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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07화 (1,007/1,214)
  • 1007화. 오리무중

    이 무렵, 궁전 안의 어둠은 갑자기 몇 배로 짙어졌고, 수많은 흑호와 흑랑, 구렁이 등 이수들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며 네 사람을 덮쳐왔다.

    심협이 결인하여 손을 휘두르자 아홉 자루의 순양검이 나타나 빠르게 회전하며 매섭고 날카로운 검기가 주위의 어둠을 베었다.

    백소천은 부채 법보를 꺼냈는데, 그 위에는 신룡이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는 모습이 수놓아져 있었다. 바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부채였다.

    그가 심협의 반대쪽으로 부채질을 하자 우우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금빛이 성난 파도처럼 솟아올랐다. 그 안에 있는 몇 마리의 거대한 금룡이 이빨과 발톱으로 흑암의 이수들을 공격했다.

    육화명도 상랭구주를 꺼내 허공을 베었다. 백 장 길이의 푸른 검기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강력한 기세로 거침없이 베어나갔는데, 심협과 백소천의 공격을 압도했다.

    세 사람이 힘을 합치자 달려들던 흑암도 금세 주위가 정리됐다.

    그러나 흑암의 힘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우르릉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수많은 검은색 화살이 그 안에서 뿜어져 나왔다.

    섭채주가 곤륜경을 발동하려는데 머릿속에서 심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흑암의 힘은 우리가 막을 테니까 서둘러 적의 위치를 찾아줘.”

    그 말을 들은 그녀는 곧장 곤륜경으로 들어갔다.

    곤륜경이 검은색 바퀴로 변하더니 주위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심협이 다시 아홉 자루 순양검을 발동하자 빼곡한 검기가 주위를 빈틈없이 베었다. 백소천과 육화명도 공격을 퍼부어 검은색 화살들을 모두 막았다.

    그때, 심협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그들이 벤 화살이 다시 흑암의 힘으로 변하더니 주위의 어둠으로 녹아들어 또다시 공격을 퍼붓기 위해 움직이고 있음을 예리한 감각으로 알아챈 것이다.

    ‘만귀번처럼 흩어진 힘을 흡수해서 다시 공격을 펼칠 수 있구나. 아무래도 평범한 공격으로는 안 되겠어.’

    심협은 결심을 굳히고는 푸른색 부채를 꺼냈다. 그러자 주위가 찬란한 별빛으로 둘러싸였다. 성한선이었다.

    심협의 성한선을 보는 순간 백소천은 갑자기 멍해지더니 그 부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심협은 그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에 황정경을 운공하며 온몸에서 찬란한 금빛을 뿜어냈다. 동시에 세 개의 손가락으로 삼성멸마 법인을 결인하여 허공에 휘둘렀다.

    성한선의 별빛이 더욱 강하게 번득이며 주위에 흘렀고, 찬란한 은하수 같은 광경이 반경 수십 장의 흑암을 전부 몰아냈다.

    이곳의 흑암은 음속성 신통이었기에 삼성멸마와는 상극이었다. 그리고 성한선은 성진의 법보라 삼성멸마 신통의 위력을 더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는 진작부터 이 둘을 동시에 사용할 때의 위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는데 마침내 기회가 온 것이다.

    하늘 가득한 성진의 광망에서 갑자기 찬란한 별빛이 뿜어져 나오자 주위가 대낮처럼 변했다.

    심협은 천공의 이상을 감지하자 의외라는 표정으로 성한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화색이 돌았다. 성한선이 삼성멸마 신통을 기대 이상으로 끌어올려 준 것이었다!

    “삼성멸마!”

    그는 흥분을 억누르며 부채를 강하게 휘둘렀다.

    콰쾅!

    커다란 별빛이 하늘에서 내려와 왕궁의 어둠으로 파고들자 별빛의 바다가 생겨났고, 수많은 별의 허상이 반짝였다. 마치 온 하늘의 별들이 전부 이곳으로 떨어진 것만 같았다.

    왕궁 안의 어둠이 전부 찢겨나가자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고, 수많은 검은색 그림자가 왕궁 밖으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왕궁은 눈부신 별빛에 뒤덮인 상태라 이 그림자들은 도망치지 못했고,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치다가 이내 푸른 연기로 변해 소멸했다.

    백소천과 육화명도 이 별빛의 힘에 갇혀 꼼짝도 못 했고, 가슴이 섬뜩해졌다.

    대전의 흑암의 힘이 빠르게 사라졌고, 몇 호흡 뒤에는 궁전 깊은 곳에 검은 그림자만 도사린 채 별빛의 힘에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심협이 이 광경을 보더니 두 손으로 봉인 법결을 맺었다.

    왕궁에 가득 찬 별빛의 바다가 갑자기 모여들어 거대한 성진봉인진도(星辰封印陣圖)로 변했다.

    피식 하는 소리와 함께 궁전 깊은 곳에 있던 검은 그림자는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그 너머로 검은색 법진이 드러났는데, 어디로 통하는지 알 수 없지만 어두운 기운이 도사리고 있는 검은색 통로가 보였다.

    “삼성봉인(三星封印)!”

    심협이 수중의 법결을 다시 바꾸자 성진봉인진도가 강렬하게 땅에 떨어져 검은색 법진을 뒤덮었다.

    검은색 법진이 순식간에 반쯤 부서지자 흩날리던 검은 빛도 우뚝 멈추더니 완전히 봉인되었다. 대전의 어둠은 여전했지만, 뒤덮고 있던 기이한 기운은 사라졌다.

    * * *

    왕궁 땅속 어딘가. 회색 옷을 입은 세 사람이 모여 있었다. 주위를 뒤덮은 회색 금제가 이들의 기운 파동을 가려주었다.

    키가 큰 자의 주위에는 여전히 검은색 진기가 떠다녔는데, 대부분이 부서져서 이미 진(陣)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심협이 방촌산의 삼성멸마 신통을 이 정도까지 익혔을 줄이야! 일격에 암식현도대진(暗蝕玄都大陣)이 무너졌군.”

    그가 부서진 대진을 거두며 말했다.

    다른 두 사람의 주위에는 아홉 개의 핏빛 깃발이 떠다녔는데, 거기서 액체처럼 끈끈한 혈광이 밖으로 솟구쳐 나오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혈해 금제의 근원이었다.

    “이제 어쩌죠? 저렇게 많은 수사가 몰려 왔으니 일망타진하기란 불가능해요. 더 싸우면 정체가 탄로 날 수도 있습니다.”

    회색 옷의 여자가 옆의 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빠진다. 이렇게 오랫동안 버틸 수 있게 도와준 것만으로도 유소모주에게 할 일은 다 해준 것이다. 나머지는 알아서 하겠지.”

    회색 옷의 노인이 눈을 반짝이며 단호하게 말하고는 결인했다.

    아홉 개의 핏빛 깃발에서 혈광이 전부 사라졌고, 동시에 왕궁의 혈해도 썰물처럼 뒤로 밀려나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회색 옷의 노인이 소매를 휘둘러서 아홉 개의 깃발을 거두고는 돌아서서 땅속으로 모습을 감췄고, 다른 두 사람도 곧장 뒤를 따랐다.

    근처 허공에서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며 검은색 고경이 나타나더니 이들을 쫓아 아래로 날아갔지만, 세 사람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 *

    왕궁 밖. 혈광이 갑자기 사라지자 칠살 등은 당황했다.

    “금제를 파훼한 건가?”

    강신천이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보면 알겠지.”

    칠살이 오색기합을 거두고는 곧장 검은 빛이 되어 날아갔고, 강신천과 언무사도 바로 뒤를 따랐다.

    * * *

    심협은 얼굴이 창백했지만, 몇 차례 심호흡을 하자 안색이 회복되었다.

    삼성멸마의 위력이 폭증한 만큼 법력의 소모는 커졌다.

    “방금 그건 방촌산의 삼성멸마 신통인가? 이 정도 위력은 보제선조 외에는 발휘할 사람이 없을 게야.”

    육화명이 다가오며 말했다.

    “과찬이오. 삼성멸마는 흑암 법진을 봉인했을 뿐, 적이 살아 있으니 방심해서는 안 되오.”

    심협의 말에 육화명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식으로 주위를 살펴봤다.

    심협은 보라색 구슬을 꺼냈는데, 바로 전삼칠의 탐색 비보인 창혼주였다.

    창궁 비경에서 전삼칠이 죽자 창혼주는 무라에게 넘어갔고, 다시 심협이 무라를 죽이고 그녀의 저물 법기를 손에 넣으면서 이 보물을 얻게 됐다.

    창혼주를 발동하자 구슬에서 몽환의 기운이 담긴 보라색 광망이 흘러나와 대전 곳곳을 살펴봤지만, 이내 멈췄다.

    검은색 법진이 부서진 이후로 주위에는 이상한 존재는 더 이상 없었고, 대전에는 법력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 근원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창혼주로도 추적이 되지 않았다.

    심협은 눈살을 찌푸렸다. 적들은 깔끔하게 떠났고, 매우 고명한 수단으로 흔적을 지웠으니 더는 손쓸 방법이 없었다.

    다만 섭채주가 사라진 지 꽤 되었으니 창혼주보다 뛰어난 곤륜경의 암영천라망 탐색 능력이라면 어떤 단서를 찾아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때, 바람이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칠살 등이 다가왔다.

    “어떻게 온 것이오? 바깥의 혈해를 해결했소?”

    육화명이 깜짝 놀라 물었다.

    “혈해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그대들이 한 게 아니었소?”

    칠살도 당황해 되물었다.

    “방금 심형이 이곳의 흑암 법진을 부수긴 했지만, 혈해 금제는 찾지도 못했소.”

    “이상한 일이로군. 하면, 지금 상황은 어떻소?”

    “바깥의 혈해든 대전 안의 흑암 법진이든 모두 누군가가 뒤에서 몰래 제어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일이 실패할 것 같으니 사라진 모양이오.”

    “그럼 새로운 단서는 없었소? 아, 한데 어째 섭 도우가 안 보이오?”

    칠살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단서는 없었소. 섭 도우는 추적에 능하니 심 도우의 부탁으로 적의 흔적을 찾는 중이오. 뭔가 찾아냈으려나.”

    육화명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기다리는 동안 우리도 왕궁 곳곳을 샅샅이 찾아봅시다.”

    강신천의 제안에 모두가 흩어져서 수색하기 시작했다.

    섭채주의 안위가 걱정된 심협이 가장 먼저 왕궁 안쪽으로 향했다.

    청구산 왕궁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건물이 매우 많았다. 건물은 모두 여러 층으로 되어 있었고, 대부분이 땅속에 밀실까지 있었다. 대당의 황성처럼 크고 화려하지는 않아도 곳곳에서 호족 특유의 기풍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런 것을 감상할 때가 아니었기에 심협은 빠르게 주위를 수색했고, 땅속까지 신식으로 훑었다. 동시에 창혼주를 발동하여 숨겨진 금제가 있는지도 살폈다.

    한참을 돌아다니던 그가 눈을 치켜떴다. 저 앞 편전에서 금제의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 게다가 이 금제는 매우 은밀해서 그의 신혼이 이토록 강하지 않았거나 창혼주가 없었더라면 놓쳤을 터였다.

    지금은 별다른 단서가 없었기에 심협은 날아서 청석(靑石) 대전 앞에 내려서더니 눈에서 푸른 빛을 발했다.

    유명귀안으로 살펴보니 문에는 수많은 하얀색 진문이 떠다녔는데, 워낙 빼곡하여 몇 겹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한눈에 봐도 매우 정교해 보여 파훼하기가 퍽 까다로워 보였다.

    그는 술법으로 파훼하지 않고 곧장 축지척을 발동하여 뚫고 들어갔다.

    초록색 빛이 번쩍이며 청석 대문을 두들기자 대문의 금제에서 하얀 빛이 솟아오르며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초록 빛은 마치 천산갑(穿山甲)처럼 파고들었고, 마침내 뚫고 들어갔다.

    눈앞이 밝아졌고, 심협은 자신이 밀실 안에 들어왔음을 알아챘다.

    밀실은 폭이 대략 30장 정도였고, 곳곳에 여러 물건들이 놓인 선반과 돌 탁자가 가득했다. 탁자마다 가득 쌓인 광석과 영목, 영초 등에서 사람을 홀리는 화려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심협은 당황스러웠다. 이곳은 청구산의 보물이 숨겨진 곳이었다. 보물을 찾아낼 뜻은 전혀 없었는데 우연히 찾아낸 곳이 하필 여기였다.

    어쨌든 기왕 여기에 왔으니 당연히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옆의 옥 탁자 위에 놓인, 영기가 뿜어져 나오는 광석을 금빛으로 휘감았다.

    그러나 금빛이 다가가자 옥 탁자 주위에서 하얀 빛이 번득이더니 옥과 같은 영롱한 광막이 나타나 금빛을 막았다.

    심협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보물이 숨겨져 있는 곳이니 방어가 삼엄한 것은 당연했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붉은 비검이 번개처럼 날아가 하얀 광막을 강하게 내리쳤다.

    콰직!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하얀색 광막에는 한 줄기 균열이 생겼다. 한데 순양검은 그대로 튕겨 나갔다.

    심협은 약간 놀랐다. 본래도 위력이 대단한 순양검을 주작석으로 간 뒤로는 날카로움까지 더해졌는데도 이 광막을 부수지 못한 것이다.

    ‘평범한 금제가 아니구나.’

    그의 추측은 정확했다. 유소모주가 사람들을 데리고 숨기 전에 청구 호족은 중요한 곳마다 금제를 설치했다. 그중에서도 보물이 숨겨진 이곳은 모든 금제의 위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이 하얀 금제는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 상고 금제 원강막(元罡膜)으로 매우 견고하여 평범한 수단으로는 절대 부술 수 없었다.

    심협 또한 다른 수단을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이 광막을 부수지는 못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젓고는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어차피 재산은 풍부하기도 했고, 지금은 섭채주와 호불귀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한데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그의 눈에 낯익은 붉은색 물체가 들어왔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는 흠칫 놀라 그 붉은색 물체 앞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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