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003화 (1,003/1,214)
  • 1003화. 육미(六尾)

    심협은 어쩔 수 없이 호불귀의 몸에 법력을 주입해 몇 개의 중요한 경맥을 보호했다.

    “호족 혈맥의 힘이 무언가에 자극을 받아서 빠르게 강해지고 있어요.”

    섭채주가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녀는 무족 혈맥이 완전히 각성한 후로 혈맥의 힘에 대한 감응이 심협보다 더 발달했다.

    “이 호족 녀석의 혈맥이 확실히 이상하군. 이건 평범한 이상이 아니라 반조(返祖) 현상이다!”

    화령자의 목소리가 심협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반조가 뭐야?”

    심협은 화령자의 지식에 의심이 없었기에 바로 전음으로 물었다.

    “요족의 근원부터 말해야겠군. 요족의 선조들은 반고 대신의 몸에서 파생되어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그들은 강력한 신통으로 상고 시기 때 삼계에 이름을 떨쳤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

    “그게 누군데?”

    심협은 상고의 비밀에 호기심이 생겼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원조(猿祖)와 우조(牛祖), 호조(狐祖), 봉황 넷뿐이다. 나머지는 나도 몰라.”

    “네 명의 요조라……. 계속 말해봐.”

    “요족은 혈맥의 전승을 대대로 이어왔는데 이미 요조 혈맥과는 크게 달라졌다. 허나 요조 혈맥은 여전히 그들의 몸 깊은 곳에 새겨져 있지. 만약 혈맥의 힘에 큰 도움이 되는 천재지보를 복용하는 등의 기연을 만나면 요족의 혈맥은 끊임없이 진화하여 원고 시기의 요족 선조와 가까워지지. 이를 반조 현상이라 한다.”

    “그럼 좋은 일 아닌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우선 육신이 반조 상황에 적응하기만 하면 혈맥의 힘이 크게 정진하여 이후의 수련에 큰 도움이 될 게다. 허나 버텨내지 못한다면 그대로 몸이 폭발하여 죽게 되지.”

    “죽는다니! 호불귀는 어떤가? 버텨낼 수 있을 거 같은가?”

    “요족의 반조 현상은 나도 잘 모른다. 다만, 아주 오래전에 어느 서적에서 본 바로는 이를 견딜 수 있느냐는 오직 의지의 강인함과 체내 경맥이 혈맥 반조의 충격을 견딜 수 있느냐에 달렸다더군.”

    화령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의지와 경맥…….”

    심협은 눈빛이 흔들리더니 다른 손 역시 호불귀의 머리 위에 올렸다.

    그의 양손에서 초록색 광망이 떠오르더니 생기가 왕성한 기운을 뿜어냈다. 이는 황정경과는 사뭇 달랐다.

    이것은 참마신검에서 얻은 공법, 황제내경이었다. 이 공법은 영구(靈柩)와 소문(素問), 두 편으로 나뉘었다. 영구편은 육체 단련, 소문편은 신혼 단련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그동안 황제내경을 연구해왔다. 아직 고심한 경지까지 익히지는 못했지만 황제내경에는 신혼과 경맥을 안정시키는 수단이 있었으니 지금 시도해볼 만했다.

    호불귀의 머릿속에 초록색 빛이 떠오르더니 몸 곳곳의 경맥에도 이 빛이 떠올랐다. 그러자 그는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줄었고, 체내의 기운도 많이 안정되어갔다.

    “엇! 무슨 공법이기에 이리도 쉽게 저 호족 녀석을 안정시킨 게냐?”

    화령자가 의아한 듯 물었다.

    “참마신검에서 얻은 황제내경 공법으로, 강력한 회복 효과가 있지. 신혼 경맥을 안정시키는 수단도 있어.”

    “황제내경? 정말로 황제내경이란 말이냐? 거짓말은 아니겠지?”

    화령자의 눈이 커지더니 흥분해 다그치듯 물었다.

    “당연히 사실이다. 이 공법에 무슨 특별한 거라도 있는 모양이지?”

    “축록 전쟁이 끝나면서 황제가 죽은 뒤로 황제내경은 인간세계에서 실전됐는데 다시 세상에 나타나다니, 정말 잘됐구나!”

    화령자는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횡설수설했다.

    어쨌든 심협은 화령자의 말을 듣고는 눈이 반짝였다. 저 반응만 보더라도 황제내경은 예사로운 공법이 아닐 터였다.’

    “심협, 네가 황제내경을 얻은 일은 절대로,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 자칫하면면 큰 화를 당하게 될 거야!”

    그 말에 심협 또한 진중한 얼굴로 전음을 보냈다.

    “다른 사람에게 말을 안 하기는 했는데, 왜 밖에 알리지 말라는 거야? 황제내경에 무슨 엄청난 비밀이라도 있는 건가?”

    심협은 전음으로 물으면서 손의 술법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호불귀의 신혼과 경맥을 안정시켰다.

    “황제내경은 상고 시기에 이미 실전됐으니 네가 모르는 것도 당연하지. 이 공법의 내력은 확신할 수 없다. 누군가는 헌원 황제가 만들었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전설의 신인(神人) 서왕모(西王母)가 헌원 황제에게 전수했다고도 하지. 중요한 것은 헌원 황제가 치우에게 이길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공법 덕분이었다는 점이다.”

    심협은 그 말에 일순 넋이 나간 것처럼 멍해졌다. 황제내경에 이토록 엄청난 내력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이 공법은 영구, 소문, 두 편으로 나뉜다. 영구는 신체를, 소문은 신혼을 단련할 수 있지. 방금 네가 말한 회복 효과는 그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황제내경을 최고 경지까지 수련하면 불사의 몸이 될 수 있지.”

    화령자가 흥분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불사의 몸? 무라의 불사환령결처럼?”

    “불사환령결은 고작 환술로 묘기를 부리는 것에 불과하거늘 어찌 황제내경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 황제내경의 불사의 몸은 진짜 불사다. 아무리 큰 상처를 입고 몸이 조각조각 잘려도 다시 합쳐져 원래대로 회복할 수 있단 말이다.”

    “진짜 불사라고……?”

    심협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깜짝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불사불멸은 황제내경의 부속 신통일 뿐, 이 공법의 가장 신비한 점은 육체와 신혼의 수준을 동시에 높여 둘 사이의 융합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소용이지? 대승기에 들어설 때 육체와 신혼은 하나가 되는 것 아닌가?”

    “대승기에 들어서면 분명 신혼과 육체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상징이 되긴 하지. 허나 이는 기초적인 융합일 뿐, 극치는 아니다. 혼과 육이 완벽하게 융합하는 것이야말로 수련하는 모든 이가 추구하는 목표지. 그 경지에 도달하면 심신이 통달하고 영감이 예리해지며 공법이나 신통의 깨달음이나 영기를 끌어모아 수련하는 효과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도체(道體)의 특이한 체질과 비슷한 건가?”

    “도체란, 어느 방면의 법맥이 많아서 수련 속도가 보통 사람보다 훨씬 빠른 것을 말하지. 허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육체와 신혼의 결합도가 천성적으로 매우 높다는 것이다.”

    화령자의 이야기 덕분에 심협은 도체의 수련 향상에 대한 이해가 한층 더 깊어졌다.

    “혼체의 융합도는 수련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경지의 한계를 돌파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경지가 높아질수록, 태을기나 천존기로 돌파할 때일수록 육신과 신혼의 융합도가 더 중요하지.”

    “그렇군!”

    심협은 꿈속 세계에서 태을기와 천존기로 돌파한 경험이 있는데, 돌이켜보면 화령자의 말대로였다.

    “진선 절정에 도달하여 황제내경에 더욱 매진하고 여기에 태청단까지 더해진다면 태을기로 들어서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게다.”

    “명심하지. 알려줘서 고맙군.”

    심협이 정중하게 대답했다.

    “신혼 수련법을 다루는 황제내경 소문편은 나 같은 기령의 몸에도 큰 도움이 되는데…… 혹시 나한테도 전수해줄 수 있을까?”

    화령자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물론이지. 그동안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그깟 공법쯤이야…….”

    심협은 망설임 없이 황제내경 소문편의 내용을 화령자에게 전수해줬다.

    화령자는 소문편의 내용을 얻고는 바로 눈을 감고 깨달음에 들어갔다. 이내 그의 몸에 영롱한 불빛이 떠올랐다.

    심협은 그를 방해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운공하여 호불귀의 경맥을 보호했다.

    호불귀는 심협의 도움으로 몸의 떨림이 차차 누그러졌다. 그는 간신히 가부좌를 틀고는 혈맥 반조의 충격을 이겨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 시진이 지났다.

    호불귀의 몸의 변화가 마침내 멈췄고, 혈맥 반조의 상황도 제압되면서 온몸의 털이 사라졌다. 큰 고비는 넘긴 듯했다.

    그의 기운은 그리 강해지지 않았지만, 혈맥의 힘은 매우 짙어진 상태였다.

    그 무렵, 소요경 안의 화령자도 눈을 번쩍 떴다.

    “역시 황제내경, 천지를 다시 세울 정도의 신통이구나. 기령이 되면서 손상됐던 신혼이 무려 절반이나 회복됐어!”

    화령자는 크게 감탄했다.

    “신혼이 손상을 입은 상태였어?”

    “기령으로 연화되면 원하지 않아도 신혼이 손상을 입게 되지. 옛날에 광성자가 날 명화연노의 기령으로 만들 때, 그자는 수법이 졸렬하여 내 신혼이 절반이나 무너졌다. 그러니 내 연기술도 온전히 펼칠 수가 없었지. 한데 이제 황제내경이 있으니 신혼이 회복될 가능성이 생겼군. 고맙다.”

    “고마울 것 없어. 네 신혼의 힘이 회복되면 내게도 큰 도움이 될 테니까.”

    “네 순양검의 기령들도 내가 연화하긴 했지만 신혼이 손상되는 것을 면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황제내경을 수련해서 기령들의 신혼을 온전히 회복시켜주면 비검의 위력 또한 더 강해질 게다.”

    “알았어.”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고는 다시 호불귀를 바라봤다.

    호불귀의 몸에서 영광이 번득이더니 여섯 개의 푸른색 꼬리 허상이 나타났고, 한바탕 이리저리 흔들다가 다시 몸으로 들어갔다.

    “육미(六尾)의 천호(天狐)라! 이 호족 녀석도 대단하군. 한 번의 경험으로 혈맥의 힘이 육미 단계까지 도달하다니, 후에 태을에 오를 만한 자질이야.”

    화령자가 끌끌 웃으며 말했다.

    심협은 화령자의 눈썰미를 잘 알고 있었기에 호불귀를 대신해 기뻐했다.

    “한데 이상하군. 내가 알기로는 신마의 우물 안에 있는 본원의 힘이 담긴 보물만이 요족의 혈맥을 깨워 반조 현상을 일으킨다고 했다. 저자의 몸에서 본원의 기운은 전혀 안 느껴지는데 혈맥 반조는 어찌 나타난 거지?”

    “신마의 우물이라…….”

    호족은 지금 장안성에서 신마의 우물 입구를 찾고 있는데 호불귀는 왜 갑자기 지금 혈맥 반조가 일어났단 말인가? 두 사건에 어떤 관련이라도 있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네가 쉽게 제압했을 정도로 혈맥 반조가 그리 격렬하지 않았던 걸 보면 호불귀는 아무래도 순수한 요족이 아니라…… 인요 혼혈인 것 같다.”

    심협이 그게 무슨 뜻인지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데 호불귀가 긴 숨을 뱉어며 눈을 떴다.

    “호형, 괜찮소?”

    심협은 말을 멈추고 호불귀를 돌아봤다.

    “심 도우 도움 덕분에 이제 괜찮소. 정말 고맙소.”

    그때, 화령자가 전음을 전했다.

    “심협, 호불귀에게 갑자기 혈맥 반조가 일어난 게 아무래도 이상하다. 이유를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 말에 심협은 가볍게 웃으며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호불귀에게 물었다.

    “별일 아니오. 그나저나 방금 호형 몸에 일어난 일은 내 보기에 전설의 혈맥 반조 같던데, 맞소?”

    “심형의 안목은 역시 대단하오. 혈맥 반조가 맞소.”

    호불귀는 심협이 혈맥 반조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듯했다.

    “이전에 어느 선배에게 요족의 혈맥 반조에 대해 들은 적이 있소. 신마의 우물 안에 있는 본원 영물만이 그것을 일으킬 수 있다고 들었는데, 호형이 그런 보물을 가지고 있는 겁니까?”

    “신마의 우물이 혈맥의 반조를 일으킬 수 있다고요? 난 거기 가본 적도 없고 신마의 우물의 물건도 갖지 못했소!”

    호불귀가 경악하며 말했다. 그 표정과 눈빛은 분명 거짓이 아니었다.

    “신마의 우물 안의 본원 영력이 아니면 그럼 뭐 때문이지?”

    소요경 안의 화령자도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그럼 호형은 왜 갑자기 그런 것이오?”

    “방금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내 암영의 힘을 뚫고 이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 힘이 호 도우의 몸에 이상을 일으켰어요. 아무래도 그 힘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옆에 있던 섭재추가 덧붙였다.

    “호형, 아까 어떤 이상한 느낌이 들었소?”

    심협이 다급한 목소리로 호불귀에게 물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