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010화 (1,010/1,214)
  • 1010화. 빼앗기다

    청구성 서북쪽 어느 구석. 언무사는 수십 마리의 청구 호족에게 포위되어 있었는데, 그중 두 마리는 진선 중기였다.

    온갖 법보와 법술은 물론 주먹과 발이 파도처럼 사방에서 언무사를 향해 몰려왔다.

    언무사는 청호(靑虎) 언갑 안으로 피해 있었다. 이 언갑은 크기가 3장에 빼곡하게 새겨진 푸른색 언문이 번쩍일 때마다 푸른색 돌풍을 일으켰다.

    청호 언갑 주위에는 10여 개의 황토색 거북이 모양 언갑이 빠르게 돌아다니면서 두꺼운 황색 광막을 만들어냈다.

    이 거북이 언갑은 방어력이 매우 강해, 주위에서 공격이 파도처럼 몰려와도 막아냈고, 아직은 밀리는 기미도 없었다. 다만, 언무사를 보호하는 정도였다. 그는 몇 차례 청호 언갑을 이용해 돌파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몰려드는 호족은 갈수록 많아졌고, 언무사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가 이를 악물고 비장의 패를 시전하려 할 때였다.

    머리 위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보라색 뇌광이 번쩍이며 심협이 나타났다.

    “인간족, 죽어라.”

    근처의 호족이 바로 심협을 알아채고는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심협은 신경 쓰지 않고 주문을 읊더니 소매를 휘둘렀다. 그의 손에서 푸른 빛이 강렬하게 뿜어져 나갔고, 반경 백 장을 뒤덮어 푸른 빛의 영역을 만들어냈다. 수많은 푸른색 부문이 안에서 요동쳤다.

    이 영역에 있는 모든 것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모든 호족도 전부 얼음 조각이 되었는데, 심지어 진선기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진창해의 수련이 제5층에 도달해야만 시전할 수 있는 절세 신통인 전한영역(靛寒領域)이었다. 심협은 아직 대성에 이르지 못하여 어설펐지만, 가장 강한 자도 진선 중기에 불과한 이 호족들에게는 충분했다.

    다만 이 호족들의 몸에는 모두 핏빛 힘이 있어서 이 신통으로도 그 힘까지 얼게 할 수는 없었다.

    “저게 호조의 힘인가? 역시 대단하구나.”

    심협은 내심 감탄했다.

    진창해로 호조의 힘을 완전히 얼릴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호족들의 발을 묶어두어 빠져나오지 못하게는 할 수 있었다.

    심협은 이 틈에 붉은 빛을 쏘아 보내 언무사의 청호 언갑을 휘감았다. 그는 이제 진창해의 한기를 매우 세밀하게 조종할 수 있어서 언무사와 그 주위의 언갑은 조금도 얼어붙지 않았다.

    언무사는 안도하며 청호 언갑의 입에서 푸른 빛을 쏘아 보내 주위의 거북이 언갑을 노란색 공으로 변하게 한 뒤 빨아들였다.

    심협은 붉은 빛이 다시 돌아오자 청호 언갑과 언무사를 소요경 안으로 넣었다.

    주위의 호족들이 이 상황을 보고는 번개처럼 달려왔다.

    그러나 심협은 신경 쓰지 않고 추운축전화에서 뇌광을 뿜어냈다. 지금은 혼자였기에 앞서 세 사람을 이동시킬 때보다 훨씬 빨랐다.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고 심협이 사라지자 허탕을 친 호족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 *

    수백 장 떨어진 광장. 강신천 또한 호족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그는 자금색 갑옷을 입은 채 길용(吉龍)의 그림이 그려진 투구를 쓰고 있었다. 몇 마리의 자금색 용이 감돌고 있는 이 갑옷은 한눈에 봐도 선가의 보물 같았다.

    갑옷이 호족들의 공격을 바로 튕겨내 그는 털끝만큼도 다칠 일이 없었다. 덕분에 강신천은 오직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는 신창 비룡재천을 거침없이 휘둘러 호족 무리를 밀어냈다. 딱히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으나, 뚫고 나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강신천을 에워싼 호족 중 진선 절정의 검은 여우는 신지가 절반이나 남아 있었고, 검은색 삼극차(三戟叉)를 들고 있었다.

    돌파를 시도할 때마다 이 검은 여우가 가로막자 강신천은 초조해졌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때,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심협이 근처에 나타났다. 호족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그가 양손을 휘두르자 푸른 파도가 휘몰아쳐 주위의 호족들을 얼렸다. 그 검은 여우도 마찬가지였다.

    검은 여우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검은 빛이 번득이면서 여섯 개의 칠흑 같은 꼬리가 나타났다. 그 순간, 검은 여우는 그림자로 변하여 번개처럼 밖으로 빠져나갔는데, 그 속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의외의 상황에 심협은 손의 법결을 바꿔 진창해 영역의 한기를 폭발시켰고, 모든 호족은 순식간에 얼음 조각이 되었다.

    그 검은 여우도 완전히 도망치지 못하여 몸의 절반이 얼어붙었다. 하지만 그 범상치 않은 실력으로 완전히 얼어붙기 전에 빠르게 도망쳤다.

    심협은 이 여우를 쫓지 않고 붉은 빛으로 강신천을 감싸 소요경 안으로 넣고는 바로 뇌둔술로 칠살에게 향했다.

    칠살은 심협이 언무사와 강신천을 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도도하고 자존심이 강해 남의 도움을 받기를 원하지 않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마음이 놓였다.

    “비사주석(飛沙走石)!”

    칠살의 형천지역창에서 마광이 폭증하더니 빼곡한 창의 허상이 모래폭풍처럼 휘몰아쳐 순식간에 주위의 호족들을 날려 버렸다. 덕분에 심협도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심협이 허리춤에서 붉은 빛을 뿜어내 칠살의 몸을 휘감고는 소요경 안으로 넣으려 할 때였다.

    “심 도우는 역시 강하군요. 허나 우리 일족을 아무렇지 않게 헤집고 다니다니, 청구 호족을 너무 무시하는 게 아닌지요.”

    맑고 차가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더니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심협은 온몸의 털이 곤두섰고, 곧장 추욱축전화에서 뇌광을 뿜어내며 두 발에서 달빛과 달의 허상을 반짝였다. 그가 추욱축전화, 사월보, 이형환영, 열석보 등의 모든 신법 신통을 총동원하여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지자 근처의 허공이 터져 나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심협은 수백 장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칠살을 휘감은 소요경의 붉은 빛도 이미 터져서 사라진 상태였다.

    심협이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도산설이 서 있었다. 허나 그녀의 외모는 크게 변한 상태였다. 팔에는 하얀 털이 자랐고, 머리에는 설백의 뾰족한 귀가 솟았으며, 몸에는 검은 무늬가 가득한 혈홍의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 자태는 요염하고도 아름다워 차갑고 도도한 호족의 여황(女皇) 같았다.

    도산설은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심협의 반응이 이렇게 빠를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칠흑 같은 창의 허상이 갑자기 그녀 뒤에 나타나더니 곧장 단전을 노리며 찔러 들어갔다. 도산설이 방심한 틈에 칠살이 기습을 시도한 것이다.

    “칠살 도우, 안 되오!”

    심협이 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는 외쳤다. 그는 도산설의 실력을 실감했다. 심지어 무라보다도 강하니 칠살의 기습에 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어느새 돌아선 도산설이 고운 손을 들어 앞으로 내밀더니 창끝을 두 손가락으로 잡았다.

    형천지역창은 나무에 깊게 박힌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고, 칠살이 아무리 힘을 줘도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럴 수가!”

    칠살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호, 마왕채의 제자인가? 이 마창은 훌륭하구나.”

    도산설이 칠살을 보더니 손가락으로 살며시 잡아당겼다.

    창은 화가 난 광룡이 발악하는 것처럼 웅웅 떨렸다.

    칠살은 포효하며 온몸에서 검은 빛을 뿜어냈고, 있는 힘껏 형천지역창을 다시 빼내려 했다. 그때, 부드러운 기운이 형천지역창을 타고 갑자기 전해지더니 칠살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마기가 대폭 약해졌고, 눈 녹듯 사라졌다.

    형천지역창은 그의 손에서 벗어나 도산설의 손에 넘어갔다.

    기령이 있는 이 창은 검은 빛을 발하며 빠져나가려고 발악을 했지만, 도산설이 손에서 하얀 빛을 뿜어내자 큰 상처를 입은 듯 얌전해졌다.

    칠살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그가 형천지역창에 남긴 심신 각인이 방금 깔끔하게 지워진 것이다. 머릿속의 신혼도 마치 칼에 베인 듯한 통증이 느껴져 그는 신음하며 뒤로 물러났다.

    “훌륭해. 역시 좋은 창이야.”

    도산설이 형천지역창을 가로로 휘둘렀다.

    창신에서 챙 하는 경쾌한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뿜어져 나온 검은색 마광이 10여 장을 날아갔다. 마치 마룡이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렸고, 그 위력은 칠살의 손에 있을 때보다 열 배는 강력했다.

    창을 쥔 그녀의 손이 떨리자 형천지역창에서 솟아난 흑망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백 장 길이의 칠흑 같은 창의 허상으로 변했다. 거대한 검은색 전망(電芒)이 허상 위에서 날뛰었는데, 그때마다 두려울 정도의 떨림이 느껴졌다.

    “자, 너도 내 일격을 받아봐라!”

    도산설이 팔을 휘두르자 거대한 창의 허상이 칠살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녀가 창을 빼앗고 공격을 하기까지는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칠살은 안색이 변하더니 급하게 입에서 혈광을 쏘아보냈다. 그것은 아홉 개의 혈홍색 해골 머리를 엮어서 만든 목걸이였다.

    이 해골 머리 각각에서 귀에 거슬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고, 순식간에 백 배로 커져 하나하나가 6장에 이르렀다. 전체가 영롱한 붉은 빛을 뿜어냈고, 해골을 휘감은 검은 기운에서는 강력한 마기의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심협의 순양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핏빛 해골 목걸이가 빠르게 날아가자 곳곳에 마귀의 울부짖음이 가득했다. 해골의 벌어진 입에서는 아홉 줄기의 커다란 혈광이 뿜어져 나와 교차하며 거대한 검은색 창의 허상을 맞이했다.

    하지만 쌍방이 충돌하는 순간, 아홉 줄기의 혈광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창의 허상을 전혀 막지 못한 것이다.

    칠살은 눈이 졸아들더니 입에서 정혈을 뱉어내 해골 목걸이에 주입했다.

    아홉 개의 해골에서 혈광이 더 강해지더니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작은 산만 한 핏빛 해골로 변했다. 이 거대한 해골에서는 금속 같은 광택이 번쩍여 난공불락처럼 보였다.

    거대한 검은색 창의 허상이 빠르게 날아와 핏빛 해골과 충돌했다.

    쾅!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핏빛 해골이 와르르 무너졌고, 수많은 핏빛의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이 해골 목걸이는 혈고(血骷) 목걸이로, 칠살에게는 비장의 패인 본명마보였다. 오랫동안 제련해온 본명마보가 부서지자 칠살은 피를 토했고, 기운도 크게 쇠약해졌다.

    거대한 창의 허상은 잠시 멈칫했으나, 다시 떨어져 내렸다. 칠살에게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그때, 핏빛 깃발이 번개처럼 날아와 파도 같은 혈광을 뿜어내 창의 허상을 막았다.

    핏빛 깃발은 연이은 폭발음에 이어 혈광이 무너져 내렸지만, 가까스로 검은색 창을 막아낼 수 있었다.

    보라색 뇌전이 칠살의 옆을 스치자 그의 몸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핏빛 깃발도 더는 버티지 않고 뇌광을 쫓아 날아갔다.

    도산설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하더니 팔을 휘둘렀다. 형천지역창이 폭발하며 순식간에 보라색 뇌전을 관통했다.

    보라색 뇌전이 사라지면서 피가 튀었고, 심협과 칠살의 모습이 나타났다. 심협은 오른팔이 잘린 채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대개박술을 운공했다. 잘린 팔에서 광망이 빛나더니 새로운 팔이 순식간에 자라났다.

    “대명(代命) 신통?”

    이를 본 도산설이 눈썹을 찌푸리더니 한 손을 내밀었다.

    멀리 날아갔던 형천지역창에서 검은 빛이 번득이더니 되돌아와 심협의 머리 위를 휙 지나갔다.

    심협이 재빨리 결인하자 어렴풋이 동전 같은 것이 노란 빛으로 변해 번개처럼 날아가 형천지역창과 충돌했다.

    그 순간, 형천지역창의 검은 빛이 사라지더니 고철처럼 변해 떨어졌다.

    이를 본 칠살이 곧장 하늘로 솟아올라 형천지역창을 잡았다. 그의 얼굴에는 잃었던 보물을 되찾은 기쁨이 확연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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