눈에도 마찬가지로 피와 살육을 탐하는 광망이 거의 다 사라져서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방금 그 공격은 이번에 본 적이 없는 언갑 같군요. 저자는 신통이 다양하고 실력도 범상치 않으니 상대하기 까다롭습니다.”

    검은 옷의 흑려가 냉정하게 말했다.

    “그래봐야 진선 후기의 수사. 한두 개의 강력한 법보 언갑에 의지한다고 얼마나 버티겠는가? 흑려 장로는 그리도 대담하더니 죽을 고비 한 번 넘겼다고 갑자기 겁쟁이가 된 건가?”

    소효가 경멸하는 눈빛으로 흑려 장로를 조롱했다.

    흑려 장로의 표정이 갑자기 변하더니 두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공주님, 제가 직접 가서 심협을 죽이고 돌아가신 국주께 저자의 목을 바치겠습니다!”

    소효는 흑려 장로를 신경 쓰지 않고 도산설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효 장로의 뜻은 잘 알겠으나 흑려 장로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저자의 수단은 확실히 대단하니 쉽게 봐서는 안 된다.”

    도산설의 대답에 소효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더는 말하지 않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저 대진을 파훼하는 것이다. 저 법진은 범상치 않구나. 내가 관찰한 바로는 저 법진에는 여섯 곳의 진안이 있다. 심협과 진선의 수사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을 터. 모두가 한꺼번에 공격해서 저들을 죽이고 진안을 부순다!”

    도산설이 손을 휘두르며 말했다.

    “네!”

    호족의 모든 장로가 대답하더니 둔광이 되어 날아갔다.

    흑려 장로도 곧장 날아갔는데, 언무사가 있는 진안 방향이었다.

    “공주님, 심협은……?”

    소효는 아직 가지 않고 남아서 물었다.

    “내 직접 처리할 터이니 신경 쓰지 말도록!”

    심협이 있는 곳을 바라보는 도산설의 눈에서 차가운 빛이 흘렀다.

    “예!”

    소효는 달갑지 않았지만, 짭게 대답하고는 혈광이 되어 육화명이 지키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이전에 승부를 보지 못했기에 이번에야말로 끝을 볼 생각이었다.

    그 무렵, 도산설의 갑옷에서 광망이 흐르더니 허공으로 사라졌다.

    * * *

    육문금쇄진 안. 심협 등은 10여 명의 청구산 장로들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청구산에는 진선 존재가 생각보다 많아서 그 수가 아군의 두 배는 됐다. 오늘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할 판이었다.

    “이쪽은 당분간 도움이 필요 없으니 가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줘.”

    심협이 진중한 얼굴로 전음을 보내자 거울 요괴는 허리를 숙였다.

    “그럼 조심하세요, 주인님.”

    거울 요괴는 곧장 언무사 쪽으로 날아갔다.

    심협의 주위 허공에 파동이 일어나더니 천살시왕, 조비극 그리고 소요경 안의 벽해요어가 나왔다.

    벽해요어는 열대여섯 살 정도의 푸른색 머리 소녀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는데,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진선기에 한없이 가까웠다.

    “너희도 가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줘.”

    심협의 말에 천살시왕 등은 바로 주위의 육문금쇄진 진안으로 가려 했다.

    “태을기의 연시? 네 수단은 정말로 대단하구나.”

    그때, 가벼운 웃음이 갑자기 들려오더니 도산설이 귀신처럼 심협 위에 나타나 염화하는 모양의 손가락으로 근처의 허공을 찍었다.

    분홍색 광망이 나타나더니 피식 소리를 내며 근처의 허공을 관통했다.

    콰쾅!

    굉음과 함께 용솟음친 분홍색 광망은 화산이 폭발한 것처럼 날아갔고, 천살시왕, 조비극 그리고 벽해요어는 그 광망에 맞아 비틀거리다가 겨우 몸을 가눴다. 그때, 분홍색 광망이 세 개의 거대한 분홍색 꽃으로 변해 이들을 뒤덮었고, 강력한 금고의 힘으로 움직일 수 없게 붙들었다.

    심협의 발아래 허공에도 파동이 일어나 분홍색의 꽃이 나타나더니 그를 뒤덮으려 했다.

    깜짝 놀란 심협은 두 발에서 뇌광을 뿜어내며 간신히 분홍색 꽃잎을 피했다.

    하지만 분홍색 꽃잎은 거머리처럼 바로 그를 쫓아왔다.

    “전해 영역!”

    심협의 몸에서 푸른 빛이 번득이더니 푸른색 영역이 허공에 나타나 분홍 꽃잎을 뒤덮었다.

    영역 안에서 한기가 침투해오자 꽃잎이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심협은 안도하며 다섯 자루의 순양검을 꺼내 팔을 휘둘렀다.

    빼곡하고 삼엄한 검기가 나타나 순식간에 붉은색 검산으로 변하더니 허공을 베며 도산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도산설은 이 신통에 표정이 신중해졌지만, 피하지 않고 입에서 분홍색 광망을 뿜어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분홍색 광망은 잘렸지만, 검산도 침투당한 것처럼 절반이 분홍색으로 변했고, 본래 빼곡하던 검산도 절반이나 부서졌다.

    심협이 검산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도산설이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자 거대한 핏빛 발톱이 붉은 검산을 움켜쥐어 완전히 부숴버렸다.

    그때, 다섯 자루 순양검이 모습을 드러내 빙글빙글 돌면서 뒤로 날아갔다. 검신에는 적지 않은 분홍색 광망이 묻어 있었고, 붉은 검광도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

    심협이 소매를 휘둘러 비검들을 거두고는 현황일기곤을 꺼내 전력으로 황정경을 운공했다. 그러자 금빛이 미친 듯이 번득이더니 팔이 두꺼운 용의 팔로 변했고 두 다리는 코끼리 다리로 변했다.

    금빛이 번득이는 현황일기곤을 휘두르자 수많은 곤봉 허상이 나타나 거대한 핏빛 발톱과 충돌했다.

    하지만 도산설의 지금 실력은 심협을 크게 초월했다. 거대한 발톱이 혈광을 빛내며 모든 곤봉의 허상을 부수더니 현황일기곤을 잡았다.

    강력하기 그지없는 힘이 밀려오자 심협은 저항도 못 하고 그대로 날아갔다. 손아귀는 터지고 몸은 순식간에 마비되었으며 입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다.

    심협은 경악했다. 이전에 청구성에서 도산설과 잠깐 싸웠을 때, 그녀가 보여줬던 실력은 태을 절정 정도였다. 다만 군심(軍心)을 진정시키기 위해 태을 후기라고 말한 것뿐이었다.

    한데 지금 제대로 붙어보니 도산설의 실력을 제대로 체감할 수 있었는데, 결코 태을 절정이 아니라 거의 천존 경지에 근접한 실력이었다.

    도산설은 조금도 봐줄 생각이 없는지 다른 손도 혈광을 빛내며 내밀었다.

    심협의 뒤에서 혈광이 빛나더니 거대한 핏빛 손이 또 나타났고, 강하게 내려와 앞에서 쫓아오는 거대한 손톱과 함께 협공하려 했다.

    심협의 두 발에서 뇌광이 번득였고, 그는 뇌전이 되어 옆으로 피했다. 다만 그는 부상을 입은 터라 반응이 빠른 편이 아니었기에 간신히 두 발톱 사이를 빠져나와 급하게 황정경을 운공하여 체내의 상처를 억눌렀다.

    그때, 심협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가 곧장 황제내경을 운공하자 온몸에 금빛이 감도는 초록빛이 솟았다.

    주위의 천지영기가 빠르게 몰려와 그의 체내로 들어가자 상처가 빠르게 호전 되었다.

    ‘황제내경의 회복 효과가 이 정도였다니!’

    심협은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바로 그때, 전방의 허공에서 혈광이 번쩍이더니 두 개의 거대한 발톱이 합쳐졌다. 이어 허공이 강하게 흔들리며 빛이 번득였다.

    하지만 이미 숨을 돌린 심협은 법력을 운공하여 기운을 차렸고, 다시 전해 영역을 시전하자 진창해의 한광이 단숨에 반경 수십 리를 뒤덮었다.

    두 개의 거대한 핏빛 발톱에 푸른 얼음이 맺혔다. 비록 발톱 안에 호조의 힘이 있어 완전히 얼리지는 못했지만, 속도는 크게 줄었기에 심협은 가볍게 피해냈다. 이어서 양손으로 매우 기이한 법결을 결인해 현향화마 신통을 시전했다.

    단전에서 금과 적의 빛이 솟아오르더니 몸이 갑자기 몇 배나 커졌다. 몸의 절반은 칠흑처럼 변하면서 마문(魔紋)이 떠올랐고, 다른 절반은 황금빛이 되어 금색 비늘이 떠올랐다.

    쾅!

    굉음과 함께 열 배는 강력한 법력 파동이 일렁이자 허공이 흔들리고 천지영기가 더욱 맹렬하게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도산설은 경악한 표정으로 선녀의 그림이 그려진 하얀색 우선(羽扇)을 꺼내더니 다급하게 심협이 있는 허공을 향해 휘둘렀다.

    일고여덟 개의 하얀 바람 칼날이 날아갔다. 이 바람의 칼날은 평범해 보이지만 기운이 매우 기이하여 선(仙) 같으면서도 선이 아니었고, 마(魔) 같으면서도 마가 아니었다. 그 위력은 매우 강력해 주위의 법진 광망을 가볍게 베었을 뿐만 아니라, 허공에도 몇 줄기의 기다란 어두운 흔적을 남기며 심협에게로 날아들었다.

    바람의 칼날은 속도도 매우 빨라서 순식간에 눈앞에 이르더니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심협의 몸 곳곳을 베었다.

    그가 지키던 진안도 격렬하게 흔들리면서 부서질 기미가 드러났다.

    “직녀선(織女扇)!”

    심협은 한눈에 이 우선이 일전에 흑연미굴에서 귀언이 사용했던 법보 직녀선임을 알아보았다. 소부자마저 이 우선에 부상을 입었고, 정풍주를 사용한 후에야 이 법보를 간신히 막을 수 있었다.

    그날 귀언이 죽고 인형의 성도 허공의 균열로 사라졌으니 이 직녀선을 도산설이 갖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심협도 그때의 진선 초입 애송이가 아니었기에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현황일기곤에서 솟아오른 금흑(金黑)의 광망이 금흑의 광룡이 되어 그의 주위를 매우 빠르게 맴돌았다.

    파괴적인 힘이 용솟음치며 허공을 휘젓자 몇 줄기 하얀색 바람의 칼날이 완전히 찢겨나갔다.

    다음 순간, 발밑에서 뇌광이 번쩍이더니 심협은 놀라운 속도로 도산설을 향해 달려나갔고, 현황일기곤은 수많은 허상이 되어 그녀의 얼굴과 머리 위로 떨어졌다.

    법력을 있는 대로 모아 발천난동을 극한으로 시전하자 곤봉 허상이 도산설의 주위를 뒤덮더니 가운데로 몰려왔다. 도산설로서는 피할 곳이 없었다.

    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직녀선을 허공에 휘둘렀다. 그녀의 몸 주위에 갑자기 하얀색 회오리 기둥이 나타났고, 무수히 많은 작고 가느다란 하얀색 바람 칼날이 생겨나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허공이 웅웅 울리면서 빠르게 떨렸고, 땅의 모래와 돌멩이가 하늘로 솟아오르면서 천지의 색이 변할 기미를 보였다.

    금흑의 곤봉 허상은 회오리 기둥과 충돌하자 바로 산산조각이 나버려 도산설의 옷깃에도 닿지 못했다.

    심협은 개의치 않고 오른손을 뒤로 휘둘렀다. 그러자 초록색 도광이 번개처럼 뿜어져 나가 순식간에 천살시왕 등의 옆에 나타났다. 바로 명홍도였다.

    이 도가 세 줄기의 초록색 도망으로 변하여 천살시왕 등의 몸을 뒤덮은 분홍색 꽃잎을 베었다.

    파직! 파지직! 파직!

    날카로운 소리가 세 번 연이어 들려왔고, 세 개의 분홍색 꽃잎이 부서졌다. 명홍도는 움직임을 회복한 천살시왕의 손에 떨어졌다.

    “가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

    심협은 시선을 도산설에게서 떼지 않은 채 외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