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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09화 (1,009/1,214)

1009화. 호족에게 막히다

청구산 땅속 동굴 안. 유소모주는 양손을 움직이며 앞에 있는 은색 원반 법보를 발동하는 중이었다. 거대한 은색 법진이 이미 상태가 안정된 청구 호족을 뒤덮은 채 끊임없이 밖으로 내보냈다.

불과 몇 호흡 만에 도산설 파의 청구 호족이 전부 보내졌고, 오직 도산설만 남게 됐다.

그녀는 두 눈을 꼭 감은 상태였는데, 미간에는 검은 빛이 감돌고 있었다. 혼수상태였지만 기운은 이미 안정된 상태였다.

“내 몽마술(夢魔術)이 그녀의 신혼을 더는 억제할 수 없으니 어서 내보내시오!”

세 명의 회색 옷을 입은 자들이 은색 원반 법보 반대편에 서 있었고, 그중 가운데 노인이 소리쳤다.

그는 말이 끝나자마자 양손을 결인했고, 손끝에 검은 빛이 감돌면서 도산설의 미간에서 검은 빛과 호응하기 시작했다.

유소모주가 말없이 허공의 은색 원반을 결인하자 은빛이 튀어나와 도산설의 몸을 뒤덮었다.

도산설이 휙 사라지더니 청구산 정상의 조령 제단에 나타나 호조의 조각상 앞에 가부좌를 틀었다.

그녀의 미간에서 검은 빛이 번쩍하고 사라지더니 눈꺼풀이 떨리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 * *

왕궁 안. 심협 등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마리 반호 괴물이 심협 등을 눈치채고는 바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 괴물은 아까의 괴물보다는 약해서 경지가 대승기에 불과했다.

백소천은 화룡점정선을 아무렇게나 휘둘렀다.

휘잉!

금색 폭풍이 휘몰아쳐 반호 요물을 가볍게 날려 버렸다.

하지만 더 많은 반호 괴물이 사방에서 몰려오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처음 나타난 괴물 못지않게 강력한 진선 후기인 놈도 있었다.

“이 반호 괴물들은 반조 현상으로 변해버린 청구 호족이다! 심협, 죽고 싶지 않으면 어서 도망쳐라. 너희는 청구 호족의 적수가 아니다!”

소요경 안의 화령자가 갑자기 외쳤다.

심협은 깜짝 놀라 곧바로 육화명과 백소천을 잡고 추운축전화를 발동했다. 보라색 뇌전이 세 사람을 감싸더니 청구성 밖으로 날아갔다.

전방의 청구 호족이 포효하더니 피에 굶주린 표정으로 변했고, 각종 법보와 비술의 공격이 하늘을 뒤덮었다.

하지만 보라색 번개는 매우 빨라서 수많은 공격을 피하며 거침없이 뚫고 지나갔다.

바로 그때, 전방에서 눈부신 혈광이 번득이더니 거대한 기운의 파도가 휘몰아쳐 근처에 있던 적지 않은 청구 호족을 날려 버렸다. 바로 그 진선 후기의 호족이 날아와 양손으로 허공을 공격한 것이다.

보라색 번개 좌우에서 혈광이 번쩍이더니 작은 산 같은 두 개의 거대한 핏빛 손이 나타났고, 화산이 폭발하듯 강력한 힘을 뿜어내며 부딪쳐 왔다.

보라색 번개 안에서 차가운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뇌광이 갑자기 더 강해지고 속도도 몇 배로 증가하여 거대한 핏빛 손바닥이 완전히 떨어지기도 전에 그곳을 빠져나갔다.

뇌전 안. 심협의 추운축전화에서 전광이 번쩍이자 보라색 뇌전이 방향을 갑자기 바꿔 진선 후기 호족 옆으로 날아갔다.

호족이 성난 포효를 연달아 지르더니 바로 쫓아갔지만, 보라색 뇌전은 방향을 쉬지 않고 바꿔 눈 깜짝할 사이에 그 호족을 따돌렸다.

이 청구 호족들은 실력이 크게 정진한 대신 영지가 흐려져서 공격도 매우 단순했다. 평범한 진선의 수사였다면 모를까, 심협은 강력한 신식과 추운축전화 같은 상고 비행 보물이 있으니 이런 공격은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심협 등이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칠살과 언무사, 강신천도 갑자기 튀어나온 청구 호족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들도 당연히 서둘러 도망치려 했으나, 그들에게는 심협만큼 빠른 이동 법보가 없어 이내 점점 많은 호족에서 포위되어 간신히 버티는 것이 전부였다.

심협은 세 사람의 상황을 보고는 표정이 무거워졌다. 지금은 백소천과 육화명을 구하느라 전력을 다하는 중이어서 칠살 등을 도울 힘이 없었다. 그래도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다행이었다.

“심협, 저들마저 당해버리면 승산이 없다. 최대한 빨리 구해내야 한다!”

“알고 있어.”

심협은 간단하게 답하고는 추운축전화의 위능을 최대로 발동하여 빠르게 청구 호족의 공격을 피하면서 전력을 다해 밖으로 달아났다.

“화령자, 전에 호불귀에게 갑자기 반조 현상이 일어난 것도 이들의 이변 때문일까? 반조에 성공하거나 버티지 못하고 죽거나 둘 중 하나라고 했던 것 같은데, 왜 이 호족들은 이렇게 변한 거지?”

“호족의 반조에 대해서는 나도 많이 알지 못하니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앞으로 조심해야 할 거다. 이렇게 많은 호족에게 동시에 반조 현상이 일어났다면 원인은 단 하나, 누군가 호조를 깨웠을 때다.”

“호조! 그자의 실력은 어떤데?”

심협이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상고 시기, 호조의 경지는 천존 절정이었지. 만겁 불멸과 하늘과 수명이 같다는 대천존(大天尊)의 경지까지 고작 반걸음 남겨뒀을 정도였다. 다만, 호조는 상고 시기에 이미 죽고 부활한 것이니 실력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을지는 나도 예측할 수 없다. 어쨌든 무조건 조심하는 게 상책이다.”

심협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청구산 호족의 실력이 강하긴 하지만, 본래 훼멸명왕이라는 천존에 가까운 언갑이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호조가 갑자기 나타났으니 풀어졌던 긴장감이 팽팽해졌다.

보라색 뇌광은 호족의 포위를 빠져나와 전방에는 더 이상 가로막는 호족이 없었다. 심협은 몸에서 보라색 뇌광이 크게 번득이더니 뇌둔술을 펼쳤다.

그는 현재 백소천과 육화명을 데리고 있었기에 세 사람이 함께 있는 상태에서 뇌둔술을 시전하려면 일정한 준비 시간이 필요했다. 또한, 혼자 있을 때만큼 빠르지도 않았다.

지금까지는 주위가 온통 적이라 준비 과정에서 방해받기 쉬웠지만, 지금은 포위를 빠져나왔으니 바로 뇌둔술을 시전했다.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다음 순간, 청구성 언저리에서 뇌광이 번쩍이며 나타났다.

연합군 수사들은 아직도 성 밖에서 만리청운진을 공격하는 중이었다. 금제의 절반을 부순 이들은 성안의 상황을 보더니 깜짝 놀라 공격을 멈췄다.

“심 선배님, 성에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어느 천기성 제자가 광막 너머로 물어왔다.

심협은 대답하지 않고 축지척을 발동하여 초록색 빛으로 백소천, 육화명을 뒤덮은 채 그들을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

한데, 그때였다!

핏빛 번개가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고, 심협은 순양검을 꺼내서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미처 막지 못했고, 번개가 축지척의 빛을 공격했다.

쾅!

굉음과 함께 초록색 빛의 광막이 부서졌고, 세 사람은 튕겨 나갔다.

멀지 않은 곳에서 온몸이 혈홍색인 청구 호족이 나타났는데, 다른 호족보다 몇 배나 크고, 그 기운은 태을경에 도달해 있었다.

이 호족은 반조로 인한 변화가 심하지 않아 이목구비를 구별할 수 있었는데, 바로 소효였다. 다만 지금 그는 이전과 달리 기운이 크게 증폭하여 태을 중기 절정에 도달해 있었고, 후기까지 한 걸음만 남은 상태였다.

‘화령자의 말대로 저 괴물들은 모두 청구 호족이 변한 것이군!’

몸을 가눈 심협은 경계하는 눈으로 소효를 살폈지만, 머릿속에서는 미소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갑자기 사라진 청구 호족은 전부 반쯤 미쳐 버린 것 같은데, 미소가 이 화를 피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조심해라. 이자는 반조가 되고도 영지가 크게 사라지지 않았으니,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화령자가 일깨워주자 심협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현황일기곤을 꺼냈다.

그 순간, 소효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기운이 가장 약한 육화명 앞에 귀신처럼 나타나 핏빛 여우 발톱으로 가슴을 찌르려 했다. 심장까지 파낼 기세였다.

“육형!”

깜짝 놀란 심협이 추운축전화에서 뇌광을 밝히며 전력을 다해 도우러 날아갔다.

본래도 소효의 상대가 아니건만, 육화명은 부상을 입은 반면 소효는 반조를 통해 훨씬 강력해진 상태였다.

백소천도 금빛으로 변하여 육화명을 향해 날아갔다.

두 사람은 전력을 다해 나섰지만, 이미 늦은 터였다. 채 절반도 다가가기 전에 소효의 발톱은 이미 육화명의 몸에 닿아 있었다.

한데 육화명은 어째서인지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저 머리를 조금 숙인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듯 또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했다.

소효의 발톱이 육화명의 몸에 닿는 순간, 한 줄기 서늘한 검광이 갑자기 뿜어져 나와 소효의 발톱을 베었다.

소효는 화령자의 말대로 신지가 제법 남은 상태로, 태을 수사의 민첩한 판단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곧장 발톱의 방향을 바꾸며 혈광을 더욱 크게 뿜어냈다.

쾅!

굉음이 울려 퍼졌고, 커다란 핏빛 발톱이 허공에 나타나 서늘한 검광을 움켜쥐려 했다.

핏빛 발톱이 검광에 닿기도 전에 다섯 줄기의 검기 같은 혈광이 손끝에서 뿜어져 나와 허공에 검은 궤적을 남겼다.

콰직!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놀랍게도 소효의 커다란 핏빛 발톱이 두 동강 났을 뿐만 아니라, 앞발에서 피가 튀었다.

꽈르릉!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더니 심협이 육화명 옆에 나타났고, 금빛을 뿜어내는 현황일기곤의 허상이 소효의 몸을 가격했다.

쿵! 쿵!

연이은 충격음과 함께 소효는 뒤로 밀려났고, 온몸의 혈광이 흔들렸다. 그러나 큰 지장은 없어 보였다.

심협은 소효를 쫓아가지 않고 육화명을 바라봤다.

육화명은 고개를 들고 있었는데, 표정은 날카로웠다. 두 눈이 붉게 빛나고 호흡이 거친 것이 잔뜩 화가 난 모습이었다.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기운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인근의 천지영기가 흐트러졌다. 그의 기운은 진선 절정에 이르렀고, 가슴의 상처 위로 피의 사자가 떠오르면서 빠르게 치유되어갔다.

육화명의 보검, 상냉구주에서는 용의 포효가 끊이지 않고 온 천지에 울려 퍼졌다. 검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광은 태양처럼 더욱 강해져서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었다.

“육형, 이건……?”

심협은 마치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한 육화명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문득 몇 년 전 장안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육화명이 술에 취한 뒤 지금처럼 변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전혀 다른 사람 같았고, 실력도 크게 강해졌다.

“소효는 나와 백형에게 맡기고, 심형은 칠살과 언무사를 구하러 가게.”

육화명은 짧게 말하고는 인검합일이 되어 백 장 길이의 한광을 소효에게로 내리쳤다.

백소천은 이 상황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는지 심협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육화명의 뒤를 따랐다.

백소천이 주문을 읊조리며 양손을 연달아 결인하자 육화명의 몸에 한 겹의 금색 갑옷이 나타났다. 바로 화생사의 금강호체 신통이었다.

심협은 두 사람을 보며 떠오르는 의문을 억누른 채 시선을 거뒀다.

“화령자, 소요경 안의 금제를 전부 발동해서 안에 있는 물건을 다 가려줘. 특히 참마신검과 핏빛 조도를 부탁해!”

그는 성 안쪽으로 날아가며 전음을 건넸다.

“소요경으로 그들을 구할 생각이냐? 너무 위험하다. 참마신검은 말할 것도 없고 핏빛 조도는 마조 치우와 연관이 깊으니 절대로 외부인에게 알려져서는 안 돼!”

“알고 있어.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잖아. 서둘러줘.”

심협은 두 발에서 뇌광을 뿜어냈고, 천둥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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