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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00화 (1,000/1,214)

1000화. 검은 여우

사상천시대진 안에서는 평범한 요마나 귀물들을 찾아볼 수 없었는데, 죽은 것인지 아니면 도망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대당 관부와 다른 문파 제자들은 대진 밖에 있었는데, 인원은 절반 이하로 줄어 있었다.

남은 수사들은 전부 사상천시대진의 진안에 가부좌를 튼 채 법력을 주입해 진 내부의 여파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고 있었다.

몇몇 진선 수사는 진기를 들고 대진의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 진령 허상을 발동했다. 수많은 청목(靑木), 금인(金刃), 화염, 수뇌(水雷) 등의 공격이 검은 여우와 정체불명의 네 사람을 공격하고 있었다.

원천강 쪽이 한 명 적었지만, 사상천시대진의 위력은 태을 한 명의 전력과 비슷할 정도라 밀리지 않았다.

원천강 주위에는 세 개의 법보와 두 개의 검, 무자경과 복마천이 주위를 맴돌며 검은색 여우를 공격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청구 호족을 도와 대당과 대적하는 것이냐?”

이정이 천뢰음고에서 교룡 같은 뇌전을 뿜어내 곤봉을 든 검은색 그림자를 막아내며 호통 치듯 물었다.

검은색 그림자는 껄껄 웃더니 대답 대신 수백 개의 곤봉 허상으로 가볍게 교룡 같은 뇌전을 튕겨내고 남은 허상으로는 반격을 가했다.

이정은 당황하지 않고 결인하더니 팔을 휘둘렀다. 금색 보탑이 앞에 나타나 곤봉 허상을 막았다. 바로 건곤현화탑이었다. 요 며칠간 틈틈이 연화한 결과 그 위력을 8할 정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펑!

굉음이 울려 퍼졌고, 건곤현화탑은 검은 곤봉의 일격을 받고도 겉에서 금빛을 번쩍였을 뿐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검은 그림자의 곤봉이 백 배로 길어지더니 살아 있는 뱀처럼 건곤현화탑의 방해를 피하여 뒤의 이정을 공격했는데, 그 위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이정이 옆으로 피하면서 천뢰음고를 휘둘러 반격했다.

공동선사는 눈앞에 떠 있는 금색 발우에서 무궁한 법력이 담긴 노을빛을 뿜어내 검은색 발우를 들고 있는 검은 그림자를 막았다.

흑과 금의 발우는 모두 흡수의 효과가 있어서 두 기운이 서로 교차하고 흡수하면서 한동안 승부가 나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청련선자가 조종하는 스물두 자루의 연꽃잎 같은 법보가 정묘한 검진을 펼쳤다.

남은 두 사람의 검은색 고도(古刀), 자흑색 구슬과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사상천시대진의 공격은 대부분 청련선자 옆으로 집중되어 남은 두 명의 검은 그림자를 함께 막아냈다.

“네놈들이 누구든 감히 신마의 우물을 열려 들었으니 삼계의 모든 문파가 영원히 너희를 추격하고 또 추격할 것이다!”

이정이 거친 호통과 함께 건곤현화탑을 머리 위로 보내 떨어지는 금빛으로 몸을 보호하면서 천뢰음고에서 뿜어져 나온 커다란 뇌전으로 수십 장에 이르는 거대한 뇌검을 만들어냈다. 그는 순식간에 검은 그림자 앞으로 다가가 검을 거검을 휘둘렀다.

검은색 그림자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곤봉을 가로로 들어 막았다.

땅!

굉음이 울렸고, 검은색 그림자는 곤봉과 함께 뒤로 날아갔다.

며칠 동안의 격전으로 그들은 서로의 신통을 낱낱이 파악했기에 이제 결국 누가 더 오래 버티는가의 승부였다.

원천강 쪽에는 회복류 신통으로 명성이 자자한 보타산의 청련선자가 있었다. 천언궁의 대전 때도 심협은 섭채주 덕분에 쉬지 않고 법력을 회복할 수 있었고,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회복 신통에 대한 조예에 있어 청련선자는 섭채주 이상이었다.

지금도 청련선자 덕분에 원천강과 이정 등은 이런 전술을 선택할 수 있었고, 이는 매우 효과적이어서 전황이 점점 그들 쪽으로 기울었다.

이정이 내심 기뻐하며 계속 몰아붙이려는 순간이었다.

쿠르릉!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갑자기 강하게 흔들렸다.

“후, 드디어 왔는가!”

검은 여우의 눈에서 흥분한 기색이 떠오르더니 갑자기 몇 장 길이의 혈광을 뿜어내 원천강을 공격했다.

혈광 안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수많은 변화무쌍한 그림자는 강력한 환술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어서 원천강도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피해야 했다.

검은 여우는 그 틈에 땅으로 내려앉아 꼬리 하나를 지렁이처럼 땅속으로 쑤셔 넣었다.

땅이 크게 흔들리더니 검은 빛이 갑자기 땅밑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 빛이 꼬리를 타고 검은 여우의 몸으로 주입되자 몸이 빠르게 실체가 되어갔고, 기운 또한 점점 강해졌다.

표정이 어두워진 원천강이 복마천서를 꺼내 허공에 하얀 빛을 뿜어내자 거대한 하얀색의 고권(古卷)이 나타나 검은색 여우에게로 날아들었다.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무거운 법력 파동이 바로 검은 여우를 뒤덮었고, 허공에는 수많은 파문이 일었다.

이 광경을 본 이정은 공격해오는 검은 그림자도 개의치 않고 건곤현화탑을 날려 보냈다. 탑은 순식간에 수백 장을 날아가 검은 여우의 머리 위에 나타났고, 순식간에 백 장이 넘는 금색 거탑으로 변했다.

그가 손을 뒤집자 건곤현화탑도 뒤집혔고, 수많은 하얀 불꽃을 뿜어내며 검은 여우를 강하게 공격했다.

그러나 검은 여우는 이를 보고는 콧방귀를 뀌며 사람처럼 일어서더니 두 발을 거세게 휘둘렀다.

꽈르릉!

허공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두 개의 커다란 발톱 허상이 나타났다. 이 발톱 허상은 정확하게 복마천서와 건곤현화탑을 향해 날아갔다.

퍼펑!

굉음과 함께 복마천서와 금색 거탑은 우뚝 멈췄다.

원천강과 이정이 다른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검은 여우는 여덟 개의 꼬리를 휘둘렀고, 꼬리는 잔상을 남기며 갑자기 사라졌다.

다음 순간, 여덟 개의 꼬리가 두 사람 앞에 나타나 공격해왔다.

산과 바다를 뒤집을 만한 강력한 힘이 밀려오면서 허공이 떨려왔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쾅! 쾅!

연이은 두 번의 둔탁한 소리가 울렸고, 원천강과 이정이 뒤로 튕겨나갔다. 경지가 높고 견고한 원천강은 흔들림 없이 몸을 가눴고 상처 하나 없었던 반면 그에게 한참 미치지 못하는 이정은 몸을 보호하는 금빛이 절반쯤 부서졌고, 입에서는 피를 토했다.

검은 여우는 두 사람을 쫓아가지 않고 고개를 돌려 성 동쪽을 바라보더니 두 눈에서 다시 핏빛을 번득이며 고개를 들고 입을 벌렸다.

기이한 흡인력이 검은 여우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사상천시대진을 가볍게 뚫고 날아가 장안성 전체를 뒤덮었다.

성 동쪽의 백성들은 머릿속이 웅 하고 울리더니 고통스러운 듯 표정이 일그러졌고, 다시 천천히 멍해졌다.

보이지 않는 감정의 힘이 뿜어져 나와 파도처럼 검은 여우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원천강과 다른 태을 수사들도 이 흡수의 힘에 영향을 받았고, 이들의 감정의 힘도 빠져나가 여우에게 흡수됐다. 물론 이들의 경지와 신혼의 힘은 워낙 강력했기에 감정의 힘이 끊임없이 빠져나가도 견딜 수 있었다.

“칠정(七情)의 힘을 흡수하다니! 이건 모든 수족의 선조들만이 가진 신통인데! 넌 호족의 선조였나?”

이정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검은 여우는 이정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광소를 터뜨리더니 더욱 빨리 칠정을 흡수했다.

“어서 막아야 합니다! 신혼이 약한 백성들은 너무 많은 감정의 힘을 빼앗기면 신지가 손상될 겁니다!”

청련선자의 외침에 공동선사도 표정이 굳더니 금색 발우로 검은 여우를 공격했다.

원천강은 담담한 얼굴로 청구산 쪽을 흘낏 보더니 빛줄기가 되어 검은 여우를 덮쳤다.

네 개의 검은 그림자가 날아와 원천강 등을 막아섰다.

한편, 그 무렵 천기성에서도 땅속의 지맥에서 검은 빛이 용솟음치더니 검은 여우의 머리로 변해 입을 쩍 벌리고 흡인력을 뿜어냈다.

천기성 사람들의 감정의 힘이 뿜어져 나와 검은 여우의 머리로 빨려 들어갔다. 다만 칠정을 흡수하는 속도가 장안성에는 못 미쳤다.

건업성 땅속 지맥에도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여우의 머리가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남첨부주와 서우하주 등 인구가 많은 성마다 땅속에서 거대한 여우의 머리가 나타나 성안 사람들의 감정의 힘을 흡수했다.

* * *

청구산 땅속 동굴. 그루터기 위에 검은 빛이 번쩍였고, 감정의 힘이 벌떼처럼 몰려와 호조 조각상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렇게 많은 감정의 힘이라니, 비록 대부분이 다른 감정이라고는 해도 호조를 확실히 깨우기에는 충분하겠구나! 대성공이야, 대성공! 하하하!”

유소모주가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결인했다.

호조 조각상이 검은 빛이 되어 그루터기에서 뿜어져 나와 위로 날아갔고, 순식간에 조령 제단에 나타나 제단 안의 호조 조각상으로 들어갔다.

도산설은 받아들인 조령의 힘에 큰 부담감을 느끼던 중이라 호조 조각상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제단 안. 호조 조각상의 혈광이 갑자기 몇 배나 짙어지더니 붉은 광망이 확산됐고, 호조의 힘을 억제하던 도산설은 괴로운 듯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녀의 몸이 빠르게 팽창하더니 기운도 다시 급증하여 금방 태을 절정을 넘어 천존의 경지에 근접했다.

도산설은 고통스럽게 신음하다가 껄껄 웃기도 하는 등 기이한 행동을 했다. 누군가 봤더라면 정신이 나갔다고 할 만했다.

호조 조각상에서 폭증한 혈광은 곧바로 청구성으로 퍼져 나가 성안에 있던 호족 사람들의 몸도 팽창했고, 몸에 혈광이 감돌며 기운이 치솟았다. 이에 실력이 약한 자들은 몸이 갈라지면서 피를 쏟았고, 곧 숨이 끊어졌다. 폭증하는 호조의 힘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이들이 죽자 몸에서 빛나던 혈광이 체내의 모든 원기와 함께 빠져나와 땅속의 동굴로 들어갔다.

강력한 호족도 기운이 폭증하고 요동쳐 금방이라도 몸이 터질 것 같았다.

“이런, 모인 칠정의 힘이 너무 많고 잡스럽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유소모주는 표정이 변하더니 은색 무늬가 가득한 원반을 꺼내 결인해 발동했다.

땅속 동굴의 허공에 갑자기 은색 대진이 나타나더니 겹겹의 은색 진문이 빠르게 퍼져 나가 순식간에 청구산 전체를 뒤덮었다.

청구산 곳곳에 아직 살아 있던 호족들은 전부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다음 순간 땅속 동굴에 나타났다.

조령 제단에 있던 도산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현재 호조의 힘에 완전히 지배되어 표정에 기쁨과 분노가 반복돼 나타났고, 눈빛은 흐릿했다. 땅속 동굴로 전송되었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유소모주가 앉아 있는 그루터기의 검은색 법진에서 광망이 크게 번득이더니 나뭇가지 같은 검은 빛이 그루터기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 빛은 몸이 터질 것 같은 호족들의 몸을 찔렀다.

이 호족들의 몸에서 미친 듯이 날뛰는 광란의 기운은 빠져나갈 곳이 생기자 검은색 그루터기로 몰려갔다.

유소모주와 대진 안의 호족들이 힘을 합쳐 검은색 법진을 발동하더니 그 힘을 바깥에 있는 호족들의 몸으로 다시 불어넣었다.

이렇게 광란의 기운이 돌고 돌자 전송되어 온 호족들이 점점 안정을 찾았고, 죽지 않게 됐다.

도산설도 몸에 수십 개의 나뭇가지가 꽂힌 채 호조의 힘이 그녀의 몸과 검은색 그루터기를 오갔다. 그녀의 광기 어린 표정도 점점 안정되어 갔다.

유소모주는 도산설 등 호족의 상황이 안정되어 가는 걸 보고는 안도하며 어떤 해골로 만든 것 같은, 주먹만 한 백골 구슬을 꺼내 결인했다.

백골의 구슬에 핏빛이 감돌더니 동굴 안에 있는 핏빛 광망이 전부 날아와 백골 구슬 주위를 빠르게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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