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96화 (996/1,214)
  • 996화. 태을 호령

    심협의 시선은 쭉 성벽의 유소모주를 향하고 있었는데, 의문스럽게도 그녀는 전장에 직접 뛰어들 뜻이 없어 보였다.

    “이곳에 호령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 모르니 이대로는 모두의 법력이 소모되는 순간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거예요.”

    “내 생각도 그렇소.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해야만 하오.”

    섭채주의 걱정 가득한 목소리에 육화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중 법력이 강한 자들이 앞에서 길을 열어 산골짜기로 나갑시다. 다른 수사들은 뒤를 따르되 화법과 뇌법에 능한 수사들이 양쪽을 지키고, 대당 관부 수사들이 어검으로 그들을 보호하면서…….”

    여기까지 말한 심협은 언무사를 돌아보았다.

    언무사는 바로 심협의 뜻을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우리 천기성이 언갑을 조종하여 추격을 끊겠소.”

    “좋습니다. 제가 함께하지요.”

    심협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와 칠살 도우가 앞에서 길을 열면 되겠군요.”

    강신천의 말에 칠살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육화명은 바로 뜻을 전했고, 각 문파 제자들은 군말 없이 그 지시에 따르기로 했다.

    한창 공격을 퍼붓던 수사들도 일제히 물러났고, 주위의 호령 악귀들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수십 명의 보타산 제자들이 앞으로 나서며 동시에 진창해를 펼치자 푸른 빛이 흐르는 수막이 호령들을 집어삼켰다. 한기가 강렬하게 솟구치자 호령들은 그 자리에 꽁꽁 얼어붙었다.

    대당 관부 사람들은 장검을 뽑고 검우를 쏟아내 얼어붙은 호령들을 베었다. 다른 수사들은 그제야 숨을 돌렸다.

    이번 연합 작전에 참여한 문파 중 화계 술법을 핵심으로 수련한 곳은 현화파(玄火派)와 상양문(上陽門)뿐이었다. 뇌계를 중심으로 수련한 문파는 없었지만, 그나마 청부파(淸符派)에는 뇌계 부적이 있었다.

    육화명은 이 문파 수사들을 대열 양쪽에 안배했고, 대당 관부 제자와 마왕채 제자들이 그들을 보호했다. 강신천과 칠살은 각자 창을 한 자루씩 들고 행렬의 최전방에 섰고, 중앙에는 화생사와 보타산 제자들이 자리를 잡아 불문 공법으로 보호 법진을 만들어 모두를 뒤덮었다. 가장 뒤에는 심협과 언무사가 이끄는 천기성 제자들이 섰다.

    마치 계획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나룻배 같은 진형이 갖춰졌다.

    후방에 선 심협은 이미 숨이 끊어진 유려 장로와 여전히 구금되어 있는 흑려 장로를 바라봤다.

    “저 두 사람은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죽은 자는 필요 없으나 산 자는 쓸모가 있소.”

    언무사가 담담하게 말하면서 손을 휘두르자 2장 크기의 사람 모양 언갑이 앞에 나타났다. 뒤이어 언무사가 기이한 부적을 꺼내 흑려 장로의 몸에 붙이고는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가 법력을 발동하자 사람 형태 언갑의 복부에서 검은색 공간이 열렸는데, 안에서는 푸른색 부문이 반짝였다.

    언무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흑려를 그 안에 넣고는 검은색 공간을 바로 닫았다.

    언갑 안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흘러나왔다.

    흑려 장로의 법력이 부적의 발동 아래 끊임없이 뽑혀나가 언갑에게 흡수됐다. 언갑 주위의 부문이 밝아지더니 강렬한 법력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언무사가 손을 휘두르자 언갑이 무리에서 이탈해 뒤에서 쫓아오는 호령 악귀를 맞이했다.

    양손에 쥔 두 자루 장도에서 불꽃이 화르륵 타올랐고, 언갑은 성큼성큼 걸어서 호령 악귀의 포위 속으로 들어가 거침없이 도를 휘둘렀다. 수많은 호령이 불꽃의 도에 베여 초록색 빛으로 변하더니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 언갑의 주동적인 공격이 호령 대군 진영에 분노를 일으켰는지 수많은 초록빛 사령(死靈)이 사방에서 파도처럼 밀려왔다.

    현화파와 상양문 수사들은 이를 본 순간 소름이 돋았고, 일제히 술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불꽃이 끊임없이 허공에서 떨어졌는데, 효과가 매우 뛰어나 금방 한 무리의 호령 악귀들을 물리쳤다.

    청부파(淸符派)의 수사들도 일제히 영부를 발동하여 뇌전으로 호령 악귀들을 공격했다. 이와 동시에 대열 전체가 골짜기 입구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청구 호족들이 내려와서 직접 참전하지 않는 이유를 심협은 그제야 눈치챘다. 이 호령 악귀들의 공격은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고 무차별적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태을급 수사가 나서지 않는다면 살아서 빠져나가기는 훨씬 수월할 터였다.

    한데 그때, 땅 아래에서 무언가 숨어서 다가오고 있는 듯 뒤쪽의 땅이 갑자기 요동쳤다. 그것이 지나가는 곳마다 땅이 높이 솟아올랐고, 적지 않은 호령 악귀가 흩어졌다.

    심협은 자세히 살펴볼 겨를도 없이 바로 명홍도를 다시 소환했다.

    한 손으로 도를 쥐고 법력을 주입하자 도신에서 맑은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땅을 강하게 내리쳤다.

    백 장 길의 도광이 천지영기를 휘감고 땅으로 떨어졌다. 산골짜기 전체가 크게 흔들리고 연기가 피어올랐다.

    도의 날이 떨어진 곳을 시작으로 몇 장 너비에 끝이 보이지 않는 균열이 퍼져 나갔다. 그 균열은 청구성 아래까지 무너트리고 나서야 멈췄다.

    “좋은 도구나!”

    성벽의 소효 장로가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

    “저들을 몰살시키면 저 도는 자네 걸세.”

    유소모주가 담담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대장로님.”

    “대장로님, 저들을 다 죽이면 모든 문파가 폭주할 것입니다!”

    다른 장로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다 계획을 세워뒀으니 걱정 말게.”

    유소모주는 비릿하게 웃었다.

    한편, 심협은 비록 이전처럼 명홍도를 전력으로 발동하지 않았음에도 법력이 적지 않게 소모되었다. 그는 굳은 얼굴로 도를 거두고 뒤쪽을 돌아봤다.

    요동치는 땅이 갑자기 무너지더니 커다란 붉은 그림자가 땅속에서 튀어나왔다. 거대한 몸을 쭉 펴니 백 장은 될 것 같았다.

    기운이 이미 태을급에 도달한 호령이었는데, 뒤에서 흔들리는 아홉 개의 거대한 꼬리는 마치 붉은 불꽃 같았다. 하지만 두 눈에서 반짝이는 그윽한 초록색 불꽃은 산 것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가슴 부분에는 기다란 상처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고, 안에는 반짝이는 초록색 광망이 보였다. 아무래도 방금 명홍도의 일격에 생긴 상처 같았다.

    이 호령이 붉은색의 거대한 꼬리를 휘두르자 불꽃을 동반한 광풍이 연합군을 향해 날아들었다.

    천기성 제자들이 얼른 각자의 언갑을 발동하여 막았다.

    그중 자라 같은 거대한 언갑이 온몸에서 푸른색 광망을 뿜어내더니 입에서 파도를 뿜어냈다.

    꽝!

    물과 불이 충돌하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파도는 금세 증발해버렸으며, 자라 언갑은 금방 불꽃에 휩쓸려 순식간에 폭발했다.

    하지만 곧이어 날개가 달린 맹호 언갑이 날아와 두 날개를 흔들자 겨드랑이에서 두 줄기 광풍이 휘몰아쳐 기세가 약해진 불꽃을 껐다.

    그러나 모두가 기뻐하기도 전에 불꽃 여우의 몸이 바짝 쫓아오더니 거대한 발톱으로 그 맹호 언갑을 잡고는 양쪽으로 당겨 반으로 찢어버렸다.

    이를 본 심협이 팔을 휘두르자 열한 자루의 순양비검이 금과 적의 검광이 되어 여우에게 날아갔다.

    이 불꽃 여우는 비록 호령의 몸이지만 매우 단단해서 검광이 몸에 떨어져도 마치 모기가 문 것처럼 그것의 방어를 뚫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부의 불꽃만 벨 수 있을 뿐, 본체까지는 닿지도 못했다.

    심협은 다시 명홍도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법력 소모가 너무 커서 지금 무리해도 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불꽃 여우의 가슴에 생긴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것을 보고는 무언가 결심을 내렸다.

    연합군은 대오가 잘 안배되어 호령 대군의 공격에도 빈틈없이 막아냈고, 이동하는 속도도 느리지 않아서 벌써 조양곡 중반까지 다다랐다.

    하지만 현화파와 상양문 수사들은 법력 소모가 매우 심했고, 청부파의 뇌정 부적도 떨어져 갔다.

    이때, 골짜기 입구 쪽에서 호령 대군이 달려들었다.

    백 장 크기의 사람 몸에 여우 머리가 달린 악령 두 마리가 가까이 다가오자 강신천과 칠살은 서로 눈을 맞춘 뒤 동시에 날아올라 돌진했다.

    가까이 다가가기 전, 강신천은 영롱보탑을 내던졌다. 백 장 크기로 커진 보탑이 청동 도끼를 든 호령을 향해 떨어졌다.

    칠살도 조용히 마인을 꺼내 황동 부월을 든 호령을 향해 휘둘렀다.

    뒤이어 두 사람은 신통을 사용하여 백 장의 거인으로 변해 각자의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강신천과 칠살이 길을 열지 못하자 연합군 수사들은 전방에서 돌격해 오는 호령 대군과 정면으로 맞서야 했고, 압박감이 커졌다.

    화계 수사와 청부파 수사들이 더는 막아내지 못하게 됐을 때, 검을 뽑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대당 관부 제자들이 일제히 어검을 꺼냈다. 검광 하나가 열 개가 되고, 열 개가 백 개로, 백 개가 천 개로 나뉘었다.

    빛이 흐르는 검의 허상이 쏜살같이 날아가며 지나가는 곳마다 호령 악귀의 머리에 정확하게 구멍을 냈다.

    모두가 돌아보니 육화명이 대당 관부 제자를 거느리고 검진을 이루었고, 그의 주도하에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삽시간에 수백 마리에 가까운 호령 악귀가 죽었고, 수많은 초록색 빛이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검진은 매우 날카로운 만큼 소모가 커서 몇 번을 반복하자 대당 관부 제자들은 서서히 속도가 떨어진 반면 호령 악귀 대군은 끝도 없이 몰려왔다.

    그때,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주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든 보타산 제자들이 운공한 보도중생 신통에 부드러운 빛이 뿜어져 나와 주위를 뒤덮었다.

    광망에 휩싸인 수사들은 혈기가 왕성해졌고, 연이은 교전으로 인한 피로감이 싹 사라졌으며, 기력도 잇달아 왕성하게 회복되었다.

    “아불자비(我佛慈悲)…….”

    불송을 읊조리는 소리가 화생사 제자들의 입에서 들려오더니 부드러운 금색 불광이 퍼져 나갔다. 그러자 사람들은 혈도가 크게 열려 주위의 천지영기가 체내로 흘러들어오면서 법력이 빠르게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모두가 크게 고무됐고, 투지도 다시 솟아올랐다.

    이쯤 되자 중소형 문파 제자들과 장로들은 대당 관부나 화생사 같은 큰 종문과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한편, 후방의 심협도 법력이 빠르게 회복되자 안심하고는 다시 불꽃 여우 악령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한 자루 순양비검을 들고 불꽃 여우 악령과 교전했고, 다른 열 자루 순양비검은 허공에서 진을 이루어 금광검진을 이루었다.

    추운축전화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가속해 불꽃 여우 머리 위에 나타난 심협은 그 머리에 검을 내리쳤다.

    불꽃 여우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고 다리를 들어 막으려 했다. 이에 자연스레 가슴이 활짝 열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다!”

    심협은 불꽃 여우의 가슴에 드러난 상처를 보며 눈을 빛내더니 검을 휘두른 뒤 곧장 물러났다. 그 순간, 금광검진이 광망을 크게 뿜어내며 불꽃 여우의 상처를 향해 날아갔다.

    한데 그때, 영지가 없어 보이는 불꽃 여우 악령이 본능에 의지하여 아홉 개의 꼬리를 앞으로 내밀더니 활짝 펼쳐진 꽃잎처럼 꼬리를 펼쳐 금광검진을 막았다.

    이와 동시에 불꽃 여우는 거대한 발을 휘둘렀다.

    심협이 허공에 발을 디디며 민첩하게 공격을 피하고는 불꽃 여우의 가슴을 향해 돌진했다.

    불꽃 여우는 꼬리 하나를 심협에게 휘둘렀다.

    한데 어째서인지 심협은 피하지 않고 그대로 날아들었다.

    꼬리와 충돌하려는 순간, 누군가 갑자기 옆에서 나타나더니 심협을 대신에 그 일격을 막아내고는 퍽 하며 뒤로 날아갔다.

    심협은 그 틈을 타 곧장 불꽃 여우의 가슴으로 향하더니 순양비검을 상처에 찔러 넣었다.

    비검이 불꽃 여우 체내로 들어가자 순양검기가 순식간에 폭발했고, 주작검령이 날개를 펼치면서 거대한 불꽃 새가 되었다. 거침없이 뿜어져 나온 주작신화가 안쪽에서부터 거침없이 불꽃 여우 악령을 태워갔다.

    불꽃 여우 악령은 단단한 외부와 달리 내부는 유명 귀화로 만들어진 것이라 당연히 순양비검을 견디지 못했다. 이 여우의 힘이 빠르게 사라지면서 아홉 개의 꼬리도 점점 힘을 잃어갔다.

    열 자루의 순양비검도 이 틈에 여우 불꽃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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