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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05화 (1,005/1,214)

1005화. 수상쩍음

검은 안개의 벽 어딘가에서 눈부신 보라색 뇌광이 뿜어져 나오더니 심협 등이 몸을 비틀거리며 나왔다. 뇌둔술이 막힌 것이다.

한데 주위의 검은 안개에서 굉음이 울리더니 핏빛 형체가 나타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작은 산만 한 핏빛 두꺼비로 변했다.

무궁무진한 흉살의 기운이 세 사람을 덮쳐왔고, 심협은 귓가에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느낀 순간 몸이 숨 막힐 듯한 괴력에 짓눌려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이 강한 힘에 담긴 무형의 음한살력(陰寒煞力)이 쉽게 체내로 파고들어 혈백원번과 호체 영력을 무력화했다.

단숨에 온몸이 마비되고 법력의 운공도 절반으로 감소하자 심협은 위기감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게 무슨 신통이지?”

섭채주와 호불귀도 마찬가지로 핏빛 두꺼비의 살력이 몸에 침투하면서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심협은 전력으로 황정경을 운공하고 단전 안의 열여섯 자루 순양검에서 검망을 뿜어냈다. 충만한 순양의 힘이 순식간에 온몸을 흘러 핏빛 두꺼비의 음살의 힘을 막아내자 겨우 법력 운공이 반쯤 돌아왔다.

“가자!”

그가 전력으로 축지척을 발동하자 초록색 빛이 세 사람을 뒤덮었다. 검은 안개 벽에서 초록색 빛이 반짝이더니 벽을 뚫고 나왔고, 세 사람은 순식간에 완전히 사라졌다.

“젠장! 거의 다 됐는데!”

회색 옷을 입은 세 남녀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안타까운 듯 외쳤다.

청구성 한쪽 구석. 허공에 초록빛이 반짝이더니 안색이 창백해진 세 사람이 나타났다.

“방금 그 검은 안개에서 튀어나온 핏빛 괴수는 뭐요? 기운으로 봐서는 청구 일족의 신통은 아닌 것 같은데……. 정말 무서웠소.”

호불귀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검은 안개에 마기가 섞여 있었으니 아마 마족의 신통일 것이오.”

“마기요? 청구 호족이 마족과 손을 잡은 걸까요? 아니면 마족이 청구성의 호족을 다 잡아간 걸지도 몰라요!”

심협의 대답에 섭채주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결론을 내리긴 일러. 청구 호족 사람들이 숨었건 사로잡혔건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 우리 셋만으로 알아보기는 힘들 것 같아.”

“맞아요. 우선 돌아가서 다른 사람들한테도 알리고 함께 조사하는 게 좋겠어요.”

그러나 호불귀는 말없이 왕궁 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호 도우, 청구성은 안전하지 않으니 우리와 함께 가는 게 좋겠소. 내 소요경 안에 있으면 다른 수사들은 눈치채지 못할 게요.”

“두 분의 말이 맞소. 다만…… 우리가 지금 떠나면 적이 더욱 날뛰지 않겠소? 이렇게 합시다. 두 분은 가서 수사들에게 이곳의 상황을 알리시오. 또 다른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나는 남아서 더 조사해보겠소.”

호불귀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들며 말했다.

“호형, 직언을 용서하시오. 호형의 실력이 강하다고는 하나, 혼자서 무얼 할 수 있겠소? 청구성 호족을 사로잡아간 흉수라도 만난다면 목숨만 헛되이 버리게 될 뿐이오.”

그러나 심협의 권유에도 호불귀는 생각을 바꿀 뜻이 없는지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닫았다.

“호형이 결심한 모양이니 나도 더는 말리지 않겠소. 대신 이걸 받으시오. 특수 제작한 전음지연(傳音紙鳶)이오.”

심협은 은백색 전음지연을 건넸다. 화령자가 소나이부의 남은 재료로 만들어준 것으로, 평소 사용하는 전음 지연보다 효과가 뛰어나 금제로도 막을 수 없었다.

호불귀는 전음지연을 받고는 두 사람에게 공수한 뒤 왕궁 쪽으로 향했다.

심협도 섭채주의 손을 잡고는 초록색 빛이 되어 만리청운진으로 날아갔다. 어차피 행적이 드러난 터라 만리청운진에 감지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잠시 후, 초록색 빛이 광막을 뚫고는 바로 허공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 *

연합군 진영의 어느 커다란 막사 안. 육화명과 백소천, 칠살, 언무사 등 각 문파의 대표들이 모여 있었지만 아무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반경 백 리를 샅샅이 찾았으나 의심스러운 정황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첩자는 벌써 도망친 것 같습니다.”

강신천이 밖에서 들어오며 말했다.

“우리 소종주님은 찾으셨나요?”

“아직이오.”

강신천은 섭채주를 대신해 보타산의 대표로 온, 얼굴이 둥근 대승기 소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소녀의 표정이 더욱 무거워졌다.

“섭 도우는 실력이 강하니 임 도우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강신천의 말에도 소녀는 여전히 초조해 보였다.

“심 도우는 어디 있소?”

백소천이 불쑥 물었다.

“내 아까 사람을 보냈는데, 심 도우는 막사에 없다 하오. 어디로 갔는지 아는 자가 없었소.”

강신천의 말에 백소천이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심협이 아까의 그 소동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사라진 것이다. 백소천은 어쩌면 그가 섭채주와 함께 그 첩자를 쫓아간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다른 일인데, 제가 방금 사람을 보내 청구성을 살펴봤더니 뭔가 심상치 않다 하오.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는구려. 호족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소.”

강신천의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굳었다.

“사람을 보내 청구성 안을 살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청구성 전체를 강력한 금제가 뒤덮고 있소. 아무래도 청구 호족의 만리청운진일 게요. 그 금제를 돌파하기란 쉽지 않고, 또 성공한다 해도 청구 호족의 주의를 끌 수 있소. 너무 위험합니다.”

육화명의 제안에 강신천이 고개를 저었다.

그때였다.

“모두 여기 있었군요. 다행입니다.”

검은 그림자가 땅에서 솟았다가 사라졌고, 심협과 섭채주가 나타났다.

막사 안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가 이들을 알아보고는 안도했다.

“소종주님, 돌아오셨군요!”

보타산 소녀가 섭채주에게 다가가 팔짱을 끼며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했지? 미안.”

섭채주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심형, 섭 도우. 어디 갔다 온 거요? 걱정이나 끼치고 말이야.”

백소천이 참지 못하고 투덜거렸다.

“아까 누군가 침입했을 때 채주와 함께 몰래 쫓아가느라 미처 알리지 못했소. 송구하오.”

“무사하니 됐소. 그나저나 뭔가 알아냈습니까?”

강신천이 물었다.

“채주와 함께 그자를 쫓아갔다가 청구성에 잠입했는데,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청구성에 잠입했다니! 뭘 알아냈습니까?”

다른 사람들의 재촉에 심협은 청구성 안에서 봤던 것들을 이야기했다. 물론 호불귀의 존재는 철저히 숨겼다.

청구성 호족 전체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말에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청구 호족은 강력하니 그 누가 온다 해도 그들을 모두 붙잡아가는 건 불가능하오. 아무래도 청구 호족이 스스로 숨은 것 같구려.”

백소천이 먼저 의견을 냈다.

“스스로 숨은 거라면 성안의 호족 시체와 왕궁 문 앞의 마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호족이 자기 일족의 절반을 죽였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육화명의 말에 백소천은 말문이 막혔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저런 의견을 냈는데, 어떤 사람들은 호족 자체의 문제라고 했고, 누군가는 외부의 소행이라고 했다.

“호족이 스스로 숨은 것이든 적이 쳐들어온 것이든 청구산은 지금 텅 빈 것이나 다름없으니 진군하기에 좋은 시기요. 내 생각에는 지금 쳐들어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소.”

“칠살 도우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여기서 아무리 추측해봐야 직접 가서 알아보는 것보다 정확할 리가 없소. 좀 전에 살펴봤을 때 청구성에서 사라진 것은 사람들일 뿐, 다른 것들은 그대로 있었으니 말이오.”

칠살의 제안에 심협이 맞장구를 쳤고, 사람들은 마음이 흔들렸다.

청구 호족은 오랜 세월 명맥이 이어져 왔기에 쌓아놓은 자원은 어떤 대문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지금 그들이 모두 갑자기 사라졌다면 약탈하기에 이보다 좋은 때는 없을 터였다.

모두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본 심협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호형이 무사해야 할 텐데…….’

막대한 이익에 혹한 수사들은 빠르게 집결하여 청구산으로 향했고, 곧 성 아래 도착했다.

그 순간, 만리청운진이 갑자기 발동하더니 광막이 몇 배나 두꺼워졌다. 마치 누군가 이 대진을 제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심 도우, 성안에 아무도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마왕채의 어느 제자가 따지듯 물었다.

“난 청구 호족이 전부 사라졌다고 했지 성에 아무도 없다고는 하지 않았소. 청구 호족이 숨었든 잡혀갔든 성에는 적이 아직 남아 있으니 우리를 쉽게 들여보내 않는 게 당연하지 않소?”

심협이 담담하게 답하자 상대는 할 말이 없었다.

심협은 전음지연으로 호불귀와 연락해보려 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심형 말대로 성에는 아직 적이 있으나 그들은 진법으로 우리를 막을 뿐,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소. 이는 분신을 쓸 겨를도 없다는 의미일 터. 그러니 모두 총공격해 대진을 부숩시다!”

백소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온갖 법보를 꺼내 만리청운진을 공격했다.

온갖 굉음이 울려 퍼지고 푸른 광막이 격렬하게 떨리면서 영광이 흔들렸다.

하지만 만리청운진은 매우 견고하여 부서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협은 다급해졌다. 만리청운진은 쉽게 부서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 시간이 지체될 것이고, 그럼 호불귀가 위험해질 터였다.

“아무래도 금제를 부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제가 술법으로 몇 분을 먼저 데리고 들어갈 테니 다른 분들은 남아서 천천히 금제를 파훼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심형에게 무슨 묘법이라도 있소? 어서 해보시오!”

언무사가 기뻐하며 답하자 육화명과 강신천 등도 기대하는 표정으로 심협을 돌아보았다.

심협이 섭채주를 바라보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곤륜경을 발동했다.

검은 빛이 비쳐 나와 순식간에 펼쳐져 10여 장에 이르는 흑암의 영역으로 변했고, 그대로 육화명과 강신천, 언무사, 백소천, 칠살을 뒤덮었다.

다섯 사람이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저항하려는데, 섭채주가 전음을 보냈다.

“막지 마세요.”

이에 백소천 등은 끌어모으던 법력을 억눌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눈앞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무광(無光)의 세계로 빠져들면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말도 나오지 않았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들은 몹시 당황했지만, 다행히 이런 상황은 금방 끝났다.

시야가 회복되었을 때, 이들은 이미 청구성 안에 있었다.

“심형, 대단하오. 이렇게 쉽게 만리청운진을 뚫을 줄이야…….”

“어디 가서 내놓을 재주도 못 됩니다. 이제 어떻게 하겠소? 흩어져서 찾겠소? 아니면 같이 움직이겠소?”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으니 함께 왕궁으로 가보는 게 좋겠소.”

강신천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도 그럴 생각이었기에 이들은 곧장 청구 왕궁으로 향했고, 금세 도착했다.

왕궁 안은 이전 모습 그대로 사람을 갉아먹을 독사처럼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고, 호불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신식을 펼쳐 주위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호불귀가 남긴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적에게 잡혀간 건가?’

심협은 점점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곳이 심 도우가 말한 그 이상한 그림자가 나타난 곳이오? 그렇다면 내 백귀(百鬼)를 시도해보겠소.”

칠살이 왕궁 깊은 곳을 바라보더니 박쥐가 날개를 펼친 듯한 형태의 청동 활을 꺼내 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그러자 귀기가 도사리는 검은색 화살이 날아가 왕궁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모두가 이곳에 적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칠살을 방해하지 않았고, 각자 법보를 움켜쥔 채 경계했다.

그때, 왕궁에서 굉음이 들려오더니 어둠이 격렬하게 용솟음치며 신혼이 뚫릴 듯한 포효가 들려왔다. 이들의 경지로도 어지러울 정도였다.

한데 이들이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왕궁에서 혈수(血水)가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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