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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06화 (1,006/1,214)
  • 1006화. 지연

    비린내가 고약한 혈수가 끝도 없이 펼쳐지자 인근의 허공은 혈해(血海)가 되었고, 하늘 높이 솟은 거대한 핏빛 파도가 이들을 덮쳐왔다.

    심협이 손을 휘두르자 녹, 자, 황, 백, 네 자루의 대검이 앞에 나타났다. 거청천의 사계대검이었다.

    하얀 대검을 쥐자 대검에서 하얀 빛과 함께 한기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가면서 허공이 얼어붙었다. 다른 세 자루의 대검도 마찬가지로 각각 찬란한 검광을 뿜어냈다.

    심협이 하얀색 대검을 휘둘러 혈해를 베자 네 가지 색깔의 검기가 뿜어져 나가 거대한 사계검진으로 변하더니 몰려오는 핏빛 파도와 충돌했다.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검기는 마치 상극을 만난 것처럼 소멸했고, 심지어 혈해와 닿은 검진도 절반은 종이 쪼가리처럼 푸른 연기를 내며 그대로 사라졌다. 남은 검진도 강렬하게 흔들리다가 이내 부서졌다.

    심협의 안색이 돌변했다. 시간이 부족해 사계검진을 절반밖에 익히지 못했지만, 그렇다 해도 위력이 약한 편이 아니거늘 이 혈해 앞에서는 일격도 견디지 못한 것이다.

    핏빛 파도가 계속해서 휘몰아쳐 오자 심협의 몸에서 금빛과 혈광이 반짝이더니 천두금준과 혈백원번이 나타나 주위에 금색과 핏빛의 광막을 만들었다.

    금색 광막은 혈수가 닿자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지만, 혈백원번이 만든 핏빛 광막은 태산처럼 견고했다. 핏빛 파도가 아무리 몰아쳐도 가볍게 흔들릴 뿐, 깨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혈백원번에서 광망이 솟구치더니 혈해에서 혈광이 스며들었다. 혈백원번은 혈수를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했다.

    “네 혈백원번에는 혈원의 힘이 담겼으니 혈해의 혈살지수(血煞之水) 따위에 침식이 되겠느냐.”

    화령자의 당당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에 심협은 안도했고, 다른 사람들을 둘러봤다.

    백소천 등도 각자의 신통과 법보, 비술을 시전하여 혈해를 막고 있었다.

    ‘대문파 사람들은 역시 대단하구나.’

    심협은 속으로 감탄하며 오른손에서 푸른 빛을 뿜어내 휘둘렀다.

    푸른 한광, 진창해가 혈수에 닿자 허공도 얼어붙었다.

    그러나 이 혈수는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진창해의 한기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얼어붙을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이때, 혈해에서 일곱 개의 무언가가 뿜어져 나왔다. 바로 일곱 마리의 거대한 혈룡이었다.

    이 혈룡들은 모두 길이가 3장에 이르렀고, 비늘이 뚜렷했으며, 발톱은 날카로웠다. 또한, 온몸에서 핏빛 살기를 뿜어내고 있어서 이전에 나타났던 괴수의 허상과 매우 비슷했다.

    혈룡들은 순식간에 일곱 사람에게 달려들더니 발톱과 거대한 입으로 맹렬한 공격을 펼쳤다.

    심협은 혈백원번의 방어력을 다시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법력을 주입했다. 몇 배로 더 두꺼워진 핏빛 광막이 달려드는 혈룡의 발톱과 충돌했다.

    쾅!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핏빛 광막이 여러 번 크게 흔들렸지만, 바로 안정됐고 부서질 기미도 없었다.

    “역시 혈백원번! 방어력이 천두금준보다 몇 배나 강하구나.”

    심협은 흡족해하며 구유마환을 꺼내 크게 휘둘렀다.

    마환의 검은 빛이 번득이더니 수십 줄기의 커다란 검은색 마환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 혈룡을 공격했다.

    그러나 혈룡도 영지가 낮지 않은지 재빨리 옆으로 피하는 동시에 입을 쩍 벌려 기이한 핏빛 빛줄기를 뿜어내 마환의 허상을 공격했다.

    구유마환은 공격력이 강하지 않았기에 그대로 날아가 곤두박질쳤다.

    붉은 빛줄기는 멈추지 않고 곧장 심협에게 날아가더니 갑자기 파지직 하며 타오르기 시작했고, 핏빛 불기둥이 광막을 강하게 때렸다.

    쾅!

    굉음과 함께 핏빛 불기둥이 폭발했다. 심협은 핏빛 광막과 함께 뒤로 물러났지만, 광막은 여전히 산처럼 단단해 부서지지 않았다.

    그러나 혈백원번의 광막에는 수많은 핏빛 불꽃이 묻어났는데, 그 불꽃이 활활 타오르며 핏빛 광막 안의 영력을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했다.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사계대검을 집어넣고 네 자루의 순양비검을 꺼내 번개처럼 날리자 검광을 강하게 뿜어내며 핏빛 광막을 뚫고 나갔다.

    펑!

    굉음과 함께 네 자루 비검은 붉은 검사로 변하여 핏빛의 불꽃을 공격했다.

    이 검사는 마치 머리카락처럼 가늘었고, 그 위에는 금과 적의 불꽃이 감돌았다. 태양진화와 금오지화였다.

    검사가 핏빛 불꽃을 교차하며 베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핏빛 불꽃의 절반이 잘려나가면서 잔불로 변해버렸다.

    그 순간, 혈백원번에서 갑자기 광망이 번득이더니 실제와 같은 혈광이 뿜어져 나와 이 불꽃들을 휘감았다.

    잔불이 발악했지만, 이내 혈광에 완전히 흡수되었다. 혈백원번의 영광은 더욱 짙어졌다.

    심협의 눈에 화색이 돌았다. 방금 그 혈광은 혈백원번의 다른 신통, 혈원의 힘과 불꽃의 근원이 같았기에 그 힘을 삼킬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쪽의 붉은 검사는 핏빛 불꽃을 베고도 멈추지 않고 거대한 혈룡에게로 날아갔다.

    혈룡은 검사에 겁을 먹은 듯 도망치려 했지만, 허공에서 갑자기 10여 개의 검은색 고리 허상이 날아와 몸통을 묶고 단단히 조였다.

    움직일 수 없게 된 혈룡은 곧바로 수많은 붉은 검사에 몸이 관통되었다.

    붉은 검사가 다시 조여오자 혈룡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고, 거대한 몸뚱이는 무수한 조각으로 잘려나가면서 짙은 혈광이 되어 사라졌다.

    혈백원번에서 뿜어져 나온 혈원의 광망이 다시 번득이더니 혈룡의 체내에 담긴 혈도의 힘을 연화했다.

    심협이 양손을 결인하자 이번에는 다섯 자루의 순양검이 날아가 앞서 핏빛 불꽃을 산산조각낸 네 자루의 비검과 합쳐졌다.

    검명(劍鳴)이 크게 울려 퍼지더니 백 장에 이르는 붉은색 대검이 되어 나타났고, 검신을 각종 천화가 휘감으며 무서운 검기의 파동을 뿜어냈다. 이어 주위의 허공이 강렬하게 떨려왔다.

    순양검식 구검합일 검결이었다.

    “베어라!”

    심협이 결인을 맺자 붉은 대검이 강렬한 검기 파동을 일으켰다.

    꽝!

    굉음과 함께 혈해가 대검에 잘려나가면서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 검기는 계속해서 맹렬히 앞으로 나아가며 혈해를 갈라놓았다.

    그러나 이 혈해의 끈적끈적하고 강인한 힘이 끊임없이 몰려오면서 강력한 검기는 빠르게 소모되어갔다. 이내 구검합일의 힘은 완전히 소모되었고, 혈해의 균열은 멈췄다.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핏빛 촉수들이 튀어나와 붉은 대검을 휘감았다.

    다른 사람들의 상황도 심협과 다르지 않았다. 혈해의 공격이 이들에게 별 위협이 되지는 않았지만, 이들도 혈해를 어쩌지 못했다.

    “내 추측대로라면, 적은 이 혈해로 우리의 발을 잡아 놓고 뭔가 일을 꾸미고 있을 겁니다. 서둘러 처치하고 왕궁으로 가야 합니다. 적은 그 안에 있을 겁니다!”

    심협이 붉은색 대검을 회수하며 핏빛 촉수를 피하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음을 전했다.

    “심 도우의 말에 일리가 있소. 한데 이 혈해는 상대하기 너무 까다로우니, 누구 해결할 방법이 있소이까?”

    백소천의 물음에도 한동안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심협도 이 혈해를 해결할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혈백원번이 비록 혈도의 지보이기는 하나, 이 혈해를 상대로는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순양검이나 번천인 같은 강렬한 공격 수단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화령자, 곡현성반의 법진 중에 이 혈해를 견제할 만한 게 있을까?”

    “이 혈해는 범위가 너무 넓다. 게다가 난 지금 기령의 몸에 불과하여 곡현성반의 진짜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해. 마땅한 방법이 없구나.”

    심협은 혀를 차고는 순양대검으로 핏빛 촉수를 막아내며 재빨리 대책을 생각했다.

    그때, 칠살이 전음을 보내왔다.

    “내 법보로 이 혈해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소.”

    “정말이오?”

    육화명이 화색이 도는 얼굴로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칠살을 돌아봤다.

    “당연히 사실이오. 다만, 이 법보는 나 혼자서는 발동할 수 없으니 두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오. 언 도우와 강 도우가 남아서 날 돕고, 다른 도우들이 그 틈에 왕궁으로 들어가 적을 찾는 게 어떻겠소?”

    “좋소.”

    강신천과 언무사가 동의했다. 물론 다른 이들도 이견은 없었다.

    그때, 혈해가 갑자기 솟구치더니 갑자기 이전보다 몇 배나 커져 파도처럼 몰아쳤다.

    “왜 갑자기 공격을 강화한 거지? 우리 전음을 듣기라도 한 건가?”

    “네 사람은 물러나시오!”

    칠살이 크게 외치고는 소매에서 작고 붉은 상자를 꺼냈는데, 그 안에는 금, 녹, 청, 홍, 황의 깃발이 꽂혀 있었다. 상자와 깃발에서는 영광이 번쩍였다.

    그냥 봐서는 어떤 물건인지 모르겠으나, 네 사람은 곧장 물러섰다. 그러자 오색 깃발이 눈에 더 잘 들어왔다.

    “오색기합(五色旗盒)? 방촌산의 비밀 법보로, 풍수를 다스리고 건곤을 굳게 하는 묘용이 있다 하지. 저거라면 저 혈해를 상대하기에 제격이야!”

    화령자가 놀란 듯 설명했다.

    “오색기합이라…… 역시 범상치 않군!”

    심협은 작은 상자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칠살은 몰려오는 핏빛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양손을 차륜처럼 결인하더니 순수한 법력을 뿜어내 오색기합에 흘려보냈다.

    상자 안의 작은 오색 깃발들이 바로 날아올라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각각 혈해 주위의 다섯 곳에 떨어져 허공에 푹 꽂혔다.

    금, 녹, 청, 홍, 황의 빛줄기가 깃발에서 뿜어져 나왔고, 그 안에서 수많은 오색 영문이 반짝이며 서로 빠르게 연결되었다.

    순식간에 형체를 갖춘 거대한 오색광진이 혈해 전체를 뒤덮었다.

    거센 핏빛 파도와 오색광진이 충돌했다. 오색광진은 강하게 흔들렸고, 균열이 생겨나 그 사이로 대량의 혈수가 새어 나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혈해는 여전히 광진에 갇혀 있었다.

    “내가 깃발 세 개를 제어할 테니 남은 두 개는 두 분이 맡아주시오!”

    칠살이 손을 펼치자 세 줄기 검은 빛이 나오더니 금, 녹, 청 깃발에 주입되었다.

    언무사와 강신천은 각자 남은 홍황 깃발 옆으로 가서 법력을 주입했다.

    다섯 개의 깃발에서 광망이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이어서 용과 범의 포효가 울리더니 수많은 색깔의 광점이 오색광진 안에서 대량으로 뿜어져 나와 일제히 광진의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오색광진의 영광이 더 밝아지면서 균열은 사라졌고, 겹겹의 광막이 나타났다. 오색광진이 뒤덮은 범위가 오히려 두 배로 커지면서 혈해 전체를 단단히 가뒀다.

    “이 혈해의 힘이 너무 강해 오래 버티지 못하니 어서들 가시오!”

    칠살이 외쳤다.

    “그럼 몸조심하시오!”

    심협이 대답한 뒤 두 발에서 보라색 뇌광을 뿜어내며 왕궁으로 향했다.

    섭채주와 백소천, 육화명이 곧장 뒤를 따랐다.

    어둠 속으로 들어서자 방금 전까지 시끄럽게 귀를 찌르던 소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마치 밀폐된 공간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심협은 유명귀안을 발동했지만, 주위의 어둠을 뚫을 수가 없었다.

    그는 신식을 펼쳤다. 그러자 머릿속에 찌르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고 신식은 주위의 짙은 어둠에 삼켜졌다. 예전에 이곳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허나 심협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대전 안의 상황을 전부 파악했다. 신식을 거둔 그는 황제내경을 운공하여 신혼의 법문을 온양했다. 그러자 머릿속이 다시 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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