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011화 (1,011/1,214)
  • 1011화. 안배(安排)

    노란 빛은 다시 돌아와 심협의 소매로 들어갔다.

    “낙보금전! 인간 세상에서 사라졌다던 보물이 여기 있었군!”

    도산설이 깜짝 놀란 듯 외쳤다.

    심협은 그 틈에 다시 칠살을 붙잡고 커다란 보라색 뇌전이 되어 빠르게 달아났다.

    “어딜 가려고!”

    도산설이 외치며 바로 쫓으려고 했다.

    한데 주위의 허공에서 갑자기 우르릉 소리가 울리더니 먹 같은 수많은 검은 그림자가 허공에 나타나 그녀를 뒤덮었다. 뒤이어 대량의 검은 빛을 내뿜으며 순식간에 백여 장 크기의 검은색 광진으로 변했고, 수많은 요괴의 검은 그림자가 안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강력한 금고의 힘이 광진 안에서 폭발하더니 주위의 허공이 매우 단단하게 굳어져 강철 같은 벽으로 변했다.

    이를 본 심협은 이 검은색 광진의 정체를 알아보고는 안도하며 소요경을 발동하여 칠살을 안에 넣었다.

    그의 옆에서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검은색 고경이 튀어나왔다. 곤륜경이었다. 섭채주의 웃는 얼굴이 거울 위에 나타났다.

    심협은 그 거울을 잡고는 눈부신 보라색 뇌전을 분출하며 그 자리에서 바로 사라졌다.

    이들이 사라지는 순간, 도산설을 뒤덮었던 검은 광진이 갑자기 부풀어 오르더니 가느다란 바늘 같은 하얀 빛이 광진을 뚫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뒤이어 검은색 광진에서 하얀색의 여우 발톱이 뚫고 나오더니 광진을 양쪽으로 찢었다.

    검은색 광진이 폭발했고, 그 안에서 도산설의 모습이 나타났다.

    하지만 심협과 칠살, 어둠의 광진으로 그녀를 뒤덮었던 자 모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제법이군. 허나 너희는 도망치지 못한다.”

    도산설이 차갑게 웃더니 하늘을 향해 길게 울부짖었다.

    “우우!”

    성안에 있던 청구 호족들은 이 소리를 듣자 붉게 빛나던 눈이 포악해지더니 곧장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모여들었다.

    * * *

    청구성 성벽 근처. 육화명, 백소천과 격전을 벌이던 소효의 눈빛도 포악해지더니 두 사람을 떨쳐내고는 성안으로 달려갔다.

    육화명과 백소천은 영문을 몰라 서로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 두 사람과 멀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보라색 뇌광이 번쩍이더니 심협이 나타났다.

    “심형!”

    육화명이 무슨 말인가를 하려 했다.

    “우선 빠져나갑시다. 채주!”

    심협은 곤륜경을 가볍게 톡 쳤다.

    “알겠어요.”

    거울 안에서 섭채주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와 육화명과 백소천을 휘갑고는 곤륜경 안으로 들어갔다.

    심협은 축지척을 발동하여 초록색 빛으로 변한 뒤, 만리청운진을 간신히 뚫고 나와 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사들 앞에 나타났다.

    “심 선배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심협은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축지척을 챙겨 넣고 소매를 휘둘렀다.

    붉은 빛과 검은 빛이 날아가 허공에 두 개의 빛의 문이 만들어지더니 섭채주와 육화명, 백소천, 강신천, 칠살, 언무사가 나왔다. 이들은 잠시 휘청거린 후에야 몸을 가누었다.

    성 밖에 있던 이들을 보고서야 안도했다.

    “심 도우, 고맙소. 도우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안에서 이미 죽었을 거요.”

    강신천이 심협에게 공수하자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인사를 올렸다.

    “동료를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성안의 청구 호족이 이미 도산설 쪽으로 모여들었을 겁니다. 아마도 그녀가 반쯤 미친 호족 무리를 이끌고 공격해올 테니 어서 대책을 논의합시다.”

    심협이 손을 내젓고는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산설이라니요?”

    강신천, 언무사, 육화명 그리고 백소천 등 네 명은 방금 도산설을 보지 못했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청구국 국주의 여식으로, 이전에 청구국 국주가 자진했을 때 나타났던 여인입니다. 그녀는 그 일로 우리를 원수로 여기고 있으니 아마 모친의 복수를 하려 할 겁니다. 방금 제가 살펴본 바로는 반조의 과정을 견디고 호조의 힘을 계승하였으니 쉽게 볼 상대가 아닙니다.”

    “반조라니! 호족들이 그렇게 변한 것이 반조의 부활 때문이라는 겁니까? 심 도우, 확실하오?”

    심협의 말에 강신천은 안색이 변하더니 서둘러 물었다.

    이곳의 모두는 각 문파의 정예 제자였기에 요족의 반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확신은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8할 정도입니다.”

    심협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큰일입니다. 호조는 상고 천존급의 대요이니 절대 우리 힘으로는 상대할 수 없습니다.”

    강신천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존급 요물!”

    모두가 그 말에 크게 놀랐고, 두려운 기색이 역력해졌다.

    심협은 나무라는 듯한 눈빛으로 강신천을 바라봤다. 괜히 사기를 꺾게 된 셈이니 말이다.

    강신천도 자신이 말실수를 했음을 알아채고는 바로 입을 닫았다.

    “모두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호조가 상고의 대요이고 강력하긴 하나, 상고 시기에 이미 죽은 존재. 호족이 무슨 방법으로 부활시켰는지 모르겠으나 그 실력은 크게 떨어졌소. 방금 그녀와 잠시 맞붙어보니 아무리 강하게 쳐줘도 태을 후기였소. 그러니 상황이 그렇게 절망적이지는 않습니다.”

    심협이 헛기침하고는 말했다.

    이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아무튼, 이곳은 위험하니 먼저 주둔지로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주둔지는 간단한 방어 시설만 되어 있으니 무슨 소용이겠소? 더 좋은 곳이 있소. 바로 향양진(向陽鎭)이오.”

    줄곧 말이 없던 육화명이 불쑥 말을 꺼냈는데, 걱정하는 기색은커녕 오히려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웃다니, 모두가 의아해했다.

    “향양진? 왜 거기가 더 낫다는 게요?”

    백소천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향양진에는 군대가 주둔하고 있으니 그곳의 고수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지 않겠소? 그리고 마을 근처에 상고 대진이 설치되어 있어 청구 호족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육화명을 바라보던 심협은 소효와의 싸움에서 이상할 정도로 화를 내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향양진 주위에 대진이 있다니, 어떻게 내가 모를 수가 있지?”

    백소천이 허탈한 듯 혼잣말을 했다.

    “몇 년 전에 원 국사께서 이곳에 비밀리에 진을 설치한 곳이오. 향양진에 주둔하는 군대조차 이를 모르지. 나 또한 청구산으로 오기 전에 원 국사께 듣고서야 알게 되었소. 대진을 제어할 수 있는 36개의 깃발을 주시면서 가장 위급할 때 쓰라고 하셨는데, 지금이 그때인 것 같습니다.”

    육화명은 여전히 아무 걱정 없는 모습이었고, 이에 심협도 안도했다.

    ‘국사께서 미리 대비를 해두셨구나. 원 국사는 심산이 깊고 그 안배는 헤아릴 수 없으니, 그가 설치한 법진이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부담감이 크게 줄어들었다.

    “향양진에 원 국사께서 설치한 법진이 있다면 당연히 믿을 만할 겁니다. 바로 가시죠.”

    심협의 활약은 가히 영웅적이었고 그 덕에 목숨을 구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이들은 곧바로 출발해 금방 향양진에 도착했다.

    향양진의 주둔군이 이들을 발견하고는 10여 명의 대승 수사들이 날아와 맞이했다. 선두에는 검은 옷을 입은 장군이 있었다.

    청년처럼 보이는 이 장군은 등에 대검을 멨고, 경지는 진선기였다. 다만, 두 눈에 하얀색 눈가리개를 한 것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눈이 안 보이는 듯했다.

    “모두가 어쩐 일로 이렇게 갑자기 향양진으로 오신 겁니까?”

    “배민(裴旻) 장군, 청구산의 상황이 긴박해졌소. 청구 호족이 갑자기 전부 반조 현상을 일으켜 막강해졌습니다. 심지어 호조도 나타났소. 우리들 힘만으로는 대항할 수 없어 도움을 요청하러 온 게요.”

    육화명이 모두 앞에 나서서 말했는데, 이 장군과 아는 사이 같았다. 심지어 그 말을 하는 동안 그는 청구산 쪽을 돌아봤는데, 표정은 겁에 질려 있었다.

    심협은 쭉 육화명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육화명의 표정이 또다시 다른 사람처럼 변한 것이다.

    “반조 현상과 호조! 한데 정말 그렇다면 향양진의 병력으로도 역부족이오.”

    배민 장군이 깜짝 놀란 와중에도 금세 냉철함을 되찾고 말했다.

    “향양진 근처에 원 국사께서 비밀리에 설치한 방어 법진이 있으니, 이를 이용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육화명은 이제 몸까지 덜덜 떨었고, 두려운 빛은 더욱 짙어졌다.

    “향양진 근처에 방어 법진이 있다니요, 처음 듣는 이야기요.”

    “비밀리에 설치한 것이니 그대가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설마 국사께서 하시는 일을 일일이 그대에게 보고해야 하는가!”

    육화명이 몸을 움찔하더니 불현듯 화가 난 표정으로 꾸짖었다.

    “아, 물론 아닙니다.”

    배민 장군이 당황한 듯 황급히 포권했다.

    “육 도우, 괜찮으시오?”

    강신천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모두가 육화명의 변화를 느끼고 의아했던 것이다.

    “난 괜찮소! 다만, 청구 호족이 금방 몰려올 것이니 서둘러 육문금쇄진(六門金鎖陣)을 펼쳐야 하오. 그대들도 사소한 일에 계속 매달리다가는 오늘 다 죽게 될 것이오!”

    육화명은 여전히 화를 내고 있었다.

    “육 도우가 왜 저런 것이오? 감정이 이랬다가 저랬다가 변하니, 주화입마라도 든 것 아니오?”

    강신천은 육화명의 무례에도 화를 내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육형의 감정 변화가 좀 격하긴 하나 기운은 안정적이니 아무 일 없을 것이오.”

    심협이 전음으로 답했다.

    그때, 백소천이 불쑥 끼어들었다.

    “모두 걱정하지 마시오. 육 도우는 주화입마에 빠진 게 아니라 칠정심검(七情心劍)이라는 특수한 신통을 시전하느라 감정이 계속 변하는 것뿐이오.”

    “칠정심검? 그건 무슨 신통이오?”

    심협은 검도 신통에 흥미가 많았기에 물었다.

    “나도 자세히는 모르나 칠정에 지배되는 검결이라 알고 있소. 검결을 시전할 때마다 기쁨, 분노, 두려움, 생각, 슬픔, 놀람, 걱정 등 일곱 가지의 서로 다른 감정에 빠진다던가?”

    백소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칠정에 지배된다니……”.

    심협의 눈이 반짝였다.

    육화명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몸 앞에 노란 빛이 연달아 번득이더니 36개의 노란색 깃발이 나타나 번쩍였다.

    향양진 부근의 땅이 갑자기 크게 흔들리더니 노란 빛이 땅을 뚫고 나와 순식간에 거대한 법진을 이루어 마을과 반경 30여 리를 뒤덮었다.

    “이 진은 육문금쇄대진이오. 방어가 단단하기로 유명하지. 여섯 곳의 진안만 지켜낸다면 적이 아무리 많이 몰려와도 문제없을 것이오. 이것이 법진을 운공하는 방법이니 서둘러 숙지하시오.”

    육화명이 소매에서 일곱 개의 옥간을 꺼내 심협과 배 장군 등에게 던졌는데, 목소리가 여전히 차가운 것을 보니 아직도 분노가 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심협은 개의치 않고 신식을 옥간에 넣어서 훑어봤다.

    육문금쇄대진의 운공은 방식이 복잡하지 않았다. 그저 진법에 조금이라도 정통한 사람 30여 명이 제어하면 간단하게 운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번에 청구산에 온 것은 각 문파의 정예 제자들이라 법진에 정통한 사람이 적지 않으니 이 법진을 운공하는 데는 문제가 전혀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를 보고서야 조금 긴장이 풀렸다.

    “향양진은 본래 청구 호족을 감시하는 곳이니 모두 마을로 들어가시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셔도 됩니다.”

    배민 장군도 옥간의 내용을 보고는 안내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