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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04화 (1,004/1,214)
  • 1004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섭 도우의 말을 듣고 보니 아까 어떤 힘이 체내로 들어오는 게 느껴지긴 했소. 청구산 쪽에서 전해져 온 듯하오.”

    호불귀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청구산이라니, 무슨 변고라도 생긴 건가?”

    심협이 청구산 쪽을 돌아보며 긴장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그의 성격을 잘 아는 섭채주가 물었다.

    “오라버니, 가서 알아보고 싶은 거죠?”

    “혈맥 반조는 보통 일이 아니니 아무 이유도 없이 생겼을 리가 없어. 청구 호족 내부에 무슨 일에 생긴 게 분명해. 직접 알아보지 않으면 불안할 거야. 조심스레 움직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저도 같이 가요. 곤륜경이 있으니까 도움이 될 거예요.”

    섭채주는 외유내강이라 일단 결정을 내리면 절대 번복하지 않는 성격이다. 따라오지 말라고 하면 몰래 따라올 것이니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은 나로 인해 생긴 것이니 나도 함께 가겠소.”

    “좋소. 우리는 청구국을 잘 모르니 호형이 길을 안내해주시오. 한데 호형, 아까 뭐 부탁할 게 있다고 하지 않았소?”

    “그 일은 나중에 얘기하고 우선 청구산부터 갑시다.”

    호불귀가 절박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심협도 더는 묻지 않고 두 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눈부신 초록 빛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세 사람을 뒤덮었다.

    초록색 빛이 사라진 것과 거의 동시에 그들은 청구성 밖에 도착해 있었다.

    청구성 주위는 거대한 푸른 금제로 덮여 있었다. 금제에서는 수많은 청색 구름무늬가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떠돌고 있어서 매우 현묘해 보였다.

    축지척을 사용하면 광막을 넘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금제가 발동되면 적들이 몰려올 수도 있기에 심협은 일단 멈췄다.

    “이것은 만리청운진(萬里靑雲陣)으로, 청구국의 호국 대진이오. 방어 능력이 강하고 감지 신통은 더욱 강하니 강제로 돌파했다가는 저들이 눈치챌 거요. 날 따라오시오.”

    호불귀는 앞장서서 아무도 없는 구석진 곳으로 가더니 푸른색 부적을 발동했다.

    푸른 빛이 세 사람을 뒤덮자 몸이 가볍게 떠올랐는데, 마치 구름이 된 것만 같았다.

    호불귀가 먼저 푸른색 광막을 지나갔는데, 아무 기척도 없이 안으로 녹아들었다. 만리청운진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호불귀도 이 부적의 위력에 자신감이 없었는지 그제야 안도했다.

    세 사람은 금방 만리청운진을 지나 성으로 들어왔다.

    “이건 무슨 부적인가요? 어떻게 이 금제를 쉽게 뚫을 수 있었던 거죠?”

    섭채주가 놀라서 물었다.

    “청구국의 비밀창고에서 훔친 청운파계부(靑雲破界符)입니다. 이곳에 오랫동안 숨어 있었던 게 헛되지 않았으니 다행입니다.”

    호불귀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심협은 성안을 둘러보다가 흠칫하더니 서둘러 어느 집 문으로 달려갔다.

    집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식탁에는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식사 중이었던 것 같은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식탁의 음식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이 집의 사람들이 집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신식을 펼친 심협은 표정이 돌변하더니 곧장 옆으로 들어갔다.

    이곳에는 두 구의 호족 시체가 쓰러져 있었는데, 온몸이 바싹 마른 데다 회색빛이 감돌고 있어 만지면 바로 사라질 것 같았다.

    심협은 몸을 굽히고 시체를 살폈다. 시체는 원기를 모조리 빨려 나가서 텅 비어 있었다. 십방마옥도가 원기를 흡수했을 때와 매우 비슷했다.

    섭채주와 호불귀도 다가와 시체를 살펴보더니 표정이 변했다. 특히 호불귀는 얼굴이 거의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싸운 흔적이 없는 것을 보면 일격에 죽인 것 같아요.”

    섭채주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청구국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좀 더 들어가 보자.”

    그 말에 호불귀가 앞장서서 안으로 향했고, 심협과 섭채주도 뒤를 따르며 신식으로 주위를 살폈다.

    성에는 살아 있는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집마다 한두 구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는데, 모두 바짝 마른 상태였다.

    심협은 청구성에 와본 적이 있었기에 청구성에 사는 호족의 수를 알고 있었다. 대충 계산해보니 호족의 거의 절반이 마른 시체로 변한 듯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누군가에게 멸족을 당한 건가? 그럴 리가 없어! 청구 호족의 실력이면 삼계 모든 수사가 모인다고 해도 이렇게 금방 흔적도 없이 멸할 수가 없다고!”

    호불귀의 눈에서 애통한 빛이 흘러나왔다.

    “호형, 아직 확실한 것은 없으니 섣불리 판단하지 맙시다. 왕궁으로 가보면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오.”

    “심형 말이 옳소. 내가 너무 성급했소.”

    호불귀는 심호흡으로 평정을 되찾고는 고개를 끄덕였고, 세 사람은 빠르게 왕궁 쪽으로 이동했다.

    * * *

    “누군가 청구성에 잠입했습니다!”

    땅속 어느 어두운 공간. 여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구지?”

    나이 든 목소리가 물었다.

    어둠 속에서 정광이 번쩍이더니 투명한 거울이 되어 주위를 밝히자 세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 명은 이전에 유소모주와 함께 있었던 회색 옷의 덩친 큰 남자였다. 다른 두 사람도 마찬가지로 회색 옷을 입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체구는 비교적 작았다.

    그중 한 명이 빛의 거울을 향해 결인하자 거울에 화면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심협과 섭채주, 호불귀의 모습이 떠올랐다.

    “저놈이 어떻게! 호족의 도움으로 수사들을 쳐부숴야만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직접 찾아왔군! 찾는 수고를 덜었어!”

    덩치가 큰 회색 옷의 사내가 심협을 노려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이제 어쩌면 좋죠?”

    다른 둘 중 하나가 빛의 거울을 조종하며 물었다. 아까의 그 여자 목소리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놈을 잡아야지!”

    나이 든 목소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호조의 부활을 돕기로 청구 호족과 약조했는데 지금 심협을 잡으려다가는 영향이 가지 않을까요?”

    젊은 여자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우리와 호족이 힘을 합친 것은 각자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저들의 힘을 이용하여 심협을 잡으려 한 것인데 저자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으니 저자를 잡는다면 약속 따위 알 게 무엇인가?”

    다른 한 사람인 노인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회색 옷의 여자가 뭔가 말하려고 했다.

    “왜? 이전의 일 때문에 심협을 잡기가 싫어졌나? 네 신분을 잊지 마라!”

    회색 옷의 덩치 큰 사람이 휙 돌아보자 날카로운 눈빛이 회색 두건을 뚫고 나가 칼처럼 회색 옷의 여자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

    회색 옷의 여자는 움찔하더니 고개를 떨궜다.

    “준비들 하세.”

    노인의 목소리와 함께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왕궁의 문은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만 열려 있었다.

    원래는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어야 할 성 안팎으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본래 성 곳곳에 보이던 호위 병사들도 지금은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 게다가 성 여기저기에 형언할 수 없는 어둠이 가득해 헤아릴 수 없는 기이한 느낌이었다.

    “오라버니, 조심하는 게 좋겠어요. 왕궁이 뭔가 이상해요.”

    섭채주가 칠흑 같은 왕궁을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뭔가 찾아낸 거야?”

    심협이 전음으로 물었다.

    “그건 아닌데, 왕궁 안의 어둠이 불길해요.”

    섭채주의 말에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섭채주는 곤륜경 덕분에 흑암에 대해 다른 수사보다 훨씬 민감했다.

    그는 경계심을 끌어올리며 신식을 펼쳐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신식이 왕궁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왕궁의 어둠이 갑자기 성난 짐승처럼 달려들어 신식을 한입에 삼켜버렸다.

    심협은 일순 안색이 창백해졌지만, 금세 회복됐다.

    “역시 뭔가 문제가 있군.”

    그때, 왕궁 안의 어둠이 갑자기 몇 배나 짙어지면서 밖으로 밀려 나오더니 수십 개의 거대한 촉수가 안에서 튀어나왔다. 살짝 휘둘렀을 뿐인데 허공에서는 굉음이 울려 퍼졌고, 수십 줄의 희뿌연 강풍이 휘몰아쳤다.

    그 흑암의 촉수들이 어떻게 단숨에 10여 장을 뛰어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음 순간 눈앞에 나타나 번개처럼 내리쳤다.

    심협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하더니 행적이 드러나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양손을 결인했다. 수백 줄기의 눈부신 붉은색 검기가 갑자기 뿜어져 나와 적색 검산(劍山)이 되어 맹렬한 기세로 흑암의 촉수들을 베었다.

    호불귀도 무수히 많은 하얀색 칼날이 달린 채찍을 꺼내 크게 휘둘렀다. 채찍이 마치 하얀 뱀처럼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 일고여덟 개의 검은색 촉수를 휘감았다.

    펑! 펑! 펑!

    공격해오던 흑암 촉수가 전부 터져 나가면서 검은 기운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기?”

    흩어지는 검은 기운에서 마기가 느껴지자 심협의 눈이 가늘어졌다.

    다만, 이 마기는 매우 은밀하고 또 특이한 것들이 섞여 있어서 평범한 수사는 감지할 수 없을 정도였다.

    ‘청구 호족이 마족과 몰래 결탁한 건가?’

    심협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더 생각하기도 전에 앞쪽 궁전의 흑암에서 다시 변화가 일어났다. 수십 개의 검은 창의 허상이 폭발하듯 나타나더니 날카로운 소리를 울리며 세 사람을 향해 날아왔다. 그 강력한 기세에 허공이 흔들렸다.

    심협은 혈백원번을 꺼내 파도 같은 소리를 내며 펼쳤다. 두꺼운 핏빛 광막이 세 사람 앞을 막았다.

    검은 창의 허상이 강하게 핏빛 광막을 공격했지만, 광막 표면만 살짝 찌르는 데 그쳤다.

    이 광경을 본 심협은 속으로 기뻤다.

    혈백원번은 방어력이 그의 예상보다 강했는데, 역시 화령자가 칭찬을 아끼지 않는 혈도의 지보다웠다.

    그가 혈백원번을 발동하여 혈원(血源)의 힘으로 공격해보려는 순간, 옆에서 날아온 검은 빛이 창의 허상을 휘감더니 빠르게 퍼졌다. 검은 창의 허상이 떨리더니 전부 흔적도 없이 흑암의 영역으로 사라졌다.

    이때, 왕궁 깊은 곳에서는 덩치 큰 회색 옷의 사내가 커다란 대진 안에 서 있었다. 몸 주위에는 10여 개의 검은색 진기가 빙글빙글 맴돌았다.

    그가 양손을 결인하자 검은색 법진이 빠르게 돌기 시작했고, 주위의 흑암이 용솟음치더니 수백 개의 검은 창의 허상이 만들어져 심협을 향해 다시 폭주하며 날아갔다. 다만 그 속도가 조금 느려졌고, 기세가 약해졌다.

    왕궁 좌우 땅속에는 두 사람이 잠복해 있었는데, 바로 다른 두 명의 회색 옷을 입은 자들이었다. 이들은 천천히 심협 등의 등 뒤로 돌아가고 있었다.

    두 사람 주위에 감도는 안개 같은 검은 빛이 모든 기운을 차단했다.

    “대전 안의 금제가 약해지고 있으니 내가 저 검의 허상을 막겠소. 두 분은 이 틈에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시오!”

    호불귀가 얼굴에 화색이 돌며 말했다.

    하얀 거미줄 법보가 날아오르더니 빛이 번득이자 수많은 은색 뇌전이 감도는 수십 장 크기의 커다란 그물로 변하여 검은 검의 허상을 뒤덮었다.

    이 하얀 뇌망(雷網)은 얇아 보였지만, 그 위세가 강력한 검의 허상이 아무리 베고 찔러도 크게 흔들렸다가 곧바로 안정되었다.

    이를 본 심협의 두 발에서 뇌광이 번쩍였다. 한데 그가 왕궁으로 막 들어서려는 순간, 곤륜경에서 갑자기 두 개의 회색 그림자가 나타났다.

    “아, 아래 누군가 숨어 있어요. 어서 도망쳐요!”

    섭채주가 깜짝 놀라며 외쳤다.

    표정이 급변한 심협이 손에서 두 줄기 금빛을 쏘아 보내 섭채주와 호불귀의 몸을 감고는 끌어당겼다. 동시에 추운축전화에서 보라색 뇌광이 강하게 번득이더니 보라색 번개가 되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땅속의 사람은 섭채주의 외침에 잠복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고는 곧장 온몸에서 검은 빛을 뿜어내며 양손으로 술법을 결인했다.

    본래 희박했던 검은 기운이 갑자기 빠르게 짙어지더니 순식간에 검은 안개의 벽이 되어 사방을 둘러쌌다. 안개의 벽 안에는 수많은 검은색 부문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실로 현묘한 금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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